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삶과 개혁신학』: 스위스 종교개혁의 재발견
1. 잊혀진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를 다시 만나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를 논할 때, 대중은 흔히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프랑스/제네바의 장 칼뱅(Jean Calvin)을 떠올린다. 그러나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자적인 종교개혁을 이끌며 '개혁교회(Reformed Church)'의 실질적인 기초를 놓은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거나 오해받아 왔다. 이 책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삶과 개혁신학』은 주도홍 박사를 비롯한 국내외 석학들이 츠빙글리의 생애, 신학, 그리고 현대적(특히 한국적) 적용점을 심도 있게 분석한 연구서이다. 츠빙글리는 루터와 동시대에 활동했으나 루터의 아류가 아니었으며, 성경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급진적이고 총체적인 사회 개혁을 꿈꾸었던 '개혁신학의 아버지'이다.
2. 츠빙글리의 생애와 회심, 그리고 개혁의 시작
2.1. 인문주의자에서 개혁자로
1484년 스위스 토겐부르크의 빌트하우스에서 태어난 츠빙글리는 빈 대학과 바젤 대학에서 수학하며 인문주의적 소양을 쌓았다. 그는 에라스무스의 영향 아래 성경 원전 연구에 몰입했으며, 특히 1519년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목회자로 부임하면서 성경 강해 설교를 통해 개혁의 횃불을 들었다. 그의 개혁은 루터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성경 자체에 대한 깊은 연구와 스위스 용병 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 그리고 흑사병의 죽음 위기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2.2. 1523년의 논쟁과 '오직 말씀'
츠빙글리 개혁의 분수령은 1523년에 열린 제1차, 제2차 취리히 논쟁이었다. 그는 '67개 조항'을 통해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 관습(연옥, 성인 숭배, 미사 등)을 비판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임을 천명했다. 츠빙글리는 교회 개혁을 성직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시 의회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적인 사건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스위스 종교개혁이 도시 공동체의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츠빙글리 신학의 핵심 주제들
3.1.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츠빙글리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에 대한 철저한 강조다. 그는 흑사병 투병 과정을 통해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만났고, 이는 그의 예정론과 섭리론의 기초가 되었다. 츠빙글리에게 있어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에 달려 있다. 이는 루터의 이신칭의와 맥을 같이 하면서도, 삶의 모든 영역(정치, 사회, 경제)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 한다는 '신정(Theocracy)' 사상으로 확장된다.
3.2. 성경관: 명료성과 확실성
츠빙글리는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성령의 조명을 통해 누구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과 확실성'을 주장하며, 교황이나 공의회의 해석보다 성경 본문의 권위를 우위에 두었다. 이러한 성경 중심주의는 취리히의 '프로페차이(Prophezei, 예언 모임)'라는 성경 연구 기관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는 후일 개혁파 목회자 양성과 성경 주석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3.3. 율법과 복음의 조화
루터가 율법과 복음을 다소 대립적으로 이해하며 율법의 정죄 기능을 강조했다면, 츠빙글리는 율법과 복음의 연속성과 조화를 강조했다. 그에게 율법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의 계시이며,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규범(율법의 제3용도)이다. 이는 츠빙글리의 윤리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적 정의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4. 예배와 성례전: 루터와의 논쟁과 독창성
4.1. 예배 개혁
츠빙글리는 예배에서 인간이 고안한 모든 인위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말씀 선포가 중심이 되는 예배를 추구했다. 그는 성상, 오르간 연주, 화려한 제의 등을 우상숭배적 요소로 간주하여 폐지했고, 라틴어 대신 자국어(독일어)로 예배를 드려 회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그의 예배 개혁은 '단순성'과 '영적 예배'를 지향했다.
4.2. 성만찬 논쟁: '이것은 내 몸이다'의 해석
츠빙글리와 루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만찬 견해였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는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공재설)를 주장했다. 반면, 츠빙글리는 요한복음 6장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를 근거로, '이다(est)'를 '상징한다(significat)'로 해석했다. 츠빙글리에게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Anamnesis)'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서로 연합함을 서약하는 공동체적 식사였다. 비록 루터와의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츠빙글리의 영적 임재와 기념설은 후대 칼뱅과 불링거에 의해 계승·발전되어 개혁교회 성찬론의 표준이 되었다.
4.3. 세례와 언약 사상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와의 치열한 논쟁 속에서 '언약 신학'을 발전시켰다. 재세례파가 유아 세례를 거부하자, 츠빙글리는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를 동일한 '언약의 표징'으로 연결했다. 그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의 은혜 언약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주장하며, 기독교 가정의 자녀들도 언약 백성에 포함되므로 유아 세례가 정당함을 역설했다. 이는 훗날 개혁파 언약 신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5. 사회 윤리와 국가관: 정의, 평화, 그리고 가난한 자
5.1.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츠빙글리는 1523년 설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람의 정의」를 통해 기독교 윤리의 사회적 차원을 다루었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는 내적이고 완전한 것이며, '인간의 정의'는 외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츠빙글리는 고리대금업, 용병 제도, 독점 등 당시의 사회적 불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유재산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부(富)는 가난한 자와 공유되어야 한다는 공공성을 강조했다.
5.2. 국가와 교회의 관계
츠빙글리는 국가(관청)를 하나님이 제정하신 기관으로 보았다. 그는 루터의 두 왕국론과 달리, 교회와 국가가 상호 협력하여 '기독교적 사회(Corpus Christianum)'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정부는 교회를 보호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공공의 도덕을 수호할 의무가 있고, 교회는 말씀으로 정부를 지도하고 예언자적 비판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일종의 '신정 정치' 모델로, 취리히 시 의회와 협력하여 종교개혁을 완수하려 했던 그의 전략에서 잘 드러난다.
5.3.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과 복지
츠빙글리의 개혁은 수도원을 빈민 구호소와 병원으로 개조하는 등 실천적인 사회 복지로 나타났다. 그는 가난한 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으며, 진정한 예배는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당시 스위스 청년들의 피를 파는 용병 제도를 철폐한 것도 동족에 대한 사랑과 평화주의적 신념의 발로였다.
6. 후계자들과 개혁신학의 확장
6.1. 불링거와 칼뱅의 만남
츠빙글리가 카펠 전투에서 전사한 후, 그의 후계자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는 취리히 교회를 안정시키고 츠빙글리의 신학을 체계화했다. 특히 불링거는 제네바의 칼뱅과 1549년 '취리히 일치신조(Consensus Tigurinus)'를 맺음으로써 성만찬 논쟁을 종식시키고 개혁파 교회의 연합을 이끌어냈다. 이 책은 불링거가 칼뱅에게 끼친 영향(특히 언약 사상)을 재조명하며, 츠빙글리-불링거-칼뱅으로 이어지는 개혁신학의 계보를 확립한다.
6.2. 한국적 적용: 통일과 평화
이 책의 저자들은 츠빙글리의 신학을 16세기에 가두지 않고,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에 적용한다. 츠빙글리가 스위스 연방의 분열을 막고 평화를 호소했던 것처럼, 한국 교회도 이념 대립을 넘어 복음 안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한다. 츠빙글리의 국가론과 정의론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공정, 빈부 격차, 통일 문제에 중요한 윤리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7.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츠빙글리는 '오직 성경'의 원리를 삶의 모든 영역에 철저히 적용하려 했던 행동하는 신학자였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개혁교회의 예배, 성례, 직제, 그리고 사회 참여의 원리로 깊이 뿌리내렸다. 이 책은 루터 중심의 종교개혁 이해를 넘어, 개혁신학의 원류인 츠빙글리를 복원함으로써 오늘날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츠빙글리의 외침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평] 성경적 행동주의자, 츠빙글리의 재발견
1. 루터와 칼뱅 사이, 잊혀진 거인을 찾아서
한국 개신교, 특히 장로교의 뿌리는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에 닿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개혁신학의 완성자인 칼뱅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 기초를 놓은 시원(始原)인 울리히 츠빙글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지하다. 기껏해야 루터와 성만찬 논쟁을 벌이다 결별한 인물, 혹은 '기념설'을 주장한 합리주의자 정도로 치부되곤 한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삶과 개혁신학』은 이러한 한국 교회의 신학적 편식을 교정하고, 개혁신학의 진정한 뿌리를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주도홍 박사를 필두로 한 저자들은 츠빙글리를 단순히 루터의 아류나 칼뱅의 선구자로 박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츠빙글리를 16세기라는 격동의 현장에서 성경 하나만을 붙들고 교회와 사회, 영혼과 육체, 신앙과 정치를 아우르는 총체적 변혁을 시도했던 '성경적 행동주의자'로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2. 삶의 모든 영역에 임하는 하나님의 주권
이 책이 보여주는 츠빙글리 신학의 백미는 '통합성'이다. 루터가 개인의 구원과 내면의 평안, 그리고 이신칭의 교리에 집중하며 두 왕국론을 통해 세상과 교회를 다소 분리하려 했다면,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곳도 없음을 천명했다. 책의 여러 챕터에서 강조하듯, 츠빙글리에게 개혁은 단순히 교리적인 수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병 제도로 피 흘리는 스위스 청년들을 살려내는 평화 운동이었고, 고리대금업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시민들을 위한 경제 정의 운동이었으며, 잘못된 권력을 행사하는 교황청과 제후들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었다.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를 다룬 장에서 저자들은 츠빙글리가 어떻게 복음의 원리를 사회법과 질서 속에 녹여내려 했는지 탁월하게 분석한다. 이는 오늘날 '개인 구원'에만 함몰되어 사회적 공신력을 잃어가는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앙이 교회 담장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사랑이라는 형태로 광장에 흘러넘쳐야 함을 츠빙글리는 500년 전부터 웅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성만찬과 언약: 신학적 오해를 넘어서
이 책의 학술적 가치는 츠빙글리의 성만찬론과 언약 사상에 대한 정밀한 재해석에 있다. 흔히 츠빙글리의 성만찬론을 단순한 '기념'이나 심리적 회상 정도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츠빙글리가 거부한 것은 그리스도의 '육체적/물리적' 임재이지, 영적 임재 자체가 아니었음을 밝힌다. 그는 미신적인 화체설과 공재설에 맞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공동체의 윤리적 결단을 강조했다. 또한, 재세례파와의 논쟁 과정에서 정립된 그의 언약 사상은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확립함으로써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후대 개혁파 언약 신학의 모퉁이돌이 되었다. 이 책은 츠빙글리가 성경 해석에 있어 얼마나 철저하고 논리적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세운 원칙들이 어떻게 불링거와 칼뱅을 거쳐 오늘날 우리의 신학적 유산이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추적한다.
4. 한국적 상황에의 적용: 통일과 평화의 신학
이 책이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현재성을 획득하는 지점은 츠빙글리의 사상을 한반도의 현실에 적용하려는 시도에 있다. 츠빙글리가 스위스 연방의 분열을 막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은 분단된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들은 츠빙글리의 국가론과 평화 사상을 통해 통일 문제를 조망하며, 교회가 이념 갈등을 넘어 화해자로서 감당해야 할 몫을 제시한다. 츠빙글리가 외쳤던 "하나님 없는 평화는 없다"는 메시지는, 통일이 단순한 정치적 협상이 아니라 영적인 회복과 정의의 실현 과정이어야 함을 일깨운다.
5. 다시, 근원(Ad Fontes)으로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삶과 개혁신학』은 츠빙글리라는 거울을 통해 21세기 한국 교회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한다. 예배의 형식주의, 성직주의의 부활, 사회적 책임의 방기, 반지성주의적 경향 등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츠빙글리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삶으로 증명되는 믿음을 가지라"고 질타하는 듯하다. 이 책은 신학생과 목회자에게는 개혁신학의 정수를 맛보게 하는 필독서이며, 평신도들에게는 신앙이 앎과 삶, 교회와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어떻게 역동적으로 역사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가이드이다. 츠빙글리를 읽는 것은 과거의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일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명제를 가슴에 품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