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 설교집 《말씀 등불 밝히고》: 성경 66권에 담긴 시대를 꿰뚫는 통찰
1. 말씀의 바다로 나아가며
이 책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에서 각기 한 편씩의 설교를 선정하여 엮은 설교집이다. 저자는 서문 「뱃머리에 서서」를 통해 설교자로서의 고뇌와 사명을 밝힌다. 설교단은 세상의 맨 선두, 즉 뱃머리와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일으키는 사건을 가장 먼저 마주하고 세상을 이끌어가야 하는 자리이다. 저자는 타성적인 신앙과 욕망에 물든 기독교를 경계하며, 문자를 넘어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고자 노력해온 40년 설교 인생의 정수를 이 책에 담았다.
또한, 민영진 박사, 김기현 목사, 정용섭 목사 등 여러 신학자와 지성인들의 해설이 곁들여져, 김기석 목사의 설교가 지닌 문학적 감수성, 예언자적 기백, 그리고 일상과 신앙을 연결하는 영성적 깊이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2. 모세오경: 언약과 해방, 그리고 거룩한 삶
창세기: 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3:8-11)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피해 숨지만, 하나님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시며 인간을 찾아오신다. 신앙은 숨바꼭질과 같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숨은 인간을 찾아내어 사랑으로 거리를 좁히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구원의 시작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희망의 뿌리이다.
출애굽기: 근본에 충실한 사람들 (20:1-7) 십계명은 출애굽 공동체에게 주신 자유의 대헌장이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일체의 억압(돈, 권력, 이념)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매인 참 자유인이 되라는 선언이다. 현대인의 우상인 탐욕과 출세 지향에서 벗어나 근본(Ad Fontes), 즉 예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레위기: 땅은 하나님의 것 (25:23-28) 희년 사상은 땅이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은 나그네일 뿐이라는 고백에 기초한다. 땅을 사고파는 투기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평등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부동산 투기와 양극화로 신음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민수기: 기브롯 핫다아와 (11:31-35) 광야에서 고기를 탐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는 풍요에 대한 환상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의 기브롯 핫다아와는 소비 사회의 탐욕에 중독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참된 자유는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잇대어 있을 때 주어진다.
신명기: 자기 초월이라는 소명 (31:9-13) 신앙은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역사를 치열하게 기억함으로 망각에 저항해야 한다. 자기 연민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이웃의 고통에 응답하며 자기를 초월할 때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3. 역사서: 역사의 주체로 서는 믿음
여호수아: 역사의 주체로 서다 (2:8-13) 기생 라합은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고 하나님 편에 섰다. 그는 불의한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여는 일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신앙은 안주가 아니라 모험이다.
사사기: 생의 한가운데서 (16:17-22) 삼손의 비극은 힘을 과신하고 본분을 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처참한 상황에서야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삶의 호시절뿐만 아니라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다시 자라난 머리카락은 회복의 은총을 상징한다.
룻기: 차이보다 중요한 것 (2:5-13) 이방 여인 룻과 유력자 보아스의 만남은 경계를 허무는 사랑의 이야기다. 보아스는 룻을 이방인으로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존재로 환대했다.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권력과 신앙의 긴장 다윗과 사울,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등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의 오만과 타락을 경계한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옷자락만 벤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다. 반면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지혜를 버리고 힘으로 백성을 억압하려다 나라를 분열시켰다. 권력은 백성을 섬기라고 주신 것이지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참된 지도자는 듣는 마음(경청)을 가진 자이다.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하다 포로 귀환 후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무너진 신앙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에스라의 회개 운동, 느헤미야의 리더십,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은 위기의 시대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에스더의 이야기는 권력 앞에서도 신앙의 양심을 지키는 자유인의 기상을 보여준다.
4. 시가서: 삶의 비애와 탄식, 그리고 지혜
욥기: 헤아릴 수 없는 신비 (9:1-11) 고통은 인과응보의 도식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신비 앞에 서게 한다.
시편: 그들은 나를 이겨내지 못했다 (129:1-8) 이스라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으나, 그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선언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나온다.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고난 중에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잠언/전도서/아가: 지혜와 사랑의 노래 지혜는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전도서는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욕망을 내려놓으며, 지금 주어진 삶을 누리라고 권면한다. 아가는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사랑을 남녀의 사랑에 빗대어 노래하며, 우리 영혼의 봄날을 일깨운다.
5. 예언서: 정의와 공의, 그리고 회복의 약속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다니엘: 대예언자들의 외침 이사야는 사막에 꽃이 피는 비전을 통해 절망의 땅에 희망을 심는다. 예레미야는 거짓 평화에 속지 말고 가던 길을 멈추고 옛길(진리)을 찾으라고 호소한다. 에스겔은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제국의 우상에 저항했다.
소예언서: 시대의 어둠을 찢는 사자후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심정으로 배역한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아모스는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외치며 형식적인 종교 행위를 비판한다. 요나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 니느웨(원수)까지 아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깨닫는다. 미가는 불의한 권력을 꾸짖을 용기를, 하박국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진리를 선포한다.
6. 복음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의 현현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의 핵심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셨다. 이는 혈통이나 종교적 기득권이 아니라, 순수한 신뢰와 공감이 믿음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겨자씨 비유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 결국 세상을 뒤덮을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함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의 맹인 치유 사건은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을 떠야 함을, 그리고 기존의 종교적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 오히려 참된 구원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7. 서신서 및 요한계시록: 교회와 종말의 비전
바울 서신: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욕망의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저항적 삶을 의미한다. 고린도전후서는 나눔과 통합의 성찬, 그리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믿음을 강조한다. 갈라디아서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자유인의 삶을, 옥중 서신들(에베소, 빌립보, 골로새)은 감옥에서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는 사도의 삶을 보여준다.
공동 서신: 고난 중의 소망 히브리서는 뒤로 물러나지 않는 믿음을,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강조한다. 베드로전후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나그네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거룩한 행실로 세상에 희망의 이유를 제시하라고 격려한다. 요한서신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선포하며 형제 사랑이 곧 하나님을 아는 길임을 역설한다.
요한계시록: 최후의 승리와 찬양 박해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주관자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임을 천명한다. 세상은 짐승의 권세 아래 있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가 승리할 것이며, 성도들은 하늘의 예배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선율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서평] 텍스트의 주름 속에 감춰진 생명의 빛을 길어 올리다
1. 인문학적 통찰과 성서적 깊이의 조화 김기석 목사의 설교집 《말씀 등불 밝히고》는 단순한 성경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은 문학, 철학, 역사, 예술을 넘나드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성경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되살려낸다. 저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도스토예프스키, 함석헌, 김교신, 본회퍼,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등 동서양의 지성과 영성을 자유롭게 호명하며 성경의 메시지를 현대인의 언어로 번역해낸다. 그의 설교에서 텍스트는 평면적인 문자가 아니라, 우리 삶의 비루함과 고귀함, 절망과 희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예컨대, 빌레몬서를 설교하며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불러오거나, 다니엘서를 통해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연결하는 방식은 성경을 낯설게, 그러나 더욱 생생하게 보게 만든다.
2. 시대를 향한 예언자적 외침: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라"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불편함'에 있다. 저자는 값싼 위로와 번영 신학에 중독된 한국 교회에 매서운 죽비를 내리친다. 그는 아모스와 미가, 예레미야의 입을 빌려 탐욕에 젖은 종교, 권력과 결탁한 신앙, 약자의 고통에 눈감은 교회를 질타한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기복주의 대신 "예수를 믿는 것은 고난을 사서 하는 것"이며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용산 참사, 세월호 비극,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 등 한국 사회의 아픈 현장을 외면하지 않고 설교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설교는 성전 안의 평온함이 아니라 광장의 치열함 속에 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신앙이 개인의 내면적 평화를 넘어선 공적 책임(Public Theology)임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한다.
3. 일상의 영성: "삶이 곧 예배다" 김기석 목사는 거창한 구호보다 구체적인 일상의 변화를 강조한다. 로마서 설교에서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해석하며, 그는 거룩함이 특별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야 함을 강조한다. 환경을 생각하여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 층간 소음을 배려하는 것, 경비원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것, 이 모든 사소한 일상이 곧 예배라고 말한다. 그의 설교는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교리의 언어를 생활의 언어로 번역하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이는 신앙과 삶의 괴리로 고민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공한다.
4.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신학 그의 펜 끝은 예리하지만, 그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다. 그는 인간의 연약함과 모순을 깊이 이해한다. 실패한 베드로, 도망친 요나, 의심하는 도마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지만, 결코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메시지는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 그는 폐허 속에서도 꽃을 피우시는 하나님, 벼랑 끝에서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독자들을 '물러나지 않는 믿음'의 자리로 초대한다.
5. 우리 시대의 필독서 《말씀 등불 밝히고》는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구원 서사이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연애편지이며 동시에 엄중한 경고장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길임을 보여준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아는 이들,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 그리고 교회의 타락에 실망하여 가나안 성도가 된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금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기석 목사의 언어는 맑고 깊다. 그 언어의 세례를 받는 동안 독자의 영혼은 정화되고, 시선은 맑아지며, 손발은 이웃을 향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