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 (박영호 저)
AI, 긱 경제,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전을 위한 기독교 세계관 탐구
박영호 목사의 저서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도전을 기독교 신앙의 눈으로 깊이 있게 성찰하고,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AI 시대의 영성, 긱 경제(Gig Economy), 비정규직 문제, 힐링 문화, 혼밥 시대의 고립, 냉소주의 등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성경적 원리와 연결하며, 더 이상 낡은 신학적 지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나침반'을 통해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1부: 낡은 지도를 버리고 나침반을 따르라
낡은 지도와 시대의 자장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모든 지도는 낡은 지도다" 라는 명제를 던지며, 과거 시대에 유효했던 신학적 해석이나 삶의 방식('지도')만으로는 오늘날의 복잡한 교차로에서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진단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경로가 그려진 '지도'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즉 분명한 목적의식과 성경적 원리입니다.
하지만 이 나침반마저도 '시대의 강력한 자장(磁場)'에 의해 교란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유행, 경제적 쏠림 현상, 집단적 불안 등이 우리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가짜 희망을 넘어선 참된 희망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희망의 상실'입니다. 저자는 교회가 세상보다 더 절망적인 미래를 말하는 현상을 비판하며, 그 원인을 교회가 그동안 '가짜 희망'을 팔아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는 구약의 엘리 제사장 가문과 유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카보드')과 자신들의 육체적 비대함('카보드', 무거움)을 혼동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번영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착각했던 그들은, 언약궤를 빼앗기자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합니다('이가봇').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때부터 사무엘과 다윗을 통해 새롭게 시작됩니다.
참된 희망은 우리의 기존 생각, 즉 '프레임'이 깨어질 때 시작됩니다.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응답했을 때 들려온 것은 스승 엘리 가문의 심판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흔들고 깨뜨리는 경험이며, 이 '들음'에서 참된 믿음과 희망이 시작됩니다.
2부: 현대 사회의 도전에 응답하는 성경적 삶
1. AI 시대의 영성: 기계적 윤리를 넘어 인간의 마음으로
AI가 아나운서, 의사, 판사의 역할을 대체하는 시대 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이미 우리 사회가 인간을 '공부하는 기계', '돈 버는 기계'로 취급하며 기계화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를 통해 이 문제를 조명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율법(프로그램)에 따라 '기계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어가는 사람을 '불쌍히 여길' 마음의 틈이 없었습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AI 시대에 기계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율법주의'나 '기계적 윤리'가 신앙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AI 시대의 영성은 '인간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며 , 쓰러진 이를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는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뿐만 아니라, 공감과 돌봄을 의미하는 '보이지 않는 가슴' 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2. 행복숭배 시대의 기쁨: 소유가 아닌 존재의 자유
현대인들은 '행복숭배'에 빠져 행복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만,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의 '부산물'입니다. 헤롯 왕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딸의 춤을 보고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고 외쳤지만, 결국 세례 요한의 피로 잔치를 망치며 자신의 불행을 증명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는 '과장된 자아' 를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what I have)'로 존재를 증명하려 했지만, 이는 내면의 결핍을 드러낼 뿐입니다.
저자는 행복에 이르는 첫걸음은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며 자신의 모순(롬 7장)을 치열하게 씨름한 후에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장)라는 확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Joy)'은 행복(Happiness)과 다릅니다. 기쁨은 내가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맑은 날뿐 아니라 흐린 날도 필요하며, 사막이 되지 않으려면 슬픔과도 친하게 지낼 줄 알아야 합니다. 기쁨은 목적지가 아니라 '생명의 길' 위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습니다.
3. 긱 경제 시대의 자기경영: 유한 게임을 넘어 무한 게임으로
평생직장이라는 '온실' 이 사라진 '긱 경제'(Gig Economy)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 모든 노동자는 스스로를 경영하는 '경영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평생학습'을 요구합니다.
저자는 피터 드러커의 3년 단위 학습법 을 예로 들며, 우리의 정체성이 '직장'에서 '직업', '커리어',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명(Mission)'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다윗의 모델에서 4가지 차원의 지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능적 지식: 양 치는 능력, 물맷돌 실력
통합적 지식: 광야에서의 리더십, 의사결정
인문학적 통찰: 시편의 노래와 감성
영성: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다윗은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치열한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하늘의 별을 보며 감탄할 줄 아는(시 8편) 여유를 가졌습니다. 이는 생존 너머의 지혜입니다.
저자는 우리 교육이 '유한 게임'(Finite Game, 시험이 끝나면 책을 버리는 것) 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인생 전체를 과정으로 보는 '무한 게임'(Infinite Game)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배움을 마치는 곳이 아니라 배움 그 자체('學力')의 과정입니다.
4. 비정규직 800만 시대의 직장문화: 식탁 공동체와 정의
비정규직 800만 시대 의 착취적 구조 속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골 3:23) 는 말씀을 전하기란 어렵습니다. 저자는 이 말씀이 본래 노예들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 성경은 동시에 '상전'들에게도 "의와 공평을 베풀라"(골 4:1) 고 명했음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피고용인의 순종은 강조하면서 고용주의 책임은 가르치지 않는 불균형에 빠져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공동체'의 붕괴입니다. '회사(Company)'의 어원은 '함께(com) 빵(pane)을 먹는 사이', 즉 '식구(食口)'입니다. 사도 바울이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한 것(갈 2:11-14)은 교리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의 '식탁 교제'를 분리한 실천적 문제였습니다.
저자는 다윗이 시글락에서 거둔 전리품을 분배한 사건(삼상 30장)을 핵심 모델로 제시합니다. 다윗은 직접 전투에 참여한 400명과 지쳐서 소유물 곁에 머문 200명에게 전리품을 '같이 분배하라' 고 명합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몫을 주지 말자고 한 이들을 성경은 "악한 자와 불량배들" 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승리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시대에 강력한 성경적 원리를 제공합니다.
3부: 시대를 관통하는 신앙의 본질
5. 힐링 시대의 신앙: 저항과 회복탄력성
한국 교회는 과거 경제 성장기의 '고지론'(高地論, 성공주의) 에서, 이제는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는 '힐링'(Healing) 담론으로 급격히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치유 중독' 이나 개인의 정서적 만족에 머무는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저자는 신앙의 균형을 위해 힐링(Healing), 사회정의(Justice), 잠재력(Potential)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연결하는 고리가 바로 '저항(Resistance)'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말처럼 "안식일은 저항입니다". 이는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불안과 소비문화, 성과주의에 대한 저항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힘,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 이 필요합니다. 김수영 시인의 '풀' 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유연한 강인함이 기계적인 성실함보다 중요합니다.
6. 혼밥 시대의 품위: 급식이 아닌 잔치의 신앙
'1인 가구'의 증가와 '혼밥' 문화 는 영양 불균형뿐 아니라 심각한 '고립의 시대' 를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 라고 말하며, 이는 결혼 여부를 떠나 인간의 공동체적 본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본질적으로 '잔치'입니다. 저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급식(Feeding)' 이 아니라, 푸른 잔디 위에 50명, 100명씩 모여 앉은(막 6:39-40) '심포지아(Symposia)' 였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배 채움이 아닌 '품위(Dignity)' 와 기쁨,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주기도문은 "나의 양식"이 아닌 "우리의 일용할 양식" 을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고립된 시대일수록 우리는 의식적으로 '관계의 스트레칭', 즉 식탁에 이웃을 초대하는 노력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7. 엔터테인먼트 시대의 예배: 소비가 아닌 응답
현대인의 삶은 일, 놀이, 예배 세 가지로 구성되지만, 이 순서가 뒤섞여 있습니다.
일을 예배처럼: 성공을 숭배하며 '영혼까지 끌어 모읍니다'(영끌).
놀이를 일처럼: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재충전)으로 놀이를 대합니다.
예배를 놀이처럼: 예배를 '은혜 받았다'는 감정적 만족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합니다.
저자는 예배의 목적은 '나의 재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 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예배는 은혜를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의 응답입니다.
진정한 예배의 키워드는 관심(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 , 사랑(하나님께 나의 가장 귀한 자원인 '시간'을 드리는 것) , 그리고 삶(말씀에 순종하는 삶 자체가 예배) 입니다. 진정 '은혜 받은' 상태는 "기분 좋다"가 아니라 "내가 틀렸구나" 를 깨닫는 자기 성찰입니다.
8. 피로 시대의 쉼: 성과주의를 넘어선 안식
한병철 철학자가 말한 '피로 사회' 는 외부의 감시(규율 사회)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내면의 압박(성과 사회) 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짐을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멍에를 메고... 은혜의 리듬을 배우라" 는 초청입니다.
저자는 베드로의 '수면장애' 를 예로 듭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에서 깨어 있어야 할 때(흥분과 피로) 잠들었고, 풍랑 치는 바다에서 자야 할 때(불안) 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 '변화된 베드로'는 사형 집행 전날 밤, 감옥에서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로 깊은 잠(참된 안식)을 잡니다(행 12:6-7).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9. 불안 시대의 위안: 속물근성을 넘어선 존중
알랭 드 보통은 '불안 시대' 의 원인을 분석합니다. 평등한 '능력주의' 사회 에서는 실패가 곧 개인의 무능력으로 귀결되기에 불안이 더 큽니다. 이 불안의 근원은 '사랑결핍', 즉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한 면만 보고 평가하는 '속물근성' 에 빠집니다.
저자는 속물의 반대가 '엄마' 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한 보통의 진단에 동의하며, 기독교가 이 불안의 해법을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해법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Memento Mori) 입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하며 , 폐허가 새 건물보다 더 큰 통찰을 주듯 불완전함이 정상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함으로써, '루저(loser)가 될지 모른다'는 현대인의 근원적 불안을 해소합니다.
10. 시민주권 시대의 참여: 사사화를 넘어선 공적 신앙
기독교 신앙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 이 아닌 '공적 신앙'입니다. 바울은 공적 광장('데모시아')과 가정('오이코스') 모두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에클레시아')는 본래 '시민집회' 를, '코이노니아'는 '정치적 참여' 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신앙은 '도덕적 치유적 이신론'(Moralistic Therapeutic Deism) , 즉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신앙은 그저 '나를 기분 좋게 하고 착하게 살게 하는 것' 정도로 '사사화(privatization)' 되었습니다.
저자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의 주인공이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입니다" 라고 외친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을 쌓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1.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선교: 신실한 현존
과거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였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국은 크리스텐덤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 근대화 과정에서 '유사 크리스텐덤' 의 문화적 혜택을 누렸고, 이제 그 혜택이 사라진 '포스트크리스텐덤'의 도전을 맞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바벨론 포로기' 와 같습니다. 우리의 선교 모델은 더 이상 '보내는 교회'가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나아만 장군의 여종(왕하 5장) 과 같습니다. 저자는 이 소녀의 모습에서 '신실한 현존'(Faithful Presence) 이라는 선교적 삶의 태도를 발견합니다. 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되 , 상대방의 필요(나병)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들의 언어로 (마치 '아메리카노'를 '아 뭐라 카노'로 바꾸는) 예의를 갖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12. 냉소 시대의 열정: 진리를 향한 뜨거움
현대 사회의 마지막 적은 '냉소주의(Cynicism)'입니다. 이는 '거대담론의 상실'과 '계몽의 달성'(어차피 안 바뀐다는 것을 아는 상태),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기방어' 에서 비롯됩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물으며 냉소주의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진리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 대안은 요셉과 바울입니다. 요셉은 권력의 정점에 섰지만, 형들을 향한 복수심이나 냉소 대신 '눈물'(인간성)을 보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라는 거대담론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견유학파(Cynics)처럼 자족(아우타르케이아) 할 줄 알면서도, 작은 선물에 아이처럼 기뻐할 줄 아는 열정을 가졌습니다. 냉소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열정'입니다. 부활 신앙(고전 15장)은 우리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다" 는 확신을 주며, 이 확신이 냉소를 이기고 열정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서평]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 낡은 지도를 불태우고 신앙의 나침반을 들다
"당신의 신앙은 현실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주일의 예배당과 월요일의 사무실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배우지만, 현실에서는 ‘긱 경제’와 ‘피로 사회’의 생존 논리에 갇혀 허우적댄다. 박영호 목사의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는 바로 이 거대한 간극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책이다. 이 책은 “신앙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온 교회, 혹은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신앙을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해 버린 성도들 모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우리가 손에 쥔 신앙의 지침서가 이미 '낡은 지도'가 되어버렸다고 선언한다. AI가 인간의 고유성을 질문하고, '혼밥'이 고립의 상징이 되며, '냉소주의'가 시대정신처럼 번져가는 오늘날, 과거의 성공 공식이나 율법적 해석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진단의 정확성'이다. 저자는 AI, 긱 경제, 비정규직, 힐링, 혼밥, 엔터테인먼트, 피로, 불안, 냉소주의 등 현대 사회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씩 꺼내어 그 본질을 해부한다. 이는 단순한 사회 비평이 아니다. 그는 한병철, 알랭 드 보통, 미셸 푸코 등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도, 그들의 진단이 가리키는 근원적인 '목마름'과 '불안'을 성경의 눈으로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힐링 시대'를 분석하며 교회가 '고지론'의 실패 이후 '치유 중독'이라는 또 다른 극단으로 가고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은 정곡을 찌른다. 저자는 힐링 자체를 부정하는 대신, 그것이 '사회정의'와 '잠재력'의 실현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동력은 '저항' 과 '회복탄력성' 에서 나와야 함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한 '혼밥 시대'를 조명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이 '급식'이 아닌 '심포지아'(잔치) 였다는 해석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품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관계의 회복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비정규직 시대'를 논하며 시글락에서 다윗이 세운 '공정한 분배 원칙' 을 제시하는 부분은, 추상적인 사랑이 아닌 구체적인 정의를 요구하는 성경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박영호 목사가 제시하는 대안은 '낡은 지도' 대신 '성경이라는 나침반'을 들자는 것이다. 지도는 목적지를 알려주지만,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준다. 이 책은 독자에게 완성된 정답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대신, 시대의 도전을 안고 "새로운 질문을 가지고 다시 성경을 펼치라" 고 촉구한다.
그가 제시하는 나침반의 바늘은 언제나 '공동체'를 향한다. AI 시대에 기계적 윤리가 아닌 '인간의 마음' , 비정규직 시대에 '식탁 공동체' , 혼밥 시대에 '관계의 스트레칭' , 시민주권 시대에 '에클레시아'(시민집회) 로서의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관되게 '사사화된(privatized) 신앙'을 넘어선 '공적(public) 신앙' 을 요구한다.
물론 이 책이 모든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저자 역시 '나가는 말'에서 이 책이 대화의 '초청장' 이며, 더 많은 질문이 남아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
이 책은 누구에게 필요한가?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는 단순한 신앙 서적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치열한 '생존 매뉴얼'이자 '삶의 변증서'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냉소주의가 최후의 원수" 라고 경고하며, 빌라도의 냉소적인 질문("진리가 무엇이냐")을 넘어, 요셉의 눈물 과 바울의 열정 으로 다시 한번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라고 강력하게 도전한다. 낡은 지도를 불태우고 이 새로운 나침반을 들고 길을 떠날 때, 비로소 우리는 '시대를 읽고' '성경을 살아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