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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다운 예배』(김효남) 리뷰/요약

 


『예배다운 예배』: 그대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김효남 저) 

1. 신앙생활과 일상의 괴리를 넘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을 주일에 교회에 모여 드리는 종교적 행사나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이 곧 생활이어야 하고, 생활 또한 신앙적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롬 12:1). 김효남 목사의 저서 『예배다운 예배』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예배'에 있음을 천명하며, 예배가 단순히 주일의 의식이 아니라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 우주적 역사이자 신자의 전 존재를 건 소명임을 역설합니다.

2. 예배의 기원과 본질: "그대로 되니라"

창조 목적과 예배

예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 기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을 때, 피조 세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하나님의 뜻하신 "그대로 되니라"는 순종이었습니다. 비이성적 피조물은 자연 법칙에 순종함으로,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법과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인간의 존재 이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아는 지식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즉 예배하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 아담의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예배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세상을 다스리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3. 타락: 예배의 대상이 바뀌다

최악의 반역

인간의 타락은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예배의 거부' 사건입니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그대로 되니라)을 거부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기로 결정한, 즉 자기 자신을 예배하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자신을 예배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탄을 예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의 단절과 비참한 운명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상실되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배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4. 구속과 예배의 회복: 제사와 십자가

가죽옷과 제사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이는 제사의 원형이자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제사는 죄인이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대속물의 죽음을 통해 은혜 언약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십자가와 산 제물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사는 '자기 부인'의 삶을 통해 드리는 영적 예배를 의미합니다.

5. 공예배의 기능: 원리, 훈련, 에너지

삶 자체가 예배라면 왜 우리는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저자는 공예배(의식으로서의 예배)가 삶의 예배를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합니다.

  1. 원리 제공: 공예배는 삶의 예배가 무엇인지 그 원형과 원리를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의 원리를 배웁니다.

  2. 훈련장: 공예배는 흩어져 드리는 삶의 예배를 위한 연습장입니다. 예배 순서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말씀을 듣고, 헌신을 다짐하며 영적 근육을 키웁니다.

  3. 에너지원: 공예배는 삶의 예배를 지속할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는 충전소입니다. 그러나 이는 육신적 감동이나 재미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은혜여야 합니다.

6. 예배자의 태도와 자기 인식

나답과 아비후의 교훈

레위기 10장의 나답과 아비후 사건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인간의 열정이나 감정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불(복음과 성령)로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 인식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 4장)에서 예수님은 장소보다 예배의 '대상'이 중요함을 역설하십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내신 은혜 언약의 하나님을 알고 예배해야 합니다.

철저한 자기 인식

이사야 선지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비참한 죄인 됨을 깨닫고 엎드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제단 숯불(그리스도의 속죄)로 정결케 하시는 은혜를 입고 다시 일어서는 자입니다.

7. 소명: 세상 속에서의 예배

이성이 무릎 꿇는 곳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인간의 이성으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 앞에서 찬양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참된 예배는 내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앞에 압도당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는 그에게 주신 소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자에게도 각자의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소명이 다하는 자리이자,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의 현장입니다.

일반 소명과 특별 소명

신자의 소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일반적 소명 (교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 특별한 소명 (가정과 직장): 구원받은 신자가 세상 속으로 파송 받아 가정을 세우고 직업을 통해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8. 세상을 충만케 하는 교회

비어 있는 세상

세상은 화려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인해 공허한 곳입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채우려 노력하지만(예: 과학, 물질문명), 이는 화장에 불과할 뿐 진정한 생명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오직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채울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엡 1:23)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즉 성도들의 삶을 통해 이 세상을 당신의 통치와 사랑으로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9. 종말론적 정산과 참된 예배로의 초대

달란트 비유와 정산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달란트(소명과 재능)를 맡기셨습니다. 언젠가 주님은 다시 오셔서 반드시 정산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인의 뜻을 따라 소명을 감당했는지, 아니면 게으르게 땅에 묻어두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는지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참된 예배로의 초대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예배다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 갇힌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서평] 삶의 모든 순간이 '지성소'가 되게 하는 거룩한 부르심

1. 한국 교회의 이원론적 신앙에 대한 통렬한 처방 김효남 목사의 『예배다운 예배』는 "예배 성공이 인생 성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무기력하거나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돌직구와 같습니다. 저자는 한국 교회에 만연한 '신앙과 생활의 분리', '주일과 평일의 괴리'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많은 성도가 예배를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종교 의식'으로 축소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자기 예배'의 삶을 살고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은 뼈아픈 회개를 촉구합니다.

2. 개혁신학적 깊이와 목회적 따뜻함의 조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탄탄한 개혁신학적 기초 위에 쓰였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막연한 감성이나 실용주의적 접근 대신,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부터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비전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언약 신학'의 관점에서 예배를 조망합니다. 특히 '제사'의 의미를 단순히 죄 씻음의 도구가 아니라 '은혜 언약의 확인'으로 해석하고, 이를 현대의 공예배와 연결하는 대목은 탁월합니다. 또한, 나답과 아비후의 '다른 불' 사건이나 이사야의 소명 기사를 통해 예배자가 갖추어야 할 거룩한 두려움과 자기 인식을 강조하는 부분은 오늘날 가벼워진 예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립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청교도 윌리엄 구지의 소명론을 빌려 가정과 직업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특별한 소명'의 자리로 격상시킵니다. 이는 성도들로 하여금 반복되는 일상과 고된 직장 생활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거룩한 예배의 현장으로 재해석하게 만듭니다.

3. '비어 있는 세상'을 채우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사명 저자는 에베소서를 강해하며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회복시킵니다. 세상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어 있는(empty)' 곳이며,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통찰은 독자에게 거룩한 자존감을 심어줍니다. 낙태나 동성애와 같은 현대 사회의 이슈들을 단순히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여 세상을 비우려는 시도'와 '생명으로 세상을 채우려는 하나님의 뜻'의 대결 구도로 설명하는 부분은 기독교 세계관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4. 존재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책의 부제인 "그대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저자는 독자에게 "당신은 왜 사는가?"라고 묻지 않고 "당신은 누구를 예배하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의 대상이 바뀌고 방식이 바뀔 때, 비로소 삶의 목적이 선명해짐을 증명해 보입니다. 이 책은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채 습관적인 종교 생활을 이어가는 성도, 일상의 무의미함 속에서 소명을 찾기 원하는 청년, 그리고 성도들에게 바른 예배의 신학을 가르치기 원하는 목회자들에게 필독서로 추천할 만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매주 드리는 공예배가 삶의 현장으로 파송 받기 위한 치열한 훈련소임을, 그리고 나의 가정과 일터가 바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예배 처소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