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 - 김종일 선교사
밖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슬람 탐구
이 책은 한국 교회가 이슬람과 무슬림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저자 김종일 선교사는 20년 가까이 튀르키예(터키) 국립 앙카라대 교수로 재직하며 현장에서 무슬림들과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무슬림들은 정말 위험한 사람들인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에 갇힌 편견을 깨라"
한국 사회와 교회 내에는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즉 '이슬람 포비아'가 존재합니다. 특히 유럽의 무슬림 게토(Ghetto) 현상을 보며 한국도 그렇게 될까 우려합니다
이슬람의 현실: 대부분의 무슬림은 꾸란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거나, 운명처럼 주어진 종교 안에서 맹목적으로 살아갑니다
. 테러를 일삼는 원리주의자는 극히 일부입니다. 한국의 상황: 한국은 삼겹살(돼지고기)과 술 문화가 지배적이어서 원리주의 무슬림이 살기 힘든 환경입니다
. 따라서 국내 체류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은 과도한 공포입니다. 우리의 자세: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슬림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닫혀버린 우리의 강퍅한 마음입니다
.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통해 두려움이 아닌 '자비'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무슬림은 우리의 '이웃'인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본 진정한 이웃의 정의"
유대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며 이웃의 자격을 따졌습니다
이웃의 개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즉, 내가 도울 대상의 자격을 따지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도움이 필요한 자의 이웃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 실천적 사랑: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원수지간이었음에도 '불쌍히 여겨(Compassion)' 다가가 상처를 싸매고 돌보았습니다.
적용: 무슬림이 우리의 이웃이 될 자격이 있는지 묻지 말고,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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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무슬림들의 생각
"십자가와 초승달의 영적 전쟁"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바로 이 '십자가'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것이 선교의 가장 큰 장벽입니다.
예수에 대한 이슬람의 시각: 무슬림은 예수를 존경하며 위대한 선지자(이싸)로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신성)은 부인합니다
.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믿습니다. 알라의 선지자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실패'를 겪을 리 없다는 논리입니다 . 구원관의 충돌: 십자가 죽음의 부인은 곧 대속(Redemption)과 원죄의 부정을 의미합니다
. 따라서 무슬림에게는 죄 사함의 확신이나 중보자의 개념이 없습니다. 선교적 시사점: 무슬림들이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교육받은 이슬람 신학 때문입니다. 이를 논쟁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십자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슬림들의 예배와 우리의 예배
"형식적인 율법 준수 vs 신령과 진정의 예배"
무슬림의 신앙생활은 '6신 5행(여섯 가지 믿음과 다섯 가지 실천)'으로 요약됩니다
무슬림의 예배: 철저하게 형식을 따릅니다. 아랍어로 된 기도문을 외워야 하며, 몸을 씻는 정결 의식(우두)을 행하고, 정확한 동작과 방향을 지켜야 합니다
. 그러나 뜻도 모르고 주문처럼 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제물뿐만 아니라 제사 드리는 사람의 '삶'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 형식에 얽매여 구원을 보상받으려는 무슬림들의 예배와 달리,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으로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무슬림들의 단식, 라마단
"금욕과 축제 사이, 그들의 간절함과 허무함"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은 무슬림들에게 가장 거룩한 달입니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 물, 흡연 등을 철저히 금합니다
라마단의 의미: 무함마드가 꾸란을 계시받은 '권능의 밤(운명의 밤)'이 이 기간에 있습니다
. 무슬림들은 이 기간의 단식과 기도가 과거의 죄를 씻어준다고 믿습니다. 풍경: 해가 지면 '이프따르(단식 후 첫 식사)'를 통해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낮에는 금욕하지만 밤에는 폭식과 축제가 이어지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 기독교인의 자세: '역 라마단 기도회' 같은 공격적인 용어보다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로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사랑의 실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사 58:6) .
무슬림들의 최대 명절, 희생절
"대체된 제물, 그러나 알지 못하는 어린 양 예수"
희생절(이드 알 아드하)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건을 기념합니다. 성경은 이삭이라고 기록하지만, 꾸란은 이스마엘이라고 주장합니다
희생 제사: 무슬림들은 양이나 소를 잡아 알라에게 바치며 자신의 죄를 속죄받길 원합니다
. 결정적 차이: 아브라함 사건의 핵심은 아들 대신 죽은 '수양(대체 제물)'입니다. 성경은 이 수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가르칩니다.
복음의 접촉점: 무슬림들은 여전히 매년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지만,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음을 믿습니다. 이 '대속의 은혜'가 무슬림에게 전해져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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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지하드
"천국을 향한 잘못된 열망, 성전(聖戰)"
'지하드'는 본래 내면의 죄와 싸우는 영적 투쟁을 의미했으나, 역사적으로 이슬람 확장을 위한 무력 전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구원의 불확실성과 순교: 이슬람에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천국행이 보장된 길이 바로 '지하드에서의 순교'입니다
. 꾸란은 순교자에게 쾌락적인 천국(술과 처녀들)을 약속합니다 . 현대의 지하드: IS나 알카에다 같은 폭력적 지하드뿐만 아니라, 금융, 문화, 교육을 통한 '비폭력 지하드'도 활발합니다
.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무슬림의 폭력성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말씀(요일 4:18)을 붙들어야 합니다
. 폭력은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스쿼시' 같이 '알라'를 생각하며 사는 무슬림들
"거래하는 신앙 vs 은혜의 신앙"
저자는 무슬림의 신앙관을 벽에 공을 치는 '스쿼시' 게임에 비유합니다.
스쿼시 신앙: 내가 공을 세게 치면 세게 돌아오듯, 내가 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키면 신이 복을 주고 구원할 것이라는 '행위 구원' 사상입니다
. 신과 인격적인 교제는 없고 보상과 형벌만 있습니다. 기독교의 은혜: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감사로 선을 행합니다
. 이 '조건 없는 사랑'이 무슬림에게는 충격적인 복음이 됩니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알라'와 우리 하나님
"타우히드(단일성) vs 삼위일체"
무슬림 신학의 핵심은 '타우히드', 즉 알라의 절대적 단일성입니다.
알라의 속성: 알라는 초월적이고, 인간과 격리되어 있으며, 아들도 낳지 않는 군주와 같습니다
. '알라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는 그들의 절대적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임마누엘)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 사랑의 개념 차이: 이슬람에서 신의 사랑은 '와두드(애정, 좋아함)' 정도지만, 성경의 사랑은 '마합바(아가페적 사랑)'입니다
. 십자가 희생이 없는 알라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부재합니다.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은 같은가?
"본질적 차이와 선교적 접근"
'알라'와 '하나님'이 같은 신인가에 대한 논쟁은 뜨겁습니다.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는 공존을 위해 같다고 보았지만, 저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합니다.
신학적 불일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는 알라가 십자가를 계획하신 하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용어의 문제: 아랍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릅니다. 이는 언어적 호칭일 뿐입니다
. 따라서 '알라'라는 단어 자체를 배격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신학적 내용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채워 넣는 선교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 친구인가?
"피로 얼룩진 형제 갈등"
이슬람 내부에는 1,400년 넘게 지속된 수니파(85-90%)와 시아파(10-15%)의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의 기원: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칼리프) 계승 문제입니다. 수니파는 선출된 칼리프를 따르지만,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인 '알리'와 그 후손(이맘)만을 인정합니다
. 교리의 차이: 시아파는 '이맘'을 무오류의 신적 존재로 여기고, 메시아(마흐디) 사상과 자신의 믿음을 숨길 수 있는 '타키야' 교리를 가집니다
. 상호 배척: 서로를 '카피르(배교자, 불신자)'로 규정하며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입니다
. 이슬람의 '평화' 주장이 무색해지는 지점입니다.
무슬림이 예수를 안 믿는 이유
"두터운 오해와 공동체 압박"
무슬림 전도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신학적 문제만이 아닙니다.
신학적 장벽: 삼위일체와 십자가를 부정하는 철저한 세뇌 교육
. 움마(Umma) 공동체: 이슬람은 개인 신앙이 아닌 집단 운명체입니다. 개종은 곧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축출, 심지어 죽음을 의미합니다
. 문화적 편견: 그들은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 십자군 전쟁, 도덕적 타락과 동일시합니다
. 성경 왜곡설: 무슬림들은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믿어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역설적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많은 무슬림이 회심합니다.
중동은 무슬림들의 땅인가?
"하나님의 마음 품기"
중동에는 이슬람 이전부터 예수를 믿어온 아랍 기독교인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불의한 청지기를 통해 빚진 자를 탕감해주고 싶어 하는 주인의 마음이 바로 무슬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결론: 무슬림을 이론이나 교리로 이기려 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과 겸손한 섬김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국내에 들어온 이주민 무슬림들을 '보내주신 선교 대상'으로 여기고 사랑으로 섬길 때,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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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슬람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경계'를 넘어 '이웃'으로
[들어가며: 왜 지금 이 책인가?] 한국 사회는 급격히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거리에서 히잡을 쓴 여성을 마주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으며, 국내 체류 외국인 중 무슬림의 비율도 상당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종일 선교사의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는 한국 교회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와도 같다. 이 책은 막연한 공포(이슬람 포비아)와 무분별한 수용(다원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성경적 관점에서 무슬림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지 명확한 나침반을 제시한다.
[책의 강점 1: 현장성과 전문성의 조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이다. 20년 가까이 튀르키예 국립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무슬림 지성인부터 서민들까지 깊이 있게 교제한 저자의 내공이 문장마다 묻어난다. 그는 책상물림의 이론가가 아니라, 무슬림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그들의 고민과 삶을 들여다본 '친구'로서 이야기한다. 특히 이슬람의 난해한 교리(타우히드, 지하드, 수니/시아 분파 등)를 '스쿼시 게임'이나 '에코 체임버' 같은 현대적이고 직관적인 비유로 풀어낸 점은 탁월하다. 덕분에 독자는 복잡한 이슬람 신학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무슬림들의 정서적 결핍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읽어낼 수 있다.
[책의 강점 2: 신학적 선명성과 선교적 유연성] 저자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와 '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이슬람의 '단일신론'과 어떻게 정면으로 충돌하는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알라와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면서도, 동시에 '알라'라는 호칭 문제에 매몰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본질(복음)은 사수하되, 비본질(문화, 용어)에는 유연해야 한다는 선교의 황금률을 보여준다. 또한, 라마단이나 희생절 같은 이슬람 문화를 '영적 전쟁'의 대상으로만 보고 대적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그 기간에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고 섬기는 기회로 삼자는 제안은 한국 교회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을 성찰하게 한다.
[적용점: 두려움을 넘어 사랑으로] 이 책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저자는 무슬림들이 꾸란의 율법에 매여 구원의 확신 없이 살아가는 '영적 고아'와 같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테러리스트이기 이전에,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한 잃어버린 양들이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것인가?" 한국 교회는 이제 무슬림을 향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고, 그들을 우리 곁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국내에 들어온 무슬림 이주민들에게 우리가 먼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진정한 '살아있는 성경'이 되어줄 때, 굳게 닫힌 이슬람의 문은 열릴 것이다.
[나가며]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는 이슬람에 대한 지식 전달을 넘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일깨우는 책이다. 이슬람 선교에 관심 있는 사역자뿐만 아니라,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무슬림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하나님의 긍휼이 마음에 차오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