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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우아하게 걷기』(류호준) 리뷰/요약

 


류호준의 『똑바로 우아하게 걷기』: 일상에서 길어 올린 66가지 성경적 지혜와 신학적 단상

1. 한 절 말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거워하기

류호준 교수의 『똑바로 우아하게 걷기』는 성경 66권에서 각 한 구절씩을 뽑아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하고, 그 속에 담긴 깊은 신학적 의미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묵상집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엄격했던 아버지 밑에서 성경을 읽어야 했던 경험을 회고하며, 성경이 단순한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임을 고백한다. 이 책은 학문적인 성경 해석(Exegesis)을 넘어,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거워하는' 묵상(Meditation)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신학자의 통찰과 목회자의 따뜻한 시선이 어우러져, 험한 세상을 '똑바로' 그리고 '우아하게' 걸어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이정표를 제시한다.

2. 은혜, 거룩한 사랑 - 갚을 수 없는 선물에 대한 반응

1) 회심의 동선과 은혜의 방문 (누가복음 15:20, 19:5) 회심은 단번의 사건이 아니라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가는' 동선(動線)이다. 삭개오 이야기에서 저자는 여리고라는 향락의 도시에 오신 예수님을 조명한다. 삭개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뽕나무에 올랐지만, 예수님은 그를 먼저 알아보시고 이름을 부르셨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사건이다.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선언은 삭개오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주권적인 은혜임을 강조한다.

2) 자족의 비결과 갚을 수 없는 빚 (빌립보서 4:13, 마태복음 18:29)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구절은 자기 긍정의 주문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겸손한 고백이다. 또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죄)을 탕감받은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세상에 '괜찮은 죄인'은 없다. 오직 은혜가 필요한 '몹쓸 죄인'만이 있을 뿐이다.

3) 은혜,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기억 (에베소서 2:8, 예레미야 2:2)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그 선물을 받는 도구일 뿐이다. 믿음조차도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없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떠나간 연인(이스라엘)의 "청년의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시며 그리워하는 분이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따랐던 그 순정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신앙은 이 하나님의 기억에 응답하여 다시 그분께로 돌아가는(슈브)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 낮은 곳으로 임하는 왕

1) 만남의 장소와 소동하는 세상 (요한복음 1:14, 마태복음 2:3) 성육신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유일한 '만남의 장소(Tent of Meeting)'이다. 그러나 왕의 오심은 세상에 평화만을 주지 않는다. 헤롯과 예루살렘은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에 소동했다. 예수를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기존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2) 세 종류의 퍼레이드와 십자가의 길 (요한복음 12:14) 종려주일, 예루살렘에는 세 가지 퍼레이드가 있었다. 돈과 화려함을 과시하는 헤롯의 행렬, 무력과 권력을 과시하는 빌라도의 행렬, 그리고 초라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의 행렬이다. 세상은 돈(헤롯)과 권력(빌라도)을 숭상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겸손히 죽으러 가시는 예수의 길에 있다. 우리는 어느 퍼레이드에 줄을 서고 있는가?

3) 분노,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인류 (마태복음 5:22, 에베소서 2:19) 형제에게 분노하는 것은 곧 살인이다. 일상의 사소한 분노가 영성을 파괴한다. 또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는 사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의 차별이 사라진다. 교회는 이 새로운 인류가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4. 하나님 뜻이 이 땅에 - 정의와 공의의 실천

1) 야곱의 씨름과 이드로의 지혜 (창세기 32:31, 출애굽기 18:17-18)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낯선 자(하나님)와 씨름하며 환도뼈가 위골된다. 이는 자신의 힘으로 살던 옛 자아가 죽고, 하나님께 매달려야만 사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 과정이다. 이 패배는 '장엄한 패배'이자 영광스런 상처다. 한편,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능력 있는 자',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지도자로 세우라고 조언한다. 이는 보편적 지혜이자 공의로운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2) 가벼워진 하나님과 정의로운 삶 (사무엘상 4:3, 아모스 5:24) 이스라엘은 법궤를 마치 부적처럼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종당하는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패배를 부른다. 아모스 선지자는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고 외친다. 예배와 삶은 분리될 수 없다. 일상에서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역겨워하신다. 돈과 권력을 숭배하는 시대에(빌립보서 3:19), 그리스도인은 '배(복부, 탐욕)'를 신으로 삼지 말고, 십자가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5. 예배하기 전에 - 참된 예배자의 태도

1) 찬양의 이유와 화해 (이사야 43:21, 마태복음 5:23)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다. 그러나 형제와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상태에서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먼저 가서 화해하는 것이 예배의 우선순위다. 또한, 바울 곁을 지켰던 오네시보로처럼, 고난받는 자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삶이다.

2) 다양성과 섬김 (로마서 8:28, 마가복음 10:43-44) 교회는 획일적인 곳이 아니라 다양한 지체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이다. 자연 생태계의 건강성이 다양성에 있듯, 교회도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는 세상의 권력 구조를 뒤집는 혁명적인 가르침이다.

3) 진실과 거짓 (요한복음 8:44) 마귀는 거짓의 아비다. 거짓은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반면 교회는 진실을 말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지도자는 성경을 올바르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꾼(디모데후서 2:15)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6. 기도, 넉넉히 이기는 자 - 기도의 본질

1) 끈질긴 기도와 주기도문 (마태복음 7:7, 6:13)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자동응답기 같은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끈기를 가르친다.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주기도문의 송영("나라와 권세와 영광이...")은 기도의 대전제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2) 감사와 중보기도 (데살로니가전서 5:18, 요한복음 17:11)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기도는 주문(呪文)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보호를 요청하시는 중보기도의 모범이다. 우리 또한 누군가를 위해, 특히 고난받는 지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3) 다니엘의 결심과 하박국의 찬양 (다니엘 1:8, 하박국 3:2) 다니엘은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다. 이는 세상의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거룩한 저항이다. 하박국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7. 일상에서 신학하기 - 삶으로 쓰는 성경 이야기

1) 아브라함의 고뇌와 사라의 웃음 (창세기 22:2, 21:1)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 선 아브라함의 침묵과 고뇌, 그리고 불임의 고통 끝에 약속의 자녀를 얻은 사라의 기쁨. 성경의 인물들은 박제된 성인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일상에 찾아오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일상에도 찾아오신다.

2) 드보라의 죽음과 룻의 선택 (창세기 35:8, 룻기 1:16-17)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과 장례 기사는 이름 없는 한 여인이 언약 가문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방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오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녀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기를 원했고,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그 날개가 되어 주셨다. 우연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다.

3) 자족과 계획 (히브리서 13:5, 잠언 16:9) 돈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이 신앙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다.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인도가 더 완전함을 신뢰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일상 신학의 핵심이다.

8.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 - 말씀이 이끄는 삶

1) 마땅히 행할 길과 문학적 표현 (잠언 22:6, 로마서 15:4) 어려서부터 마땅히 행할 길(성경적 원리)을 가르쳐야 늙어서도 떠나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다양한 문학적 양식(과장법, 은유 등)을 통해 진리를 전달한다. 문자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저자의 의도와 문맥을 파악하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피로 목욕을 한다"는 표현은 문자적 사실이 아니라 그만큼 처절한 심판을 의미하는 문학적 강조다.

2) 창조와 새 창조 (창세기 1:1, 요한계시록 22:20) 성경은 창조로 시작해 새 창조로 완성된다. 처음 창조 기사는 인간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묘사하며, 요한계시록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 노릇 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장대한 구원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 서 있다.

3)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과 성령의 바람 (출애굽기 25:15, 사도행전 1:8) 광야의 성막은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나님은 정착하여 고인 물이 되기를 거부하시고, 늘 새로운 곳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유랑하는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바람은 임의로 불며, 우리를 예기치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연이 바람을 타야 날 수 있듯, 성도는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길 때 비로소 비상할 수 있다. 그 바람은 거창한 집회가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고 인내하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에 불어온다.



[서평] 똑바로, 그러나 우아하게: 거친 광야에서 추는 신앙의 왈츠

1. 신학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다

류호준 교수의 『똑바로 우아하게 걷기』는 제목에서부터 독특한 울림을 준다. '똑바로' 걷는다는 것은 율법적이고 윤리적인 올바름을 연상시키지만, '우아하게' 걷는다는 것은 그 올바름 위에 덧입혀진 여유, 품격, 그리고 은혜의 미학을 상징한다. 저자는 평생 강단에서 구약학을 가르친 학자이자 지역 교회를 섬긴 목회자로서, 딱딱할 수 있는 신학적 명제들을 따뜻하고 감칠맛 나는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 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현대역 말씀 공감'이라는 부제처럼, 성경 66권의 핵심 구절들을 현대인의 피부에 와닿는 언어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삭개오를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단순히 구원의 초청이 아니라, 소외된 자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은혜의 방문'으로 묘사하거나, 마라의 쓴 물 사건을 인생의 쓴맛을 단맛으로 바꾸시는 '치료자 하나님'의 손길로 풀어내는 식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성경을 단순히 읽는(Reading) 것을 넘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Savoring) 단계로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2. 광야 같은 세상, 오아시스 같은 통찰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욱 팍팍해진 우리의 현실을 '광야'에 비유한다. 돈과 권력이 우상이 된 시대(빌 3:19),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도피적인 위로를 건네는 대신, 광야 한복판에 하나님이 세우신 '성막'과 '오아시스'를 바라보게 한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그분을 따라"(PART 7)라는 챕터에서, 법궤의 채를 빼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유랑하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정착과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이 통찰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역설적인 평안을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통제하거나 고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이끄시는 역동적인 분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야곱의 부러진 환도뼈를 '장엄한 패배'로 해석하며, 하나님께 짐으로써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기독교의 역설을 설명하는 부분은 경쟁 사회에 지친 영혼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성공과 번영이 아닌, 은혜와 긍휼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재확인하게 된다.

3. 문학적 상상력과 신학적 깊이의 조화

류호준 교수의 글쓰기는 건조하지 않다. 그는 성경 본문의 행간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다. 룻기에서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할 때나, 드보라 유모의 죽음을 다룰 때, 저자는 마치 소설가처럼 그 상황과 감정을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은 결코 성경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탄탄한 구약 신학적 배경 지식(히브리 문학의 관습, 고대 근동 문화 등)이 밑받침되어 있어, 독자들을 올바른 해석의 길로 인도한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즉 기복 신앙, 성차별, 반지성주의, 맹목적인 추종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의 끝은 언제나 교회를 향한 사랑과 회복의 소망으로 귀결된다. "대개(大蓋)"라는 단어가 주기도문에서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며 신앙의 본질적 고백을 회복하자는 제안이나,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돕는 배필로서 동등하게 해석하는 시각은 한국 교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고언이다.

4. 일상에서 신학하기를 멈추지 말라

『똑바로 우아하게 걷기』는 거창한 신학 이론서가 아니다. 밥 먹고, 일하고, 자녀를 키우고, 늙어가는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발견하게 해주는 '일상 신학 안내서'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공기를 마시고 있는가?" 세상이 주는 탐욕과 두려움의 공기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바람을 마시며 비상하라고 초대한다.

이 책은 성경 통독을 하다가 길을 잃은 성도, 매너리즘에 빠진 목회자, 그리고 신앙과 삶의 괴리로 고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하고 싶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비틀거리던 우리의 걸음걸이가 조금은 더 '똑바르고',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여유를 가진 '우아한' 걸음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