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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없는 천재 재능없는 신자』(이상범) 리뷰/요약

 


이상범 칼럼집: 『신앙 없는 천재, 재능 없는 신자』 - 역사와 예술, 성서를 꿰뚫는 통찰

1. 책의 핵심 주제와 저자의 시선

이상범 목사의 칼럼집 『신앙 없는 천재, 재능 없는 신자』는 단순한 신앙 에세이를 넘어 역사, 예술, 정치, 성서 인물들을 인문학적 통찰로 재해석한 글들의 모음이다. 저자는 교회 안의 닫힌 시각을 넘어, 세상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이 책은 성직자의 권위주의를 경계하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생각하는 신앙’을 요청한다.

2. 리더십의 두 얼굴: 권위와 중재

책의 초반부는 성서 속 지도자들의 유형을 분석하며 현대 교회의 리더십을 조명한다.

  • 모세와 아론: 모세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권위를 가진, 타협하지 않는 지도자였다. 반면 아론은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중재자였다. 저자는 모세의 절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대로 이끈 것은 아론의 자손들이었음을 지적하며, 때로는 진리를 왜곡하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평화를 지키려 했던 아론의 ‘이해와 타협’의 리더십을 재평가한다.

  • 창업과 계승 (모세와 여호수아): 모세가 사상가이자 기초를 놓은 자라면, 여호수아는 그것을 현실화하고 완성한 실행가였다. 모세는 기도하기 위해 산 위에 있었지만, 여호수아는 싸우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이 보여준 완벽한 팀워크와, 자신의 한계를 알고 후계자를 세운 모세의 지혜를 강조한다.

  • 교황과 권위: 교황 요한네스 23세의 일화를 통해 진정한 권위는 유머와 겸손에서 나옴을 보여준다. "나는 무오하지 않소"라고 농담을 던지는 교황의 모습에서, 권위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참된 지도자상을 제시한다.

3. 신앙과 예술: 경계 위에서의 성찰

표제작이기도 한 이 챕터는 예술과 신앙의 관계, 그리고 교회 문화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 신앙 없는 천재 vs 재능 없는 신자: 프랑스 아시시 성당의 건축 일화를 인용하며, 기독교 미술의 부흥을 위해서는 ‘믿음 있는 천재’가 가장 좋지만, 차선책은 ‘재능 없는 신자’가 아니라 ‘신앙 없는 천재’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선천적으로 영적인 직관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 문화가 실력보다 신앙이라는 명분 아래 질적 하락을 겪는 것을 경계하는 메시지다.

  • 고딕 대성당의 뒤안길: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대성당들이 사실은 주교들과 도시의 허영심, 그리고 권위를 과시하려는 욕망의 산물이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꼬집는다.

  • 음악가들의 삶: 베토벤, 슈만, 리스트 등 위대한 음악가들의 삶을 조명한다. 특히 베토벤이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고통받으며 자랐지만, 그 결핍이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었다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또한, 신앙심 깊은 작곡가로 알려진 리스트의 이중적인 삶(바람둥이이자 수도사)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4. 역사 속의 아이러니와 인간 군상

저자는 세계사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 십자군과 무지: 십자군 전쟁이 거룩한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잔혹한 살육이었음을 비판한다. 특히 십자군의 무지를 이용해 돈을 번 상인들의 탐욕을 지적하며, 종교적 열광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 마술사 재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죽은 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 의해 마술사 및 소돔(남색) 혐의로 부관참시 격의 재판을 받은 사건을 다룬다. 이는 종교 재판이 사실은 정치적 권력 투쟁의 도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갈릴레이의 죄: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교회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애정 때문이었음을 밝힌다. 그러나 시기와 정치적 음모가 그를 이단으로 몰아갔다.

  • 유대인의 역사: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부터 현대의 이스라엘까지, 유대인들이 겪은 차별과 그들이 형성한 독특한 문화를 다룬다. 안식일에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누르지 않는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와 현실적 타협을 동시에 보여주며 , '붉은 악마'라는 응원 구호를 불편해하는 실향민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5. 성서 인물의 재해석: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경 속 인물들을 박제된 성인이 아닌,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그려낸다.

  • 다윗과 미갈: 공주 미갈과 목동 다윗의 사랑은 로맨틱하게 시작되었지만, 문화적 차이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비극으로 끝났다. 미갈이 다윗의 춤추는 모습을 비웃은 것은 단순한 교만이 아니라, 귀족 문화와 야인 문화의 충돌이었다.

  • 가룟 유다와 베드로: 예수를 배반한 유다와 부인한 베드로. 저자는 이들의 실패를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인간적 약함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 수산나와 늙은이들: 다니엘서 외경에 나오는 수산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명화들이, 사실은 성경의 교훈보다는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려졌음을 지적하며 종교 예술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6. 사회와 문화를 보는 기독교적 시선

현대 사회의 이슈들을 기독교적 관점, 혹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비평한다.

  • 안락사와 생명: 나치 독일이 자국민 장애인과 환자들을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학살했던 T4 플랜을 상기시키며,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인체 조직이 상품화되는 현대 사회의 현실도 꼬집는다.

  • 정치와 쇼비즈니스: '빵과 서커스'로 대변되는 로마 시대의 우민화 정책이 현대의 프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 페미니즘과 휴머니즘: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일화를 통해, 페미니즘이 남녀 대결이 아니라 인간 존중과 자존감 회복의 운동임을 역설한다.

7. 웃음과 여유가 있는 신앙

저자는 엄숙주의에 빠진 교회에 '유머'와 '여유'를 제안한다. 루터가 자신의 약점을 유머로 승화시켰듯이, 건강한 신앙은 자신을 객관화하여 웃을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튜닝 피치(A=440Hz)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절되듯 , 신앙과 해석에도 '여유의 공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서평]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필력

1. 닫힌 교회 문을 여는 인문학적 열쇠

이상범 목사의 『신앙 없는 천재, 재능 없는 신자』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교회 안에서 금기시되거나 외면해 온 주제들을 가감 없이 꺼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학적 도그마에 갇히지 않고, 역사, 철학, 예술, 문학 등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기독교 신앙을 재조명한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의 지평을 넓혀주고, 비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를 문화와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을 제공한다.

2. 위선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

이 책의 백미는 저자의 탁월한 풍자 감각이다. 고딕 성당의 첨탑이 신앙심이 아닌 주교의 허영심에서 비롯되었다거나 , 예수의 성혈이 담긴 병을 깬 헨리 8세의 만행이 오늘날 복제 예수의 탄생을 막은 공로(?)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비틀기는 독자에게 쓴웃음과 함께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책의 제목이 된 에피소드에서, 교회 미술을 위해 '신앙 없는 천재'를 쓸 수 있다는 주장은, 실력 없이 '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조악한 기독교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저자는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쓰지 못한 삼류 예술가"가 되기보다, 차라리 솔직한 장인이 되기를 요구한다.

3. 인간 냄새 나는 성서 읽기

저자는 성경 속 인물들을 영웅의 좌대에서 끌어내려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인간으로 복원시킨다. 다윗과 미갈의 갈등을 '문화 충돌'로 해석하거나,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 스타일을 비교하며 현대적 리더십의 모델을 제시하는 대목은 설교 예화로서도 훌륭하지만, 인간 이해의 텍스트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접근은 성경을 딱딱한 경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로 읽게 만든다.

4. '해석의 여유'를 허용하는 신앙

오케스트라의 조율 피치가 표준(440Hz)이 있음에도 현장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듯, 저자는 신앙에도 '해석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율법주의적 경직성이나 맹목적인 믿음 대신, 상식과 이성, 그리고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신앙을 추구한다. 갈릴레이의 재판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도, 결국은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유연함이 진리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5. 깊이와 재미를 겸비한 필독서

『신앙 없는 천재, 재능 없는 신자』는 짧은 칼럼들의 모음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지식의 밀도와 사유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 이상범은 신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되,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신앙을 비춰보는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다.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싶은 평신도, 그리고 기독교 문화에 대해 비판적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풍성한 식탁과도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에피소드와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반전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