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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한병철) 리뷰/요약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1. 고통공포(Algophobie)와 진통 사회의 도래

오늘날의 사회는 '고통공포(Algophobie)'가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고통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이 강박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고통에 대한 내성이 급격히 약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고통공포는 개인의 신체를 넘어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갈등이나 논쟁은 피해야 할 것이 되며, 정치는 고통스러운 대결 대신 '중도'라는 이름의 진통제로 대체된다. 한병철은 이러한 사회를 '진통사회(Palliativgesellschaft)'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고통은 더 이상 해석되거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오직 의학적으로 제거해야 할 기술적 결함으로 취급된다.

2. 패러다임의 전환: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과거의 사회(규율사회)와 현대 사회(성과사회)는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 규율사회(Disciplinary Society): 고통은 지배와 훈육의 수단이었다. 명령과 금지는 고통을 통해 주체에게 각인되었다. 에른스트 융어가 말한 '노동자'나 '영웅'은 고통을 통해 단련되는 존재였다.

  • 성과사회(Achievement Society): 오늘날 우리는 긍정성의 사회에 살고 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이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을 대체했다. 여기서 고통은 약함의 신호이자, 최적화 실패의 증거로 간주된다.

성과사회는 고통을 숨기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 '좋아요(Like)' 문화는 이러한 진통사회의 징표다. 모든 것은 매끄럽고 만족스러워야 하며, 예술조차도 갈등이나 모순 없이 소비되기 좋게 다듬어진다. 이는 예술이 가진 부정성, 즉 낯설게 하고 충격을 주는 힘을 거세시킨다.

3. 행복 강요와 긍정 심리학의 비판

진통사회는 '행복 강요'의 사회다. 행복은 새로운 지배 공식이 되었다. 긍정 심리학은 고통마저도 성과를 위한 자원으로 재해석한다(회복탄력성 등). 이는 인간을 고통에 무감각하고 언제나 행복한 '성과 주체'로 개조하려는 시도다. 미국의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사태는 이러한 행복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표현이다. 고통 없는 삶을 헌법적 권리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약물은 사회적 모순으로 인한 고통을 덮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행복 장치는 고통을 개인화하고 탈정치화한다. 사회적 구조에서 오는 고통조차 개인의 심리적 문제나 실패로 치부된다. 따라서 혁명 대신 우울이, 사회 비판 대신 자기 최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병철은 "나의 피로는 혁명을 막는 최상의 예방약"이라고 일갈한다.

4. 생존: 바이러스와 적나라한 삶

팬데믹(코로나19) 상황은 진통사회가 '생존사회'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생존의 절대화: 바이러스의 공포 앞에서 '좋은 삶'은 '생존'을 위해 유예된다. 건강이 최고의 가치로 등극하며, 삶은 생물학적 과정으로 축소된다.

  • 죽음에 대한 공포: 고통공포는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모든 것(여행, 축제, 종교 모임 등)을 희생한다.

  • 격리 사회: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격리 공간에 가둔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강제노동수용소의 형태를 띠며, 타자는 잠재적인 바이러스 운반자로서 배제된다.

이 사회는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좀비'의 사회와 같다. 자본주의는 생존을 절대화하며, 죽음과 고통이 없는 삶을 추구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삶의 형이상학적 차원을 제거하고 삶을 외설적인 것으로 만든다.

5. 고통의 무의미함과 서사의 상실

현대 사회에서 고통은 '무의미함'으로 경험된다. 과거에는 종교나 영웅적 서사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예: 기독교의 순교, 영웅적 희생). 그러나 탈서사적 시대인 오늘날, 고통은 그저 무의미한 의학적 질병일 뿐이다.

  • 테스트 씨 vs 아빌라의 테레사: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는 고통 앞에서 언어를 잃고 무의미한 육체적 고통만을 느낀다. 반면, 아빌라의 테레사(신비주의자)에게 고통은 신과의 에로틱한 만남이자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서사였다.

  • 서사의 치유력: 벤야민이 말했듯, 이야기는 치유의 힘을 가진다. 그러나 정보와 계산이 지배하는 오늘날, 고통은 이야기로 흘러가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갇힌다.

  • 과민성: 의미를 잃은 고통은 더 참기 힘들다. 우리는 '공주와 완두콩 증후군'처럼 아주 작은 불편함(완두콩)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과민한 주체가 되었다.

6. 고통의 간지(The Cunning of Pain)

고통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융어의 말처럼 고통은 '고통의 간지'를 부린다. 고통을 인공적으로 차단하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산란하는 빛"처럼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자본으로 축적된다.

  • 만성 통증과 우울: 진통제로 선명한 고통을 지웠지만, 대신 희석된 형태의 만성 통증과 우울이 사회를 덮쳤다.

  • 자해와 자상: 고통이 억압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해(자상)를 하거나 익스트림 스포츠에 몰두한다. 이는 무감각한 삶에 대한 필사적인 저항이다.

  • 접촉의 상실: 만성 통증은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의 몸이 보내는 '접촉에 대한 갈구'일 수 있다.

7. 진실로서의 고통

고통은 진실현실을 묶어주는 닻이다.

  • 진실의 육화: "진실만이 고통을 준다." 사랑이 끝났을 때 느끼는 고통은 그 사랑이 진실했음을 증명한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진실과 거짓, 사랑과 단순한 소비를 구별할 수 없다.

  • 현실 감각: 고통은 저항으로서 현실을 지각하게 한다. 모든 것이 매끄러운 디지털 세계, '좋아요'의 세계는 현실을 탈각시킨다. 고통스러운 충격만이 우리를 가상에서 깨워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 자기 인식: 고통은 자아의 윤곽을 그려준다. "나는 고통을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고통 없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내 것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8. 고통의 시학(Poetics)과 변증법

예술과 정신은 고통을 먹고 자란다.

  • 예술의 원천: 카프카, 프루스트, 슈베르트 등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고통은 창작의 근원이었다. 그들은 고통을 통해 언어를 길어 올리고,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진통사회는 이러한 고통의 시학을 소멸시키고, 얕은 만족감을 주는 소비재로서의 예술만을 남긴다.

  • 사유의 깊이: 헤겔과 니체에게 고통은 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고통은 정신을 분열시키고, 그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높은 인식으로 나아가게 한다.

  • 인공지능과의 차이: 인공지능은 계산할 뿐 사유하지 않는다. 사유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몸에서만 나온다. 고통의 부정성이 없기에 AI에게는 '경험'도 '역사'도 없다.

9. 고통의 존재론과 윤리학

  • 존재론: 하이데거에게 고통은 존재의 열림(Clearing)과 관계된다. 고통은 인간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자'와 연결해주는 틈이다. 디지털 질서는 모든 것을 투명하고 가용 가능한 것(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존재의 신비를 없앤다.

  • 윤리학: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은 윤리의 기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와 진통사회는 타자를 소비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시켜 '타자성'을 제거한다. 타자의 고통에 충격을 받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나의 안락함이 깨지는 고통(수동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포르노)로 소비할 뿐, 진정한 연대나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10. 마지막 인간의 시대

한병철은 니체가 말한 '마지막 인간'이 바로 오늘날 진통사회의 인간상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 인간은 건강과 안락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고통이나 위험을 감수하는 영웅적 삶을 경멸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고통 없는 편안함을 위해 생명정치적 감시(디지털 감시)를 받아들인다. 자유보다 생존과 안락함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를 넘어 아예 고통 자체를 생물학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고통과 죽음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이 선취된다.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자는 죽음 또한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고통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좀비의 삶이다."




[서평] 고통을 잃어버린 시대,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는가?

1. 진통제에 중독된 현대 사회

《피로사회》를 통해 성과 주체의 자기 착취를 예리하게 포착했던 한병철 교수가 이번에는 현대 사회의 병리적 징후로 '고통의 상실'을 지목했다. 신간 《고통 없는 사회(Palliativgesellschaft)》는 우리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고통을 회피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해부한다. 현대인은 '좋아요'를 누르며 갈등 없는 소통을 즐기고, 약간의 우울감도 긍정 심리학이나 약물로 즉각 소거하려 든다. 저자는 묻는다. "고통 없는 삶이 과연 살아있는 삶인가?" 이 책은 진통제(Palliative)로 연명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서이자, 잃어버린 고통의 가치를 복권시키려는 철학적 시도다.

2. '알고포비아'와 민주주의의 위기

가장 인상 깊은 통찰 중 하나는 고통공포(Algophobie)가 정치의 영역까지 잠식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치고 논쟁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는 이러한 갈등을 '불화'로 간주하고, 매끄러운 합의나 '중도'라는 이름의 진통제를 처방하기 급급하다. 한병철은 이를 '탈민주주의'라고 비판한다. 고통스러운 논쟁이 사라진 곳에는 진정한 변화나 개혁도 없다. 오직 현상 유지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무기력감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다름을 견디지 못하고 '차단'과 '언팔로우'로 일관하는 디지털 소통 방식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3. 긍정성의 폭력과 서사의 종말

이 책은 현대의 '긍정 심리학'과 '행복 이데올로기'를 맹렬히 비판한다. "넌 할 수 있어", "행복은 네 마음먹기에 달렸어"라는 메시지는 고통의 사회적 원인을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고통은 성찰의 계기가 아니라, 빨리 제거해야 할 '오류'가 된다. 저자는 고통이 의미를 잃어버린 현실을 '서사의 상실'과 연결한다. 과거에는 고통이 영웅적 서사나 종교적 구원의 과정으로 해석되었지만, 이제는 그저 "아!" 하는 외마디 비명이나 의학적 수치로만 남았다. 벤야민을 인용하며 "이야기가 흐르면 고통은 치유된다"고 말하는 부분은, 왜 현대인이 만성적인 우울과 공허함에 시달리는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고통을 겪어내며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저 고통을 마취시키고 있을 뿐이다.

4. 고통: 진실, 사랑, 그리고 예술의 조건

한병철은 역설적으로 "고통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구원은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뜻한다.

  • 진실과 사랑: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 아픈 것은 그 사랑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고통 없이는 깊은 사랑도, 진실한 관계도 불가능하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쿨한' 관계는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 예술과 사유: 인공지능(AI)은 계산할 수 있지만 사유할 수 없다. 사유는 고통을 느끼는 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통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하는 예술의 원동력이다.

책을 읽으며 팬데믹 기간 우리가 외쳤던 "생존"이 과연 "좋은 삶"이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타자를 격리하고, 삶의 축제를 멈추고, 벌거벗은 생명만을 유지하려 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좀비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5. 고통을 마주할 용기

《고통 없는 사회》는 읽는 내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진실, 즉 "삶은 본래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 고통을 껴안을 때 비로소 삶이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통을 찬양하는 매저키즘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오히려 우리를 더 병들게 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긍정 과잉, 힐링 중독, 그리고 디지털 마취에 빠진 현대인에게 이 책은 쓰지만 반드시 필요한 각성제다. 진정한 행복은 고통을 배제한 상태가 아니라, 고통을 겪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속에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 매끄러운 가상이 아니라, 거칠고 아프지만 생생한 현실을 마주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