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김기현) 리뷰/요약

 

김기현 목사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사순절, 십자가 위 일곱 말씀(가상칠언)의 깊은 묵상

1. 책 소개 및 전체 개요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는 김기현 목사가 집필한 사순절 묵상집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남긴 일곱 마디 말씀, 즉 '가상칠언(架上七言)'을 40일 동안 묵상할 수 있도록 구성된 책입니다. 저자는 십자가를 복음의 핵심이자 그 자체로 정의하며, 어떤 신학이나 설교도 십자가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해야 그 실체가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성경 주해를 넘어, 십자가의 사건을 오늘날 우리의 관계, 가정, 고통, 그리고 죽음과 연결합니다. 책의 구조는 '용서'에서 시작하여 '낙원과 안식', '가정과 관계', '고통과 의미', '목적 성취', 그리고 마침내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 흐름을 따라가며 십자가의 고난이 어떻게 사랑으로 승화되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2.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제1언: 용서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34)

새로운 삶의 출발점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첫 말씀은 놀랍게도 '용서'였습니다. 십자가라는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자리에서 터져 나온 첫마디가 저주나 원망이 아닌 용서였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마디가 "회개하라"였듯, 마지막 사역의 정점 또한 죄 용서에 있었습니다.

  • 용서의 어려움과 예수님의 고뇌: 우리는 흔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용서가 쉬웠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예수님에게도 용서는 치열한 투쟁이었음을 지적합니다. "용서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역설적으로 용서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을 반영합니다. 주님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 억울한 마음과 싸우며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로 용서를 의탁하신 것입니다.

  • 알지 못함에 대한 자비: 예수님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메시아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용서는 상대의 무지를 깨우치고, 그 죄의 실체를 드러내어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행위입니다.

  • 용서와 정의: 용서는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는 가해자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그의 잘못을 명확히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시작점입니다. 나아가 용서는 피해자를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2언: 구원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용서를 통과한 자가 이르는 곳, 낙원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회개한 한 강도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첫 번째 말씀인 용서가 선행되었기에 낙원이라는 약속이 가능했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지옥과 같기 때문입니다.

  • 지금, 여기의 낙원: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라는 미래의 구원을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오늘"을 선언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죽어서 가는 천당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바로 이 순간, 고통과 원수들이 가득한 이 현실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바로 낙원입니다.

  • 함께함의 위로: 예수님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철저히 외로운 자리였지만, 주님은 그 고통의 자리에서조차 강도와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십자가 위라도, 빈 들이라도 낙원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수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라면 그곳을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제3언: 관계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다" (요 19:26-27)

십자가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창조합니다. 세 번째 말씀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연결해 주는 장면입니다. 이는 단순한 효도를 넘어 새로운 영적 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 독립된 존재로서의 존중: 예수님은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무례한 호칭이 아니라, 마리아를 누구의 어머니나 아내가 아닌 하나님 앞의 단독자이자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표현입니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할 때 시작됩니다.

  • 확장된 가족: 예수님은 혈연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 공동체, 즉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네 어머니다", "네 아들이다"라는 말씀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도 십자가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 서로를 돌보라는 명령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타인을 환대하는 확장된 가족애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4언: 고통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 27:46)

버림받음의 절규, 고통받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네 번째 말씀은 십자가 고통의 절정입니다. 이는 육체적 고통을 넘어,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에서 오는 영적 고통의 극치입니다.

  • '왜'라고 묻는 신앙: 예수님은 고통 앞에서 침묵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어찌하여"라고 물으셨습니다. 신앙은 의심 없는 맹신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따져 묻고 씨름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십자가는 '왜'라는 질문이 허용되는 곳입니다.

  • 고통받는 하나님: 전지전능한 신이 고통당한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 속으로 들어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버림받는 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모르지 않으시며, 친히 그 고통을 겪으셨음을 증명합니다.

  • 죄에 대한 심판: 이 절규는 또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제5언: 인간성 - "내가 목마르다" (요 19:28)

육체적 고통과 영적 갈망의 이중주입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예수님의 참된 인간성을 보여줍니다. 모든 물을 만드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물을 구걸하는 이 장면은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고통당하셨음을 증명합니다.

  • 육체적 고통의 직시: 예수님은 고상한 척 고통을 초월한 척하지 않으셨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육체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체적 필요와 고통 또한 주님께서 깊이 공감하신다는 위로가 됩니다.

  • 말씀 성취와 영적 목마름: 동시에 이 목마름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단순히 물에 대한 갈증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 하는 사랑의 갈증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목말라하셨습니다.

  • 의미를 찾는 삶: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미'를 찾으셨기에 그 고통을 견뎌내셨습니다.

제6언: 성취 - "다 이루었다" (요 19:30)

패배처럼 보이는 십자가, 그곳이 승리의 자리입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완성의 선언입니다. 겉보기에는 처참한 실패이자 죽음인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 성공이 아닌 성취: 세상의 기준에서 십자가는 실패입니다. 부와 권력, 명예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인 대속의 사역을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 제물의 완성: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자신을 온전히 드려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습니다. 더 이상 동물의 피 제사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을 희생시키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타인을 위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사랑의 완성: 십자가는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죽여서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제7언: 의탁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죽음을 넘어선 안식과 신뢰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은 평안한 안식으로의 초대입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승리의 함성을 지르신 후, 가장 안전한 아버지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맡기셨습니다.

  • 아버지의 손: 죽음은 모든 통제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쥐고 흔들지 않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빠 품에 거침없이 뛰어들 듯이 말입니다.

  • 죽음이 아닌 잠: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나 소멸이 아니라, 부활을 예비하는 안식이자 잠이었습니다.

  • 날마다 죽는 삶: 마지막 기도는 단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아를 죽이고 내 영혼을 주님께 의탁하는 '작은 죽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날마다 다시 사는 부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결론 및 적용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는 십자가가 단순히 2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나의 삶을 해석하고 지탱하는 능력임을 역설합니다.

  • 용서로 시작하여 죽음(맡김)으로 완성되는 십자가의 길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낙원으로 인도합니다.

  • 고난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남기는 통로가 됩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날마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의미를 찾고, 결국 하나님 손에 자신을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책은 사순절 기간 동안 매일 한 챕터씩 읽고, 쓰고, 기도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울림과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공하는 훌륭한 가이드입니다.





[서평] 십자가, 고통의 심연에서 피어난 사랑의 결정체

1. 왜 다시 십자가인가?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는 너무나 익숙한 상징이다. 목걸이로, 귀걸이로, 교회 탑 위의 네온사인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함은 종종 본질을 가린다.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한다"고 했다. 십자가라는 렌즈를 통하지 않고는 기독교의 어떤 진리도 올바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사순절을 맞아 출간된 김기현 목사의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는 십자가의 일곱 말씀(가상칠언)을 통해 박제된 십자가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의 신비를 우리 삶의 자리로 소환한다.

2. 고통받는 인간, 고통받는 하나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고통'을 철저하게 직면하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십자가 고통 쯤은 초월적인 능력으로 쉽게 견뎠을 것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저자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와 "내가 목마르다"는 호소를 통해, 예수님이 겪으신 처절한 육체적, 영적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저자는 묻는다.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라는 우리의 억울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 역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물으셨음을 상기시킨다. 고통 없는 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뒷짐 지고 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 한복판으로 들어와 함께 찢기고 목말라하는 하나님. 이 '고통받는 하나님'의 모습이야말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 입은 치유자이시기 때문이다.

3. 관계의 회복: 용서에서 낙원으로

책은 가상칠언의 순서를 따라 묵상의 깊이를 더해가는데, 그 시작이 '용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용서 없이는 예수도 없다"고 단언한다. 십자가의 첫마디가 용서였던 것은, 용서만이 지옥 같은 원수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낙원'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낙원과 구원의 개념을 '관계'와 '지금 여기'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강도에게 약속한 낙원은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오늘'이었다. 또한, 마리아와 요한을 새로운 모자(母子) 관계로 묶어주신 말씀(제3언)을 통해, 혈연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를 십자가의 열매로 제시한다. 이는 파편화되고 해체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가정과 교회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 십자가는 수직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의 혁명을 일으킨다.

4. 성공이 아닌 성취, 그리고 안식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성공'을 강요한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의 기준에서 십자가는 처참한 실패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발가벗겨져 죽임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제6언 "다 이루었다"를 통해 성공(Success)과 성취(Accomplishment)를 예리하게 구분한다.

예수님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곧 대속의 사랑을 '완성'하셨다. 이것은 목적 없는 삶을 표류하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인생의 가치는 내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 냈느냐에 달려 있음을 깨우쳐 준다. 그리고 그 치열한 삶의 끝은 허무한 소멸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영혼을 맡기는 평안한 안식(제7언)임을 보여준다. 죽음조차도 신뢰와 맡김의 행위로 승화시키는 십자가의 결말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선물한다.

5. 고난은 결국 사랑을 남긴다

책의 제목처럼, 십자가의 그 모진 고난은 결국 '사랑'을 남겼다. 저자 김기현 목사는 특유의 통찰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더해(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헨리 나우웬 등을 인용하며)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사건을 오늘 나의 사건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이 책은 사순절 기간 동안 곁에 두고 매일 조금씩 읽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권면처럼 "쓰고, 묵상하고, 실행"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을 바라는 값싼 은혜가 만연한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깊이 동참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당신의 고난도 결국은 사랑을 남길 것임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