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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목사에게』(고상섭 외) 리뷰/요약


『목사가 목사에게』

목사들이 부르는 슬픈 사랑의 노래 (김영봉)

이 책은 공개를 전제로 한 사적인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적 페르소나 뒤에 감추어진 목회자들의 내밀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김영봉 목사는 서문에서 한국 교회가 물량적 성공과 성장을 위해 복음의 본질을 왜곡했던 과거를 회개합니다 . 그는 '우리가 하는 목회'가 십자가에 죽어야만 진정한 갱신과 부흥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이 책이 교회에 대한 애가(哀歌)이자 애가(愛歌)임을 밝힙니다. 희망은 성장주의의 병폐를 매장하고 '잘 죽는 것'에 있으며,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심을 역설합니다 .


1부: 내 영혼의 스승들

1. 하용조 목사님께 소식을 전합니다 (조정민)

조정민 목사는 영적 스승인 고(故) 하용조 목사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그는 하용조 목사로부터 배운 "당신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목회의 기초로 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베이직교회를 개척하면서 건물, 사역, 훈련, 직분 없이 오직 '서로 사랑하는 것'에 집중했던 실험적인 목회 여정을 보고합니다. 그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가 교회이며, 목사는 괴물이라는 하용조 목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제도가 되지 않고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다짐을 전합니다 .

2. 그리운 H 전도사님께 (김경은)

김경은 교수는 자신의 신앙적 멘토였던 H 전도사를 회상합니다. 중학교 시절 신학의 길을 권유받고, 기도의 맛을 알게 해 준 스승 덕분에 영성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여성 목회자로서 겪는 한계 앞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던 스승의 가르침은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본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서, 스승이 그랬듯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역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바칩니다.

3. 한 영혼을 위한 헌신을 알려 주신 옥한흠 목사님께 (고상섭)

고상섭 목사는 제자 훈련의 대가인 고(故) 옥한흠 목사를 추모하며, 그로부터 배운 '한 영혼에 미치는 광인(狂人)'의 철학을 되새깁니다. 과거 잘못된 선교단체식 제자 훈련으로 방황하던 시절, 옥 목사의 저서 『평신도를 깨운다』를 통해 목회의 본질을 깨달았던 경험을 나눕니다 . 그는 제자 훈련이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목회자의 처절한 고민과 기도의 산물임을 강조하며, 쉬운 목회를 좇는 세태 속에서 본질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4. 복음을 가르쳐 준 스승, 팀 켈러 목사님께 (이정규)

이정규 목사는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설교와 저서를 통해 깊은 영향을 받은 팀 켈러 목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는 팀 켈러로부터 세 가지 핵심 교훈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복음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삶에 적용하여 율법주의와 방종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둘째, 겸손이 지식과 짝을 이루어 성장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셋째, 설교 기술로서가 아니라 삶의 구원자이자 최고의 갈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2부: 아버지의 이름으로

5. 한 방향으로의 지속적인 순종: 목사 아버지가 목사 아들에게 (김영봉)

김영봉 목사는 목회의 길에 들어선 아들에게 선배이자 아버지로서 조언을 건넵니다. 그는 아들이 목회자로서 능력보다는 영성과 인격으로 존경받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목회 여정의 위험 요소로 돈, 섹스, 권력, 그리고 '매너리즘(익숙해짐)'을 경계할 것을 당부합니다. 특히 매너리즘은 예전과 복음에 대한 확신을 흐리게 하여 목회자를 타락시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한 방향으로의 지속적 순종"을 통해 끝까지 부르심의 길을 걷기를 축복합니다.

6. 사랑하는 사위 범렬에게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사위이자 후배 목회자인 범렬에게 목회의 길을 '지뢰밭'에 비유하며 세 가지 주제를 나눕니다. 첫째, 교회에 대한 영광스러운 이상을 포기하지 말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지혜를 가질 것을 당부합니다. 둘째, 말씀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며,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는 것처럼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잠의 신학'을 권면합니다. 셋째, 설교자는 환영받기보다 실패가 보장된 사역(이사야의 소명)으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 것을 조언합니다.


3부: 한길 가는 순례자들

7. 어느 목삯꾼의 고백 (송인규)

송인규 교수는 자신을 '목삯꾼(목자+삯꾼)'이라 칭하며 솔직한 참회를 담아 후배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자신이 목삯꾼인 이유로 세 가지를 듭니다. 첫째, 십자가의 고난 밑에서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챙기려 했던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둘째, 섬김의 리더십 중 '명령함'과 '경책함'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는데, 이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 셋째, 비난에 취약했던 것은 교우들에 대한 '영적 부모 의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임을 통찰합니다.

8. 사랑하는 제자 남수호 목사에게 (송태근)

송태근 목사는 담임 목회를 시작한 제자에게 목회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목회자에게 인생의 우선순위는 오직 목회여야 하며, 성도들은 소모품이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말씀 연구 시간을 절대적으로 확보할 것을 당부하며, 이것이 목회자의 생명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동역자들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 담임 목사의 주된 사역이며, 문제가 생겼을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해결받는 목사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9. 자랑스러운 제자 김바나바 목사에게 (차준희)

차준희 교수는 제자 김바나바 목사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격려합니다. 유학 시절의 어려움과 교수의 꿈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했던 제자의 모습을 칭찬합니다 . 그는 이민 교회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인내하며 목회하는 것이 '설교비'가 아닌 '인내비'를 받는 일임을 상기시킵니다. 특별히 후배 부교역자들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성숙한 목회자의 자질을 확인했다며, 끝까지 변질되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10. 강 목사님 송별회를 마치고 (박영호)

박영호 목사는 동료 강 목사를 떠나보내며 그의 '수줍은 웃음'과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강 목사의 설교가 때로는 답답하고 불친절해 보였을지라도, 과장된 확신의 언어가 넘치는 시대에 오히려 성도들을 깊은 고민으로 이끄는 힘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는 목회자가 앞모습만 보여주려다 지치는 현실을 지적하며, 자신의 약함(등)을 보여줌으로써 성도들과 진정한 화해와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목양실은 사람들이 와서 울 수 있는 공간(티슈가 필요한 곳)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11. 주 안에서 나의 동생, 우성균 목사에게 (김관성)

김관성 목사는 후임으로 교회를 맡게 된 우성균 목사에게 9가지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남깁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평생 맨땅에 헤딩하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할 것, 사람을 수단이 아닌 존재로 대할 것, 비참한 목회 현실도 영광의 재료임을 알 것, 눈치 보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Be yourself)로 목회할 것, 세련된 목회에 집착하여 문턱을 높이지 말 것,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본질에 집중할 것,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모두를 유일한 존재로 대할 것,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께 충성하는 것임을 알 것, 그리고 자신의 한계(수능 성적표)를 인정하고 겸손할 것.


4부: 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

12. 목사 안수를 받는 믿음의 후배 J 목사에게 (김지철)

김지철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는 후배에게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상기시키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는 세 가지 부탁을 합니다. 첫째, 첫 안수 때의 설렘을 잃지 말고 끊임없는 자기 비판과 회개로 갱신할 것. 둘째, 말씀 읽기와 가르치기를 인생의 첫 번째 즐거움으로 삼아 스트레스를 이길 것. 셋째, 평생 사람을 축복하며 살되, 고독할 때는 야곱처럼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설 것.

13. 개척을 시작하는 J 목사님에게 (이문식)

이문식 목사는 개척을 앞둔 동역자에게 목회자를 '하나님 나라의 서기관'으로 정의하며, 옛것(구약)과 새것(신약)을 자유자재로 꺼내오는 말씀의 전문가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목회자는 '줄반장 양'과 같아서 자신도 양임을 잊지 말고 동료 양들을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 말씀을 '깊고도 쉽게' 전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라고 당부합니다.

14. 목회의 길에 막 들어선 HB에게 (김형국)

김형국 목사는 한국 교회의 쇠퇴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목회자가 되는 후배에게 '아슬아슬한' 길임을 경고하면서도 축하를 보냅니다. 그는 전망 없는 현실에서도 주님의 부르심에 천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가정, 내면)을 진리의 '임상 현장'으로 삼아 변화를 증명할 것 , 비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회심시키는 사역의 전문가가 될 것 , 그리고 성도들이 실제로 변화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 집중할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15. 신학 공부를 시작하는 K에게 (조영민)

조영민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배에게 세 가지 핵심 개념을 제시합니다. 첫째, '나력(裸力)'을 키우라. 배경과 지위를 제거하고도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벌거벗은 힘을 길러야 합니다. 둘째, '플라이휠(Flywheel)'을 돌리라. 좋은 습관과 루틴을 만들어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저절로 선순환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셋째, '퀀텀 리프(Quantum Leap)'를 소망하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을 견디면, 하나님의 때에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날 것을 믿고 인내하라고 격려합니다.



[서평]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거룩한 연대 

위기의 시대, 목회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신뢰도는 추락했고, 다음 세대는 교회를 떠나며, 목회자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전망 제로'의 시대에, 『목사가 목사에게』는 15명의 선배 목회자들이 후배들에게 띄우는 절절한 연서(戀書)이자 비망록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단순한 목회 매뉴얼이나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와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본질에 대한 처절한 고백록이다. 김영봉 목사의 서문처럼, 이 책은 한국 교회의 성장주의 신화가 무너진 자리에서 부르는 "슬픈 사랑의 노래"이며, 동시에 다시 거룩한 교회를 꿈꾸는 이들의 "애가(愛歌)"이다.

성공 신화의 해체와 본질로의 회귀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주제는 '성공주의의 배격'이다. 과거 한국 교회는 물량적 성장을 목회자의 능력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하나같이 "큰 교회"가 아닌 "바른 목회"를 이야기한다. 조정민 목사는 제도가 되기 전의 교회를 꿈꾸며 사랑에 집중했고 , 고상섭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 영혼에 미치는 광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송인규 교수는 자신을 '목삯꾼'이라 자조하며 십자가 아래서 자신의 이익을 챙겼던 과거를 통렬히 회개한다. 이러한 고백들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목회는 CEO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김관성 목사의 조언처럼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보지 않고 존재로 보는 것" , 그리고 "수능 성적표(자신의 한계)를 목양실에 비치해 두고 겸손해지는 것" 이야말로 이 시대 목회자가 붙들어야 할 참된 성공의 정의임을 일깨운다.

목회자의 내면과 '나력(裸力)'

이 책은 목회 기술(Skill)보다 목회자의 존재(Being) 됨을 강조한다. 조영민 목사가 언급한 '나력(裸力)'은 이 책의 핵심을 찌르는 단어다. 배경과 지위를 다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섰을 때 남는 힘, 그것이 없으면 목회는 사상누각이다. 김영봉 목사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돈, 섹스, 권력뿐만 아니라 '매너리즘'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거룩한 예전과 말씀 선포가 익숙한 밥벌이가 되는 순간 목회자는 타락하기 때문이다. 송태근 목사 역시 목회자가 해결사가 되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해결받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목회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와 목회자 자신의 영적 깊이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박영호 목사가 말한 '티슈가 있는 목양실'은 목회자의 내면이 타인의 아픔을 수용할 만큼 깊고 넓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독한 순례길, 그러나 함께 걷는 길

목회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길이다. 김지철 목사는 야곱이 얍복강에서 홀로 하나님과 씨름했듯, 목회자는 결국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고독한 길이 혼자만의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15인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교단, 다른 배경, 다른 목회 환경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여 있다. 차준희 교수가 제자의 척박한 이민 목회 현장을 찾아가 '인내비'를 언급하며 위로하는 장면 , 김형국 목사가 후배에게 "아슬아슬한 길"이지만 부르심이 있다면 함께 가자고 손내미는 장면 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선배가 후배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훈계가 아니라,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순례자가 뒤따라오는 순례자에게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과 같다.

다시, 복음 앞에서

『목사가 목사에게』는 목회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질문과도 같다. 책을 덮으며 독자는 깨닫게 된다. 희망은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거대한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한 영혼을 위해 울며 씨름하는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지금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이다. 비록 현실은 4년 동안 30cm밖에 자라지 않는 대나무처럼 답답해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목회라는 영광스럽고도 고된 초장에 들어선 이들, 그리고 그 길에서 지쳐 주저앉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 일어설 힘, '나력'을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