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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함께』(이상환) 리뷰/요약

 

『신들과 함께』: 박제된 하나님을 넘어, 성경의 야훼를 만나다

1. 박제된 하나님을 '탈박제'하기

현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유일신"으로 암기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교리 속에 갇혀 박제된 하나님(암기의 영역)과 성경이 생생하게 증언하는 하나님(이해의 영역)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고대 근동'이라는 안경을 쓰고 구약성경을 다시 읽기를 제안합니다. 구약성경은 고대 근동의 다신론적 세계관 속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일차 독자로 하여, 그들의 문화적 문법으로 야훼 하나님의 초월성을 변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작업을 '탈박제(Taxidermy-free) 작업'이라 부르며, 갈팡질팡하던 이스라엘의 신앙이 어떻게 '지 고지순한 오직-야훼-신앙'으로 발전했는지를 추적합니다.


2. 신들의 세상: 고대 근동의 세계관 이해

2.1. 왜 고대인들에게는 많은 신이 필요했나?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신들로 가득 찬 세상에 살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를 미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세계관에서 다신론은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명의 신이 우주의 모든 영역을 다스릴 수 없다(비전지전능성, 비무소부재성)'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블 영화의 히어로들처럼, 각 신은 특화된 능력과 영역(하늘, 땅, 바다, 지하, 전쟁, 출산 등)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삶의 안녕을 위해서는 다다익선, 즉 가능한 많은 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2.2. 자연과 신, 그리고 신상(Idol)의 정체

현대인은 고대인이 태양이나 돌 같은 자연물, 혹은 사람이 깎아 만든 신상을 신으로 숭배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고대 문헌(이집트 상형문자의 결정사 등)을 분석해 보면 그들은 자연물과 그 배후에 있는 신을 구별했습니다. 태양(물리적 실체)과 태양신(신적 존재)은 달랐습니다.

또한, 신상(Statue)은 신 자체가 아니라 신이 깃드는 '몸'이자 '집'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입 씻기-입 열기 의식(Mīs Pî & Pīt Pî)'이라는 복잡한 제의를 통해 영적인 존재인 신을 신상 안으로 초대했습니다. 이 의식의 핵심은 신상 제작 과정에서 인간 장인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고(도구를 강에 버리거나 장인의 손을 자르는 시늉 등), 신상을 신의 현현으로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이 필요한 이유는 신이 무소부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신을 인간이 접근 가능한 '신상'이라는 매개체에 모셔둠으로써 소통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려 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적용]

  • 아론의 금송아지: 아론이 "금붙이를 불에 넣었더니 이 송아지가 생겨났다"(출 32:24)고 변명한 것은, 비겁한 거짓말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신상 제작 의식(인간의 개입을 부정하는 종교적 수사)을 반영한 것입니다.

  • 신상 파괴 명령: 하나님이 가나안의 신상을 부수라고 하신 이유는, 신상을 깨뜨림으로써 그 안에 깃든 이방 신을 그 땅에서 쫓아내고 야훼의 통치권을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이방인들의 세상: 제한된 신들과 초월자 야훼

3.1. 이집트: 파라오의 신관과 야훼의 승리

출애굽기에서 파라오가 야훼의 기적을 보고도 끝까지 대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지역신의 개념: 고대 근동에서 신은 특정 영토에 묶여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야훼를 '광야의 신' 혹은 '타지의 신'으로 여겼기에, 이집트 본토에서는 이집트 신들이 더 강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2. 지배-피지배의 도식: 지배 민족(이집트)의 신이 피지배 민족(히브리)의 신보다 강하다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훼는 이집트 땅 한복판에서 이집트의 모든 신(나일강, 태양, 가축 등)을 압도하며, 당신이 '지역에 갇히지 않는 초월자'임을 증명하셨습니다.

3.2. 사마리아: 사자(Lion)를 보낸 야훼

열왕기하 17장에서 앗수르에 의해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은 야훼를 섬기지 않다가 사자에게 물려 죽습니다. 그들은 이를 '그 지방 신(야훼)의 진노'로 해석하고, 야훼를 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제사장을 요청합니다. 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의 신은 힘이 없거나 떠났다'는 고대 근동의 통념을 깨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망했어도 야훼는 여전히 그 땅의 주인이시며, 이방인에게도 당신의 존재를 알리시는 분임이 드러납니다.

3.3. 블레셋: 다곤 신전의 언약궤

블레셋은 언약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지성소)에 두었습니다. 이는 전리품 과시이자 다곤의 승리를 선포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다곤 신상이 야훼의 궤 앞에 엎어지고 목이 부러집니다. 이는 '적진의 심장부(타 신의 지성소)'에서도 야훼의 능력이 발휘됨을 보여줍니다. 또한, 암소가 울면서도 베세메스로 향하는 기적(삼상 6장)은 야훼가 '우연(미크레)'이나 '운명'의 영역까지도 주관하는 절대자임을 블레셋의 점쟁이들에게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4. 언약 백성의 세상: 퍼즐 조각으로 계시된 야훼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아침에 유일신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당신의 초월성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4.1. 십계명과 신상 금지

제1계명("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은 다신론 사회에서 혁명적인 요구였습니다. 제2계명("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신상이 없어도 현현할 수 있는 신은 고대 근동에서 야훼뿐이었습니다. 이는 야훼가 인간이 만든 매개체에 의존하지 않는 완전한 영적 존재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4.2.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

고대 근동 조약 문서(예: 에살핫돈 조약)에서는 여러 신이 역할을 나누어 저주를 내립니다(하늘의 신은 가뭄을, 전쟁의 신은 패배를). 그러나 신명기 28장은 야훼 한 분이 모든 영역(날씨, 전쟁, 질병, 농사, 출산 등)의 복과 저주를 홀로 주관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이는 야훼의 '전지전능성'을 당시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4.3. 치료와 생명의 주관자 (열왕기하 1, 5장)

아하시야 왕은 병이 들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치료의 신)'을 찾았습니다. 당시 바알은 지역마다 다른 속성(풍우, 치료 등)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야훼는 엘리야를 통해 아하시야의 죽음을 선포하며, 생사와 질병을 주관하는 분은 오직 야훼뿐임을 알리십니다. 반대로 아람 장군 나아만은 불치병을 야훼께 고침 받고, 흙을 가져가 이방 땅에서도 야훼를 섬기겠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야훼가 국경과 질병을 초월하는 신임을 보여줍니다.

4.4. 바알과 모투를 이기신 야훼 (열왕기상 17장)

가뭄은 풍우신 바알이 죽음의 신 모투에게 패배하여 갇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엘리야 시대의 3년 가뭄은 야훼가 비를 주관하는 바알뿐만 아니라, 바알을 이긴 모투(죽음/가뭄)까지도 통제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은 부활의 여신 아나트의 도움 없이도 야훼 홀로 생명을 살리시는 능력자임을 증명합니다.

4.5. 다윗의 고백 (시편 139편)

다윗은 야훼가 하늘(천상계)과 스올(지하계), 동쪽과 서쪽, 낮과 밤 어디에나 계신다고 노래합니다. 고대 신화에서 하늘 신은 지하에 갈 수 없고, 낮의 신(태양신)은 밤에 약해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야훼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무소부재의 신이며, 인간의 내면과 운명까지 아시는 전지한 분임을 고백합니다.


5. 이방 신들이 죽은 세상: 성경 저자들의 치열한 싸움

성경 저자들은 오직-야훼-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이방 신들을 문학적으로 '살해'하거나 '강등'시켰습니다.

5.1. 태양과 달 길들이기

여호수아 10장에서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 시편 121편에서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하게 하지 못하리라"는 선포는 단순한 자연 현상 묘사가 아닙니다. 이는 당시 강력한 신으로 숭배받던 태양신과 달신이 야훼의 명령에 복종하는 피조물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탈신(De-deification)' 작업입니다.

5.2. 창조 신화 뒤집기 (창세기 1장)

이집트 신화(오그도아드)에서는 혼돈, 공허, 어둠, 물이 창조의 신적 원동력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들을 신이 아닌 비인격적인 상태(물질)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오직 '엘로힘(하나님)'만이 말씀으로 이들을 통제하고 질서를 부여합니다. 이는 이집트의 창조 신들을 무력화하고 야훼만이 유일한 창조주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5.3. 아세라 지우기

이방인들은 신들의 가족(부부, 자녀) 관계가 신의 능력을 강하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도 야훼의 아내로 '아세라'를 두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성경 저자들은 아세라라는 이름에 정관사를 붙여 고유명사(신)가 아닌 보통명사(목상, 물건)로 취급하거나, '혐오스러운 것', '악(스가랴 5장)'으로 묘사하며 철저히 신성을 제거했습니다.

5.4. 모세의 이름: 이집트 신의 흔적 지우기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의 아들' 혹은 '~가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앞에 신의 이름이 붙습니다(예: 토트-모세 = 토트의 아들). 그러나 모세의 이름에는 신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모세가 자신의 정체성에서 이집트 신의 흔적을 '기록말살형'에 처하고, 오직 야훼에게 속한 자로 거듭난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6. 환생한 신들의 세상: 맘몬(Mammon)과의 전쟁

6.1. 현대의 만신전

고대 근동의 신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이름으로 환생했습니다. 풍요의 신 바알은 '돈(물질만능주의)'으로, 성의 여신은 '외모지상주의'로, 전쟁의 신은 '권력과 군사력'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특히 '맘몬(돈)'은 현대 사회의 최고 신으로 등극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맘몬에게 전지전능성을 부여한 것과 같습니다.

6.2. 현대 우상숭배의 위험성

현대의 우상숭배는 고대보다 더 위험합니다.

  1. 우주적 확장: 고대 신은 지역적이었으나, 돈(맘몬)은 전 지구적이며 인터넷을 통해 어디에나 존재합니다(무소부재).

  2. 은밀함: 신상 앞에 절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우상 숭배자라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욕심'과 '불신'은 맘몬을 숭배하게 만드는 내부의 제단입니다.

6.3. 맘몬 죽이기

우리는 맘몬을 어떻게 '탈신'할 수 있을까요?

  • 필요와 욕심 구분하기: 잠언 30장의 기도처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 안의 '거머리(끝없는 욕심)'를 죽여야 합니다.

  • 돈을 도구로 부리기: 돈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웃 사랑, 선교, 구제)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판 '탈박제'이자 '우상 타파'입니다.


7. 성경의 하나님을 다시 만나다

이 책은 우리가 암기해 온 '교리적인 하나님'을 넘어, 고대 근동의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신 '살아 계신 야훼'를 만나게 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오직-야훼-신앙을 지켜냈듯, 오늘날 우리도 맘몬과 세속의 신들을 탈신하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탈박제 작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서평] "박제된 하나님"을 깨뜨리고, "살아있는 야훼"를 마주하다

고대 근동이라는 렌즈, 왜 필요한가?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21세기의 렌즈를 낍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우상 숭배자들을 보며 "왜 저렇게 어리석을까?"라고 쉽게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주셨는데, 어떻게 금송아지를 만들 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이상환 저자의 『신들과 함께』는 이러한 현대인의 오만과 무지를 깨뜨리는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를 고대 근동의 한복판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은 '신들의 세상'이었습니다. 특정 지역을 벗어나면 그 지역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한 명의 신이 우주를 다스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이 책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오직 한 분, 야훼만이 신이다'라는 메시지가 얼마나 혁명적이고 충격적인 도전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탈박제': 암기된 신앙에서 이해된 신앙으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탈박제(Taxidermy-free)'라는 개념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주일학교 때부터 들어온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라는 교리가, 맥락 없이 암기된 '박제된 지식'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박제된 동물은 모양은 갖췄지만 생명력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의 배경 없이 읽는 구약의 하나님은 평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이집트의 오그도아드 신화, 바알과 모투의 대결, 앗수르의 조약 문서 등 방대한 고대 문헌을 성경 옆에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 성경 저자들이 이 이방 문화와 어떻게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보여줍니다.

  • 창세기 1장이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록이 아니라, 이집트의 창조 신들을 비인격적인 물질로 강등시킨 '신학적 전투'였다는 점.

  • 아하시야 왕이 파리(Fly)의 신이 아니라 병을 고치는 능력자로 여겨진 '바알세붑'을 찾았을 때, 엘리야가 선포한 죽음이 얼마나 강력한 '야훼의 승리 선언'이었는지.

  •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간 행동이 미신이 아니라, 당시 세계관에서 '야훼 신앙을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다는 점.

이러한 해석들은 우리가 막연히 알던 성경 본문을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탈박제'의 희열입니다.

현대의 맘몬 숭배를 향한 날카로운 통찰

이 책은 고대사 연구에 머물지 않습니다. 5장에서 저자는 고대의 신들이 현대 사회에 '맘몬(돈)', '권력', '외모',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했음을 고발합니다. 고대인들이 풍요를 위해 바알에게 절했다면, 현대인은 안정을 위해 통장 잔고를 의지합니다. 형태만 바뀌었지 본질은 같습니다.

저자는 "돈이면 다 된다"는 현대의 물질만능주의가 맘몬에게 '전지전능성'과 '무소부재성'을 부여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매우 뼈아픈 통찰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실제 삶의 위기 앞에서는 돈을 찾습니다.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신들을 '탈신(De-deification)' 시키기 위해 싸웠듯, 우리도 돈을 '도구'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추천의 글: 성경을 입체적으로 읽고 싶은 이들에게

『신들과 함께』는 신학적 깊이와 대중적 가독성을 모두 잡은 수작입니다. 어려운 고대 근동학 자료를 다루면서도,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적절한 예시(마블 영화 비유 등) 덕분에 평신도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 구약성경이 지루하거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성도

  • 설교에 깊이를 더하고 싶은 목회자

  • 현대 사회의 세속적 가치관 속에서 신앙의 본질을 고민하는 청년

이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텍스트 속에 갇혀 있던 하나님이 아니라, 고대와 현대를 관통하며 살아 역사하시는 '압도적인 초월자 야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만남이 우리의 예배를 바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