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목사의 《구원 그 이후》: 신앙의 성숙과 성화의 길
1. 구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막막하고, 죄의 유혹은 계속되며, 삶의 고난은 그치지 않습니다. 박영선 목사의 《구원 그 이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구원이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출생'이며, 그 이후에는 '성숙'과 '성화(Sanctification)'라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 책은 구원받은 성도가 현실 속에서 겪는 갈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성숙의 목표가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풀어냅니다
2. 신자의 정체성과 현실의 괴리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
성경은 신자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부르지만, 동시에 우리를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로 묘사합니다
질그릇과 보배
우리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질그릇(육체와 본성)이 금그릇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합니다
3. 영적 싸움: 과거의 승리와 현재의 순종
남겨둔 죄의 뿌리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대부분 승리했지만, '가사, 가드, 아스돗'에 아낙 자손을 남겨두었습니다
에벤에셀의 교훈
'에벤에셀(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은 과거의 고백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해서 오늘 내가 게으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과거의 체험이나 기적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 주어진 현실의 싸움을 싸워내는 사람입니다. 법궤라는 종교적 상징물을 앞세워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서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것이 진정한 영적 싸움입니다
4. 신앙의 성숙: 훈련과 과정
광야라는 훈련소
하나님은 왜 우리를 구원하신 후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땅에 남겨두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기업'으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은혜의 관계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약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약도가 있어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여 율법(약도)을 보고 길을 걷게 합니다
5. 신자의 삶의 방식: 자비와 승리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세상의 승리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승리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으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신자의 능력은 자존심을 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손해 보고, 밟히는 과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일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랑과 자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지체를 싸매고, 보기 싫은 사람을 감당하며, 투덜거릴지언정 그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순종의 문제입니다. 내 것을 나누고, 희생하며, 썩어지는 밀알이 될 때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6. 영광스러운 목적지를 향한 항해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결국 천국에 이를 것입니다. 이 확실한 결말(해피엔딩)을 아는 사람은 과정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항해 도중 겪은 불안은 목적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목적지를 알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며, 은혜로 끝까지 붙드셔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실 것입니다
[서평] 현실의 땅에 발 딛고 선 신앙의 리얼리즘
"왜 예수를 믿는데 내 삶은 여전히 고단한가?" 박영선 목사의 《구원 그 이후》는 이토록 솔직하고 아픈 질문에 대한 가장 성경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이 종종 '믿음 만능주의'나 '기복 신앙'으로 흘러가며 성도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심어줄 때, 저자는 차가울 정도로 냉철하게 신자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 책은 구원받은 이후 성도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외부의 고난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숙으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과정임을 역설한다.
성숙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 저자의 탁월함은 '구원' 사건과 '성화'의 과정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그는 구원을 '출생'으로, 신앙생활을 '성장'으로 비유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왕자라는 신분을 가졌어도 당장은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떼를 쓰는 것처럼, 신자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졌으나 여전히 죄의 본성을 지닌 '질그릇'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관점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성도들에게 엄청난 해방감과 위로를 준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 대신, "아, 내가 지금 자라고 있는 중이구나, 공사 중이구나"라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절묘하게 조화시킨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의 구원과 견인(Perseverance)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완성의 자리로 끌고 가신다는 '배짱' 있는 믿음을 심어준다. 동시에 그는 "그러므로 막 살아도 된다"는 방종을 경계한다. 은혜를 아는 자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반응, 즉 치열한 싸움과 순종이 뒤따라야 함을 강조한다. 아간과 라합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 구원받은 이후의 삶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뼈아픈 경종을 울린다.
삶으로 증명되는 능력 박영선 목사는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능력'의 개념을 재정립한다. 기독교의 능력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병이 낫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처럼, 신자의 능력은 고난과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순종'에 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성공 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우쳐 준다.
다시, 믿음의 길 위에서 《구원 그 이후》는 신앙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필독서다. 뜨거운 감정적 체험은 식었고, 현실의 무게는 여전하며, 반복되는 죄로 인해 낙심한 성도들에게 이 책은 다시 일어설 명분과 힘을 제공한다. 저자의 투박하지만 진실한 문체는 마치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아버지의 손길처럼 다가온다. 이 책을 덮을 때 독자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 한복판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신앙은 요행을 바라는 도박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오늘을 살아내는 정직한 싸움임을 이 책은 분명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