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익 저,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선하신 하나님을 향한 진리의 여정
1. 왜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는가?
이 책은 존 파이퍼의 『하나님의 기쁨』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적 통찰에 깊은 영향을 받은 저자 김형익 목사가 11년의 산고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저자는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잃고 의무감에 시달리거나,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 있다고 진단한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믿지만, 그분의 '선하심'은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저자는 자신의 신앙 여정과 목회 현장에서의 경험, 그리고 깊이 있는 성경 주해를 통해 "기독교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임을 역설한다. 이 책은 오해된 하나님을 바로잡고, 성경이 말하는 '선하신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참된 회심과 성화, 그리고 기쁨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2. 제1부: 절대적으로 시급한 문제 - 오해된 하나님 vs 선하신 하나님
1) 오해된 하나님: 왜곡된 신앙의 현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성경과 교리에 대한 무지로 인해 하나님을 오해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쉬운 것'으로 치부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열심(금식, 헌금, 봉사)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지성이면 감천' 식의 태도를 보인다. 이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만들어진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예를 든다. 사울은 전쟁 승리를 위해 군사들에게 금식을 맹세시켰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아닌,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종교적 행위였다. 반면 어거스틴은 회심 전, 기독교를 '의무의 목록'으로 오해하여 세상의 즐거움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이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동하여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2) 선하신 하나님: 창조의 동기와 목적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창조 전'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조명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서로를 영화롭게 하며 완전한 사랑과 기쁨(Koinonia, 코이노니아) 속에 거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외롭거나 부족해서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다. 창조의 동기는 삼위 하나님 안에 넘쳐흐르는 '완전한 기쁨'이었다. 하나님은 이 기쁨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저자는 예레미야 32장 41절("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그분의 '기쁨'이며, 우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사명 선언문과 같다고 설명한다.
3. 제2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 죄, 복음, 믿음의 재정의
1) 죄(Sin):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음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은 도덕적 규칙을 어기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신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최상의 것을 주지 않고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의심을 심어주었다. 하와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언제나 최선의 것을 공급하시는 분임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 행복을 찾으려 했다. 이것이 죄의 뿌리인 '영적 독립선언'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삶의 고난이나 결핍 앞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라고 묻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죄성을 드러낸다. 죄는 하나님이 나의 행복을 위해 최상의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지 않고, 내 힘으로 행복을 쟁취하려는 모든 시도다.
2) 복음(Gospel):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는 창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할 수 있는가?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단순히 죄 용서나 사랑의 감상적 표현이 아니다. 로마서 3장 25절의 '화목제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아부어졌음을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아들에게 대신 집행하심으로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동시에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이사야 53장은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의 상함(crush)을 '원하셨다(기뻐하셨다)'고 말한다. 이는 아들의 고난 자체가 기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을 만큼 우리에게 '선하심'을 베푸시는 분임을 증명하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창문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비로소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그분의 선하심을 볼 수 있다.
3) 믿음(Faith):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
믿음은 구원의 공로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베푸신 선한 일(복음)을 받아들이는 통로이며, 선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이었다.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방법인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그분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순종'을 낳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장래에도 최상의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장래의 은혜에 대한 신뢰)이 있을 때, 우리는 당장의 손해나 두려움을 이기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또한 믿음은 '인내'한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을 믿기에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는다. 믿음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기대는 것이다.
4. 제3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는가 - 기쁨, 과거, 미래, 고난
1) 인간 사용설명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인간의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존 파이퍼의 통찰을 빌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영광 받으신다"고 강조한다. 신앙생활은 의무(Duty)가 아니라 기쁨(Delight)이어야 한다. 의무감으로 하는 헌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 인간의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그분을 즐거워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을 향해 계산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2) 과거의 은혜: 상처와 한(恨)을 넘어서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와 '한'에 묶여 신앙의 성장을 멈춘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과거를 재해석하게 한다.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해야 했듯이, 우리도 고통스러웠던 과거 속에서 우리를 업고 가신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해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과거의 실패와 아픔조차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시고(겸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며(믿음),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디자인하신 '필수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과거의 모든 사건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할 때, 상처는 쓴뿌리가 아니라 은혜의 간증이 된다.
3) 장래의 소망: 염려를 이기는 믿음
염려의 뿌리는 믿음의 결핍이다. 예수님은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2)고 말씀하셨다. 장래의 은혜(Future Grace)를 믿는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영적 자신감을 갖는다. 이는 번영신학이 말하는 물질적 성공의 보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내 영혼의 유익을 위해 일하실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확신이 우리를 이기심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4) 고난과 영광: 고난을 낭비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난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욥의 고난처럼, 때로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주시는 '영광스러운 특권'일 수 있다. 또한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깊이 맛보아 알게 하는 수단이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는 도구다. 다윗은 아둘람 굴의 곤고함 속에서도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설교했다. 고난은 하나님을 가장 잘 설교할 수 있는 강단이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찬양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진짜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낭비하지 말고, 그 속에서 영광의 중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
5. 제4부: 소명과 하나님 나라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1) 경건한 어른: 아들이 아버지로 자라가다
교회에는 '경건한 어른'이 필요하다. 이는 나이나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여 성품이 변화된 사람을 뜻한다.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아버지 집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은혜)을 모르는 율법주의자였다. 반면 둘째 아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했다. 경건한 어른은 율법적 회개가 아닌 복음적 회개를 통해 날마다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넉넉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른 지체들을 품는다. 한국 교회는 비뚤어진 경건(열심과 경쟁)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성숙함을 추구해야 한다.
2) 선교하는 교회: 기쁨의 흘러넘침
선교의 출발점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정'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여 그분을 즐거워하는 기쁨이 넘칠 때, 자연스럽게 그 기쁨을 전하게 되는 것이 선교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소명에 헌신할 때 선교는 혹사가 아니라 흘러넘침(overflowing)이 된다. 억지 헌신이나 죄책감에 의한 선교는 지속될 수 없다. 우리가 먼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풍성히 누릴 때,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3) 선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설교자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의 현장에서 '설교자'다. 우리는 오해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계시하는 '선하신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조지 뮬러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라고 고백했다. 이것이 성도의 능력이다. 우리의 신앙이 관계(Relationship)임을 기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을 바르게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아둘람 굴과 같은 삶의 고통스러운 현장이 바로 최고의 강단임을 잊지 말자.
[서평] 오해를 넘어 진실로, 두려움을 넘어 기쁨으로
1. 왜 지금 '하나님의 선하심'인가?
현대 기독교, 특히 한국 교회는 '성장'과 '열심'이라는 키워드에 오랫동안 매몰되어 왔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Doing)'에 집착하느라 '하나님은 누구신가(Being)'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다. 김형익 목사의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맹점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이 책은 단순히 신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저자 자신이 11년 동안 씨름하며 체득한 진리, 즉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하시며, 그 선하심을 누리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뜨거운 가슴으로 전하는 영적 처방전이다.
2. 율법주의와 기복신앙을 넘어서는 '제3의 길'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를 바로잡아준다는 데 있다. 첫째, 하나님을 엄격한 감독관으로 여기는 '율법주의적 오해'다. 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해, 혹은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저자는 이것이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의 모습임을 지적하며, 하나님은 우리의 노동이 아닌 우리와의 '기쁨의 교제'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창조의 목적을 통해 규명한다. 둘째, 하나님을 내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여기는 '기복신앙적 오해'다. 저자는 '장래의 은혜'와 '고난'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무조건적인 성공, 건강)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한 만족을 주는 방식(때로는 고난과 결핍을 통해)으로 나타남을 성경적으로 변증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오해를 넘어, 십자가 복음을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절대적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적 신앙의 핵심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3. 신앙의 문법을 바꾸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통찰은 죄, 회개, 믿음과 같은 익숙한 기독교 용어들을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관점에서 재정의한 부분이다.
죄(Sin):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최상의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라는 정의는 죄의 본질을 꿰뚫는다. 이는 우리가 왜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다른 만족을 찾아 헤매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준다.
고난(Suffering): 고난을 "하나님이 나를 믿어주시는 영광스러운 특권"이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하는 수단"으로 해석한 부분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강력한 위로와 소망을 준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설교했다는 저자의 해석은 전율을 일으킨다.
기쁨(Joy):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기독교 희락주의적 관점은 의무감에 지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한다.
4. 나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가?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오늘 겪은 힘든 일 속에서도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복음이라는 창문을 통해서만 해석되지 않는 인생의 난제들을 풀 수 있다. 이 책은 내 안의 미묘한 율법주의(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복 주시겠지)와 기복신앙(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이 문제는 해결해주셔야 해)을 회개하게 만든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묵상하는 대신, 그 시간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한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이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기쁨이신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은 다시금 복음 앞에 설레게 만든다.
5. 결론 및 추천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는 갓 신앙생활을 시작한 초신자부터, 오랜 신앙생활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진 중직자, 그리고 강단에서 하나님을 전해야 하는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하나님이 무섭게 느껴지는가? 혹은 신앙생활이 지루하고 건조한가? 열심히 섬기는데도 마음에 기쁨보다 섭섭함이 쌓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을 통해 오해의 안경을 벗고, 당신을 향해 기쁨의 춤을 추시며 달려오시는 '선하신 아버지'를 만나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당신의 신앙이 의무에서 기쁨으로,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혁명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