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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직 신앙고백서 강해』(이승구) 리뷰/요약

 

이승구 교수의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 

1. 피로 쓴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서의 탄생과 역사

이 책은 단순한 교리 해설서가 아닙니다. 저자 이승구 교수가 1992년부터 2023년까지 장장 31년 동안 집필한, 한국 교회를 향한 개혁신학의 헌사입니다.

1.1 역사적 배경: 십자가 아래의 교회

벨직 신앙고백서는 1561년, 귀도 드 브레(Guido de Brès)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저지대)은 스페인의 필립 2세와 가톨릭 세력의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고백서는 소위 '십자가 아래 있던 교회들(Churches under the Cross)'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이 고백서를 도르닉 성벽 너머로 던져 왕에게 전달하려 했으며, 이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1567년 순교했습니다.

1.2 교회의 수납과 권위

이 고백서는 개인의 창작물이 아닌, 박해받던 성도들의 공통된 고백이었습니다. 1566년 안트베르프 대회, 1571년 엠던 대회 등을 거쳐, 1619년 도르트 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개정 및 공인되었습니다. 오늘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과 함께 개혁교회의 '일치하는 3대 신조(Three Forms of Unity)'로 불립니다.


2. 제1부: 하나님과 성경 (신론 및 성경론)

2.1 하나님은 누구신가? (제1항)

벨직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을 "단순하시고 영적인 한 존재"로 고백합니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복합적이거나 나뉠 수 없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불가해하며, 보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무한하고 전능하신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혜와 공의, 선함의 원천이십니다.

2.2 하나님을 아는 두 가지 방편 (제2항)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고백서는 두 가지 수단을 제시합니다.

  1. 일반 계시: 우주의 창조, 보존, 통치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는 '가장 아름다운 책'과 같아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보여줍니다.

  2. 특별 계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성경)'으로 자신을 더 분명하게 알리셨습니다.

2.3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 (제3-7항)

성경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정경(Canon): 고백서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며, 외경과 엄격히 구별합니다.

  • 충족성: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글, 관습, 공의회의 결정이라도 성경보다 위에 둘 수 없습니다.


3. 제2부: 삼위일체와 창조, 섭리

3.1 삼위일체 하나님 (제8-9항)

하나님은 한 본질 안에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로 존재하십니다.

  • 성부: 만물의 원인이며 기원입니다.

  • 성자: 지혜요, 성부의 형상입니다.

  • 성령: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시는 능력입니다. 이 삼위는 혼합되거나 나뉘지 않으며, 영원토록 동등한 본질을 공유하십니다. 성경(창세기 1:26, 예수님의 세례, 축도 등)은 삼위일체를 명백히 증언합니다.

3.2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성 (제10-11항)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며, 영원부터 성부와 동일 본질이신 참 하나님입니다. 성령 또한 피조된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3.3 창조와 섭리 (제12-13항)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내버려 두신 것(이신론)이 아니라, 섭리와 능력으로 다스리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교리는 역경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하늘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4. 제3부: 인간의 타락과 죄

4.1 인간의 전적 타락 (제14항)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선하고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하나님의 형상은 희미한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의 노예가 되었으며,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4.2 원죄 (제15항)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원죄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본성적 부패입니다. 심지어 세례를 통해서도 원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으나, 신자에게는 이 죄가 정죄로 이어지지 않고 은혜로 용서받습니다.


5. 제4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5.1 성육신의 신비 (제18-19항)

하나님은 약속대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참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 신인(God-Man):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두 본성(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 안에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연합되어 있습니다.

5.2 십자가와 대속 (제20-21항)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십자가에 드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고, 우리는 그의 상처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6. 제5부: 이신칭의와 성화

6.1 오직 믿음으로 (제22-23항)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전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과 보혈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이 교리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양심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6.2 성화와 선행 (제24항)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로 이어집니다. 믿음은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선행조차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선행은 구원받은 감사의 열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게 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6.3 율법과 복음 (제25항)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구약의 의식법과 그림자는 성취되어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도덕적 교훈은 여전히 우리 삶을 정돈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규범으로 유효합니다.


7. 제6부: 교회론

7.1 보편적 교회 (제27항)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참된 기독교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입니다. 교회는 세상 처음부터 존재해왔고 끝까지 존재할 것입니다. 때로는 박해로 인해 아주 작아 보이고 꺼져가는 불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7천 명을 남기신 것처럼 교회를 보존하십니다. 이는 당시 박해받던 네덜란드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고백입니다.

7.2 참된 교회의 표지 (제29항)

세상에는 거짓 교회가 많으므로 참된 교회를 분별해야 합니다. 참된 교회의 3가지 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말씀의 순수한 선포: 복음이 가감 없이 전파되는가?

  2. 성례의 순수한 시행: 그리스도의 제정대로 세례와 성찬이 행해지는가?

  3. 권징의 시행: 죄를 다스리고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는가? 반면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권위를 더 높이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거부하며, 성례를 변질시킵니다.

7.3 직분과 정치 (제30-32항)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 '영적인 질서'에 따라 통치되어야 합니다. 모든 직분자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하며, 목사들은 모두 동등한 권위를 가집니다(교황권 배격). 교회는 인간적인 규례로 양심을 얽매어서는 안 됩니다.


8. 제7부: 성례 (세례와 성찬)

8.1 성례의 의미 (제33항)

성례는 약한 믿음을 돕기 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신 '보이는 표와 인'입니다. 성례는 그 자체로 마술적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을 때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합니다. 주님은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제정하셨습니다.

8.2 세례 (제34항)

세례는 할례를 대신하여 제정되었습니다. 물이 몸을 씻듯이, 그리스도의 피가 영혼을 씻음을 상징합니다. 신자의 자녀 또한 언약 안에 있으므로 유아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재세례파의 주장과 달리 세례는 일생에 단 한 번만 받습니다.

8.3 성찬 (제35항)

성찬은 영적 양식입니다. 떡과 포도주가 육신을 기르듯, 십자가에서 찢기신 주님의 몸과 피는 우리 영혼을 기릅니다. 우리는 입으로 떡을 먹지만, 믿음으로(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념(츠빙글리) 이상이며, 물리적 변화(화체설)와도 다릅니다. 성령을 통한 신비적 연합입니다.


9. 제8부: 국가와 종말

9.1 시민 정부 (제36항)

하나님은 인간의 부패를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를 세우셨습니다. 정부는 악을 벌하고 선을 보호하는 '칼의 권세'를 가집니다. 성도는 정부에 순종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무정부주의는 배격됩니다.

9.2 최후의 심판 (제37항)

그리스도는 정해진 때에 육체로, 가시적으로 재림하십니다.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산 자들은 변화될 것입니다. 악인에게는 심판이, 성도에게는 영광과 상급이 주어집니다. 이 소망은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서평] 31년의 헌신이 빚어낸 개혁신앙의 이정표: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를 읽고

1. 31년의 집념, 한국 교회를 향한 묵직한 울림

이승구 교수의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는 단순한 신학 서적을 넘어선다. 1992년부터 시작하여 2023년에 완간되기까지, 저자는 무려 31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한 권의 책에 쏟아부었다. 이는 저자의 끈기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개혁신학의 뿌리 위에 든든히 서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의 발로다. 마치 귀도 드 브레가 박해 속에서도 성 안으로 신앙고백서를 던져 넣었듯, 저자는 이 책을 한국 교회라는 성 안으로 던져 넣고 있다.

2. '십자가 아래의 교회'가 주는 현대적 메시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벨직 신앙고백서가 작성된 역사적 맥락, 즉 '박해받는 교회'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외적인 박해는 없을지라도,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내부의 부패라는 또 다른 위기 속에 있다. 저자는 16세기의 고백을 21세기의 언어로 풀어내며, 교회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특히 29항에서 다루는 '참된 교회의 표지'에 대한 해설은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할 거울과 같다. 말씀, 성례, 권징이라는 표지가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이 책은 다시금 교회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3. 신학적 정밀함과 목회적 따뜻함의 조화

조직신학자인 저자의 강해는 신학적으로 매우 정밀하다. 삼위일체론(8-9항)이나 기독론(18-21항)을 다룰 때, 고대 교회의 이단 논쟁부터 칼케돈 정의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신학적 배경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동시에 이 책은 목회적이다. 섭리론(13항)을 설명할 때,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고난받는 성도에게 주는 "말할 수 없는 위로"임을 강조한다. 예정론이나 이신칭의 교리 역시 사변적인 논쟁이 아니라,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과 겸손을 주는 실천적 교리임을 역설한다. 신학이 강단과 삶에서 분리되지 않고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다.

4. 한국적 상황에 대한 적실한 적용

저자는 단순히 원문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교회의 상황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예를 들어, '상급'에 대한 이해에서 한국 교회가 가진 기복적이고 물질적인 오해를 지적하며, 성경이 말하는 상급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의의 면류관임을 바로잡는다. 또한 교회 정치(30-32항)를 다루면서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강조하고, 목회자와 장로가 지배자가 아닌 섬기는 자임을 강조하는 대목은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꼬집는 예언자적 외침으로 들린다.

5.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책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신앙의 뼈대를 세우고자 하는 목회자,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는 필독서다. 이단이 난무하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이 혼란한 시대에,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토록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은 드물다. 귀도 드 브레는 이 고백서를 통해 "우리는 죽을지라도 진리는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승구 교수의 강해는 그 남겨진 진리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이끄는 살아있는 능력임을 증명해 냈다. 이 책은 한국 교회가 다시금 성경적, 개혁적 토대 위에 굳건히 서게 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