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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배덕만, 권연경, 김근주, 박득훈, 한완상, 강도현) 리뷰/요약

 


한국교회의 위기, 5인의 석학에게 길을 묻다: 『터닝포인트』 

1. 왜 지금 '터닝포인트'인가?

종교개혁 500주년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강도현 엮은이는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교회가 무너지고 목회자가 쓰러지는 현장을 보며 절망감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교회가 희망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고, 한국교회가 무엇으로부터 돌아서야(Turning)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이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이 책은 배덕만, 권연경, 김근주, 박득훈, 한완상이라는 5명의 신학자와 실천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교회의 아픈 현실을 진단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2. 배덕만: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교회로

역사의 교훈: 종교개혁의 빛과 그림자 배덕만 교수는 종교개혁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종교개혁은 '이신칭의'와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킨 위대한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국가 권력과의 결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루터와 칼뱅 등 주류 종교개혁가들은 개혁을 위해 정치권력의 힘을 빌렸고, 이는 결국 130여 년간 이어진 종교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반면, 당시 정치권력과의 결탁을 거부하고 산상수훈의 평화를 외쳤던 '재세례파'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의 굴절된 역사: 반공과 성장주의 배 교수는 한국교회의 보수화와 권력 지향성이 미국 교회의 영향과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합니다.

  • 미국 교회의 영향: 청교도 전통과 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개인 경건과 종말론적 신앙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사회적 영성은 배제되었습니다. 특히 미국 남부 교회가 노예제도를 옹호하며 사회 정의에 눈감았던 역사는 한국교회에 그대로 이식되었습니다.

  • 한국 현대사의 비극: 일제강점기, 교회는 초기 독립운동의 중심이었으나 점차 정치권력과 타협하며 신사참배라는 배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서북 지역 기독교인들이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월남하면서 '반공주의'가 교회의 핵심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이는 독재 정권과의 유착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언: 재세례파의 정신과 평화의 회복 배 교수는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재세례파 전통'을 꼽습니다. 국가 권력을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태도를 버리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삶으로 살아내며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권연경: 생각하는 신앙, 삶에 잇닿은 신학으로

생각 없는 신앙의 위험성 권연경 교수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부조리를 '생각 없는 신앙'으로 규정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권위에 눌려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분위기에 편승하는 '묻어가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복음을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단순한 교리 체계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 행위 없는 구원은 없다 권 교수는 종교개혁의 구호인 '오직 믿음'이 한국교회에서 왜곡되었다고 지적합니다.

  • 값싼 복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윤리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면죄부로 전락했습니다.

  • 성경적 균형: 성경은 믿음과 순종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권 교수는 "순종 없이는 구원도 없다"고 단언하며,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필연적인 열매이자 실체라고 설명합니다.

  • 바울 신학의 재해석: 바울이 말한 '행위 없음'은 율법적 공로를 배제한다는 뜻이지, 윤리적 삶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 없는 은혜'이며, 이 은혜를 입은 자는 세상의 가치 질서(돈, 권력, 학벌)를 거부하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제언: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삶 교회는 세상의 가치가 통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통용되는 대안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권 교수는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려 하기보다, 우리 곁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김으로써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분이 가신 길을 실제로 '따라 걷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4. 김근주: 하나님나라 복음의 공공성 회복하는 교회로

구약, 복음의 풍성한 뿌리 김근주 교수는 한국교회가 구약을 '그림자'나 '옛 언약'으로 치부하며 경시하는 풍토를 비판합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이해하려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은 폐기된 약속이 아니라, 신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공의와 희년: 구약이 말하는 복음

  • 공의(Justice): 구약의 핵심 메시지인 공의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 희년(Jubilee): 예수님의 사역은 구약의 희년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희년은 죄 용서뿐만 아니라 토지의 회복, 노예 해방 등 구체적인 삶의 회복을 포함합니다. 이는 복음이 개인 영혼 구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경제적 정의를 포함하는 공공성을 띠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율법의 재발견: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의 방식이자 선물입니다. 룻기에 나타난 것처럼, 율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존하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제언: 공공성을 회복하는 교회 김 교수는 교회가 '사영리' 식의 개인 구원 공식에 갇히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서 공공선을 추구해야 하며, 이는 거룩함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5. 박득훈: 맘몬 체제 극복하는 변혁의 공동체로

자본주의와 한국교회의 잘못된 동거 박득훈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자본주의(맘몬) 체제에 깊이 잠식되었다고 진단합니다.

  • 역사적 배경: 해방 후 한국교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자본주의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자본주의의 탐욕적 속성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대형화의 덫: 교회의 대형화는 본질적으로 고비용 구조를 유발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 친화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대중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이는 예수님이 거부하셨던 '왕이 되는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 개혁의 과제: 맘몬과의 싸움 박 목사는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주유소 같은 교회: 교회는 머무르는 '주차장'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힘을 얻는 '주유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 활동은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 변혁가로서의 그리스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며 끊임없이 사회 변혁을 꿈꿔야 합니다.


6. 한완상: '새 하늘 새 땅' 일구는 샬롬과 비움의 신학으로

시대정신으로서의 샬롬 원로 사회학자 한완상 교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해양 세력 vs 대륙 세력)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붙잡아야 할 시대정신은 '샬롬(Shalom)'이라고 강조합니다. 샬롬은 단순한 전쟁 부재가 아니라, 온전한 평화와 치유를 의미합니다. 그는 사드 배치와 같은 패권주의적 움직임에 대해 신앙적 관점에서 반대하며 평화를 옹호합니다.

예수님의 길: 비움과 원수 사랑

  • 비움(Kenosis): 예수님은 칼로 세상을 정복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 원수 사랑: 진정한 평화는 이웃 사랑을 넘어 원수를 사랑하는 데서 옵니다. 이는 원수를 부끄럽게 하여 악한 구조를 해체하는 적극적인 평화의 기술입니다.

  • 몸의 부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영혼 불멸이 아니라 '몸의 부활'입니다. 이는 죽음 이후의 세계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역사와 구조를 변혁하는 실체적인 힘을 믿는 것입니다.

제언: 땅의 평화 없이 하늘의 영광 없다 한 교수는 "땅의 샬롬 없이 하늘의 영광은 없다"고 역설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막연히 천국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부활 신앙을 가지고 이 땅의 모순과 싸우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일구어 나가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평]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멈춰 서서, 다시 길을 묻다

20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지 500주년이 되던 해, 한국교회는 축제 분위기보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었다. 대형 교회의 세습 논란, 끊이지 않는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사회적 신뢰도의 추락은 한국교회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었다. 책 『터닝포인트』는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기획된 인터뷰집이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무엇으로부터 돌아서야 하는지"를 뼈아프게 묻는다.

5명의 인터뷰이는 각기 다른 전공(역사, 신약, 구약, 윤리, 사회학)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가리키는 지점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성경적 본질'과 '공공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2. 개인 구원을 넘어 공공의 복음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복음의 공공성 회복'이다. 배덕만 교수는 한국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와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사회적 약자와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렸음을 역사적으로 규명한다. 이는 권연경 교수와 김근주 교수의 신학적 진단으로 이어진다. 한국교회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행위(윤리)가 필요 없는 구원'으로 오독했고, 구약성경이 외치는 '정의와 공의'를 무시한 채 개인의 영혼 구원과 물질적 축복에만 몰두했다는 것이다.

박득훈 목사와 한완상 교수는 이를 사회 구조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자본주의(맘몬)와 결탁한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을 변혁할 힘을 잃었으며, 패권주의가 득세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평화(샬롬)의 사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명확하다. 복음은 개인의 내면적 평안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악을 치유하고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공적인 능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불편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진실

이 책은 읽기에 편안한 책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복주의와 번영 신학에 얼마나 깊이 물들어 있었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대형 교회' 시스템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생각 없는 신앙"(권연경), "자본주의와 혈맹을 맺은 교회"(박득훈), "사자 여물 먹이기"(한완상)와 같은 표현들은 독자의 폐부를 찌른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건강한 수술을 위한 통증이다. 저자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재세례파의 평화 사상, 율법의 희년 정신, 십자가의 비움(Kenosis)과 같은 구체적인 신학적 대안을 제시하며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낸다.

4. 터닝포인트 앞에 선 우리

책의 제목처럼 한국교회는 지금 결정적인 '터닝포인트'에 서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 성장과 힘을 추구하며 멸망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비움과 섬김을 통해 생명의 길로 돌아설 것인가.

이 책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고민하는 모든 평신도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이 되어준다. 특히 블로그를 통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독자들에게는, 각 챕터가 던지는 묵직한 주제들이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깊이 있는 콘텐츠의 원천이 될 것이다. 500년 전 루터가 던진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 유효하듯, 이 책이 던지는 질문 또한 한국교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되새겨야 할 '개혁의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