Ticker

6/recent/ticker-posts

『최소한의 한국사』(최태성) 리뷰/요약

 

최태성 『최소한의 한국사』: 5천 년 역사의 흐름을 단숨에 꿰뚫다

1.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

역사는 단순한 암기 과목이 아닙니다. 저자 최태성은 역사를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정의합니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내린 무수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고조선의 건국부터 2000년 남북정상회담까지, 한국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2. 고조선과 삼국시대: 한반도 역사의 시작과 경쟁

반만년 역사의 시작, 고조선

우리 역사의 시작점은 기원전 2333년,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된 고조선입니다.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에 담긴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이념은 우리 민족이 지향하는 도덕적 가치를 보여줍니다. 고조선은 중국의 연나라와 대립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위만조선을 거쳐 한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조선이 남긴 철기 문화와 선민사상은 이후 삼국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고구려: 대륙을 호령한 자주적 기상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먼저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 소수림왕의 개혁: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율령 반포, 태학 설립, 불교 수용을 통해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전성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광개토태왕과 장수왕: 광개토태왕은 요동과 만주로 영토를 확장했고, 장수왕은 평양 천도를 통해 남진 정책을 펼치며 한반도 내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장수왕의 남진 정책은 백제의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으로 밀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수·당 전쟁의 승리: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수나라)과 안시성 전투(당나라)는 당시 세계 최강 제국이었던 중국 왕조의 침략을 막아낸 쾌거였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강자였음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백제: 세련된 문화 강국

백제는 한강 유역에서 성장하여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 근초고왕의 정복 활동: 4세기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중국 요서 지방과 일본 규슈까지 진출하며 해상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 문화의 힘: 백제는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미학을 가졌습니다. 무령왕릉과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뛰어난 예술성과 국제적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 유산입니다.

신라: 최후의 승자가 된 외교 전략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했지만, 특유의 유연한 외교술로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 진흥왕의 전성기: 6세기 진흥왕은 화랑도를 개편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며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한강 점령은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 나당 연합과 삼국 통일: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외교력으로 당나라와 연합을 맺은 신라는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를 차례로 멸망시켰습니다. 이후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이자, 매소성과 기벌포 전투에서 당군을 몰아내며 676년 진정한 삼국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가야: 잊혀진 철의 왕국

가야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성장한 연맹 왕국이었습니다.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중심으로 중계 무역을 통해 번영했으나,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일본이 주장했던 '임나일본부설'은 가야의 우수한 철기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었던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현재는 학계에서 폐기된 주장입니다.

3. 남북국시대: 발해와 통일신라의 공존

발해: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융합된 국가였습니다.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온돌 문화를 공유하는 등 고구려 계승 의식이 뚜렷했습니다.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아 '해동성국(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이라 불릴 만큼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급격히 멸망했습니다.

통일신라: 민족 문화의 황금기

통일신라는 평화와 안정을 바탕으로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 신문왕의 왕권 강화: 귀족의 경제적 기반인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여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 불교 예술의 정점: 불국사와 석굴암은 통일신라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특히 석굴암은 수학적, 과학적 원리가 적용된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합니다.

4. 고려시대: 다양성과 개방성의 중세 사회

고려의 건국과 체제 정비

왕건은 호족 세력을 포용하고 융합하여 고려를 건국했습니다.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실시하여 호족 세력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성종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적 통치 이념을 확립했습니다. 고려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제를 통해 고대 사회보다 한 단계 발전한 중세 사회를 열었습니다.

거란, 여진, 몽골과의 항쟁

고려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저항과 뛰어난 외교술로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 거란의 침입: 서희는 뛰어난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획득했고, 강감찬은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을 대파했습니다.

  • 몽골의 침입: 세계 최강 몽골 제국에 맞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 40년 가까이 항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며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비록 원의 간섭기를 겪었지만, 끈질긴 저항 덕분에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공민왕의 개혁과 고려의 멸망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공민왕은 반원 자주 정책을 펼쳤습니다.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영토를 회복했으며,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기득권의 반발로 실패하고, 이후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성계)이 성장하며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5.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상 국가의 실현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과 태종의 기틀

이성계와 손잡고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꾸며 한양 도성부터 법 제도까지 조선의 기틀을 설계했습니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왕권 강화를 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6조 직계제를 실시하며 강력한 국왕 중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세종대왕: 애민 정신과 문화의 르네상스

세종은 태종이 다져놓은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유교 정치의 이상을 실현했습니다.

  • 훈민정음 창제: 백성들이 제 뜻을 펼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우리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애민 정신의 결정체입니다.

  • 과학과 영토: 장영실 등을 등용해 측우기, 자격루 등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오늘날의 국경선을 확정했습니다.

양란의 극복과 탕평 정치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은 조선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선조는 피난을 갔지만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의병들의 저항으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인조 때 병자호란을 겪으며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전쟁 이후 붕당 정치가 변질되자, 영조와 정조는 탕평책을 통해 붕당 간의 균형을 맞추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특히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을 건설하며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세도 정치와 민란

정조 사후, 어린 왕들이 즉위하면서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매관매직과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에 저항하여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 등 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6. 근대: 개항과 국권 침탈, 그리고 저항

흥선대원군과 개항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왕권 강화를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고 서원을 철폐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막아냈으나, 근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며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부패한 사회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들의 요구는 갑오개혁에 반영되어 신분제 폐지라는 역사적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대한제국과 국권 피탈

고종은 아관파천 후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하며 자주독립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 승리 후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강탈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 1910년대: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통치기. 국내외에서 비밀 결사 조직과 독립군 기지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 3.1 운동(1919): 전 민족이 참여한 거족적 만세 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으며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1920년대: 소위 문화통치기.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 무장 투쟁이 활발했습니다.

  • 1930년대 이후: 민족말살통치기. 일제는 창씨개명,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했습니다. 이에 맞서 한인애국단(이봉창, 윤봉길)의 의거와 한국광복군의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7. 현대: 광복, 분단, 그리고 민주주의

광복과 6.25 전쟁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으나,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었습니다. 이후 1948년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여 민족적 비극을 겪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

  • 4.19 혁명(1960):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최초의 민주 혁명입니다.

  • 5.18 민주화운동(1980): 신군부의 집권에 저항한 광주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후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6월 민주항쟁(1987):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친 시민들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습니다.

경제 성장과 남북 관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또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며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서평] 역사의 거울 앞에서 현재를 묻다: 『최소한의 한국사』를 읽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명언처럼, 최태성 저자의 『최소한의 한국사』는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뜨거운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5천 년이라는 방대한 한국사의 흐름을 단 한 권에 압축하면서도, 단순한 사실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람'과 '선택'에 주목한다.

쉽지만 가볍지 않은, 통찰력 있는 역사 수업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친절함'과 '명쾌함'이다.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나 학창 시절 암기 위주의 역사 공부에 지쳐 흥미를 잃은 독자들에게, 저자는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한 구어체로 역사의 맥락을 짚어준다. 복잡한 연도와 사건명 대신,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인과관계를 설명함으로써 독자가 역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을 설명할 때 단순히 결과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된 지리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신라가 선택해야 했던 절박한 외교술을 조명한다. 또한,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정도전과 정몽주의 대립을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닌,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비전의 차이로 해석하며 독자들에게 리더십과 신념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역사의 변곡점, 그 선택의 순간들

저자는 역사를 "사람들이 내린 수많은 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그 선택이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 위기 속의 선택: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도망쳤지만, 의병과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명분을 쫓다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은 지도자의 올바른 판단과 책임감이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가르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 개혁과 저항: 기득권을 내려놓고 신분제 폐지를 주장했던 갑신정변의 주역들, 동학농민운동의 농민들, 그리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이 역사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임을 증명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근현대사 서술이다. 개항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를 다루면서, 저자는 실패한 역사조차도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했지만 그 정신은 3.1 운동으로, 그리고 4.19 혁명과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이는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억할 것"이라던 윤상원 열사의 말처럼, 역사는 결코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를 위한 내비게이션

『최소한의 한국사』는 단순한 교양서를 넘어,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내비게이션과 같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인가?"라고 묻는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최만리가 반대했던 이유는 당시의 '중화주의' 시선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재의 상식에 매몰되지 말고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책을 덮으며 우리는 깨닫게 된다. 역사는 암기해야 할 지식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는 보물창고라는 사실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겪어온 시련과 극복의 과정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한국사에 대한 기본 소양을 쌓고 싶은 사람,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은 당신에게 '최소한'의 지식을 넘어 '최대한'의 삶의 지혜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