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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말』(이해인) 리뷰/요약

 


『이해인의 말』 - 수도 생활 50년이 전하는 삶과 관계의 지혜

1. 책 소개

『이해인의 말』은 반세기 이상 수도자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와 저널리스트 안희경의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 인터뷰는 단순히 한 수도자의 회고록을 넘어, 고통과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와 '마음가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투병 생활, 수도 공동체에서의 갈등과 화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놓으며,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전합니다.


2. 열 번의 만남, 열 가지 지혜

첫 번째 만남: 코로나 시기의 영성 - "숨어 있는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는 코로나19 시기를 전 인류가 겪는 '수련기'로 정의합니다.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의 중단은 우리에게 '골방의 영성'을 회복할 기회를 줍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현대인의 불행은 홀로 방에 머무는 법을 모르는 데서 기인하는데, 이 시기는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웃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 방구석 영성: 외부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녀님은 수도원 내의 소소한 일상(동료 수녀들에게 편지 쓰기, 과일 주스 나누기 등)에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이는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사소한 행동으로 타인을 기쁘게 할 때 나 자신이 발견되는 기쁨입니다.

  • 이기적 예민함에서 이타적 예민함으로: 재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이 시기에는 '나'만을 향한 예민함을 넘어 '이웃'의 아픔을 살피는 '이타적인 예민함'으로 건너가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 만남: 수도자의 고독과 죽음 -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충만입니다"

수도자에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그림자이자, 신과 마주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법정 스님이 1978년에 보낸 편지를 공개하며, 수도자의 고독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우주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행위'이자 '절대적인 있음' 안에 서 있는 상태임을 강조합니다.

  • 고독 vs 외로움: 외로움이 곁에 아무도 없어 서운해하는 유아적 감정이라면, 고독은 침묵 속에서 근원적 실체를 헤아리는 철학적 추구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있고 내면이 충만하다면 물리적으로 혼자여도 외롭지 않습니다.

  • 죽음에 대한 태도: 암 투병과 크고 작은 수술을 겪으며 수녀님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삶을 더 명랑하고 성실하게 살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태도는 죽음이 삶 속에 들어와 있음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세 번째 만남: 사람과 사회를 대하는 태도 - "관계 속에서 수행하다"

수도 생활의 핵심은 기도뿐만 아니라 '공동체 생활'에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이를 '감자 씻기'에 비유합니다. 감자들이 서로 부대끼며 깨끗해지듯, 사람들과 부대끼며 수행이 깊어집니다.

  • 일상의 수행: 가장 힘든 수행은 멀리 있는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불편한 언행을 참아내고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수녀님은 억울하거나 화나는 순간에도 '죽음'을 미리 앞당겨 생각하며 참는 연습을 한다고 고백합니다.

  • 사회적 영성: 수도원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해고 노동자 문제,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 등 사회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연대합니다. 기도는 꽃향기 나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만남: 해방둥이로 태어나 수녀가 되기까지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이해인 수녀는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부성애의 결핍은 역설적으로 신과 인류에 대한 봉사로 승화되었습니다.

  • 문학 소녀의 꿈: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소설을 구상하고, 중학교 때는 문예반 활동을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 수도의 길: 언니(이인숙 수녀)가 먼저 수도자의 길을 간 영향과, "삶의 유한성 속에서 영원한 가치를 찾겠다"는 조숙한 고민이 수녀원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특히 글 쓰는 재능을 통해 수도 생활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입회했습니다.

다섯 번째 만남: 시 쓰는 삶, 읽는 삶 - "시인은 위로의 언어사"

이해인 수녀에게 시는 기도이자, 세상을 향한 위로의 도구입니다. 대학 시절 쓴 논문 「김소월과 에밀리 디킨슨의 자연시 비교 연구」에서 밝혔듯, 시인은 사제이자 예언자이며, 사물과 사람에게 이름을 주어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입니다.

  • 위로의 언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격변기 속에서 서정적인 시가 무슨 소용인가 고민하기도 했지만, 대중들이 수녀님의 시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을 보며 '언어의 구원 사업'이라는 소명을 재확인했습니다. 시는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손길입니다.

여섯 번째 만남: 여성 수도자의 수도 생활 - "평등하고 열린 공동체를 향해"

한국 가톨릭 교회 내에서 여성 수도자의 위치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수평적이고 동반자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약자와의 연대: 여성 수도자들은 교회 내의 보조적 역할을 넘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쪽방촌, 시위 현장 등)에서 약자들과 연대하며 실천적인 영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인 '동시다발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 환경 문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따라,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동물, 자연)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강조합니다.

일곱 번째 만남: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들 - "판단을 보류하고 사랑하라"

이해인 수녀는 사회적 소수자와 '죄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깊은 연민을 가집니다. 신창원과 같은 무기수나 사형수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 내면의 순수함을 발견합니다.

  • 판단 보류의 영성: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 남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단죄하기 전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헤아리려는 자비심이 필요합니다. 이는 종교를 넘어 우리 사회에 절실한 덕목입니다.

  • 성 소수자에 대한 시선: 가톨릭 교회의 보수적 입장 속에서도, 수녀님은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라 믿으며, 차별과 혐오 대신 이해와 존중을 선택합니다.

여덟 번째 만남: 내 삶에 족적을 남긴 스승과 도반들

피천득, 김광균, 구상 같은 문인들과의 교류는 이해인 수녀의 문학적, 인간적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수녀님에게 "위축되지 말고 계속 쓰라"고 격려해 준 아버지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 도반(道伴): 조광호 신부, 강우일 주교 등 교회 내의 동료들은 서로의 영성을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특히 강우일 주교의 '덕불고(德不孤, 덕은 외롭지 않다)' 정신과 권위를 내려놓은 소탈한 모습에서 참된 리더십을 배웁니다.

아홉 번째 만남: 어머니와 언니에게 받은 영성 - "가족을 넘어 인류애로"

어머니 김순옥 여사는 홀로 4남매를 키우며 헌신적인 사랑과 굳건한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을 봐도 기쁘고 뒤를 봐도 마냥 행복하다"는 어머니의 긍정적인 태도는 수녀님의 '명랑 투병'과 닮아 있습니다.

  • 봉쇄 수도원의 언니: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간 언니 이인숙 수녀는 이해인 수녀에게 영적 길잡이였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봉쇄 수도원의 삶과 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이해인 수녀의 삶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하느님)을 지향하는 동반자였습니다.

  • 가족의 확장: 수녀님은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를 넘어, 인류 가족으로 사랑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야만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통찰은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열 번째 만남: 친구, 지인, 우정 - "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친구란 요구하지 않고 먼저 베푸는 존재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일상에서 주고받는 평범한 안부와 배려가 곧 사랑이며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 시간이라는 선물: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바쁜 와중에도 나의 시간을 쪼개어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수녀님은 찾아오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고 "차 한잔하고 가라"며 맞아주는 환대의 삶을 실천해왔습니다.

  • 마지막 당부: 삶은 한 번뿐인 연극과 같습니다.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매일 '감사하는 연습'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힘들 때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고, 이 고통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며 견디는 힘(견딤의 영성)을 길러야 합니다.


3.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처방전

『이해인의 말』은 거창한 교리서가 아닙니다. 50년 넘게 수도원이라는 공동체에서 부대끼며 깎이고 다듬어진 한 인간의 솔직한 고백록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연민,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잃지 않는 명랑함을 통해 우리에게 "그래도 살아볼 만한 인생"임을 역설합니다.




[서평] 이해인의 말: 겸손과 환대, 그리고 견딤의 미학

"수도 생활을 50년 하고 난 제 심정이 어떠냐 물으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해인 수녀의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을 덮으며 가장 오래 머무는 문장은 바로 저 '담백한 물빛'이라는 표현이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무미(無味)한 듯하나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빛 같은 지혜. 이 책은 바로 그 물빛을 닮았다.

1. 구름 위가 아닌 땅 위의 영성

우리는 흔히 수도자의 삶을 구름 위의 고고한 무엇으로 상상한다. 세속의 번뇌를 초월하여 늘 평온한 미소를 짓는 존재.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는 철저히 '땅 위의 사람'이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동료 수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배가 고파 설탕물을 얻어 마시며, 억울함에 잠 못 이루기도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책의 미덕은 바로 이 '솔직함'에 있다. 수녀님은 자신의 완벽함을 내세우는 대신, 50년 동안 자신의 모난 부분을 어떻게 깎아내고 견뎌왔는지를 고백한다. "수도 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리얼리티"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렇기에 그가 전하는 위로는 관념적인 설교가 아니라 굳은살 박인 손이 건네는 악수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2. '견딤'과 '돌봄'이라는 시대의 화두

코로나 팬데믹, 경제적 불평등,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시대. 이해인 수녀는 이 시대를 건너갈 두 가지 노로 '견딤'과 '돌봄'을 제시한다.

  • 견딤의 영성: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조급함의 시대에, 수녀님은 "끝까지 견디는 것"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는 무조건적인 참음이 아니라, 고통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숙해지려는 능동적인 인내다. 암 투병 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명랑 투병'은 이 견딤의 영성이 육화된 모습이다.

  • 돌봄과 환대: "내 시간을 내서 나누는 것이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수녀님은 거창한 기부나 희생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 낯선 이(심지어 택시 기사나 교도소의 재소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곧 구원임을 강조한다. 이는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과 세상으로 확장되는 사랑이다.

3. 판단 보류, 혐오를 넘어서는 힘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수녀님의 태도다.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 동성애자, 성매매 여성, 사형수 등 사회가 쉽게 단죄하고 배제하는 이들을 향해, 수녀님은 판단의 잣대를 거두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환대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덕목이 아닐까.

4. 오늘을 축제처럼 사는 법

이해인 수녀는 말한다. "오늘이 내 남은 날들의 첫날임을 기억하며 순간순간을 마지막인 듯이 살아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는 일(Memento Mori)은 역설적으로 삶을 가장 생생하게 만든다. 내일 내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오늘 만나는 까칠한 이웃에게 한 번 더 웃어줄 용기가 생긴다.

『이해인의 말』은 종교를 넘어, 좋은 삶(Well-being)과 좋은 마무리(Well-dying)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받은 듯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때쯤엔,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질 것이다. 이해인 수녀가 50년 수행으로 길어 올린 그 사랑의 마법이 독자의 마음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추천 대상:

  • 인간관계로 지치고 마음의 평화가 필요한 분

  •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분

  • 종교와 상관없이 깊이 있는 삶의 지혜를 얻고 싶은 분

  •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글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