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연경,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 욕망의 시대를 거스르는 십자가의 복음
1. 욕망의 도시,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권연경 교수의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는 2천 년 전 고린도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들이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통찰에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고린도전서를 단순히 과거의 문서가 아니라, '욕망'과 '복음'이라는 두 힘의 대립으로 풀어냅니다. 고린도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상업 도시이자 욕망이 들끓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세워진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과 복음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최전선이었습니다. 이 책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경쟁과 분열, 성적 타락, 우상 숭배, 은사 남용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진 교회를 어떻게 '십자가의 복음'으로 다시 세우려 했는지 치밀하게 추적합니다.
2. 경쟁적 욕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1) 십자가의 도 vs 세상의 지혜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서로 경쟁했습니다. 저자는 이 분열의 본질이 단순한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니라,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을 숭상하는 세속적 욕망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당시 유행하던 수사학적 웅변술과 사회적 지위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 지도자들을 평가하고 줄 세우기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십자가의 도(말씀)"를 제시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는 미련하고 약해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의 약하고 천한 것들을 택하셨음을 상기시킵니다. 교회의 기초는 화려한 언변이나 인간적 탁월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2) 성령의 지혜와 육신적 그리스도인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다고(령적이라고) 착각했지만, 바울은 그들을 "육신에 속한 자", "어린아이"라고 질타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시기와 분쟁입니다. 저자는 참된 영성은 신비한 체험이나 지식의 유무가 아니라, 십자가의 원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으로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며 십자가의 깊은 비밀을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육신)을 따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인 사랑과 섬김을 따르게 됩니다.
3) 사역자의 정체성: 농부와 건축자 바울은 지도자를 숭배하며 파당을 짓는 이들에게 사역자의 올바른 위치를 가르칩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입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자 '하나님의 집(성전)'입니다. 저자는 이 비유를 통해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며, 사역자는 하나님의 터 위에 건물을 세우는 일꾼임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파에 속했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어떤 재료(공적)로 집을 짓느냐'입니다. 불로 시험할 때 타지 않고 남는 공적만이 상을 받게 됩니다.
3. 교회의 거룩함 지키기
1)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정의합니다. 일꾼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사람의 평가나 인기가 아니라 주인(하나님)에 대한 '충성'입니다. 저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판단이나 세상 법정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심판만을 의식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오늘날 사람의 평판에 예민한 현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바울은 교만해진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말이 아니라 능력을" 보이겠다고 경고하며, 복음의 능력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삶의 변화와 거룩함에서 나옴을 역설합니다.
2)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고린도 교회 내에는 심각한 음행(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교회는 이를 묵인하고 오히려 교만했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윤리적 타락을 넘어, 교회의 거룩한 정체성을 파괴하는 행위임을 지적합니다.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며 악을 용납하지 말고 공동체에서 제거할 것을 명합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으므로, 교회는 '누룩 없는 반죽'으로서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윤리적 기준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4. 세속 문화 속의 그리스도인
1) 세상 법정 소송과 몸의 성전 됨 신자들 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이는 성도가 장차 세상을 심판할 존귀한 신분임을 망각한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것이 가하다"는 핑계로 음행을 합리화하는 이들에게, 바울은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주를 위한다"고 선언합니다. 저자는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자 '성령의 전'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기독교의 구원이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몸을 포함한 전인적인 구원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삶의 방식입니다.
2) 결혼과 독신: 종말론적 삶의 태도 결혼 문제에 대해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는 결혼, 독신, 할례, 신분 등의 외적 조건이 하나님 앞에서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바울의 결혼관이 염세주의가 아니라, '임박한 종말'을 의식한 긴급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명합니다. "때가 단축되었으므로"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살아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가치에 집중하기 위해 현세의 것에 얽매이지 않는 '거룩한 무관심' 혹은 '초연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우상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우상의 신전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는 고린도 교회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지식' 있는 자들은 우상이 실재하지 않으므로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바울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사도의 권리, 먹을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으려 했던 점에 주목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해 스스로 권리를 제한하는 '사랑의 자유'여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원리입니다.
5. 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연습
1) 예배의 질서와 주의 만찬 여자가 머리에 쓰는 것(수건) 문제와 주의 만찬에서의 무질서함이 다루어집니다. 특히 주의 만찬에서 부유한 자들이 먼저 배불리 먹고 취하여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한 행위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죄'였습니다. 저자는 성찬이 단순히 떡과 잔을 먹는 예식을 넘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성도들이 한 몸 됨을 확인하는 사회적, 영적 연대임을 강조합니다. 이기적인 태도로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은 성찬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은사와 교회의 덕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과 같은 화려한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의 목적이 '자기 과시'가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유익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몸의 지체 비유를 통해, 눈이 손더러 필요 없다 하지 못하듯 교회 내의 모든 지체와 은사는 상호 의존적이며 동등하게 소중함을 역설합니다.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면서 바울은 13장의 '사랑'을 제시합니다. 사랑 없이는 방언도, 예언도, 구제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는 바울의 권면이,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 체험보다 공동체 전체를 깨우치고 위로하는 '소통 가능한 말씀'이 더 중요하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모든 은사는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6. 현재를 지탱하는 부활의 소망
1) 부활: 복음의 핵심이자 삶의 동력 어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며 강력하게 변증합니다.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저자는 바울이 말하는 부활이 단순히 죽은 후의 내세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강력한 동력임을 강조합니다. 부활이 있기에 성도는 고난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힘쓸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몸과 최후의 승리 부활의 몸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 신령한 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 마지막 날, 사망은 승리에 삼켜질 것입니다. 저자는 15장의 결론인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말씀이, 부활 신앙이 뜬구름 잡는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삶을 지탱하는 윤리적 힘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7. 사랑으로 행하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와 동역자들에 대한 당부, 그리고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권면으로 편지를 맺습니다. 이 책은 고린도전서가 2천 년 전의 낡은 편지가 아니라, 욕망과 경쟁, 분열로 얼룩진 21세기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생생한 처방전임을 역설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사랑만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서평]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 십자가의 길을 걷다
1. 고린도, 우리의 자화상
권연경 교수의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는 제목 그대로 '오늘', 특별히 한국 교회의 현실을 뼈아프게 직시하게 만드는 책이다. 1세기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넘쳤고 지식이 풍부했으며 열정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파당과 음행, 소송과 무질서로 얼룩져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모습 속에서 성장주의와 번영 신학, 그리고 세속적 욕망에 취해버린 한국 교회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이 책은 고루한 주석서가 아니다. 치밀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하되, 그 끝은 언제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을 향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2. 십자가, 전복적 가치관의 회복
가. 욕망과 복음의 대결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욕망'과 '복음'의 대결이다. 저자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타락의 원인을 '세속적 욕망'에서 찾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지혜, 힘, 가문, 언변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여와 서로를 평가하고 줄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크기, 재정, 목회자의 학벌이나 카리스마로 교회의 영성을 평가하려는 우리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바울의 입을 빌려 "십자가의 도"야말로 이러한 세상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역설한다. 십자가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세상의 욕망을 거스르고 자기를 부인하며 타인을 섬기는 삶의 방식이다. 이 책은 우리가 '예수 믿고 복 받아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신앙의 목표를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으로 과감하게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나.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저자는 특히 '몸'의 신학에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빠져 몸을 경시하거나 방종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전"이라고 선포한다. 음행을 피하고,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서 형제를 배려하며, 부활을 소망하며 현재의 고난을 견디는 모든 것은 결국 '몸'으로 살아내는 신앙의 문제다. 저자는 한국 교회가 내면의 평안이나 심리적 위로에 치중한 나머지, 구체적인 윤리와 삶의 현장에서의 거룩성을 잃어버렸음을 꼬집는다. 성찬이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한 몸 됨을 확인하는 정치적·사회적 행위라는 해석은 예배와 삶이 분리된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린다.
다. 사랑, 가장 탁월한 길 은사 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설은 혼란스러운 한국 교회의 성령 운동에 명쾌한 기준을 제시한다.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는 개인의 영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철저히 '공동체의 유익(덕)'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상위법은 '사랑'이다. 저자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구체적인 관계의 원리임을 밝힌다. 능력이 있어도 덕을 세우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바울의 외침은, 성과주의에 매몰된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다.
3. 다시,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권연경 교수의 이 책은 읽는 내내 불편함을 준다. 우리의 감추고 싶은 욕망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상처를 도려내는 수술의 통증과도 같다. 저자는 단순히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의 원형을 통해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해결책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세련된 처세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2:2)을 다시 붙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15:58)가 되는 것이었다.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는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으로는 곪아 터져가는 현대 교회를 향한 바울의 피 끓는 호소이자, 하나님의 간절한 연애편지다. 욕망의 시대, 사랑에 뿌리내린 교회를 꿈꾸는 모든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하게 제자도를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덮을 때, 우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외쳤던 바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십자가의 길을 걸을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