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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채정호) 리뷰/요약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 이별과 상실을 치유하는 애도 수업

1. 슬픔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이 책은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가 30여 년간 진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상실의 사례를 바탕으로 쓴 애도 심리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딜 수가 있다." 우리 사회는 상실의 아픔을 밖으로 꺼내기 꺼리는 문화가 있지만, 슬픔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면 마음안에서 곪고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이 책은 상실을 당한 사람들이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애도함으로써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안내합니다.

2. 상실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2.1. 갑작스러운 이별과 혼란

상실은 예고 없이 교통사고처럼 닥칩니다. 사랑했던 사람, 젊은 날의 꿈, 건강, 물건 등 소중했던 모든 것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납니다. 저자는 영화 <생일>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상실이 남긴 자들의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보여줍니다. 상실 직후 우리는 충격과 부정의 단계를 거치며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후 고통을 실감하고, 슬픔과 후회, 원망의 파도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2.2.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많은 사람이 상처 없는 삶을 '좋은 인생'이라 생각하며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상처는 삶의 필연적인 속성입니다. "햇빛이 계속 비치면 사막이 된다"는 속담처럼, 인생의 비와 바람은 우리 삶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다음의 삶으로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2.3. 이혼, 사별보다 더 큰 아픔

때로는 사별보다 이혼이 더 큰 상실의 고통을 줍니다. 사별은 그리움이 남지만, 이혼은 분노와 원망, 그리고 사회적 시선에 의한 수치심까지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 특히 이혼 과정에서 "내 탓"이라는 자책감에 빠지면 우울증이나 자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자는 상실은 '교통사고'처럼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나만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2.4. 애착 관계와 상실의 대물림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는 성인이 되어 겪는 상실을 대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안정 애착형은 상실을 겪어도 비교적 원만하게 대처하지만, 불안정 애착(저항, 회피, 혼란형)을 가진 사람은 집착하거나 관계를 회피하는 등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현재의 관계를 망치고, 결국 이혼이나 가정불화 같은 또 다른 상실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상처와 결별하고 자신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5. 자신에게 맞는 치유 방법 찾기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듯 치유의 방법도 다릅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슬픔을 씻어냅니다 . 남성은 감정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어 상실의 고통을 뒤늦게 폭발시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은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워 상대적으로 회복 탄력성이 높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애도 방법을 찾아 감정의 파도를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마음의 상처가 남았습니다 - 상실 후 나타나는 5가지 반응

상실 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을 때, 우리 마음에는 분노, 우울, 불안, 중독, 냉소와 같은 병리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3.1. 분노: 상대를 향한 불덩어리

배우자의 외도나 배신으로 인한 상실은 극심한 분노를 유발합니다. 화(火)는 내 손에 쥔 숯불을 상대에게 던지는 것과 같아서, 결국 나 자신까지 태워버립니다. 통제되지 않은 화는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을 고립시킵니다. 저자는 화를 안전하게 다루기 위해 잠시 멈추고, 화의 원인을 이해하며, 긍정적인 에너지(예: 월트 디즈니의 디즈니랜드 설립)로 승화시키거나 용서를 통해 자신을 해방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3.2. 우울: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

상실의 슬픔을 억누르면 '우울'이라는 마음의 통증이 찾아옵니다. 특히 중년의 위기와 겹치거나 여러 악재가 겹칠 때(스위스 치즈 모델), 우울감은 더욱 깊어집니다.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처럼 특정 시기마다 우울해질 수도 있습니다. 우울은 또 다른 상실을 부르므로, 자신의 심리적 자원을 확인하고 위기를 넘어보는 경험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3.3. 망각과 해리: 현실 도피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지우거나 자신을 분리하는 '해리'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 '뽕므'처럼 상실을 부정하고 과거에 머무르려 하거나,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지우려 할수록 기억은 더 선명해집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집중하여 상처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3.4. 불안: 연락이 안 되면 미칠 것 같은 집착

어린 시절의 분리 불안이나 애착 손상은 성인이 되어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불안으로 나타납니다. 상대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려 합니다. 불안은 신체적 증상(가슴 두근거림, 불면 등)을 동반하여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조금씩 노출하여 익숙해지거나, 봉사 등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5. 중독과 충동: 고통을 잊기 위한 잘못된 선택

남성들은 상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 도박, 일(워크홀릭) 등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감정을 정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일 중독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에 더욱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생 뭐 있어"라며 과소비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충동조절 장애를 보이기도 합니다. 중독과 충동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중독 상태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3.6. 냉소와 불신: 관계의 단절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람은 믿을 게 못 돼", "사랑은 없어"라며 냉소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이자 확증 편향이지만,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듭니다. 상처는 드러내야 낫습니다. 마음의 깁스를 풀고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슬픔을 잘 떠나보내겠습니다

4.1. 눈물의 힘: 미루지 말고 울어라

슬픔은 참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은 슬픔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효과와 엔도르핀 분비를 통해 고통을 완화합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슬플 때는 마음껏 울어야 합니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상실은 병적 애도로 이어져 나중에 더 큰 고통으로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4.2. 말의 힘: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

슬픔은 혼자 감당하기보다 누군가와 나눌 때 가벼워집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위로를 얻습니다. 말은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주변에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전문가를 찾거나, 비슷한 아픔을 가진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시간의 선물'을 실천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4.3. 시간의 힘: 천천히 떠나보내기

상실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급성 애도 기간인 6개월은 몸과 마음을 집중적으로 돌봐야 하는 시기입니다. 사람마다, 그리고 애착의 깊이에 따라 애도 기간은 다릅니다. 16년간 키운 반려견을 잃고 4년을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그러나 정확한 방향(수용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5. 새로운 나를 만나겠습니다

5.1. 용서와 의미 찾기

김 교수의 사례처럼, 과거의 상처와 어머니를 용서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옭아매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살리는 의지적 선택입니다. 상실 이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통해 삶의 목적을 재설정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5.2. 상실, 다시 태어나는 기회

상실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관계의 소중함, 자신의 연약함,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상실의 역전입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되듯, 상처 입은 삶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5.3. 리질리언스: 회복 탄력성

마음의 면역력을 키운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 즉 리질리언스(resilence)를 발휘합니다. 이는 과거와 똑같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딛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제3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지만 나환자를 돕는 의사가 된 사례처럼, 상처는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습니다.

5.4. 잃어버려도 잃어버릴 수 없는 것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현숙처럼,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밥을 먹고 일상을 살아내며 삶을 긍정해야 합니다. 상실은 우리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지금 여기'의 시간과 '나'라는 존재는 남아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6. 그래도 삶은 계속됩니다

버스에 난동을 부리는 취객(상실/고통)이 탔다고 해서 운전기사(나)가 운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취객을 잠재우고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운전기사의 역할입니다. 삶의 여정에는 불시에 닥치는 위기가 있지만, 내 곁에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나의 삶'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서평]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니 충분히 울어라

상실이라는 예고 없는 불청객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마주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별, 배우자와의 이혼,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까지. 채정호 교수의 책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는 이러한 상실의 순간, 무너져 내린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고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따뜻하고도 전문적인 조언을 담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30년 넘게 환자들을 만나온 저자의 임상 경험과 통찰은 이 책을 단순한 위로의 에세이를 넘어 실질적인 '애도 지침서'로 만들어준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상실의 고통을 '병'이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충분히 겪어내야 할 시간'으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라고 단언하며, 우리에게 닥친 불행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이는 죄책감과 자책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유가족이나 이별 당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첫 번째 처방이다.

'쿨함'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반기

저자는 한국 사회, 특히 남성들에게 강요되는 '감정 절제' 문화가 얼마나 병적인 애도 반응을 낳는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거나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는 식의 조언은 슬픔을 억압하게 만들고, 결국 20년이 지나서야 터져 나오는 지연된 슬픔이나 알코올 중독, 일 중독, 분노 조절 장애와 같은 형태로 왜곡되어 나타남을 보여준다.

책은 "미루지 말고 마음껏 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슬픔에는 타이밍이 있으며, 제때 흘리지 못한 눈물은 마음속에 덩어리로 남아 우리를 병들게 한다. 저자는 슬픔을 외면하고 쿨한 척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모습임을 역설한다. 이는 감정 표현에 서툰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실, 그 이후를 살아가는 법

이 책은 단순히 "실컷 우세요"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실의 과정을 단계별로(충격-분노/우울-수용-재건) 설명하며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기제를 명확히 짚어준다. 특히 '애도 심리 카페' 코너를 통해 제시하는 구체적인 솔루션들(상실 목록 적어보기, 애도 편지 쓰기, 오감 활용하기 등)은 독자가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가 된다.

인상 깊은 점은 상실을 '회복'의 관점을 넘어 '성장'의 기회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리질리언스(회복 탄력성)'를 통해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진 '제3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깨진 유리 조각이 모여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되듯, 우리의 상처도 삶을 빛나게 하는 무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강력한 희망의 근거가 된다.

추천 독자 및 총평

이 책은 현재 소중한 사람을 잃고 힘겨워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또한, 타인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채정호 교수는 말한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잘 보내주는 것이 좋은 이별이다." 떠난 사람을 잘 보내주어야 남은 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그 '잘 보내주는 법'을 알려주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안내자다. 상실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이 건네는 "당신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응원이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