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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레시피』(이동영) 리뷰/요약

 


『신학 레시피: 스토리텔링으로 배우는 신학의 방법과 원리』

1. 신학의 기초: 맛있는 신학을 위한 레시피

1.1. 신학은 사변이 아닌 목회의 산물이다 저자는 신학(조직신학)을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교리의 나열이 아니라, 교회를 지탱하는 뼈대이자 힘줄로 정의합니다. 역사적으로 교리는 상아탑의 사변이 아니라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성도가 교의학(조직신학)에 대한 조예를 갖추는 것은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성경적 목회 철학을 세우는 데 필수적입니다.

1.2. 신학의 방법과 원리 (Theological Recipe) 맛있는 요리를 위해 좋은 레시피가 필요하듯, 바른 신학을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과 원리가 필요합니다. 신학의 원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 근본 원리(Principium Essendi):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

  • 객관적 원리(Principium Objectivum):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성경.

  • 주관적 원리(Principium Subjectivum): 성령의 내적 조명과 그로 인해 형성된 신앙. 이 세 가지 원리는 구분될 수 있지만 분리될 수 없으며, 이성은 신학의 원리가 아니라 신학을 구성하는 도구(기관)로 사용됩니다.

2. 신학이란 무엇인가: 원형의 신학과 모방의 신학

2.1. 원형의 신학(Theologia Archetypa) vs. 모방의 신학(Theologia Ectypa)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은 신학을 하나님만이 가지신 '원형의 신학'과 인간이 피조물로서 가지는 '모방의 신학'으로 구분합니다. 원형의 신학은 하나님의 자의식 속에 있는 완전한 지식이며, 인간은 이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얻은 '모방의 신학'이며, '나그네의 신학'입니다. 따라서 신학자는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하며, 자신의 신학을 절대화하여 교주가 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2.2. 신학의 정의와 목적: 송영(Doxology) '신학(Theologia)'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했으나, 기독교는 이를 차용하여 '하나님에 관한 거룩한 지식'으로 재정의했습니다. 특히 동방 교부들의 전통에 따르면,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 신학(Theologia):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를 사색하고 경배하는 것.

  • 경륜(Oikonomia): 하나님의 살림살이, 즉 창조, 구원, 교회, 종말 등 하나님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역사. 결국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이론의 정립이나 실천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송영'에 있습니다.

3. 신학은 예배다: 렉스 오란디, 렉스 크레덴디

3.1. 예배가 교리를 낳았다 "예배의 법이 신앙의 법을 앞선다(Legem credendi lex statuat supplicandi)"는 교부 프로스페르의 말처럼, 교리는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예배 현장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철학적 사변의 결과가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구원을 경험한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예배의 언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3.2. 한국 교회의 현실: 전제군주적 일신론 저자는 한국 교회가 교리적으로는 삼위일체를 고백하지만, 실제 예배와 기도 언어에서는 '전제군주적 일신론(Monarchian Monotheism)'에 빠져 있다고 진단합니다. 기도할 때 성부 하나님만 찾거나, 삼위의 구분이 모호한 기도를 드리는 것은 교리 교육의 부재와 예전의 결핍에서 기인합니다.

  • 해결책: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같은 공교회의 신앙고백을 예배 중에 사용하여 삼위일체적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어야 하며, 예배의 회복을 통해 바른 신학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4. 좋은 신학의 요건과 기능

4.1. 훌륭한 신학의 4가지 요건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개혁교의학』을 모델로 하여 좋은 신학의 요건을 제시합니다.

  1. 성경적이다: 모든 신학적 진술은 성경에 확고한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2. 역사적이다: 고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전통, 그리고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신경 등)을 존중하고 계승해야 합니다.

  3. 현실 적합성(Contextual): 과거의 교리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4. 조직적·체계적이다: 진리를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이 필요합니다.

4.2. 신학의 4가지 기능 신학은 다음 네 가지 기능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1. 교회적-실존적 기능: 신학은 신앙의 행위이며 기도와 찬양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2. 보존적-재생적 기능: 복음의 핵심(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보존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3. 생산적 기능: 보존된 진리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고 상황에 적용해야 합니다.

  4. 합리적-학문적 기능: 신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서 논리적 합리성을 갖춰야 합니다.

5. 계시론: 하나님을 아는 길

5.1.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 일반 계시: 자연, 역사, 인간의 양심을 통해 주어지는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알 수 있으나, 인간의 죄로 인해 불분명해졌으며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주지는 못합니다.

  • 특별 계시: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 주어지는 계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구원의 역사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 관계: 두 계시는 구분되지만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일반 계시는 특별 계시의 빛 아래서 해석되어야 하며,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의 토대 위에서 역사성을 갖습니다.

5.2. 계시의 3요소 계시는 주체이신 하나님, 대상인 인간, 그리고 내용인 언약(관계)으로 구성됩니다. 계시는 독백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5.3. 현대 신학의 논쟁

  • 계시의 종결성: 자유주의 신학(트뢸치, 틸리히)은 계시의 지속성을 주장하나, 개혁신학은 특별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에 종결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계시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적용할 뿐입니다.

  • 율법과 복음: 루터파는 율법과 복음을 대립적으로 보지만(이원론), 개혁파는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보며 율법과 복음의 유기적 통일성을 강조합니다(일원론).

6. 성경 영감론과 권위

6.1. 유기적 영감 vs. 기계적 영감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나, 저자가 무아지경에서 받아쓰기한 '기계적 영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자의 인격, 지식, 배경, 문체를 모두 활용하신 '유기적 영감'을 통해 오류 없는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6.2. 축자적 영감(Verbal Inspiration) 축자적 영감은 영감의 '방법'이 아니라 '범위'에 관한 교리입니다. 성경의 사상뿐만 아니라 단어(글자)까지도 영감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의미로, 성경 전체의 완전성을 강조합니다. 이를 문자주의나 기계적 영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6.3. 성경의 권위와 실천 성경의 권위는 그 자체에 내재된 '은닉적 권위'가 성령의 조명을 통해 신자에게 '유발적 권위'로 나타나며, 마침내 삶을 지배하는 '규정적 권위'가 됩니다. 성경 무오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윤리적 결단과 실천을 포함합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정통 신앙 고백은 위선이며, "성경 영감 교리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7. 역사적 예수와 종말론

7.1. 역사적 예수 불가지론 비판 루돌프 불트만은 복음서가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일 뿐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의 '다중 증언의 원리'와 요아힘 예레미아스의 '비유사성의 원리' 등은 복음서 속에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예: 하나님을 '아빠'라 부름)이 담겨 있음을 학문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예수님은 신화가 아니며, 역사적 실재입니다.

7.2. 올바른 종말론: 이미와 아직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비판: 역사를 7세대로 나누고 휴거와 7년 대환란을 주장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잘못 해석한 결과이며, 이단(신천지 등)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 무천년설(Amillennialism): 공교회의 정통 종말론은 천년왕국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재림으로 완성될 '아직' 사이에 있다고 봅니다. 종말론은 파국과 공포의 교리가 아니라, 만물의 회복과 완성을 바라는 희망의 교리입니다.

8. 신앙이란 무엇인가?

8.1. 신앙은 지식이자 신뢰다 칼뱅에 따르면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관계적 지식입니다.

8.2.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칭의'와 거룩하게 되어가는 '성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오는 이중 은총입니다. 칭의 없는 성화는 없고, 성화 없는 칭의도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선행의 열매를 맺습니다.

8.3.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 마지막으로, 신앙은 나의 믿음의 강함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칼뱅의 유언장처럼,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기대어 살고 죽는 것입니다.



[서평] 맛깔스러운 레시피로 차려낸 신학의 만찬

1. 신학의 문턱을 낮춘 스토리텔링의 힘 이동영 교수의 『신학 레시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학이라는 다소 무겁고 딱딱한 재료를 '스토리텔링'이라는 훌륭한 조리법으로 요리하여 독자들에게 내놓은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하며, 이를 맛깔스럽게 전달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강조한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자신의 유학 생활, 목회 경험, 심지어 애완견 이야기나 가족의 일화 같은 소소한 일상을 신학적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예를 들어, '원형의 신학'과 '모방의 신학'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강아지에게 안수 기도를 했던 에피소드를 들거나 , 언어의 뉘앙스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슈바이처의 일화를 드는 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독자로 하여금 조직신학의 난해한 개념들(계시, 영감, 삼위일체 등)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정황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2. 한국 교회의 아픈 곳을 찌르는 예리한 통찰 이 책은 단순히 신학 이론을 소개하는 개론서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병폐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신학적 처방을 내린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 교회의 '전제군주적 일신론'에 대한 비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교리적으로는 고백하지만, 실제 예배와 기도에서는 성부 하나님만 강조하거나 위계적인 질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또한,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어떻게 이단의 온상이 되었는지를 역사적, 신학적으로 규명하며 ,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여 '값싼 은혜'를 양산하는 한국 교회의 구원론적 오류를 칼뱅의 신학을 통해 교정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비판은 쓴소리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저자의 애정이 바탕에 깔려 있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3. 신학의 본질 회복: 사변에서 송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신학은 예배다"라는 명제다. 저자는 서방 신학이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사변적으로 흐른 것을 비판하며, 동방 교부들의 전통을 빌려 신학의 궁극적 목적이 '송영(Doxology)', 즉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신학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학문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그분을 경배하고 즐거워하는 행위라는 저자의 주장은 신학 공부의 목적을 잃어버린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 초심을 회복하게 한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신학자가 아니다"라는 에바그리오스의 인용은 신학함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게 만든다.

4. 균형 잡힌 개혁신학의 진수 저자는 헤르만 바빙크를 위시한 정통 개혁신학의 노선에 굳건히 서 있으면서도, 타 신학 사조에 대해 열린 자세와 공정한 비평을 유지한다. 그는 '선별적 비평'의 방법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이나 비평학적 연구 결과라 하더라도 배울 점은 수용하고 오류는 걸러내는 성숙한 학문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보수와 진보, 이론과 실천, 정통주의와 경건주의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에 갇힌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건강한 신학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특히 율법과 복음,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유기적 영감과 축자적 영감 등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주제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통합해내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5. 누구를 위한 책인가? 『신학 레시피』는 신학을 처음 접하는 신학생에게는 친절한 길잡이가, 매너리즘에 빠진 목회자에게는 신학의 본질을 일깨우는 죽비가, 그리고 교리에 목마른 평신도에게는 영양가 높은 특식이 될 것이다. 딱딱한 교리서에 지친 이들에게, 그리고 신학이 내 삶과 예배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독자는 "신학은 참으로 맛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기쁨이자 찬양"이라는 저자의 고백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