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목사의 《기독교란 무엇인가》: 신앙의 본질과 현실의 신비
1. 신앙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이다
한국 기독교는 오랫동안 '순교 시대'와 '부흥 시대'를 거치며 신자들에게 비장한 각오와 뜨거운 감동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박영선 목사는 이 책을 통해 묻습니다. "각오와 감동만으로 우리의 막막한 현실이 채워지는가?"
많은 신자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아멘"이라 답하지만, 정작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합니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문제나 도덕적 올바름을 선택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이 우리 현실 속에 들어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자리까지 자라게 하시는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2. 신(神) - 우상과 구별되는 하나님
2.1. 우상과 기독교의 신의 결정적 차이
종교의 성립 조건은 '신'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종교, 특히 우상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반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신을 설명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요구하십니다
2.2. 신앙의 네 단계: 출생에서 성숙으로
박영선 목사는 기독교 신앙을 생물학적 성장에 비유하여 네 단계로 설명합니다.
출생 단계: 예수를 처음 만나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누리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나는 구원받았다"는 감격이 전부이며, 선교사가 되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헌신을 꿈꿉니다
. 성장 단계 (어린아이): 부모(하나님)가 시키는 대로 반응하는 시기입니다. "하지 마라", "해라"라는 규칙에 순응하며, 이 시기에는 자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 사춘기 (반항과 고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내가 기계인가?"라는 자의식이 생기며 고민과 갈등, 반발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 시기를 '믿음이 없다'고 정죄하곤 했지만, 저자는 이 시기가 자신의 주권을 확보하고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 성숙기 (어른): 분별과 지혜, 실력을 갖추고 책임을 지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으며 인내와 온유함으로 반응하는 자리입니다
.
2.3.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과 사랑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과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3. 성육신(Incarnation) - 인간의 명예와 현실
3.1. 성육신의 진정한 의미
성육신은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건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이 무엇이기에 신이 여기까지 내려오셨는가?"**라는 인간 존재의 존엄과 가치를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 즉 '컨텍스트(Context)'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임마누엘),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만들어 내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3.2. 탕자의 비유와 기업 무를 자
저자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성육신의 의미를 확장합니다.
작은아들 (탕자): 아버지 품을 떠나 세상의 쓴맛을 보고 돌아와 아버지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우리를 다시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그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십니다
. 큰아들: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사랑)과 소유가 자신의 것임을 누리지 못하고 '종'처럼 일만 하며 보상을 바랐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하며 상속자의 지위를 일깨웁니다
.
우리는 종처럼 일하고 대가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입니다. 성육신은 우리를 이 영광스러운 상속자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3.3. 현실 속의 신자: 과정의 중요성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시고 그를 즉시 완벽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수를 거듭하며 오랜 시간을 통해 믿음의 조상으로 '자라났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걸고 맹세하시며 우리를 기필코 성숙의 자리로 끌고 가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현실의 고단함과 자신의 부족함에 절망하거나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며 자폭해서는 안 됩니다
4. 십자가 - 하나님의 방법과 승리
4.1. 십자가: 폭력이 아닌 사랑의 승리
세상은 힘과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리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이는 기독교가 말하는 승리가 세상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 대신 죽어주는 '대속'의 의미를 넘어,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의 자리,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절망의 자리까지 신이 친히 내려가심을 의미합니다
4.2. 율법과 은혜: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
율법은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만, 믿음과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율법적 사고로 돌아가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사랑을 확증하신 사건입니다
4.3. 자유와 책임: 성숙한 반응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될까요? 저자는 이것이 "명예를 모르는 유치한 질문"이라고 일갈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보복하고 싶고, 미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아는 신자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참으며", "기다려 주는"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 이것은 윤리적 강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에 걸맞은 **품격(Dignity)**의 문제입니다.
5. 인간 - 명예로운 존재로의 부름
5.1. 영웅이 아니라 성품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뒤집는 영웅이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맺으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2장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며, 일상에서 지혜롭게 생각하고,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5.2. 로마서 7장의 갈등과 8장의 승리
신자는 내면에서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는 갈등을 겪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은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겪는 치열한 성장통입니다
그러나 이 갈등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5.3. 멋있는 신자가 되라
박영선 목사는 한국 교회를 향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멋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간섭하시고, 시간을 들여 길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자책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고 오늘 하루의 책임을 다하며 명예롭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서평] 회색빛 현실을 뚫고 피어나는 신앙의 실력
1. '정답'에 지친 신앙인들을 위하여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확신'을 강요해 왔다.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큰 소리로 "아멘!"을 외치는 것이 신앙의 척도였고, 기도하면 즉각적인 응답과 형통이 주어지는 것이 축복의 증거였다. 그러나 예배당 문을 나서서 마주하는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믿음으로 살아도 실패하고, 기도를 해도 고난은 지속되며, 내 안의 죄성은 여전히 꿈틀거린다. 이 괴리감 속에서 많은 성도가 "내가 믿음이 부족한가?"라며 자책하거나, 아예 신앙을 교회 안의 취미 생활로 격리해 버린다.
박영선 목사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고뇌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단비와 같은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기독교를 '죽어서 천국 가는 티켓'이나 '도덕 교과서'로 축소하지 않는다. 대신,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다운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낼 수 있는 실력 있는 존재로 길러내시는 처절하고도 영광스러운 과정"임을 역설한다.
2. 명분을 넘어 현실의 실력으로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과정(Process)'에 대한 재발견이다. 저자는 신앙을 출생-성장-사춘기-성숙이라는 생애 주기로 설명하며, 우리가 겪는 의심, 반항, 실패가 신앙이 없는 증거가 아니라 성숙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임을 변증한다.
특히 '성육신'과 '십자가'에 대한 해석은 압권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단순히 죗값을 치르는 법적 절차를 넘어, 하나님이 인간의 비참한 현실(Context) 속에 들어와 함께 뒹구시겠다는 선언이다. 십자가는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생명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방법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신자들에게 "세상을 힘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져줌과 인내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내라"고 도전한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신자의 진정한 '실력'이기 때문이다.
책 전반에 흐르는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막 사는 것을 허용하는 방종의 면허증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명예로운 길을 선택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율법적 공포가 아닌, 관계적 신뢰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복음의 정수를 꿰뚫고 있다.
3. 깊은 맛을 우려내는 묵상이 필요하다
이 책은 소위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기도하면 3일 만에 응답받는다"는 식의 실용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고난을 없애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박영선 목사 특유의 구어체와 논리적 비약이 섞인 문체는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그 맛이 깊다. 욥기, 로마서, 요한복음을 넘나드는 성경 해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4. 일상을 견디는 모든 '미생(未生)' 신자들에게
《기독교란 무엇인가》는 신앙의 조급증을 버리게 한다. 오늘 내가 저지른 실수, 해결되지 않는 갈등, 반복되는 무력감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한다.
이 책을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분.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단순 도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고난 속에 있는 분.
교회 안의 언어와 세상의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분.
하나님을 두려운 심판관이 아닌, 인격적인 아버지로 만나고 싶은 분.
이 책은 당신에게 "지금 당신이 겪는 그 모호하고 고단한 현실이,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을 빚어 가시는 가장 거룩한 현장"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신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며,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 현실을 살아낼 용기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