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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사 수업』(박양규) 리뷰/요약

 

박양규 『중간사 수업』: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 잃어버린 500년의 고리를 찾아서

1. 신구약 중간사란 무엇인가?

성경을 읽다 보면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와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 사이에 단 한 장의 종이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사이에는 약 500년이라는 긴 시간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흔히 하나님이 침묵하신 ‘암흑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사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되던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중간사 수업』은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사’ 또는 학술적 용어로 ‘제2성전기(Second Temple Period)’라고 부르며, 주전 516년 스룹바벨 성전의 건립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 이 책은 단순한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아무개’들의 고민과 질문, 즉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시는가?",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인가?",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2. 페르시아 시대: 회복의 시작과 제2성전

2.1. 바벨론 포로와 고레스 칙령

신구약 중간사의 시작은 바벨론 포로기에서 출발합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는 유대인들에게 신학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 찼을 때, 역사는 급변합니다. 주전 539년, 신흥 강국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왕이 바벨론을 점령하고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을 허락합니다 . 이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키루스 실린더’라는 유물을 통해 역사적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

2.2. 제2성전 건립과 에스라-느헤미야의 개혁

주전 516년, 스룹바벨에 의해 제2성전이 완공됩니다. 비록 솔로몬 성전에 비해 초라했지만, 학개 선지자는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학 2:9)고 선포했습니다 .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율법을 중심으로 한 유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이 시기에 비로소 지리적/혈통적 의미를 넘어선 ‘유대교(Judaism)’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특히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신학적 회복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사회적 회복)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3. 헬레니즘 시대: 거대한 문화의 융합

3.1. 알렉산드로스의 등장과 세계의 변화

주전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전 세계에 ‘헬레니즘’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 그는 정복지에 그리스어와 문화를 전파하여 ‘세계 시민(Cosmopolitan)’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 이로 인해 유대 사회 역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됩니다.

3.2. 70인역(Septuagint) 성경 번역의 의의

알렉산드로스 사후, 제국은 분열되었고 유대 지역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 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의 탄생입니다.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시장 언어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된 이 성경은, 훗날 사도 바울이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할 때 결정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는 ‘상스러운 언어’가 ‘성스러운 도구’로 쓰임 받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4. 마카비 전쟁: 헬레니즘의 거친 파도와 저항

4.1.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

주전 198년, 유대 지역의 지배권이 셀레우코스 왕조로 넘어가면서 ‘잔잔한 파도’였던 헬레니즘은 ‘거친 파도’로 돌변합니다. 특히 주전 175년 즉위한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에게 헬레니즘을 강요하며 할례 금지, 안식일 준수 금지, 제우스 신상 숭배 등을 명령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모독당했고, 이에 반발한 경건한 유대인들(하시딤)은 목숨을 건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4.2. 마카비 혁명과 하스몬 왕조

주전 167년, 제사장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특히 셋째 유다 마카베오)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 이를 ‘마카비 전쟁’이라 부릅니다.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승리하여 주전 164년 성전을 탈환하고 정화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수전절(하누카)’입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주전 142년 정치적 독립까지 쟁취하며 ‘하스몬 왕조’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제사장직이 정치 권력화되고 타락하는 부작용도 발생했습니다.

5. 유대 종파의 분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마카비 전쟁 이후 유대 사회는 종교적 순수성과 현실 정치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여러 종파로 분화되었습니다.

  • 에세네파(Essenes): 하스몬 왕조의 대제사장직 겸직과 타락에 실망하여 광야로 나간 ‘하시딤’의 후예들입니다. 쿰란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신들만이 ‘참된 이스라엘’이라 믿으며 임박한 종말을 대비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상과 매우 유사합니다.

  • 사두개파(Sadducees): 하스몬 왕조 및 이후 로마 권력과 결탁한 제사장 및 귀족 그룹입니다. 모세오경만 인정하며 부활, 천사, 내세, 섭리를 부정하고 현세 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 바리새파(Pharisees): ‘분리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민중 속에서 율법과 전통(구전 율법)을 엄격히 지키며 경건을 추구했습니다. 사두개파와 달리 부활과 천사를 믿었으며, 회당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6. 로마 시대와 헤롯 가문: 불안한 평화

6.1. 로마의 등장과 헤롯 대왕

하스몬 왕조의 내분을 틈타 주전 63년, 로마의 펌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유대의 짧은 독립은 끝납니다. 이후 이두매(에돔) 출신의 헤롯 가문이 로마의 힘을 입어 유대의 통치자로 등장합니다. ‘헤롯 대왕’은 뛰어난 정치력과 건축술(성전 증축)로 유대를 다스렸지만, 정통성이 없는 이방인 출신 왕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늘 불안해하며 잔혹한 통치를 일삼았습니다. 베들레헴 영아 학살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습니다.

6.2. 헤롯의 아들들과 총독 통치

헤롯 사후 유대는 그의 아들들(아켈라오, 안티파테르, 빌립)에게 분할 통치됩니다. 특히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아켈라오가 폭정으로 폐위되자, 주후 6년부터 로마는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 본디오 빌라도는 이 시기에 파견된 5대 총독이었습니다.

7. 유대 전쟁과 예루살렘의 멸망

7.1. 제1차 유대 전쟁 (AD 66-70)

로마 총독들의 가혹한 수탈과 율법 모독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샀고, 결국 주후 66년 대규모 반란인 제1차 유대 전쟁이 발발합니다 . 초기에는 로마군을 격퇴하기도 했으나,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장군에 의해 진압됩니다.

7.2. 성전 파괴와 기독교의 분리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불타버립니다. 이는 예수님의 예언(“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의 성취였습니다 . 유대 전쟁의 패배로 사두개파는 소멸했고, 에세네파 역시 로마군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살아남은 바리새파는 랍비 유대교로 재편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멸망 전 펠라 등으로 피신하여 기독교의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이 전쟁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완전히 결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8. 역사의 행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다

신구약 중간사는 하나님이 침묵하신 시간이 아니라, ‘때가 차매(갈 4:4)’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기 위해 세상을 준비하신 시간이었습니다.

  • 언어의 통일: 헬레니즘을 통한 그리스어의 확산은 복음 전파의 고속도로가 되었습니다.

  • 디아스포라와 회당: 곳곳에 세워진 회당은 바울의 선교 거점이 되었습니다.

  • 메시아 대망 사상: 억압과 고통 속에서 유대인들은 간절히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원했던 회복은 ‘정치적 독립’이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회복은 ‘죄로부터의 구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회복을 꿈꾸고 있습니까? 역사의 거울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성경의 텍스트 너머에 있는 생생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중간사를 배우는 진정한 목적입니다.




[서평] 잃어버린 500년의 침묵을 깨고, 말씀이 육신이 된 현장을 목격하다

1. 성경의 ‘빈 페이지’를 채우는 작업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구약의 말라기와 신약의 마태복음 사이는 그저 하얀 공백일 뿐이다. 성경책을 넘기면 단 1초 만에 지나가는 이 페이지에는 사실 500년이라는, 조선 왕조 전체 역사와 맞먹는 긴 시간이 숨겨져 있다. 박양규 목사의 『중간사 수업』은 바로 이 침묵의 시간, 소위 ‘암흑기’라 불리던 시기에 횃불을 들고 들어가 그곳에서 울고 웃으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아무개’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구약 중간사가 단순히 신약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Background) 차원을 넘어,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약속의 확인’ 과정임을 역설한다.

2.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딱딱한 역사적 사실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역사를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끊임없이 연결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E. H. 카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절망을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잡혀간 우리 선조들의 아픔과 연결하거나,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통해 성경 속 사건을 17세기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은 탁월하다. 독자는 이를 통해 2,500년 전의 유대인이 겪은 정체성의 위기(“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인가?”)가 오늘날 급변하는 세상 속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 대한 재평가다. 성경에서 흔히 위선자로 묘사되는 바리새인들이 사실은 헬레니즘의 거친 파도 속에서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하시딤(경건한 자들)’의 후예였다는 사실, 그리고 현실 권력과 타협하며 성전을 장악했던 사두개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반추하게 만든다. 저자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왜 그들이 변질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꿈꾼 ‘회복’과 예수님이 가져오신 ‘회복’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3. 구약과 신약을 잇는 튼튼한 다리

많은 성도들이 신약 성경을 읽을 때 낯선 용어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헤롯은 왜 여러 명인지, 분봉왕은 무엇인지, 사마리아인은 왜 멸시받는지, 산헤드린 공회는 어떤 기구인지 등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복잡한 헤롯 가문의 가계도를 알기 쉽게 정리하고, 로마의 통치 방식과 유대 사회의 경제적 상황(고리대금, 세금 문제)을 구체적인 사료(요세푸스의 저작, 미쉬나 등)를 들어 설명한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장착하고 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렙돈을 바친 과부’의 헌금이 얼마나 처절한 것이었는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씀이 얼마나 혁명적인 선언이었는지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흑백 TV로 보던 성경이 4K 고화질 컬러 화면으로 바뀌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4. ‘회복’에 대한 진지한 성찰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회복’이다. 포로 귀환민들은 성전 재건을 회복이라 여겼고, 마카비 시대의 사람들은 정치적 독립을 회복이라 여겼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를 통해 묻는다. “정치적 독립이 진정한 회복인가?” 하스몬 왕조가 독립을 쟁취했지만 곧바로 타락의 길을 걸었던 역사는, 외형적인 성취나 정치적 승리가 진정한 구원이 아님을 보여준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회복, 즉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임을 강조한다. 이는 물량주의와 성공지상주의에 빠진 현대 교회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

5.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필독서

『중간사 수업』은 신학생이나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경을 깊이 읽고자 하는 평신도들에게도 강력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풍부한 도판, 그리고 인문학적 통찰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를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바꿔 놓았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더 이상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공백을 ‘암흑기’로 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셨던 ‘준비의 시간’이었으며, 오늘 우리의 삶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 중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의 텍스트를 넘어 컨텍스트(맥락)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