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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우치다 다쓰루) 리뷰/요약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 고독한 주체에서 타자와의 시간으로

1. 레비나스 철학의 입문과 배경

이 책은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초기 대표작인 『시간과 타자(Le Temps et l'Autre)』를 강독하고 해설한 결과물입니다. 저자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레비나스의 사상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과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풀어냅니다.

1.1. 전쟁과 생존자의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론은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전쟁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레비나스는 가족 대부분이 학살당한 사실을 마주합니다. 그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부채감과 생존자의 책무를 안고 철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자르면 피가 나올 것 같은 실존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2. 책의 목적

이 책의 핵심 명제는 "시간이란 고립한 단독의 주체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의 관계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기존 서양 철학, 특히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나'라는 주체의 고독과 전체성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며,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진정한 시간이 흐를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2. 실존의 고독과 '있다(Il y a)'의 공포

2.1.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 그리고 하이데거 비판

레비나스는 하이데거가 제시한 '존재(Sein/Being)'와 '존재자(Seiendes/Being)'의 구별을 받아들이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이 결국 '주체의 권력'과 '전체성'으로 귀결된다고 비판합니다.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언제나 '나의 것(Jemeinigkeit)'이며, 주체는 자신의 가능성을 기투(Entwurf)하며 세계를 장악하려 합니다. 하지만 레비나스에게 이러한 주체는 '빛의 고독' 속에 갇힌 존재일 뿐입니다.

2.2. '있다(Il y a)': 익명적 존재의 공포

레비나스는 주체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순수한 존재의 사실, 즉 "무언가가 있다"는 끔찍한 상태를 '일리야(il y a)'라고 부릅니다.

  • 불면의 밤: 불면증은 '일리야'를 체험하는 가장 구체적인 예입니다. 자고 싶어도 잘 수 없고, 나의 의식과 상관없이 '깨어 있음'이 지속되는 상태, 이것이 바로 익명적 존재의 웅성거림입니다.

  • 존재의 짐: 여기서 존재는 선물이 아니라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 같습니다. 주체는 자기 자신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는 '질료적' 존재입니다.

2.3. 위상전환(Hypostase): 고독한 주체의 탄생

'일리야'라는 끔찍한 익명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주체는 '위상전환'을 수행합니다. 이는 동사로서의 '실존함'이 명사로서의 '실존자'로 바뀌는 사건입니다. 주체는 '나'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일어서면서 존재의 익명성 끊어내지만, 그 대가로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의 고독'입니다.


3. 일상생활과 향유: 구원을 향한 첫걸음

3.1. 세계에 의한 구원

고독한 주체는 어떻게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레비나스는 거창한 형이상학적 도약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그 실마리를 찾습니다. 일상생활은 타락이나 퇴락이 아니라, 고독을 해결하려는 엄숙한 시도입니다.

3.2. 노동과 양식(Nourishment)

하이데거는 세계를 '도구'의 연관 관계로 보았지만, 레비나스는 세계를 '양식(먹거리)'의 총체로 봅니다.

  • 향유(Jouissance): 우리는 빵을 먹고, 공기를 마시며, 햇볕을 쬡니다. 이 '향유'의 순간에 주체는 세계와 섞이며, 잠시나마 자기 자신이라는 짐을 잊습니다. 먹는 행위는 "살기 위해 먹는 것"도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기쁨입니다.

  • 한계: 그러나 향유를 통한 구원은 일시적입니다. 먹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파오듯, 주체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빛에 비추어 대상을 인식하고 소유하는 행위는 결국 대상을 '나의 것'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진정한 타자성(외부성)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4. 고통, 죽음, 그리고 신비

4.1. 고통과 수동성

향유가 주체의 능동성이라면, '고통'은 주체의 능동성이 무너지는 지점입니다. 고통 속에서 주체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능력(Pouvoir)'을 발휘하지 못하고, 순수한 수동성에 처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체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4.2. 죽음: 불가능성의 경험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자 주체가 결단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레비나스에게 죽음은 '가능성의 종말'이며 '주체가 더 이상 주체일 수 없는 사건'입니다.

  • 미지의 것: 죽음은 우리가 알 수 없고, 체험할 수 없고, 미리 앞당겨 맞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미지의 것'입니다.

  • 절대적 미래: 죽음은 결코 '현재'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있으면 죽음이 없고, 죽음이 오면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 그러나 끊임없이 임박해 있는 '절대적 미래'입니다.

4.3. 죽음과 타자의 유사성

레비나스는 죽음이 가진 '절대적 타자성(알 수 없음, 지배할 수 없음)'이 바로 '타자(Autrui)'와의 관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봅니다. 죽음이 주체의 권력을 무력화하듯, 타자 또한 주체의 지배권 바깥에 존재하는 신비입니다.


5. 타자와의 관계: 시간의 탄생

5.1. 공간적 외부성과 시간적 외부성

레비나스는 외부성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1. 공간적 외부성: 빛 아래에서 보이는 사물들. 내가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외부가 아닙니다.

  2. 시간적 외부성(타자): 나의 인식과 빛이 닿지 않는 곳.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이것이 진정한 외부입니다.

5.2. 타자는 누구인가?

타자는 나와 동등한 또 다른 자아(Alter Ego)가 아닙니다.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고아, 과부, 이방인"과 같은 약자의 모습으로, 또는 "높은 곳에 계신 스승"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대칭적이지 않으며, 나는 타자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집니다.

5.3. 시간은 타자와의 관계다

혼자 있는 주체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영원한 현재의 반복). 진정한 시간, 즉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타자가 내 삶에 개입해 들어올 때 비로소 열립니다. 내가 타자를 환대하고, 타자의 부름에 응답할 때, 닫혀 있던 나의 세계가 깨어지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시간은 주체와 타자의 관계"라는 명제의 의미입니다.


6. 에로스와 풍요로움(Fecundity): 죽음을 넘어서는 승리

6.1. 에로스: 타자성을 보존하는 관계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의 원형을 '에로스(Eros)'에서 찾습니다. 에로스는 두 존재가 하나로 융합되는 것(플라톤적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거리'와 '물러서는 신비(여성적인 것)'를 향한 끝없는 욕망입니다. 에로스적 관계에서 주체는 상대를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맺습니다.

6.2. 여성적인 것(Le Féminin)

여기서 '여성적인 것'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 빛과 권력으로부터 물러서고 몸을 숨기는, 파악할 수 없는 타자성의 양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낭만주의적 신비가 아니라, 주체의 지배욕을 무력화시키는 윤리적 저항입니다.

6.3. 풍요로움과 부성(Paternity)

에로스는 '아이(아들)'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레비나스는 이를 '풍요로움(Fécondité)'이라고 부릅니다.

  • 나이면서 내가 아닌 존재: 아이는 '나'이면서 동시에 '타자'입니다. "나는 나의 아들이다"라는 명제는 형식논리학(A는 A다)을 파괴합니다.

  • 시간의 성취: 아이를 통해 주체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간, 즉 '자신의 것이 아닌 미래'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주체는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타자(자식)를 통해 무한한 시간 속으로 나아갑니다.


7. 레비나스 철학의 현대적 의의

우치다 다쓰루는 레비나스의 시간론이 단순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폐인 '자기중심주의'와 '전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윤리적 대안이라고 강조합니다. 타자는 나를 위협하는 지옥이 아니라, 나를 고독의 감옥에서 꺼내어 미래로 인도하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에게 응답함으로써만 비로소 인간이 되고, 시간을 살게 됩니다.





[서평] 타자라는 구원: 우치다 다쓰루가 안내하는 레비나스의 시간

자기 계발의 시대, 왜 레비나스인가?

"너 자신을 알라", "자아를 실현하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라". 서점가를 점령한 자기 계발서와 현대 철학은 끊임없이 '나'를 중심에 두라고 가르친다. 나의 성공, 나의 행복, 나의 시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나'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깊은 고독과 허무에 빠지곤 한다. 우치다 다쓰루가 해설한 『레비나스 시간론』은 바로 이 지점, 즉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현대인에게 던지는 충격적이고도 따뜻한 구원의 메시지다.

이 책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초기작 『시간과 타자』를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6년에 걸쳐 한 자 한 자 씹어 삼키듯 독해한 결과물이다. 우치다 다쓰루 특유의 명쾌하고도 생활 밀착형인 비유 덕분에, 우리는 철학적 용어의 장벽을 넘어 레비나스가 말하고자 했던 '살아있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은 혼자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강물처럼 내 밖에서 흘러가는 물리적인 것으로, 혹은 내 의식 속에서 체험되는 주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단언한다. "시간은 주체와 타자의 관계 그 자체다." 혼자 있는 사람에게 진정한 시간은 없다.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에게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듯, 고립된 주체에게는 '영원한 현재'의 권태만 있을 뿐이다.

우치다 다쓰루의 설명에 따르면, 진정한 미래는 '내가 계획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 나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 즉 '타자'가 불쑥 내 삶에 끼어들 때 비로소 열린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혹은 낯선 이방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 나의 계획된 시간표는 헝클어지지만 바로 그 균열을 통해 '새로운 시간'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

고독을 깨뜨리는 윤리적 사건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고통'과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하이데거가 죽음을 '나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라며 영웅적으로 맞이하려 했다면, 레비나스는 죽음을 '나의 힘이 미치지 않는 무력함'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무력함이야말로 축복이다. 내가 무력해지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의 세계를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나와 동등한 친구나 파트너가 아니다. 타자는 나보다 높은 곳에서 명령하는 스승이거나, 나보다 낮은 곳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고아, 과부, 이방인'이다. 이 비대칭적인 관계 속에서 타자의 부름에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Me voici)"라고 응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윤리의 시작이며, 주체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출애굽'이다.

우치다 다쓰루, 가장 친절한 가이드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 우치다 다쓰루의 태도에 있다. 그는 레비나스의 권위에 기대어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레비나스를 읽으며 겪었던 곤혹스러움과, 40년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그 의미가 몸에 스며들었을 때의 전율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는 "철학은 셰익스피어에 관한 성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레비나스의 말을 빌려, 철학이 결국 구체적인 우리네 삶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책 속에서 다뤄지는 '불면의 밤', '먹는 즐거움', '에로스의 신비', '자식을 낳는 기쁨' 같은 주제들은 철학적 개념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매일 겪는 일상의 사건들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 평범한 일상 속에 타자를 향한 초월의 문이 열려 있음을 일깨워준다.

타자라는 이름의 미래를 향하여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고 나면 반드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책이다.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예전과 다르게 보이고, 나에게 닥쳐오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두려움이 아닌 신비로 다가오게 된다.

지금 '나'라는 감옥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는가? 미래가 불안하고 고독이 버거운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레비나스와 우치다 다쓰루가 당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줄 것이다. "당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타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책은 타자라는 낯선 손님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즉 '미래'에 관한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