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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살다』(권일한 외) 리뷰/요약


《읽다 살다》: 평신도 5인의 삶을 바꾼 치열한 성경 읽기와 실천 기록

1. '읽기'와 '살기'의 순환이 낳은 성장 이야기 (박영호 목사)

이 책은 성경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진 다섯 명의 평신도 인터뷰를 담은 '사랑의 기록'이자 '성장의 기록'이다. 저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알고자 하는 사랑과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열정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해석학적 순환'을 보여준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공부와 실천의 순환'을 통해 성장해 왔으며, 이는 한국 기독교와 평신도 신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책은 다섯 인터뷰이의 경험을 통해 성경 읽기가 어떻게 삶의 구체적인 현장과 연결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 권일한: '제자 바보'로 사는 행복한 책벌레

2.1. 책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

권일한은 강원도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자신을 이덕무의 호인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에 빗대어 '책벌레'라 칭한다. 그는 자신의 집을 '책뜰안애(책이 있는 뜰에서 편안하게 지낸다)'로 명명하고 서재 겸 모임 장소로 활용하며 아이들과 이웃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2.2. 학교가 곧 교회다

그는 "학교에 가서 평생 만날 천 명의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라"는 대학 시절 목사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 교직을 소명으로 삼았다. 그에게 학교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세상의 깊은 절망(아이들의 아픔)과 자신의 깊은 기쁨이 만나는 장소이자 곧 교회다. 특히 2012년 가스 폭발 사고로 부모를 잃거나 다친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자원하여 발령받아 간 일화는 그의 신앙이 삶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아이들과 글을 쓰고 마음을 나누며 그곳이 바로 교회임을 깨닫는다.

2.3. 질문하고 상상하는 성경 읽기

권일한은 대학 시절 IVF(한국기독학생회) 수련회에서 귀납적 성경 연구(PBS)를 접하며 성경이 궁금해지는 은혜를 체험했다. 그는 성경의 난해한 부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상상하며 성경을 읽는다. 예를 들어, 여리고 성 전투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침묵하며 성을 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심정을 아이들의 성격에 빗대어 생생한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해석할 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평신도를 위한 성경 해석 가이드북인 《성경을 돌려드립니다》를 집필하기도 했다.

2.4. '참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

그에게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너 자신이 되기 위해서 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는 성경 묵상을 통해 세상의 기준이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섬기는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

3. 남기업: 토지정의와 희년 사상을 품은 열혈 활동가

3.1. 사회과학과 성경의 만남

남기업은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으로, 헨리 조지의 사상을 통해 성경적 토지 정의를 세상에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대학 시절, 기독교인이 많아져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모순에 고민하다가 사회과학으로 전향했으나, 대천덕 신부의 책을 통해 헨리 조지 사상이 성경에 기반하고 있음을 깨닫고 연구와 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3.2. 세월호 참사와 행동하는 신앙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왜곡 보도에 분노하여 진실을 알리기 위해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교회 안에도 피켓을 메고 들어가 목사님과 논쟁하고, 유가족 간담회를 주선하여 교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역사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끈질기게 운동을 지속한다.

3.3. 회의를 넘어 감격으로: 질문을 끌어안는 묵상

한때 구약의 잔인한 전쟁 기사나 하나님의 선택 교리에 대한 회의로 성경을 멀리하기도 했으나, 강인태 목사의 책들을 통해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며 회복되었다. 그는 성경을 읽을 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34장의 시드기야 왕이 노예 해방을 번복했을 때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장면을 통해, 역사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순종 여부에 따라 열려 있다는 '역사적 주체성'을 깨달았다.

3.4. 아파트 민주주의와 생활 속 실천

그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 회장을 맡아 비리를 척결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아파트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이 만연한 사회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법(희년 정신)을 따르는 것이 오늘날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요한계시록의 경고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는다.

4. 송인수: 아이들의 해방을 꿈꾸는 '학교 밖 교사'

4.1.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소명

송인수는 교직 생활 중 입시 경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현실을 목격하고, "나는 행복한데 제자들은 불행하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자각을 통해 교사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촌지 거절, 가정 방문 등 구체적인 실천을 이끌었고, 이후 안정된 교직을 떠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교육의 봄'을 창립하여 입시 경쟁과 학벌 사회 철폐를 위해 싸우고 있다.

4.2. 제자의 삶과 성경의 힘

그에게 성경은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는 생명줄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주어진 과제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안전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몸을 던지는 결단을 내릴 때마다 성경에서 힘을 얻었다. 특히 디모데전서 1장 15절 말씀을 통해 죄인 괴수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된 경험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4.3. 평신도 교회와 해석 공동체

송인수는 평신도도 주체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평신도 설교와 나눔이 중심이 되는 '산아래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는 목회자 한 사람의 해석에 의존하기보다,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해석하며 검증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케리그마(선포된 말씀)'가 임한다고 믿는다.

4.4. 예언자의 감수성

그는 예언자를 "소리 없이 우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기독교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가장 크게 듣는 사람이어야 하며, 자신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예언자적 삶이라고 역설한다.

5. 정병오: '좋은 평교사'의 부르심을 좇는 시민운동가

5.1. 거대한 스토리 안에서 살아가기

정병오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교사 모임을 시작으로 '좋은교사운동' 대표를 역임한 기독 교사 운동의 산증인이다. 그는 성경을 파편적인 구절이 아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거대한 스토리'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교육 운동과 시민 운동을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5.2. 일상의 부르심과 평신도의 영광

그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가정, 직장, 시민사회라는 삶의 현장에서 '전임 사역자'로 부름받았다고 믿는다. 그는 교장이나 장학사로 승진하는 길 대신 평교사로 남아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을 선택했으며, 이를 하나님이 주신 자신만의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작은 일에 충성하며 현장을 지키는 것이 평신도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5.3. 오디세이학교와 대안 교육

그는 서울시교육청의 공립형 대안학교인 '오디세이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교사로 근무하며,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새로운 교육 실험을 이끌었다. 그는 기성 교단이나 관료 조직의 한계를 넘어 현장에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실천가다.

5.4. 고난 속에서의 안식

2019년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왜?"라고 묻기보다, "더 작고 낮은 곳으로 가라"는 뜻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는 투병 중에도 지하철 출근길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성경을 묵상하고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말씀 안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

6. 정한욱: 환대의 해석학과 포용의 실천으로

6.1. 치열하게 파고드는 '서음인(책벌레)'

안과 전문의인 정한욱은 연간 70-8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신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한다. 그는 성경을 표면의 보석만 줍는 '놀이터'가 아니라, 깊이 팔수록 풍성한 광맥이 나오는 '광산'으로 여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태복음 5장 봅시다"라며 성경 본문으로 직접 돌아가게 했던 스승의 영향으로 성경 연구에 천착하게 되었다.

6.2. 환대의 해석학

그는 성경 해석의 핵심 원리로 '사랑의 법'과 '환대의 해석학'을 꼽는다. 특히 룻기를 통해 이방 여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환대의 과정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폭력이 아닌 말씀과 증언으로 악과 싸우는 방식을 발견했다. 그는 자크 데리다의 '절대적 환대' 개념을 빌려, 성경이 말하는 환대가 타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급진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6.3. 의료 봉사와 세상 속의 실천

그는 국제 실명 구호 단체 '비전케어'의 실행이사로 활동하며, 매년 해외 의료 봉사를 떠난다. 그는 병원 운영에 있어서도 직원을 고용인이 아닌 동료로 대우하며 자본주의적 의료 현실 속에서 기독교적 윤리를 실천하려 노력한다.

6.4. 경계를 넘는 성경 읽기

그는 근본주의적 성경 읽기를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낯설게 읽기'를 제안한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배제의 도구로 삼는 것을 경계하며, 성경 읽기가 진리를 수호하는 엄숙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뛰노는 즐거운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평] 평신도, 성경 해석의 주체로 다시 서다: 교회의 위기를 넘어서는 5가지 길

한국 교회는 위기다. 교인 수는 감소하고, 사회적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가나안 성도'가 된다. 이러한 위기의 본질에는 '말씀의 상실'과 '삶과 신앙의 괴리'가 자리 잡고 있다. 책 《읽다 살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교회의 희망을 쏘아 올린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5명의 평신도들이 어떻게 성경을 치열하게 읽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냈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평신도 신학'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다.

1. 수동적 청중에서 능동적 해석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평신도를 설교를 듣는 수동적 청중의 자리에서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하는 능동적 주체의 자리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권일한 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성경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남기업 소장은 사회과학적 지식과 성경을 통합하여 토지 정의를 외친다. 송인수 대표는 자신의 고뇌를 성경 속 인물에 투영하여 답을 찾고, 정한욱 원장은 수많은 주석과 인문학 서적을 섭렵하며 신학자 못지않은 식견을 보여준다. 정병오 대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다. 이들은 "평신도는 성경을 해석할 자격이 없다"거나 "해석은 목회자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을 부순다.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성경 앞에 섰을 때, 강단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생생하고 실천적인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는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 정신을 21세기 한국 상황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2.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치열한 대화

다섯 인터뷰이는 성경(Text)과 현실(Context)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한다. 그들의 성경 읽기는 지적 유희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현장(남기업), 입시 경쟁에 신음하는 교실(송인수, 권일한, 정병오), 의료 정의가 필요한 병원과 선교지(정한욱)에서 "도대체 하나님 뜻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절박한 몸부림이다. 그들은 성경 문자주의에 갇히지 않는다. 고대 근동의 맥락을 살피고(정한욱), 역사의 가변성을 믿으며(남기업), 문자 너머의 '사랑'과 '환대'의 정신을 찾아낸다. 이러한 해석은 다시 그들을 현장으로 내몬다. 학교를 개혁하고, 법을 바꾸고,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되어 싸우고, 휴가를 반납하고 의료 봉사를 떠나게 만든다. '읽기'가 '살기'를 추동하고, '살기'가 다시 '읽기'를 깊어지게 하는 선순환. 이것이야말로 죽은 교리가 아닌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이다.

3. 다양한 스펙트럼, 하나의 지향점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성이다. 어떤 이는 묵상과 글쓰기를, 어떤 이는 사회 변혁 운동을, 어떤 이는 조용한 섬김을 강조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도구도 이야기, 사회과학, 교육학, 인문학으로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간다. 이는 독자들에게 큰 해방감을 준다. "성경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자신의 기질과 상황, 은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만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한다. 동시에, 그 다양성이 결국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삶', '이웃을 환대하는 삶', '정의를 행하는 삶'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웅변한다.

4. 지금, 당신의 성경 읽기는 어떠한가?

《읽다 살다》는 묻는다. 지금 당신의 성경책은 장식품인가, 아니면 당신의 삶을 뒤흔드는 망치인가? 당신은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설교에만 의존하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말씀을 캐내어 먹고 있는가? 이 책은 신학적 배경지식이 없는 평신도라도 누구나 성경의 깊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또한, 성경 읽기가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에 맞서고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는 급진적인 행위임을 깨닫게 한다. 한국 교회의 갱신을 꿈꾸는 이들,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에 지친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모든 '평신도'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도 책장 구석에 꽂힌 성경을 꺼내 들고 당신만의 '분투'를 시작하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