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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를 알면 복음이 보인다』(서신혜) 리뷰/요약


『단어를 알면 복음이 보인다』조선·대한제국의 언어와 제도가 담긴 현대 성경

📖 왜 성경 단어는 어렵게 느껴지는가?

서신혜 저자의 "단어를 알면 복음이 보인다"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성경 속 특정 단어들이 본래 어떤 의미와 배경을 가졌는지 파헤치는 책입니다. 저자는 한국 고전문학과 신학을 모두 전공한 독특한 이력(한양대 국문학 박사 및 목사 안수)을 바탕으로, 두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하여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책의 핵심 전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번역 시점의 문제: 한글 성경이 처음 번역된 시기는 조선 시대의 제도와 언어가 여전히 통용되던 '근대'였습니다.

  2. 의식적 단절: 하지만 이 시기는 국권 상실의 아픔 속에서 이전 시대인 '조선'(전근대)의 것을 폄하하고 단절하려던 때이기도 합니다.

  3. 의미의 소실: 그 결과, 당시 번역자들에게는 명확했던 조선의 법률, 제도, 개념어들이 현대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잊혔습니다.

  4. 오해의 원인: 현대인이 성경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한자어 때문이 아니라, 이처럼 '사이에 낀' 단어들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한자 풀이가 아니라, 단어가 사용된 본래의 용례(用例)와 사회문화적 배경을 복원하여, 당시 신앙 선조들이 느꼈을 감동을 현대의 우리가 다시금 느끼도록 돕습니다.

1부: 교리 이해 - 복음의 핵심을 여는 세 가지 단어

1부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대변하는 세 단어 '속(贖)', '건(愆)', '사(赦)'를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1. 값을 치러서 이룬 변화, 속(贖)

저자는 '속(贖)'이야말로 복음과 예수 사역의 핵심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어라고 단언합니다.

  • '속'의 본래 의미: '속'은 현대에 거의 쓰이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는 널리 쓰인 법률 제도이자 법률 용어였습니다. 한자(贖) 자체가 '조개 패(貝, 돈/값)'와 '팔 매(賣, 팔다)'의 결합으로, '값을 지불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 두 가지 '속' 제도:

    1. 죗값(贖罪): 죄인이 형벌 대신 돈이나 물건(속물, 贖物)을 바쳐 죄를 면하는 제도입니다. 유배형 대신 매를 맞는 '속장(贖杖)'도 있었고, 자신의 벼슬을 반납하여 속죄하기도 했습니다.

    2. 몸값(贖身): 천민이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돈(속전, 贖錢)을 내고 양민이 되는 '속량(贖良)', 또는 자신을 대신할 다른 노비(같은 성별, 비슷한 연령)를 바치는 '대구속신(代口贖身)', 즉 '대속(代贖)'이 있었습니다.

  • '속'의 핵심 원리 (관장의 권한): '속' 제도의 핵심은 죄인이나 노비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값을 받거나 대속할 사람을 받아줄지는 오직 관장(왕, 사또)이나 상전(주인)의 결정에 달려 있었습니다.

  • 복음과 '속'의 연결:

    • 신분 변화: '속'은 '죄인'에서 '자유인'으로, '천민'에서 '양민'으로의 신분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율법 아래' 있던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게(속량) 되는 복음의 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 공의와 사랑: '속'은 단순한 용서(사면)가 아니라, 반드시 '등가(等價)의 값을 치르는' 교환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 (죗값은 반드시 치러져야 함)와 하나님의 사랑 (인간이 치를 수 없기에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어 대신 치르심)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 성육신: '대속(代贖)'의 원리(인간을 대신하려면 같은 인간이어야 함)는 예수께서 왜 '인간'이 되셔야 했는지(성육신)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우리가 대속 제물을 바쳐도, 관장이신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으시면 '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대속을 '받아주시기로 뜻하신 것' 자체가 가장 큰 은혜입니다.

2. 허물의 종류를 따지는 단어, 건(愆)과 속건제

'속죄제'와 '속건제'는 어떻게 다를까요? 저자는 그 차이가 '배상'이 아니라 '죄'와 '건'이라는 단어의 차이에 있다고 말합니다.

  • '건(愆)'의 의미: '건'은 일반적인 잘못(죄)이 아니라,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절대 법칙이나 기준을 어긴 허물'을 뜻하는 특정한 용어였습니다.

  • '불건불망(不愆不忘)': '건'의 용례는 "어기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는 '불건불망'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는 '옛 법(舊章)'을 그대로 따른다는 뜻으로, 『경국대전』 서문에도 실릴 만큼 조선의 핵심 통치 철학이었습니다.

  • '절대 기준'이란?: 당시 '절대 기준'은 선왕의 법, 자연의 섭리(사계절 등), 예법(제사 절차 등), 법률로 정해진 기한 등이었습니다.

  • 복음과 '건'의 연결: 성경에서 '절대 기준'은 바로 하나님,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성물입니다.

    • '속건제'는 바로 이 '절대 기준'을 어겼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 레위기 5장은 '여호와의 성물' 또는 '여호와의 계명'을 어겼을 때 속건제를 드리라고 명합니다.

    • 레위기 6장에서 이웃의 물건을 속이거나 거짓 맹세한 경우 역시 속건제를 드리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이웃에 대한 피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기준인 '십계명'(8, 9, 10계명)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건'이라는 단어는 이 죄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한' 행위임을 명확히 합니다.

3. 자복(自服)한 자가 받는 사죄(赦罪), 사유(赦宥)

이 장은 죄의 용서와 관련된 법률 용어 '자복', '사죄', '사유'를 다룹니다.

  • '자복(自服)'과 '자백(自白)': 현대어 '자백'과 달리 조선 시대에는 '자복'이라는 법률 용어를 썼습니다. 이는 범죄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고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 자복의 법적 효력: 조선 시대 법 제도에서 '자복'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혐의자를 잡아와도 자복을 받지 않으면 형을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자복하고 공초(기록 문서)를 써야만 '공식적인 죄인'이 되었습니다.

  • '사죄(赦罪)'와 '사유(赦宥)':

    • '사죄(謝罪)'는 '사과하다'는 뜻이지만, 성경의 '사죄(赦罪)'는 '죄를 용서하여 놓아주다'는 뜻입니다.

    • '사유(赦宥)'는 조선 시대에 '사면(赦免)'과 같은 뜻으로 쓰였으며, 이는 오직 최고 통치권자인 임금(왕) 고유의 권한이었습니다.

  • 복음과 '자복/사유'의 연결:

    • 통치권자의 용서: '사유'가 오직 왕의 권한이듯, 성경에서 죄를 '사(赦)'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예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눅 5:20)라고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권세를 선포하신 행위였습니다.

    • 자복한 자만 받는 은혜: 조선의 '사유'는 '공식적인 죄인'에게만 효력이 있었습니다. 즉, '자복'하지 않고 버티는 자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크기나 기간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오직 '자복하는 자'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유'(용서)라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예외: 조선에서 '십악(十惡)'은 사유에서 제외되었듯 , 성경에도 '성령 훼방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언급됩니다.)

2부: 사랑 이해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세 가지 단어

2부는 '희생', '신실', '거/류'라는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조명합니다.

1. '희생(犧牲)되셨다'가 아니라 '희생이 되셨다'

'희생'은 오늘날 '권리의 포기'나 '억압받음'으로 오해되지만, 본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 '희생'의 본래 의미: 제사에 제물로 바치는 '살아 있는 짐승' 자체를 뜻하는 명사입니다.

    • '희(犧)'는 '순전한 단색(單色)의' 가축을 뜻합니다. 얼룩진 것(간색)은 천한 것으로 여겨 제물로 쓸 수 없었습니다.

    • '생(牲)'은 '가축'(소, 양, 돼지 등)을 뜻합니다.

  • 희생의 핵심 (피): 희생은 죽은 고기가 아니라 '피를 지닌 날것'이어야 했습니다. 제사를 '혈식(血食)'이라 부른 이유도, 피에 담긴 '생기(生氣)'가 신과 인간을 연결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복음과 '희생'의 연결:

    • 흠 없는 제물: 예수님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즉 가장 순전하고 '희(犧)'한 제물이십니다.

    • 최고 격의 제사: 제사의 격(格)은 희생의 종류로 결정되는데(소가 가장 높음),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희생이 되셨으니 이는 모든 죄를 대속하는 '완전한 제사', '최고 격의 제사'입니다.

    • 피의 화목: 성경에서 피는 '속죄'를 의미합니다. 예수의 '보혈'은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피'의 원리를 완성합니다.

    • 문법의 중요성: '희생'은 명사입니다. 따라서 "희생되셨다"(동사, Victim)가 아니라 "희생이 되셨다"(명사, Offering)라고 써야 합니다. 전자는 '죽임을 당했다'는 이차적 의미에 그치지만, 후자는 '자발적인 사랑으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어주셨다'는 복음의 핵심을 정확히 담아냅니다.

2. 신실(信實)하신 하나님

'신실'은 오늘날에도 쓰이지만, 그 본래 의미를 알면 하나님의 속성이 더욱 깊이 와 닿습니다.

  • '신(信)'과 '실(實)'의 의미:

    • '신(信)'은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의 결합입니다.

    • '실(實)'은 '채워짐'을 뜻하며 '빔(虛)'의 반대입니다.

  • '신실'의 본래 의미: 주희(朱熹)는 '신'을 "말에 '실'(실체, 실제)이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즉, '신실'은 "말로 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여(實) 보여주는 것(信)"을 의미합니다. 유교에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할 때 '신'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의 실천'을 뜻했습니다.

  • 복음과 '신실'의 연결: "신실하신 하나님"이란 "말씀하신(약속하신) 대로 실제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는 '허상(虛)'과 '신실(實)'의 차이입니다. 우상은 말만 할 뿐 이루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 '신실한 성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3. 거(居)와 류(留)의 차이

'머무르다'는 뜻의 두 한자는 성경에서 명확히 구분되어 쓰이며, 여기에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 '류(留)': '유하다'. 나그네가 길을 가다 '잠깐' 멈추어 머무는 것(유숙, 留宿)입니다. 사도행전 16:12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머물다가)"처럼 임시적인 체류를 뜻합니다.

  • '거(居)': '거하다'.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듯, 그곳에 정착하여 '영원히 사는 것',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 복음과 '거/류'의 연결:

    •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와 '유한다'(방문한다)고 하지 않고, '거한다'(함께 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출 29:45)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 4:15)

    • 이 '거'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약속이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방문이 아니라, '정착하여 영원히 함께 사시겠다'는 확고한 약속임을 보여줍니다.

    • 예수께서 약속하신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 14:2)라는 말씀은, 우리가 나그네(류)의 삶을 끝내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거) 약속을 받은 존재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3부 & 4부: 선 자리와 정체성 이해 - 우리는 누구인가?

3부와 4부는 성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규정하는 단어들을 탐구합니다.

1. 설교자의 설자리: 강(講)과 예(預)

  • 강(講): '강론', '강대상'에 쓰이는 '강'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경전'을 풀이하고 설명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 조선 시대 왕이 경전을 공부하던 '경연(經筵)'이 바로 '강'이었습니다.

    • '강'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연설이 아니라, 오직 기준(성경)에 바탕을 두고 그 본뜻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 복음서에 "예수께서 강론하셨다"는 말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은 경전을 풀이하는 분이 아니라 경전의 '기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 예(預): '예언(豫言)'은 '미리 예(豫)'를 써서 '미래를 말함'으로 이해되지만, 초기 성경은 '맡길 예(預)'를 쓴 '예언(預言)'을 사용했습니다.

    • '예(預)'는 '맡기다', '참여하다'는 뜻입니다(예: 예금 預金, 맡긴 돈).

    • 따라서 '예언자(預言者)'는 미래를 맞추는 점쟁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預)' 자로서, 그 말씀을 충실히 전달하는 '사명을 맡은 자'입니다.

2. 전권 위임 대리인: 사(使)

'천사', '사도', '사역' 등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사(使)'는 조선 시대의 중요한 정치 용어였습니다.

  • '사(使)'의 의미: 임금(왕)이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여 특정한 일을 하라고 보낸 관료(사신)를 뜻합니다.

  • '사'의 특징:

    1. 동일한 권위: '사'는 보낸 자(왕)와 동일한 권위를 가집니다. '사'를 모독하는 것은 곧 왕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2. 절대적 신뢰: '사'는 왕의 마음(복심)을 아는 측근이 임명되며, 현장에서 즉시 결정할 '전권(全權)'을 위임받습니다 (예: 암행어사의 봉고파직).

    3. 신속함: '사'는 '빨리'라는 의미도 가지며, 맡은 일을 신속히 처리해야 했습니다.

  • 복음과 '사'의 연결:

    • 천사(天使): 하늘(天)의 왕이신 하나님이 '전권'을 주어 보낸 '사(使)'입니다.

    • 사도(使徒): 예수께서 자신의 '권능'(권위)을 부여하여 보낸 '사(使)'입니다.

    • 권위의 위임: 예수께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마 10:40)이라 하신 것은, '사'가 보낸 자와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 사역(使役): '사'의 '일(役)'입니다. '사역자'란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권위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신속히 수행하는 '전권 대리인'을 의미합니다.

3. 완악(頑惡)하고 패역(悖逆)한 '자식'

성경은 이스라엘을 '완악하고 패역하다'고 자주 질책합니다.

  • 완악(頑惡): '악(惡)함'을 '굳게(頑)' 고집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주제넘음', 즉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서 나옵니다. 바로(파라오)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 패역(悖逆): '패(悖)'는 도리를 어지럽히는 것(예: 패륜), '역(逆)'은 순리를 거스르는 것(배반)입니다.

    • '패역'은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죄 이자, 조선의 '십악대죄(十惡大罪)'와 같은 '강상죄(綱常罪)', 즉 관계(임금-신하, 부모-자식 등)를 깨뜨리는 흉악한 범죄를 뜻합니다.

  • 복음과 '완악/패역'의 연결: 성경이 이스라엘을 '패역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왕, 아버지)과의 '관계'를 배반한 심각한 죄를 지었음을 뜻합니다.

    • 하지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이 그들을 "패역한 자식아", "패역한 백성아"라고 부르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들이 흉악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관계(아버지, 왕)를 끊지 않으셨음을 보여주는 눈물 젖은 사랑의 호소입니다.

4. 여러 단어를 욱여넣은, 자유(自由)

'자유'는 현대 기독교인에게 가장 오해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자유'라는 한 단어 안에, 본래 각기 다른 의미를 가졌던 여러 전근대적 단어들이 통폐합되었기 때문입니다.

  • 본래 '자유'의 의미: 조선 시대 '자유(自由)'는 '방종'이나 '권리'가 아니라, 오직 '육체의 움직임'에 한정된 부정적인 단어였습니다. "죄수에게 자유를 주다"는 뜻은 석방이 아니라, 감옥 안에서 목에 찬 칼을 풀어주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다'는 뜻이었습니다.

  • '자유'로 통합된 단어들:

    1. 임의(任意) / 자행자지(自行自止): "제멋대로 함", "방종". (고전 8:9 "너희의 자유(방종)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2. 자주(自主): "스스로 주관함". '종'의 반대말로 '주권자'라는 뜻. (갈 3:28 "종이나 **자주자(自主者)**나" -> 현대 "종이나 자유인이나")

    3. 방석(放釋): "공식적인 석방". 왕의 명령으로 죄인을 풀어주는 법률 용어. (렘 34:8 "시드기야 왕이... 방석을 선포한 후에" -> 현대 "자유를 선포한 후에")

    4. 놓아주다 / 벗어나다(脫出): "영향권에서 벗어남". (롬 6:20 "죄의 종이 되었을 때 의에 대하여 벗어났느니라" -> 현대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 복음과 '자유'의 연결: 이 4가지 의미(방종 / 주권 / 석방 / 벗어남)를 구분해야 성경이 오독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방종'(임의)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죄와 율법의 종노릇에서 '석방'(방석/벗어남)시켜 '주권자'(자주)로 삼으시겠다는 뜻입니다.

5. 내 임금의 통치가 미치는 범위, 천국(天國)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로만 오해되곤 합니다. 이는 근대적 '국가' 개념으로 성경을 읽기 때문입니다.

  • '천국'의 본래 의미: '천국(天國)'은 기독교 유입 후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 '나라(國)'의 전근대적 개념: 전근대 시대 '나라(國)'는 '영토(땅)'가 아니라, '임금의 통치권이 미치는 범위'였습니다.

    • 증거 1 (맹자): 태왕(太王)은 적인의 침입을 피하려 '땅'을 버리고 떠났지만, 백성들이 그의 '통치'를 따라나섰기에 '나라'는 유지되었습니다.

    • 증거 2 (백성의 기준): '백성'은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왕의 '통치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을 뜻했습니다.

    • 증거 3 (조선 법제): '월경지(越境地)'나 '포락전(浦落田)'의 세금은 땅의 위치가 아니라,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의 소속(관안, 官案)'을 기준으로 부과했습니다.

  • 복음과 '천국'의 연결:

    • '천국(天國)'은 '하늘(하나님)의 통치(國)'를 의미합니다.

    • 성경은 '나라(國)'를 '왕권(王權)' , '권세(權勢)' 와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3:2)는 것은 '장소'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는 뜻입니다.

    • "천국의 아들들"(마 13:38)은 '장소'의 아들이 아니라 '왕(하나님)'의 아들들을 뜻합니다.

    • "거룩한 나라"(벧전 2:9)는 거룩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거룩한 '백성'을 의미합니다.

    • 우리의 정체성: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악한 자'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천국 백성'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이름이 기록된 소속)은 하늘에 있습니다.

6. 받은 것이자 일구어야 할 것, 기업(基業)

찬송가 "나의 영원하신 기업"의 '기업'은 회사가 아닙니다.

  • '기업(基業)'의 본래 의미: 이 단어는 본래 '왕'에게만 사용하던 용어로, 조상(조종, 祖宗)으로부터 물려받은 '나라(王業)' 또는 '왕위(王位)'를 뜻했습니다.

  • '기업'의 특징:

    1. 책임(소명): '기업'은 물려받은 나라를 잘 '지키고 일구어야 할' 왕의 '소명'이자 '업무'였습니다.

    2. 비물질적 가치: '기업'은 땅뿐만 아니라, 선왕의 '업적'과 '명성'까지 포함하는 비물질적 가치였습니다.

  • 복음과 '기업'의 연결:

    • 왕의 용어: 성경은 이 '왕의 용어'를 감히 우리(성도)에게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 상속자: '기업'은 '부자(父子) 관계'를 통해 '상속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상속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의 '기업':

      1. 하나님은 '자기 몫'의 기업으로 '땅'이 아닌 '우리'(성도)를 택하셨습니다. (신 7:6, 엡 1:11)

      2.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업'(몫)이 되어주십니다. (민 18:20) "나의 영원하신 기업"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3. 우리는 자녀(상속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것, 즉 '천국'과 '영생'과 '왕 노릇'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  "단어를 알면 복음이 보인다" 서평: 멈춰 있던 신앙을 깨우는 언어의 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문장에서 '천국'을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계십니까? 만약 여전히 '죽어서 가는 어딘가'의 장소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성경 번역의 중요한 역사적 맥락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신혜 목사(이자 고전문학 박사)의 책 "단어를 알면 복음이 보인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 책은 수십 년간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었음에도 왜 복음의 감격이 무뎌지고 말씀이 평면적으로만 느껴지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문제는 바로 우리가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의 언어적 단절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 고전문학자와 목회자의 시선으로 밝혀낸 '단어의 뿌리'

저자의 이력은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신학자의 관점만으로는 성경 원어의 의미에 집중하기 쉽고, 국문학자의 관점만으로는 신앙적 깊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한글 성경이 처음 번역되던 '근대'라는 시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책은 당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법률 용어로, 정치 철학으로, 삶의 관습으로 사용했던 단어들이 어떻게 성경 번역어(飜譯語)로 채택되었는지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이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본래의 용례와 맥락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그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복원하는 작업입니다.

💡 머리를 때리는 깨달음: '속', '천국', 그리고 '희생'

이 책은 12개의 핵심 단어를 통해 복음의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그중 몇 가지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충격적인 깨달음을 줍니다.

  1. '속(贖)': 복음은 공짜가 아닌 '정당한 교환'이다 우리는 '속죄'를 막연히 '용서'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속'이 '값을 치르다'는 뜻의 엄격한 조선 시대 법률 용어였음을 밝힙니다. 죄를 속하려면 '속물'(돈)을 바치거나, 누군가 대신 벌을 받는 '대속(代贖)'이 필요했습니다. 핵심은 이 '속'을 받아줄지 말지는 오직 '관장'(주권자)의 권한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복음이 단순한 '사면'(pardon)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값은 치러져야 함)와 '사랑'(내가 대신 치름)이 만나는 '정당한 교환' 이며, 그 교환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받아주셨다' 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2. '천국(天國)': '장소'가 아닌 '통치'다 '천국'에 대한 오해는 '나라(國)'라는 단어를 현대의 '국가(영토, 국민, 주권)'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저자는 전근대 시대의 '나라'는 '영토'가 아니라 '왕의 통치권이 미치는 범위'였음을 수많은 사료(맹자, 월경지, 포락전 등)로 증명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는 뜻입니다. '천국 백성'은 이 땅에 살면서도 '악한 자'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 해석은 '죽어서 가는 천국'을 넘어 '지금 여기서 사는 천국'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립해 줍니다.

  3. '희생(犧牲)': 조사 '이/가'에 담긴 복음의 진수 저자는 '희생'이 '희생당하다'(victim)는 동사가 아니라, '흠 없는 단색의 살아있는 제물' 자체를 뜻하는 명사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희생되신" 것이 아니라, "희생이 되셨습니다." 이 미묘한 문법적 차이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억울하게 '죽임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스스로 '완전한 제물'이 되신 '자발적 사랑의 주체'임을 드러냅니다.

🌟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단어를 알면 복음이 보인다"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성경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 끝에 번역된 '우리말'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말씀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분

  • '속죄', '자유', '기업' 같은 익숙한 단어들의 진짜 의미가 궁금한 분

  • 성경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은 모든 성도

  •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講論)'해야 하는 설교자 및 사역자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언어의 뿌리를 되찾아 줌으로써, 복음의 감격을 회복시켜 줍니다. 단어를 제대로 아는 순간, 평면적이던 성경 말씀이 입체적으로 살아나고 주님과의 동행이 더욱 깊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의 필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