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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와 마음의 치료』(동서방 기독교 문화연구회) 리뷰/요약


『초대교회와 마음의 치료』: 교부들의 영혼 치유와 신학적 통찰

1. 마음의 병, 보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과 교회의 역할

현대 사회와 교회는 극심한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외적 갈등보다 더 심각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 즉 영혼의 내적 갈등이다. 고대 교부들은 마음(카르디아, καρδία)을 인간의 중심으로 보았으며,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철학자와 의사들이 영혼의 치료자를 자처했던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야말로 진정한 ‘영적 병원’이며 목회자가 ‘영혼의 의사’임을 강조했다. 이 책은 ‘치료자 그리스도(Christus Medicus)’를 중심으로 동서방의 대표적인 교부들인 요한 크리소스톰, 아우구스티누스, 이그나티우스가 제시한 영혼의 치료법을 탐구한다.

2. 요한 크리소스톰과 과시욕 -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배정훈)

2.1.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비와 신앙의 본질

4세기 동방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안디옥의 심각한 빈부 격차 속에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비(구제)를 신앙의 최고 덕목으로 강조했다. 그는 부(富) 자체는 중립적일 수 있으나, 대다수의 부가 불의와 연결되어 있고 소수에게 독점된 현실을 비판했다. 요한에게 부자들은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이며, 부는 가난한 자들과 나누기 위해 잠시 맡겨진 것이다. 구제는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구원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자비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2.2. 헛된 영광(Vainglory): 머리 여러 개 달린 괴물

요한은 구제와 같은 선행을 실천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적으로 ‘헛된 영광(허영심, κενοδοξία)’을 지목했다. 이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선행을 하는 과시욕이다.

  • 영혼의 질병: 헛된 영광은 가장 심한 영혼의 병이자 영적 폭군이며 광기(mania)이다.

  • 교만의 뿌리: 허영은 교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죄의 요새이자 뿌리가 된다.

  • 다양한 변장: 요한은 이 악덕을 ‘머리가 많은 괴물(키마이라, 스킬라 등)’에 비유했다. 권력이나 사치뿐만 아니라 구제, 금식, 기도와 같은 거룩한 선행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2.3. 자기 과시와 천국 보상의 파괴

요한은 당시 로마 제국의 ‘후원자 제도(euergetism)’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 로마 사회에서는 부자가 도시에 기부하고 그 대가로 대중의 찬사와 명예(동상, 면류관 등)를 얻는 호혜적 관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세상의 칭찬을 구하는 행위가 천국의 상급을 파괴한다고 경고했다.

  • 좀과 도둑: 헛된 영광은 천국에 쌓아 둔 보물을 갉아먹는 좀이자 도둑이다. 아무도 훔칠 수 없는 하늘의 보물을 스스로 파괴하게 만든다.

  • 이중 손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구제하는 자는 하나님께 받을 상을 잃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로부터도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다.

2.4. 치유책: 은밀함과 천국의 대극장

요한은 허영심이라는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다.

  • 은밀한 구제: 구제의 기술(Techne)을 최고의 교사인 하나님께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 성례로서의 구제: 구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례(Mysterion)이다. 따라서 자기 과시로 이 거룩한 의식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 천국의 극장(Theater): 요한은 로마의 공공 기부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변혁하여 ‘하나님의 후원 제도’를 제시했다. 지금 사람들의 칭찬을 포기하고 은밀하게 행하면, 마지막 날 온 우주와 하나님이 지켜보는 ‘천국의 대극장’에서 영광스러운 면류관과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헛된 영광을 치료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이다.

3. 탐욕으로 갈등하는 영혼 - 아우구스티누스와 영혼의 치료 (우병훈)

3.1.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혼론

서방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신학을 전개했다. 그는 영혼을 물질로 보았던 초기 견해를 수정하여, 영혼은 비물질적 실체이며 하나님과 유사하지만 피조물로서 가변성을 지닌 존재라고 정의했다.

  • 영혼의 정의: 영혼은 육체를 지배하기 위해 합쳐진 이성적 실체이며, 육체의 모든 부분에 전체로 존재한다.

  •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영혼의 최고 행복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분과 연합하는 데 있다.

3.2. 갈등하는 영혼과 탐욕(Concupiscentia)

영혼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한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 사랑의 질서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탐욕(concupiscentia)’이라고 불렀다.

  • 탐욕의 본질: 탐욕은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왜곡된 의지의 경향성이다. 이는 원죄의 형벌이자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결과이다.

  • 내적 분열: 탐욕으로 인해 인간의 의지는 분열된다. 『고백록』에서 그는 배 서리 사건과 성적 탐닉을 통해, 죄를 짓고 싶지 않은 ‘새 의지’와 습관에 묶인 ‘옛 의지’가 충돌하여 영혼이 찢겨지는 고통을 묘사했다.

  • 아크라시아(Akrasia): 선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의지의 나약함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태이다.

3.3. 치유의 은혜

아우구스티누스는 갈등하는 영혼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강조했다. 탐욕은 율법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오직 은혜로만 극복된다.

  1. 세례: 세례를 통해 원죄의 죄책이 씻겨지고 탐욕의 힘이 꺾인다. 비록 탐욕의 잔재는 남지만, 지배력을 잃게 된다.

  2. 하나님의 말씀(설교): 설교자는 영혼의 의사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서 말씀을 통해 회심했듯이, 말씀은 영혼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강력한 치료제이다.

  3. 탐욕 그 자체의 역설: 역설적으로 탐욕은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은혜의 약’을 간절히 찾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은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치료하여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자발적으로 사랑하게 만듦으로써 참된 자유와 행복을 회복시킨다.

4. 갈등하는 영혼을 본질로 치유하는 이그나티우스의 성찬론 (조윤호)

4.1. 영지주의의 도전과 영혼의 갈등

속사도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서 영지주의(Gnosticism)와 가현설(Docetism)이라는 이단과 싸웠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을 부인했다. 그들은 구원을 영혼이 육체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는 교회 내에 심각한 교리적, 영적 갈등을 일으켰다.

4.2. 성찬론: 갈등 치유의 핵심 처방

이그나티우스는 순교를 위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쓴 일곱 서신을 통해, 이단에 맞서고 영혼을 치유하는 핵심 도구로 ‘성찬’을 제시했다. 그의 성찬론은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기독론과 구원론의 결정체였다.

  • 불멸의 약: 이그나티우스는 성찬을 “불멸의 약(pharmakon athanasias)”이자 “죽음을 막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지속적인 생명을 얻는 해독제”라고 불렀다.

  • 성육신의 실재성 확증: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이다. 이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가현설)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성찬에 참여함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셨고, 실제로 고난받으셨으며, 부활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4.3. 성찬이 제시하는 세 가지 치유와 교훈

  1. 구원의 효력: 성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가져다주는 죄 사함과 영생불멸의 효력을 신자에게 전달한다. 이는 영지주의적 지식(Gnosis)이 아니라 보혈의 능력이 구원을 이룸을 확증한다.

  2. 참된 일치와 연합: 영지주의가 분파와 분열을 일으키는 반면, 성찬은 감독을 중심으로 교회를 하나로 묶는다. “한 빵을 뗌”으로써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회 공동체와 일치를 이룬다.

  3. 참된 제자도: 이그나티우스에게 성찬은 순교와 연결된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를 위한 순수한 떡 덩어리”가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다. 성찬은 고난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참된 제자의 길을 걷게 하는 영적 양식이다.




[서평] 초대교회의 지혜에서 찾는 현대인의 마음 치유 처방전

: 요한 크리소스톰, 아우구스티누스, 이그나티우스가 전하는 영혼의 회복

오늘날 우리는 ‘마음의 병’을 앓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울증, 불안, 중독, 그리고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현대인의 영혼은 피폐해져 간다. 서점가에는 심리학 서적과 힐링 에세이가 넘쳐나지만, 근원적인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초대교회와 마음의 치료』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심리학이나 처세술이 아닌, 기독교 신앙의 뿌리인 ‘교부 신학’에서 영혼 치유의 길을 모색한다.

저자들(배정훈, 우병훈, 조윤호)은 동서방 교회를 대표하는 세 명의 거장, 요한 크리소스톰, 아우구스티누스, 이그나티우스를 소환하여 그들이 당대의 문제와 어떻게 씨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탁월함은 고대 텍스트를 단순히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혼의 치료(Therapy of the Soul)’라는 관점에서 현대적 적용점을 이끌어낸다는 데 있다.

허영심과 과시욕의 치료제: 요한 크리소스톰

배정훈 교수가 다룬 요한 크리소스톰의 ‘과시욕’ 분석은 SNS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뼈아픈 통찰을 제공한다. 자신의 선행과 삶을 전시하고 ‘좋아요’와 인정에 목매는 현대인의 모습은 요한이 지적한 “머리 여러 개 달린 괴물”인 헛된 영광(Vainglory)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요한은 과시욕이 천국의 상급을 파괴하는 ‘도둑’이라고 경고하며,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과 ‘천국의 대극장’을 바라볼 것을 처방한다. 이는 타인의 인정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선행의 참된 동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특히 구제를 단순한 윤리가 아닌 ‘성례’로 격상시키고, 이를 통해 영혼의 질병을 치유하려는 접근은 목회적 관점에서 매우 실제적이다.

탐욕과 내적 갈등의 해부: 아우구스티누스

우병훈 교수가 소개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혼론은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의지의 분열과 갈등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이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탐욕(concupiscentia)과 치열하게 싸우며 발견한 해답이 바로 ‘은혜’임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지를 고칠 수 없다는 절망의 끝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그 은혜가 어떻게 설교와 성례를 통해 우리 영혼에 작용하여 탐욕을 밀어내는지에 대한 설명은 신학적으로 깊이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큰 위로를 준다.

본질로 돌아가는 회복: 이그나티우스

조윤호 박사가 다룬 이그나티우스의 성찬론은 이단과 거짓 교리가 난무하는 혼란한 시대에 교회가 붙잡아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육체적 삶을 경시했던 영지주의의 위협 앞에서, 이그나티우스는 성찬을 “불멸의 약”으로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실제성을 방어했다. 이는 현대 교회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성찬이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실제적인 ‘해독제’라는 교부의 외침은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에 경종을 울린다.

영혼의 병원을 찾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이 책은 학문적인 엄밀함을 유지하면서도, 목회적 따뜻함과 실천적 지침을 놓치지 않는다. 교부들은 단순히 책상에 앉아 신학을 논한 학자들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고 치유했던 현장의 목회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글에는 인간 이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혼을 살리는 생명력이 담겨 있다.

『초대교회와 마음의 치료』는 목회자들에게는 설교와 목양의 깊이를 더해줄 신학적 자원을, 평신도들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영적 성숙을 이루게 할 귀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마음이 아픈 시대, 값싼 위로가 아닌 진정한 영혼의 치유를 갈망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교부들이 처방하는 ‘오래된 미래’의 지혜가 오늘 우리의 병든 마음을 고치고, 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