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안녕, 불안』(커티스 창) 리뷰/요약


『안녕, 불안』: 불안을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바꾸는 법

불안의 시대, 새로운 영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

현대 사회에서 불안은 마치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 되었다. 미국심리학회의 정의에 따르면 불안은 "긴장감, 걱정, 혈압 상승 같은 육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이다. 수많은 사람이 침투적 사고와 걱정에 시달리며, 특정 상황을 회피하거나 신체적 증상을 경험한다. 저자 커티스 창은 하버드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목회를 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30대 후반에 찾아온 극심한 공황 발작과 불안증으로 목회 현장을 떠나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고백한다.

이 책은 불안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적'이나 '믿음 부족의 증거'로 치부하는 기존의 기독교적 접근을 비판한다. 대신 불안을 "영적 성장을 위한 기회"로 재정의한다. 저자는 예수님이 우리의 불안마저 구속하셔서 선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분임을 역설하며, 불안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Part 1. 불안하고 걱정 많은 나: 두려움과 근심에 관한 새로운 영적 고찰

1. 불안이라는 고통, 그 뜻밖의 기회

저자는 어린 시절 '래치키 키드(맞벌이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로서 겪었던 불안과, 성인이 되어 겪은 '고기능성 불안'의 경험을 공유한다. 그는 불안이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보편적인 문제임을 지적하며, 불안을 '죄'로 규정하여 정죄하거나 반대로 '영적 성장과 무관한 정신 건강의 문제'로만 보는 두 가지 극단적 시각을 모두 경계한다.

빌립보서 4장 6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은 종종 불안한 사람을 비판하는 도구로 오용되지만, 저자는 이를 '지금과 아직(Now and Not Yet)'의 신학적 틀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 불완전한 육체를 입고 살아가지만(지금),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아직)이다. 따라서 불안은 우리 몸이 완전한 회복을 갈망하는 '탄식'이자, 영적 성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2. '좋은 청사진'과 '좋은 건축가' 사이에서 저울질한 날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절반 이상이 명백한 불안 상태였다. 이는 불안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마태복음 6장)을 통해 불안의 영적 본질을 진단하신다. 불안은 근본적으로 '미래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불안은 우리를 현재에서 납치하여 미래의 부정적인 시나리오(청사진)로 끌고 간다. 우리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께 '안전한 미래의 청사진(보장)'을 요구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청사진이 아니라, 우리를 설계하고 돌보시는 '건축가(하늘 아버지)' 자체를 구하라고 초대하신다. 불안은 우리가 '것들(things)'에 대한 보장을 원하는지,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하는지 드러내는 진단 도구가 된다.

3. 매일같이 '미래'로 납치당하는 마음

불안은 우리의 마음을 '미래'로 납치한다. 이에 대한 구출 계획의 첫 단계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며 자연을 통해 현재에 계신 하나님의 돌보심에 집중하게 하셨다. 자연에 온전히 집중하거나 '마음 챙김 호흡'과 같은 훈련을 통해 우리는 미래의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의 하나님 임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영적 성장은 미래의 상상 속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때 이루어진다.

4. 바깥에서 탓할 대상을 찾았다

불안은 종종 수치심을 동반하기에, 우리는 불안의 원인을 내면이 아닌 외부 환경(과중한 업무, 타인의 실수 등) 탓으로 돌리려 한다. 이러한 '관심 돌리기'는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진정한 해결책에서 멀어지게 한다. 야이로의 딸 이야기(마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야이로가 외부의 문제(딸의 죽음)에 압도되어 있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며 그의 관심을 내면의 불안으로 돌리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안을 직시하고, 그 불안을 가지고 당신께 나오기를 원하신다.


Part 2. 불안을 마주하다: 불안 속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5. '내가 하는 불안한 생각들'과 '나'를 구별하다

불안의 가장 흔한 증상은 '곱씹기(rumination)'다. 이는 마치 인질이 납치범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증후군처럼, 우리의 자아가 '불안한 생각'과 결합되어 버리는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이름 붙이기(Naming)'다. 성경에서 이름 붙이기는 구별과 권세를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내 머릿속에서 '나는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이 방송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이름을 붙임으로써, 불안한 생각과 나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마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귀신에게 이름을 묻고 그를 사람에게서 분리해 내셨다. 이처럼 우리는 내면의 불안한 목소리들을 예수님께 가져가 객관화하고, 예수님의 권세로 그것들과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한, 신체적 증상(심장 박동, 근육 긴장 등)에 주의를 기울여 불안이 나를 납치하려 할 때 이를 조기에 감지해야 한다.

6. '이상적 자아'와 '불안한 자아'의 화해

우리 내면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강하고 유능한 '이상적 자아'와, 두려움에 떨며 숨고 싶어 하는 '불안한 자아'가 공존한다. 이상적 자아는 불안한 자아를 혐오하고 억압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치시기 전에 먼저 그를 만지시고 받아주셨던 것처럼(마가복음 1장), 우리의 불안한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다.

영적 성장이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수용을 받아들여, 내 안의 이상적 자아와 불안한 자아가 화해하고 통합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불안한 자아를 지하실에 가두는 것을 멈추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한 나로 존재해야 한다.

7. 조건 없이 받아 주는 연습, 치유의 시작

불안은 머릿속 생각뿐만 아니라 몸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머릿속 생각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기'는 강력한 치유의 방법이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신체 접촉은 불안을 현저히 낮춰준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은 수용과 사랑을 타인에게도 베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타인의 불안을 볼 때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내 안의 억압된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어두운 거울 반응). 부모로서 자녀의 불안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것처럼, 자녀의 불안을 조건 없이 받아주는 '충성스러운 거울'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향해서도 "얘야, 괜찮아"라고 말하며 토닥이는 자기 수용의 제스처가 필요하다.

8. 불안=상실 x 피하기

저자는 불안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불안 = 상실 × 피하기"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 상실(Loss): 우리는 '지금과 아직'의 세상에 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상수다.

  • 피하기(Avoidance): 피할 수 없는 상실을 피하려고 애쓰는 모든 시도다. 이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변수다.

상실을 피하려는 시도(영적 회피, 신체적 회피, 정신적 회피 등)는 역효과를 낳는다. 헬리콥터 부모처럼 과도하게 개입하거나(맴돌기), 방임하는 부모처럼 외면하는 것(벗어나기) 모두 상실을 피하려는 몸부림이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피하기'라는 변수를 줄여야 한다.

9. 나,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운 걸까

불안을 해결하려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상실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저자는 팬데믹 기간에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를 잃을까 봐 불안해했는데, 깊이 파고들어 보니 그것은 '성공한 기업가라는 이상적 자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불안의 이면에는 종종 '우상숭배'가 숨어 있다. 우상은 우리에게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짓 신이다. 저자에게 회사는 하나님을 대체하는 '공급'의 우상이었다. 이를 깨닫고 회개할 때, 갇혀 있던 에너지가 풀려나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10. 어떻게든 상실을 피하려 든다면

'피하기' 습관은 크게 '벗어나기(도피)'와 '맴돌기(집착)'로 나뉜다.

  • 벗어나기: 주제 회피, 중독(SNS, 쇼핑, 알코올), 무기력 등. 이는 고무공을 던지면 더 세게 튀어 돌아오는 것과 같다.

  • 맴돌기: 곱씹기, 강박 행동, 타인 통제 등. 이는 끈적한 반죽을 손에서 떼어내려 할수록 더 달라붙는 것과 같다.

이러한 중독적인 습관을 끊기 위해서는 뇌의 신경 경로를 바꾸는 '멈추고 대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저자는 곱씹기를 멈추기 위해 걱정거리를 종이에 써서 '하나님 상자'에 넣는 신체적 활동을 했다. 중요한 것은 피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실 관리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Part 3. 내 모든 불안을 하나님께: 염려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차원이 다른 평강

11. '잃은 것을 되찾는 날이 온다'는 복음의 의미

기존의 불안 공식(불안=상실×피하기)은 상실 자체를 줄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준다. 부활은 단순히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잃은 것을 되찾는 것'이다. 우리는 장차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회복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스토아주의(도덕적 인내), 에피쿠로스주의(쾌락 추구), 플라톤주의(육체 탈피)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부활의 약속을 붙잡을 때 우리는 상실을 견딜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는다.

12. 상실을 견디게 하는 단 하나의 약속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영"이 아니라 "살과 뼈"가 있는 자신의 몸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구운 생선을 드셨다. 이는 부활이 육체적인 실재이며, 과거의 소중했던 관계와 경험이 회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관통선(Throughline)'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불안 공식이 성립된다: 불안 = 상실 ÷ 부여잡기(Holding). 상실을 피하려는 '피하기' 대신, 부활의 약속을 '부여잡기' 시작하면 상실의 위력은 나눗셈처럼 줄어든다. 우리는 피하기 기도("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에서 항복 기도("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훈련이다.

13. '영원'에 대한 마음속 그림을 더욱 선명하게

부활의 소망을 붙잡으려면 우리의 상상력을 훈련해야 한다. 예수님이 유월절 같은 축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듯이, 우리도 삶의 축제(결혼식, 기념일 등)를 영원한 잔치를 미리 맛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저자는 결혼 25주년 파티를 통해 하객들과 함께 영원한 재회를 소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우리는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카타콤에서 죽은 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부활을 소망했듯이, 우리도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로 나아가는 '밀알'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14. 평범한 오늘 연습하는 '부여잡기' 습관의 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부여잡기'의 세 가지 습관은 다음과 같다.

  1. 기도: 피하기 기도에서 항복 기도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긴다.

  2. 슬퍼하기(Grieving):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표현한다. 슬퍼하는 것은 상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피하기 중독을 끊을 수 있다.

  3. 공동체: 혼자서 상실을 감당하려 하지 않고 타인과 나눈다. 외로움은 불안을 증폭시키므로, 우리는 서로의 짐을 나눠 질 공동체가 필요하다.

15. 더는 불안이 불안하지 않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셨다. 불안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을 따르는 소명을 이루는 것이다. 불안 수치와 상관없이,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충분하다. 우리는 불안을 안고서도, 아니 불안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평] 불안, 그 불편한 손님을 구원자로 만나는 법

"당신의 불안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회입니다."

커티스 창의 《안녕, 불안》은 현대인,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불안이라는 난제를 탁월한 통찰력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이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 단순한 심리 치유서나, "믿음으로 승리하라"는 식의 맹목적인 신앙 서적과는 궤를 달리한다. 저자는 신학적 깊이와 심리학적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처절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불안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1. 불안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불안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신자가 빌립보서 4장 6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을 대하며 불안을 믿음 없음의 증거로 여기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과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긴장 관계를 통해, 불안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필연적인 조건임을 역설한다. 예수님조차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저자는 불안을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영적 성장을 위한 '재료'로 재정의함으로써 독자들을 수치심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

2. '상실'과 '부활'이라는 관통선(Throughline)

이 책의 백미는 불안을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의하고, 이를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부활'과 연결하는 지점이다. 저자는 우리가 불안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회피 전략(벗어나기, 맴돌기)'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불안=상실×피하기'라는 공식을 통해 명쾌하게 보여준다. 세속적인 심리학이나 철학(스토아주의 등)이 상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거나 현재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치는 반면, 저자는 예수님의 부활이 '상실된 것을 되찾는 것'임을 강조하며 차원이 다른 소망을 제시한다. 육체의 부활과 만물의 회복이라는 기독교적 종말론이 단순히 죽은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내 삶의 불안을 견디게 하는 실질적인 능력임을 논증하는 과정은 지적으로도 매우 탁월하다.

3. 추상적인 믿음을 구체적인 습관으로

커티스 창은 신학적 논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항복 기도', '슬퍼하기', '공동체'라는 구체적인 '부여잡기(Holding)' 습관을 통해 불안을 다루는 실천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특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불안한 자아와 이상적 자아를 분리하고(이름 붙이기), 불안의 이면에 숨겨진 우상(공급, 인정 등)을 찾아내는 과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컨설턴트 아빠"에서 "함께 슬퍼하는 아빠"로 변화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매우 인간적이며 적용 가능하다.

4.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날 우리는 기후 위기, 경제적 불확실성, 팬데믹, 그리고 개인적인 상실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 책은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지 않는다. 대신, 불안을 안고서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라. 당신의 그 불안이 바로 예수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는 만남의 장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추천 대상:

  • 만성적인 걱정과 불안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 "믿음이 부족해서 불안한 것인가?"라고 자책하는 그리스도인

  • 불안해하는 가족이나 성도를 어떻게 도わ야 할지 고민하는 목회자와 상담가

  • 기독교 신앙이 실제적인 삶의 고통에 어떤 답을 주는지 고민하는 구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