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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urch시대의 일곱가지 치명적 죄악』(조의완) 리뷰/요약

 

📖 『iChurch 시대의 일곱가지 치명적 죄악』요약

1. 죄악에 대한 분투로의 초대

이 책은 성장, 효율, 참살이(well-being) 등이 강조되는 현대 소비주의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죄에 대해 무뎌진 마음과 생각들을 깨뜨리기 위해 저술되었습니다.

  • 현대 교회의 죄 문제: 21세기 현대인들은 '죄(sin)'라는 용어 대신 '약함', '위기', '성격 장애' 등으로 대체하며 , 이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동적인 현대 예배에서 죄인의 고백을 위한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고, 죄의 고백은 간단한 절차로 축소되었습니다.

  • 꿈과 비전의 우선: 죄와 고통에 대한 말씀 대신 '꿈', '비전', '긍정의 언어', '성공적인 삶' 등이 설교의 단골 메뉴가 되었습니다.

  • 종교적 소비자: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심리학적 결핍이나 상처로 변형시키며 , 죄에 대한 분투 대신 '기독교 신상품'을 찾아다니는 '종교적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 일곱 가지 죄악: 이 책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열한 '시기, 분노, 게으름(나태), 헛된 영화(허영심), 탐욕, 탐식, 정욕'의 일곱 가지 죄악을 다룹니다.

  • 교만은 뿌리: '교만'은 이 모든 치명적 죄악들의 뿌리 역할을 하기에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치명적인 이유: 이 죄악들은 그 자체로 즉각적인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더 큰 죄악된 행위들을 유발하는 '근원적인 죄악'이라는 점에서 치명적입니다. 또한 이는 죄악된 '행위'가 아닌 '생각'에 대한 묘사입니다.

2. iChurch: 소비주의 시대 그리스도인의 자화상

이 장은 소비주의적 방식에 길든 세대의 기독교 신앙을 의미하는 'iChurch'라는 용어를 통해 현대 기독교의 특수한 상황을 분석합니다.

  • 'iChurch'의 정의: 'iChurch'는 스카이 제타니(Skye Jethani)가 소개한 용어로, 애플의 '아이팟(iPod)'과 같이 신앙생활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선택하는 편리함과 소비주의로 점철된 기독교 신앙을 의미합니다.

  • 신앙의 '선택': 과거에는 앨범 전체를 사야 했지만 MP3 플레이어는 원하는 곡만 선택하게 하듯, iChurch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원하는 설교, 프로그램, 찬양 집회만을 '선택'합니다.

  • 종교적 소비자: 이들은 종교적 가르침을 '명령'이 아닌 '제안'으로 여기며, 감정적 만족, 사회적 관계, 자녀 교육 등을 위해 종교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자도'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 기업이 된 교회: 리차드 핼버슨의 말처럼 교회는 미국으로 건너와 '기업'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효과(effect)'에 목을 매고, '고객 만족'을 위한 감동을 추구하며, 복음의 본질보다 세속적 성공(예: 타이거 우즈)을 예화로 드는 '성공주의 신학'에 빠지기 쉽습니다.

  • 실용적 무신론자: 그 결과, iChurch 세대는 관념적으로는 박식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비그리스도인과 구별되지 않는 '실용적 무신론자들'이 되었습니다.

  • 대안 (분투): 이 세대가 회복해야 할 본은 '사막의 교부들'과 수도사들이 보여준 '죄악들과의 분투'입니다. 잃어버린 제자도를 회복하기 위해 일곱 가지 죄악을 직시해야 합니다.

3. 시기 (Envy)

시기는 다른 사람이 누리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마음입니다.

  • 정의: 라틴어 '인비디아(invidia)'에서 유래했으며, 악의적이고 적대적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은밀한 죄악: 시기는 다른 죄악(분노, 정욕 등)과 달리 당사자에게 어떤 즐거움이나 쾌락도 주지 못하는 '쓰라린 죄악'입니다. 또한 스스로 그 천박함을 알기에 마지막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불청객'입니다.

  • 탐욕과의 차이: 탐욕이나 질투가 '소유'를 목표로 한다면, 시기는 그것을 소유한 '대상(사람)'에 대한 마음입니다. 시기하는 자는 자신이 그것을 얻는 것보다, 상대방이 그것을 박탈당할 때 더 큰 쾌감을 느낍니다.

  • 시기심의 뿌리:

    1. 비교: "비교가 없다면, 시기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시기는 늘 누군가를 경쟁상대로 삼습니다.

    2. 왜곡된 자의식: 소비주의 시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가' 와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라는 두 가지 음성으로 자의식을 형성하게 합니다. 이는 '두려움' 에 기반하며, 이 상대적인 평가 속에서 시기심은 왕성해집니다.

  • 성경적 예 (사울 왕):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해 보였으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라는 백성들의 노래 때문에 다윗을 향한 시기심에 사로잡혀 남은 생애를 광분하며 보냈습니다.

  • 극복 (사랑받는 자의 길): 시기심을 이기는 길은 예수님처럼 '소유'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에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는 음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온전한 사랑만이 시기심의 근원인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4. 허영심 (Vainglory)

허영심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과도하게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 정의: 헬라어 '케노독시아(kenodoxia)'는 '헛되고 텅 빈(keno) 명예(doxia)'에 대한 추구를 의미합니다.

  • 중독성: 칭찬과 주목은 '중독적'이어서 , 그것이 끊어지면 불안과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 가장 교묘한 죄: 허영심은 신앙의 초보자에게도 나타나지만, 영적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노련한 신앙인에게도 '영적 열매' 자체에 기생하여 자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겸손이나 고행의 순간에도 '겸손한 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찾아옵니다.

  • '이미지'에 대한 집착: 허영심은 내면의 성숙이 아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로 승부를 겨룹니다. 내용은 없고 겉만 화려한 '빛 좋은 개살구'와 같습니다.

  • 결과 (외로움): 허영심은 과장된 이미지 뒤에 본연의 자신을 감춰야 하므로, 마음을 열 수 없어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연예인이나 현대 목회자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 소비주의 시대의 허영심:

    1. 구도자 중심 예배: '세련된 예배'를 추구하다가 , 진정성 있는 예배보다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여 본질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2.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 블로그, 유튜브 등은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허영심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가벼운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며 내면을 가꾸는 일에 인색해집니다.

  • 극복 (골방과 사막): 허영심을 다스리는 길은 주목받는 중심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사막'의 삶 또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골방' 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이 고독한 자리는 거짓된 자아를 허물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자아를 찾는 공간입니다.

5. 분노 (Anger)

분노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강력한 죄악이며, 리사 노왁의 사례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보편성: 분노는 '우뢰의 아들들' 이었던 야고보와 요한, 심지어 수도사들조차 가장 힘겨워했던 죄악입니다.

  • 내면의 문제: 분노의 원인은 환경이나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외부 환경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 죄악된 분노의 4가지 배후:

    1. 교만 : "내가 생각했던 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마음, 즉 자신의 권위와 명예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2. 열등감과 잘못된 정체성 :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에 두는 사람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거절, 무심함 등) 초조감과 배신감이 분노로 폭발합니다.

    3. 두려움 :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선제공격' 이라는 논리로 발전합니다. 이는 9.11 이후 부시 행정부의 전략 이나 런던 경찰의 오인 사살 사건 처럼, 실제 위협이 아닌 잠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분노와 적개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에 대한 불신 : 복수심에 불타는 분노는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을 신뢰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 의로운 분노: 물론 '의로운 분노'도 존재합니다. 이는 '죄악에 대한 분노' 와 '사랑에 기초한 분노' 여야 합니다.

  • 극복 (침묵과 용서):

    1. 침묵 : 분노를 다스리는 첫 번째 방법은 즉각 표출하지 않고 기다리며 숙고하는 '침묵'입니다.

    2. 용서 : 분노는 마귀에게 틈을 줍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는 말씀처럼 용서하는 것입니다. 분노가 반응이라면, 용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6. 나태 (Sloth / Acedia)

현대인들은 '게으름'을 죄악이 아닌, 분주한 삶의 '치료제'나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 나태의 재정의: 나태는 단순히 '게으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인 '분주함(Busyness)' 역시 나태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 속도가 아닌 중대함의 문제: 나태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중대함'의 문제입니다.

  • 분주함으로서의 나태: 정말 마땅히 해야 할 '중대한 일'(예: 하나님과의 관계, 자기 성찰)을 회피하기 위해 ,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다른 일들(업무, 사람 챙기기 등)로 자신을 쉴 새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나태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처럼, 그는 재물 축적에는 부지런했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지극히 나태한 자였습니다.

  • 아케디아(Acedia): 나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케디아'는 '돌봄의 부재(a-cedia)'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마땅히 돌봐야 할 본질적인 대상을 거부하고 욕구를 잃어버리는 영적 질병입니다.

  • 정오의 악마: 사막의 교부 에바그리우스는 아케디아를 '정오의 악마'라 불렀습니다. 이 악마는 수도사의 가장 중대한 개인 묵상 시간에 찾아와, 시간을 지루하게 만들고, 창밖을 보게 하며,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다른 곳이 더 생산적이다'라며 합리화시켜 그 자리를 떠나도록 부추깁니다.

  • iChurch와 나태: 소비주의 시대는 '멀티태스킹' 과 수많은 '쉬운 선택' 을 제공하여, 한 가지 중대한 일(제자도)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극복 (머무름): 나태의 유혹을 이기는 길은 역설적으로 '느림'과 '머무름(Stability)'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수도사에게 "골방에 머물러 있을 것"을 명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라는 말씀처럼, 현재의 자리에 묵묵히 '뿌리내림' 으로써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7. 탐욕 (Avarice / Greed)

소비주의 사회에서 '쇼핑'과 '소비'는 죄악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 '생활방식', 심지어 9.11 테러 직후처럼 '애국적 행위'로까지 격려됩니다.

  • 우선순위가 아닌 양자택일: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택일의 문제입니다. 탐욕은 재물을 신격화(맘몬)합니다.

  • 마음의 습관: 탐욕(Avarice)은 '지나치게 갈구함'을 의미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의 습관'입니다. 소비주의 시대의 소비자들은 "불만족의 학교"를 졸업한 이들입니다.

  • 치명적인 해악 (관대함과 정의의 상실): 탐욕이 치명적인 이유는 그것이 '관대함'과 '정의'에 대한 관심을 좀먹기 때문입니다.

    1. 관계성의 파괴: 탐욕은 '관계' 대신 '소유'로 행복을 대체합니다.

    2. 이웃에 대한 무관심: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부자의 죄는 악한 행동이 아니라, 매일 대문 앞에 있던 나사로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행하지 않음'이었습니다.

    3. 부정의: 마태복음 25장의 심판 기준은 이웃에 대한 '관대함'입니다. '에어 조단' 신발을 뺏기 위해 십대가 살해당하는 사건 이나, 월마트가 더 싼 제품을 위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묵인하는 것 은 탐욕이 어떻게 '부정의'로 이어지는지 보여줍니다.

  • 청지기 의식의 망각: 탐욕은 우리가 가진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 주어진 '청지기'의 삶을 망각하게 합니다.

  • 극복 (관대함과 소통): 탐욕의 습관을 허무는 훈련은 '관대함'과 '정의'의 습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소유'보다 '관계'가 낫다는 고백으로 이웃과 직접 '소통'하고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8. 탐식 (Gluttony)

많은 사람이 자신은 과식하지 않기 때문에 탐식의 죄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 탐식의 재정의: 탐식은 먹는 '양(quantity)'의 문제가 아니며, 음식의 '질(quality)' 문제도 아닙니다. (예: 유기농만 고집하는 것)

  • 동기의 문제: 탐식은 '동기'와 관련된 죄악입니다. 이는 생존 욕구가 아닌, 먹는 것을 통해 '과도한 쾌락'을 추구하는 자기애에 기초한 습관입니다.

  • "먹는 재미로 산다":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먹는 쾌락에 빠져 있는가"가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저희의 신은 배요" 라는 바울의 경고처럼, '먹는 재미'는 '땅의 일'에 고착되게 하여 결국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 최초의 죄악: 인류의 첫 죄악은 배고픔이 아니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를 먹은 '탐식'이었습니다.

  • 영적 전투의 방해: 사막의 교부들은 탐식을 '첫 번째 투쟁'으로 보았습니다. 배부름이라는 육체적 쾌락은 영적 성장의 필요성을 무디게 만들고, 나태나 정욕 같은 다른 죄로 쉽게 이어지게 합니다.

  • 신(新) 탐식가: C.S.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현대의 탐식은 '과식'이 아니라 '까다로운 입맛(fastidiousness)'으로 나타납니다. '참살이(well-being)'와 다이어트에 몰입하며 더 좋은 음식을 까다롭게 고르는 행위는, 자기애와 자기 만족의 습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탐식입니다.

  • 극복 (금식): 리처드 포스터의 말처럼, "금식은 우리를 통제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폭로합니다". 금식은 결핍을 통해 영적 식욕을 돋우고, "사람이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라"는 주님의 길에 서게 합니다. 몸의 습관을 무시하고 생각만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9. 정욕 (Lust)

정욕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문제일 뿐 아니라, 어거스틴이 "주님, 저를 순결하게 하소서. 단 지금은 아닙니다" 라고 기도했을 만큼 역사 깊은 죄악입니다.

  • 성의 본질: 성(Sex) 자체는 죄가 아니며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것입니다.

  • 치명적인 이유: 정욕이 다른 죄(탐식, 나태 등)보다 더 심각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성이 1) 두 사람을 하나로 결합하는 '사랑'과 2)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두 가지 신성한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 영성과 에로스: 로날드 롤하이저는 영성을 "우리 안의 '불' 또는 '에로스적 욕망'을 다스리는 것" 이라 정의했습니다. 바른 영성은 이 열망을 '하나님'이라는 한 가지 대상에게로 향하게 합니다.

  • 정욕과 사랑의 차이: 정욕은 이 에너지를 잘못 분산시킵니다. 사랑이 관계와 미래를 약속한다면 , 정욕은 '지금 당장'의 '자기 만족'과 쾌락만을 추구합니다. 정욕은 '그것(it)'을 원할 뿐이며, 상대방을 쾌락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 정욕의 대가 (다윗):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은 정욕의 치명적 대가를 보여줍니다. 한순간의 정욕은 '간교함'과 '거짓', '살인', 그리고 '자기 합리화'("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큰 대가는 스스로 '눈먼 자'가 되어 죄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극복 (약함의 인정과 폭로):

    1. 약함의 인정: 정욕은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연약함'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유혹의 대상을 피해야 합니다.

    2. 육신의 훈련: 금식이나 운동 등 몸을 쳐 복종케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폭로의 힘: 정욕은 은밀함 속에서 자랍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유혹이 올 때마다 감추지 말고 영적 지도자에게 '고백(폭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정욕의 악마가 공략하는 것을 폭로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신앙 공동체 내에서 솔직한 고백과 나눔이 필수적입니다.

10. 맺음말

  • 영성의 함정: 현대는 '영성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영적 자원이 풍요롭지만, 이는 종종 '종교적 소비주의'에 불과합니다.

  • 더하기 전의 분투: iChurch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영성 훈련을 '더하기(adding)' 이전에, 이미 삶 속에 자리 잡은 죄악들을 '직면하고 분투하는' 우선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 십자가의 길: 이 분투의 길은 소비주의 시대의 가치(속도, 효율, 즉흥성)와 정반대로 '고되며, 척박하며, 지루하고, 더딥니다'. 이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 겸손한 무릎: 죄악과 분투하는 자의 모습은 '투사'가 아니라 '겸손한 무릎'입니다. 겸손이 없는 분투는 또 다른 교만이 됩니다.

  • 세리의 기도: 우리의 마지막 자세는 눈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던 세리의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서평] iChurch 시대의 일곱가지 치명적 죄악: 소비주의에 잠식된 현대 기독교인을 위한 영적 각성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성장'에 목말라 합니다. 더 좋은 설교를 듣고, 더 은혜로운 찬양 집회에 참석하며, 수많은 신앙 서적을 탐독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영적 쇼핑' 속에서 우리의 삶은 과연 세상과 구별되고 있습니까?

조의완 목사의 "iChurch 시대의 일곱가지 치명적 죄악" 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 기독교인들의 안일함을 날카롭게 깨뜨리는 '영적 각성제'와 같은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죄'라는 단어조차 불편해하며, 신앙마저 소비하는 '종교적 소비자' 가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 'iChurch'의 시대: 신앙을 '소비'하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iChurch'입니다. 이는 애플의 '아이팟(iPod)'이 내가 원하는 노래만 골라 담듯,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설교, 프로그램, 공동체만을 '선택'하는 소비주의적 신앙 행태를 꼬집는 용어입니다.

이러한 'iChurch' 신앙은 필연적으로 '죄의 고백' 이나 '제자도' 처럼 불편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신앙의 본질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교회는 '고객 만족' 을 추구하는 '기업' 처럼 변모하고, 성도들은 삶의 변화는 없이 지식만 쌓여가는 '실용적 무신론자' 가 되어간다고 저자는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 죄악의 재발견: 분주함은 '나태'이고, 까다로움은 '탐식'이다

이 책의 백미(白眉)는 '일곱 가지 치명적 죄악'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현대 소비주의의 맥락에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통찰은 '나태(Sloth)'에 대한 분석입니다. 저자는 나태가 단순히 게으름이 아니며 , 오히려 그 반대인 '분주함(Busyness)'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중대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자기 성찰이라는 '중대한 일'을 피하기 위해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다른 일(심지어 교회 봉사)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사막의 교부들이 '정오의 악마' 라 불렀던 '아케디아(Acedia)' 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탐식(Gluttony)'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식은 많이 먹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쾌락'을 추구하는 '동기'의 문제입니다. 저자는 C.S. 루이스를 인용하며, 현대의 진짜 탐식은 과식이 아니라 '참살이(well-being)' 문화 속 '까다로운 입맛' 이라고 지적합니다. 더 건강하고 완벽한 음식을 추구하는 행위가 결국 '자기애'와 '자기 만족' 을 강화하는 교묘한 탐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책은 소셜 미디어를 '허영심의 온상' 으로, 상대적 비교 문화를 '시기심'의 근원으로, 복수심을 '분노'의 뿌리로 명쾌하게 파헤칩니다.

✝️ 맺음말: '소비'에서 '분투'로

"iChurch 시대의 일곱가지 치명적 죄악"은 결코 편안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3가지 쉬운 방법' 같은 소비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대를 비판하며 , 우리에게 '소비(Consumption)'의 자리를 떠나 '분투(Struggle)'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골방', '금식', '머무름', '폭로' 등 고되고, 비효율적이며, 더딘 고전적인 영적 훈련들입니다.

이 책은 자신의 신앙이 '소비'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고, 삶의 변화를 갈망하는 모든 'iChurch'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합니다. 화려한 '영적 상품'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세리의 겸손한 무릎 을 회복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