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인생은 순간이다》: 야구 신(神)이 전하는 치열한 삶의 철학
1. 야구는 인생 그 자체다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펑고 배트를 잡고 그라운드에 서는 '야신' 김성근. 그는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단순한 야구 에세이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60여 년간 버텨온 한 승부사가 전하는 인생 지침서이자, 리더십 교본이다. 그는 "인생은 순간순간의 축적"이라고 정의하며,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걸어야 내일이 있다고 역설한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인생의 매 순간은 다르며, 그 흐름 속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처절하고도 따뜻한 답변이 담겨 있다.
2. 이겨내기 위한 의식 - 일구이무(一球二無)의 정신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
김성근 감독의 좌우명인 '일구이무(一球二無)'는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 이 공을 치지 못하면, 혹은 막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을 의미한다. 그는 20대에 찾아온 어깨 부상으로 투수 생명을 일찍 마감해야 했던 시련 속에서도 은행원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야구로 돌아갈 길을 모색했다. 그는 "기회란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오는 것"이라며,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의식'이다
그는 인간의 잠재 능력은 무한하며, 한계는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은 늙고 한계에 부딪힌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그가 땡볕 아래서 수백 개의 펑고를 칠 수 있는 이유는 "힘들다"는 의식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어제의 한계가 열 개였다면 오늘의 한계는 스무 개인 셈"치고 도전할 때 비로소 잠재력이 폭발한다고 말한다.
굵고 짧게, 그러나 길게 사는 법
요즘 세대는 '가늘고 길게' 살려고 하지만, 김성근은 '굵고 짧게' 살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오히려 생명력이 길어진다고 역설한다. 몸을 사리고 적당히 타협하는 선수는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설사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난다 해도,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길이 열린다. "안 가르쳐주면 훔쳐서라도 배우겠다"는 절박한 배고픔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3. 나는 비관적인 낙천주의자
최악을 가정하고 최선을 준비하라
김성근 감독은 자신을 '비관적인 낙천주의자'라고 칭한다. 그는 경기 전 온갖 최악의 상황(투수 교체 실패, 실책 등)을 가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세운다. 이렇게 준비가 완벽하면 실제 위기가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올 게 왔구나" 하며 대처할 수 있다. 비관적인 상상은 준비를 위한 것이며, 그 준비가 끝났을 때 비로소 낙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혹시'를 '반드시'로 만드는 힘
그는 열악한 환경이나 부족한 재능을 탓하지 않았다. 가난해서 야구 장비가 없으면 돌멩이를 던지며 연습했고, 달리기가 느리면 내리막길을 뛰며 극복했다. "없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약하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어차피 안 돼'라는 비관 속에서 '혹시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기어이 '반드시 된다'로 바꾸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리더는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
리더는 모든 사람이 포기한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SK 감독 시절, 혈행장애라는 희귀병에 걸린 투수 이한진을 위해 직접 일본 병원을 수소문하며 끝까지 치료를 도운 일화는 그의 이런 철학을 보여준다. "리더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그의 신념은 선수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4. 개척자 정신 -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꾸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답이 있다
김성근의 야구는 종종 '비상식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벌떼 야구, 잦은 투수 교체, 데이터 야구 등은 당시의 상식을 파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식 속에 있는 사람은 남하고 아무리 경쟁해 봐야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남들이 닦아놓은 길이 아닌, 덤불숲을 헤치고 나만의 길을 만들었을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게 된다. 비난을 받더라도 결과로 증명하면 그 비상식은 곧 새로운 상식이 된다.
10원만 있어도 이길 방법은 있다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턱없이 부족한 지원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핑계를 대지 않았다. "주머니에 10원 한 장만 있어도 이길 방법은 있다"는 마음으로, 부족한 전력을 극대화할 전략을 짜냈다. 일부러 심판과 싸워 선수들의 투쟁심을 자극하거나, 데이터 분석을 통해 1점 차 승부를 뒤집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는 환경을 탓하며 도망치는 인생은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를 뿐이라고 경고한다.
5. 이름을 걸고 산다는 것 - 프로의 자격
돈을 받으면 모두 프로다
그는 《최강야구》 선수들에게 "돈 받으면 프로다"라고 일갈한다. 은퇴한 선수들이라 해도 방송 출연료를 받고 유니폼을 입은 이상, 아마추어 같은 핑계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는 과정이 아닌 결과로 말해야 하며, 자신의 몸 관리와 경기력에 대해 철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나이 든 선수들에게도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오늘을 살라"고 주문한다.
잠자리 눈깔과 데이터 야구
김성근의 별명 중 하나는 '잠자리 눈깔'이다. 그는 경기장 내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투수의 미세한 습관, 타자의 호흡, 야수의 위치 선정까지 꿰뚫어 본다. 그는 관찰의 단계를 견(見, 보는 것), 관(觀, 자세히 보는 것), 진(診, 꿰뚫어 보고 진단하는 것)으로 나누며, 리더는 '진'의 단계에서 10cm, 30cm의 미세한 승부를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6. 비정함 속에 담은 애정
리더는 부모다
김성근 리더십의 핵심은 '부모의 마음'이다. 그는 "리더는 부모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이 힘들다고 해서 마냥 오냐오냐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때로는 매몰차게 훈련시키고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혹독한 훈련은 선수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야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을 키워주기 위한 가장 진한 애정의 표현이다.
존경받는 리더보다 신뢰받는 리더
그는 "존경받는 리더가 되려 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현역 시절에 존경을 받으려 하면 타협하게 되고, 팀의 승리보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챙기게 된다. 리더는 욕을 먹더라도 팀을 승리로 이끌고 선수들에게 연봉을 안겨주어야 한다. 존경은 은퇴 후에 받아도 늦지 않다. 당장은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결과로 증명하여 선수들에게 "이 사람을 따르면 된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7. 자타동일(自他同一) -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나를 버리고 팀 속에 녹아들어라
'자타동일'은 나와 남이 하나라는 뜻으로, 팀워크의 본질을 의미한다. 김성근 감독은 아무리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라도 팀의 규율을 해치거나 분위기를 망치면 가차 없이 징계하거나 내보냈다. 최강야구에서도 이대호를 개막전 선발에서 제외하는 등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는 특정 개인보다 팀이라는 조직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고, 동료의 실수를 나의 실수처럼 여기는 마음이 강팀을 만든다.
[서평] 김성근이라는 거울 앞에 선 우리: 편안함과 타협하는 시대에 던지는 돌직구
"세상살이에 편한 길은 없다"
서점가에는 '괜찮아', '쉬어가도 돼', '너는 이미 충분해'라고 위로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치열한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그런 위로는 달콤한 사탕과 같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의 《인생은 순간이다》는 그런 달콤함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위로를 믿으면 강해질 수 없다"고 말하며, 남들의 동정이나 위로 속에 숨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라고 호통친다 . 80대의 노장이 던지는 이 돌직구는 뼈아프지만,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와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데이터 야구의 창시자, 혹은 지독한 휴머니스트
김성근 감독은 흔히 '데이터 야구의 신', '냉철한 승부사'로 알려져 있다. 밤새 데이터를 분석하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비정할 정도로 선수를 몰아붙이는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지독함의 이면에 숨겨진 뜨거운 휴머니즘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그토록 혹독하게 훈련을 시킨 이유는 단 하나, "선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실력이 부족해 프로 무대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한 선수들을 보며, 그는 부모의 심정으로 펑고 배트를 잡았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포기하지 않는 제자들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다. 그의 데이터 야구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1%의 가능성이라도 찾아내 선수를 기용하고 승리하게 만들어주려는 처절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의 리더십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리더'의 권위는 많이 추락했다. 책임을 회피하고, 인기에 영합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리더들에게 실망한 탓이다. 김성근은 "리더는 고독해야 한다"고 말한다. 욕을 먹더라도 조직의 미래를 위해 결단하고, 모든 비난은 자신이 감수하며, 성과는 부하들에게 돌리는 모습.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있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리더는 조직을 망친다"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80대에도 매일 아침 산책을 하며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그의 모습은, 나이 듦을 핑계로 성장을 멈춘 이들에게 큰 경종을 울린다. 그는 "만족은 영원히 없다"고 말하며 죽는 순간까지 배우고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몸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
이 책은 야구팬뿐만 아니라, 인생의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 조직을 이끄는 리더,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는 청춘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김성근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그 어떤 철학서보다 깊고 단단하다. "길이 없으면 찾고, 그래도 없으면 닦아서 가라"는 그의 외침은, 쉽게 포기하고 환경을 탓하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심어준다. 인생이라는 타석에서 삼진을 당할까 두려워 방망이를 내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김성근 감독이 당신의 등 뒤에서 "다시 트라이(Try)!"라고 외쳐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