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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허스토리』(백소영) 리뷰/요약

 


『기독교 허스토리』: 남성 중심의 역사를 넘어 여성의 목소리를 찾다

1. 히스토리(History)를 넘어 허스토리(Herstory)로

기존의 기독교 역사는 남성 중심의 시각, 즉 '히스토리(History)'로 기록되어 왔다. 성경과 교회사에는 수많은 여성이 등장하지만, 그녀들의 이름은 자주 지워지거나 남성의 보조자로 격하되었다. 예를 들어, 예수의 장례를 예비하며 향유를 부은 여인은 복음서마다 다르게 묘사되거나 이름 없이 '한 여자', '죄인'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남성 중심적 기록과 해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잊히고 왜곡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허스토리(Herstory)'로 복원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여성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드러냄으로써 기독교 복음의 풍성함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2. 성서 속의 여성들: 제자, 신학자, 사도

베다니의 마리아: 요한복음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은 여인을 베다니의 마리아로 명시한다. 그녀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던 '제자'였으며, 스승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영적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예수 사후 그녀는 베다니(가난한 자들의 마을)로 돌아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갔을 것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은 흔히 '남편이 다섯인 부도덕한 여자'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그녀를 영적 갈증을 지닌 진지한 신앙인으로 재해석한다. 그녀는 유대인 남성인 예수에게 당당히 신학적 질문을 던졌고, 예수와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눈 끝에 그를 메시아로 인정했다. 그녀는 사마리아 최초의 복음 전도자였다.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라는 낙인은 그녀가 겪은 가부장적 억압과 고통을 상징할 수 있다. 예수는 그녀를 치유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자 '사도들의 사도'였다. 외경인 '마리아 복음서'는 베드로와 같은 남성 제자들이 그녀의 영적 권위를 질투하고 견제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초기 교회 내 여성 리더십 갈등을 시사한다.

3. 초기 교회와 고대 교회의 여성들: 보호자, 순교자, 사막의 교모

뵈뵈: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자 "나의 보호자"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바울의 로마서를 로마 교회에 전달한 인물이자, 초기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그녀는 바울이 유대인 동족 선교와 이방인 선교 사이에서 갈등할 때 그를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보호하고 지지했을 것이다.

테클라와 트리피나: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 등장하는 테클라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스스로 약혼을 파기하며 독신 전도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맹수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로 살아남았으며, 여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가르쳤다. 그녀를 도운 귀족 여성 트리피나와의 연대는 초기 기독교 여성들의 영적 자매애를 보여준다.

사막의 교모들과 이집트의 마리아: 4세기 기독교가 제도화되고 세속화되자, 이에 저항하여 사막으로 들어간 여성 수도자들이 있었다. 이집트의 마리아는 화려한 도시 생활을 버리고 사막에서 철저한 금욕과 회개를 통해 영성을 닦았다. 이는 제도권 교회가 잃어버린 야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4. 중세의 여성 신비가들: 제도 밖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중세 교회가 남성 사제 중심의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는 더욱 억압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신비 체험'을 통해 직접 하나님과 소통하며 권위를 확보하려 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그녀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기록하고 선포하며 남성 중심의 교회와 사회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비리디타스(Viriditas, 초록 생명력)'라는 개념을 통해 창조 세계의 생명력과 치유를 강조했다. 그녀의 신비주의는 도피가 아니라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고 생명을 살리는 힘이었다.

베긴 공동체: 12~13세기 유럽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평신도 여성 공동체인 베긴회는 제도권 수도원과 달리 자유로운 연대를 추구했다. 그들은 자급자족하며 빈민 구제와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교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영향력은 마녀사냥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5. 종교개혁기의 여성들: '사모'의 탄생과 주체적 선택

종교개혁은 '만인제사장직'을 내세웠으나, 여성에게는 '가정'이라는 새로운 굴레를 씌우기도 했다. 수녀원이 해체되면서 여성의 선택지는 '결혼'으로 좁혀졌다.

카타리나 쉬츠 젤 vs 카타리나 폰 보라: 마르틴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는 가사를 전담하고 손님을 대접하며 '내조하는 사모'의 전형이 되었다. 반면, 마티아스 젤의 아내 카타리나 쉬츠 젤은 남편과 동등한 동역자로서 설교하고 집필하며 장례를 집례하는 등 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마리 당티에르: 제네바의 종교개혁기 여성 마리 당티에르는 칼뱅과 대립하면서까지 여성의 설교권과 신학적 저술 활동을 옹호했다. 그녀는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이며,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칠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남성 중심의 종교개혁이 가진 한계를 비판했다.

6. 근대와 신대륙의 여성들: 마녀사냥에서 인권 운동까지

마녀사냥: 15~17세기 유럽과 신대륙을 휩쓴 마녀사냥은 종교적,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 찾기였다. 주로 가난하고 독립적인 여성, 전통적 치유 지식을 가진 여성들이 타겟이 되었다. 이는 남성 중심의 권력이 여성의 잠재력을 두려워하고 통제하려 했던 폭력이었다.

앤 허친슨: 미국 청교도 사회에서 앤 허친슨은 "성령의 직접 조명"을 주장하며 남성 목회자들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녀는 가정에서 성경 공부 모임을 주도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추방당했다. 그녀의 삶은 제도적 종교가 개인의 영적 자유를 어떻게 억압했는지를 보여준다.

소저너 트루스와 해리엇 터브만: 흑인 노예 여성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이중고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했다. 소저너 트루스는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라고 외치며 흑인 여성의 인권을 주창했고, 해리엇 터브만은 '지하철도'를 조직하여 수많은 노예를 탈출시킨 '블랙 모세'였다. 이들의 '우머니즘(Womanism)'은 생존과 공동체 돌봄을 중시하는 흑인 여성 고유의 페미니즘이다.

7. 한국 기독교 여성사: 개화와 독립, 그리고 잊힌 이름들

메리 스크랜튼: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튼 대부인은 조선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들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세웠다. 그녀는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헌신했다.

로제타 홀과 박에스더: 의료 선교사 로제타 홀은 맹인 교육과 여의사 양성에 힘썼다. 그녀의 도움으로 박에스더는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 여의사가 되었다. 박에스더는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치다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한국 여성 전문직의 길을 열었다.

나혜석: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나, 가부장적인 조선 사회와 교회의 위선에 저항했다. 그녀는 '이혼 고백서' 등을 통해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정조 관념을 비판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갈망했다. 그녀는 비록 교회 밖으로 밀려났으나, 그녀의 외침은 기독교가 외면했던 여성의 고통을 대변한다.

최덕지와 전밀라: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이끈 최덕지 목사는 옥고를 치르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해방 후 그녀는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에 맞서며 재건교회를 세웠다. 전밀라 목사는 감리교 내에서 여성 목사 안수의 길을 연 선구자로, 여성의 섬세한 리더십으로 목회 현장을 지켰다.

황득순: 함석헌 선생의 아내 황득순은 평생 "나야 뭐..." 하며 자신을 낮추고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저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황득순'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들의 헌신이 한국 교회를 지탱한 숨은 힘이었음을 역설한다.

8. 에필로그: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공존을 향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 머물러 있으며, 페미니즘을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이 본래 지향하는 바가 남녀의 평등과 상호 존중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여성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따라서 '기독교 페미니즘'은 모순된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성경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21세기의 '영 페미니스트' 기독교인들이 교회 내 성차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로 세우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이름(Herstory)을 기억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한다.




[서평] 잃어버린 절반의 역사를 통한 교회의 온전한 회복

1. 왜 지금 '허스토리(Herstory)'인가? 백소영 교수의 《기독교 허스토리》는 제목에서부터 그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History(그의 이야기)'가 지배해 온 기독교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던 'Her(그녀)'의 이야기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여자들도 훌륭했다"고 외치는 위인전이 아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어떻게 제도화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했는지, 그리고 그 억압 속에서도 여성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을 실천해왔는지를 추적하는 '계보학적 탐구'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맞이했지만, 교회는 여전히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한다. 이 책은 그러한 교회를 향해 "페미니즘은 기독교의 적이 아니라, 잃어버린 복음의 본질을 회복할 도구"라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 성경과 역사 속의 '전복적 읽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성경과 교회사 속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이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감성적인 헌신자가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비한 선지자적 인물로, 사마리아 여인은 문란한 여자가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신학자로 다시 태어난다. 또한 종교개혁자 루터나 칼뱅의 아내들, 혹은 그들과 논쟁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종교개혁이 여성에게는 '절반의 성공' 혹은 '새로운 억압'이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러한 '전복적 읽기'는 독자들에게 성경을 입체적으로 보는 눈을 뜨게 해준다.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권력 관계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3. 한국 기독교 여성들의 삶과 신앙 책의 후반부는 한국 기독교 여성들의 이야기에 할애된다. 이는 서구 신학의 수입에 그치지 않고, 우리 땅에서 신앙을 살아낸 여성들의 구체적인 삶을 신학화하려는 시도다. 스크랜튼 대부인의 여성 교육, 로제타 홀과 박에스더의 의료 선교, 최덕지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 투쟁은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고난과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나혜석과 같은 인물을 기독교 여성사의 범주로 끌어들인 것은 파격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제도권 교회에서 배제되었으나 누구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갈망했던 그녀의 절규는, 오늘날 교회가 품지 못하고 내치는 수많은 '가나안 성도'나 교회 밖 여성들의 목소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석헌의 아내 황득순을 조명하며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교회를 지탱해 온 수많은 무명 여성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4.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공존을 모색하며 저자는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공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하나님은 남성만의 하나님이 아니며, 성령은 남녀를 차별하여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과거의 여성들을 소환하여 그녀들이 어떻게 자신의 시대적 한계와 싸우며 신앙을 지켰는지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의 젊은 기독교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 길을 걸었다." 이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5. 나가며: 교회의 온전함을 위하여 《기독교 허스토리》는 여성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반쪽짜리 역사 인식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성 독자들에게는 자신들이 누려온 특권을 성찰하게 하고, 여성 독자들에게는 자부심과 연대감을 선물한다. 교회가 혐오와 배제가 아닌 환대와 평등의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역사의 행간에 숨겨진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우리 신앙의 잃어버린 절반을 되찾는 거룩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