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신약의 인문학』(강태광) 리뷰/요약

 

『신약의 인문학』: 역사와 문화로 뚫어보는 예수님과 바울의 생애

1. 성경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인문학적 배경

신약 성경은 진공 상태에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헬레니즘(그리스 문화)과 헤브라이즘(히브리 신앙)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융합하던 1세기의 역사적 현장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저자 강태광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신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유대, 헬라, 로마 문화를 방대한 사료(요세푸스, 타키투스 등)를 통해 재조명합니다.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읽는 것을 넘어, 당시의 지리, 역사, 정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예수님과 바울의 메시지가 가진 본연의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인문학으로 살피는 신약의 배경: 침묵기 400년의 비밀

말라기 이후 마태복음이 시작되기 전까지 약 400년의 시간은 단순한 공백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신구약 중간기'는 유대 민족에게 격동의 세월이었으며, 신약의 무대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시기였습니다.

  • 수전절과 마카비 혁명: 신약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수전절(하누카)'은 구약에는 없는 절기입니다. 이는 헬라 제국(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고 돼지 피를 뿌리는 등 극심한 탄압을 자행했을 때, 제사장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 유다 마카비가 일으킨 혁명에서 기원합니다. 이들은 3년 만에 성전을 탈환하고 정결하게 하여 봉헌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것이 수전절입니다. 이후 하스몬 왕조가 들어서며 유대인은 잠시 독립을 누리지만, 내부 권력 다툼으로 결국 로마의 개입을 불러오게 됩니다.

  • 헤롯 왕조의 등장: 하스몬 왕조의 몰락 틈바구니에서 이두메(에돔) 출신의 헤롯 가문이 등장합니다. 헤롯 대왕은 로마의 정치적 격변기(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속에서도 탁월한 처세술로 살아남아 유대의 왕이 됩니다. 그는 정통성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는 등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 했으나, 끊임없는 의심으로 아내와 아들들까지 처형하는 잔혹성을 보였습니다.

  • 70인역(Septuagint)과 회당: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은 초대 교회 선교의 결정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바벨론 포로기부터 시작된 '회당'은 유대인 성인 남자 10명만 있으면 세워질 수 있었으며, 예수님과 바울 사역의 핵심 거점이 되었습니다.

  • 유대 사회의 분파: 당시 유대 사회는 부활을 믿고 율법을 중시했던 '바리새파', 제사장 중심의 귀족 계급이자 현실 타협적이었던 '사두개파', 광야에서 금욕 생활을 했던 '에세네파', 그리고 로마에 무력으로 저항했던 '열심당' 등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3. 인문학으로 살피는 예수님의 생애: 역사 속의 그분

예수님의 생애는 신화가 아닌 구체적인 역사와 지리 위에서 펼쳐졌습니다.

  • 탄생과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자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곳입니다. 예수 탄생 당시 헤롯 대왕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새로운 왕'의 소식에 베들레헴 유아 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헤롯의 편집증적 잔혹성과 일치합니다.

  • 나사렛과 갈릴리: 나사렛은 구약이나 탈무드,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는 철저한 무명의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천대받는 '이방의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갈릴리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수자원, 그리고 해변길(Via Maris)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로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 가버나움의 중요성: 예수님 사역의 본거지였던 가버나움은 로마 세관과 군대 주둔지가 있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도시였기에 복음이 전파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 가이사랴 빌립보의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던 가이사랴 빌립보는 로마 황제 신전과 헬라의 판(Pan) 신전, 바알 신전 등 우상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우상이 압도하는 그곳에서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는 고백은, 세상의 헛된 신이 아닌 예수님만이 참된 주인임을 선포하는 강력한 도전이었습니다.

  • 사마리아와 수가성: 유대인들이 혐오하던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혼혈 정책으로 생겨난 아픈 역사를 가진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심산을 성지로 여기며 독자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인종, 종교, 성별, 윤리의 장벽을 넘어 수가성 여인을 만나심으로써 다문화 사역의 진수를 보여주셨습니다.

  • 십자가의 역사와 의미: 십자가형은 앗수르의 잔인한 처형 방식에서 기원하여 페르시아를 거쳐 로마에 정착된 사형틀이었습니다.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는 콘스탄틴 대제 이후 기독교의 승리와 사랑의 상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십자가는 단순한 나무 형틀이 아니라,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4. 인문학으로 살피는 사도 바울의 생애: 길 위의 신학자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확장시킨 바울의 생애는 치밀하게 예비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 준비된 사람 바울: 바울의 고향 '다소(Tarsus)'는 아테네,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당대 3대 교육 도시였으며, 스토아철학의 중심지였습니다 . 바울은 이곳에서 헬라 문화와 철학을 습득했고, 예루살렘에서는 당대 최고의 랍비 가말리엘 밑에서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이자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그는 이방 선교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 회심과 숨겨진 세월: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후, 바울은 바로 사역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사막과 다소에서 약 10~13년의 '숨겨진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은 그가 율법 중심의 구약관을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으로 재정립하는 숙성의 시간이었습니다.

  • 안디옥 교회와 선교의 시작: 최초로 이방인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는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리더십을 가진 이상적인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은둔하던 바울을 발탁하여 동역함으로써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 1차 선교여행 (구브로와 갈라디아):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키프로스)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며 사역의 주도권이 바나바에서 바울로 넘어갑니다. 이후 험준한 타우러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마가는 중도 하차하지만, 바울은 끈질기게 복음을 전합니다.

  • 예루살렘 회의: 이방인 개종자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 예루살렘 회의(AD 49년경)는 기독교 역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멍에를 지우지 말자"는 결론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분파를 넘어 세계 종교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2차 선교여행 (유럽으로의 확장): 성령의 인도로 아시아가 아닌 마케도니아(유럽)로 향한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 아테네에 이릅니다.

    • 빌립보: 로마의 직할 도시이자 퇴역 군인들이 거주하던 빌립보에서 바울은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웁니다.

    • 아테네(아덴): 헬라 철학의 심장부인 아테네 아레오파고스에서 바울은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논쟁합니다. 그는 헬라 시인(에피메니데스, 아라투스)의 시구를 인용하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로 하나님을 변증하는 탁월한 '눈높이 설교'를 선보입니다.

    • 고린도: 상업과 무역이 번성했으나 성적으로 타락했던 고린도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1년 6개월간 머물며 사역합니다.

  • 3차 선교여행 (에베소 사역): 3차 여행의 핵심은 '아시아의 빛' 에베소였습니다. 아데미 여신 숭배와 마술이 성행하던 이곳에서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통해 2년간 말씀을 가르쳤고, 이는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로마를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여를 보내며 벨릭스, 베스도 총독, 그리고 아그립바 2세 왕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탐욕스러운 벨릭스와 달리 합리적이었던 베스도 총독, 그리고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 아그립바 2세 앞에서 바울은 자신의 무죄와 복음을 변증하며 로마 황제에게 상소, 결국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5. 로마의 길(Via)을 통해 흐른 복음

로마가 건설한 40만 킬로미터의 도로는 군사적 목적이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복음 전파의 고속도로(Via Egnatia 등)로 사용하셨습니다 .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 헬라의 언어, 유대의 율법을 통합하여 당시의 '모든 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신약의 인문학>은 이처럼 역사와 문화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신약 성경의 세계를 생생하게 복원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을 입체적으로 읽는 눈을 열어줍니다.



[서평] 성경의 텍스트를 역사의 컨텍스트로 살아나게 하다

1. 2천 년의 간극을 메우는 다리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마주하는 가장 큰 장벽은 '시공간의 간극'이다. 21세기 한국의 독자가 1세기의 팔레스타인과 로마 제국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강태광 목사의 <신약의 인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탁월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건조한 교리나 추상적인 신학 용어 대신, 땀 냄새 나는 역사와 문화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는 고대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 그리고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신약 성경의 흑백 삽화에 천연색을 입혀준다.

2. 텍스트(Text) 뒤의 컨텍스트(Context)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성경 구절 뒤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이다. 첫째, 예수님의 사역을 지리적, 정치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했던 신앙고백이 왜 위대한지, 그곳이 로마 황제 숭배와 판(Pan) 신 숭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통해 설명한다. 우상이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서 "주는 그리스도"라고 외친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고백을 넘어선 목숨을 건 정치적 선언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또한, 가버나움이 단순한 어촌이 아니라 로마의 세관과 군대가 주둔했던 국제 무역 도시였음을 밝히며, 예수님의 '다문화 사역'이 가진 전략적 의미를 부각한다.

둘째, 바울 사역의 입체적 복원이다. 저자는 바울이 걸었던 '에그나티아 가도'와 그가 방문했던 도시들의 특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서 바울이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나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글을 인용하며 설교했다는 분석은 바울이 얼마나 준비된 지성인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무조건적인 '믿음'만을 강요하는 현대의 일부 풍토에, 세상의 문화와 지성을 존중하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뚫어내는 '변증적 설교'의 모델을 제시한다.

셋째, 헤롯 가문에 대한 명쾌한 정리다. 성경을 읽다 보면 수많은 '헤롯'들이 등장해 혼란을 준다. 저자는 헤롯 대왕부터 시작해 아켈라오, 안디바, 빌립, 아그립바 1세와 2세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헤롯 가문의 가계도와 그들의 정치적 야망, 그리고 기독교 박해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3. 블로거와 설교자를 위한 보물창고

이 책은 단순히 읽고 넘기는 책이 아니라, 옆에 두고 계속 참고해야 할 '핸드북'에 가깝다. 특히 성경 배경 지식이 필요한 목회자나, 성경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자 하는 평신도 리더들에게 유용하다.

  • 풍부한 사료 인용: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유대 전쟁사>를 비롯해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등 당대 역사가들의 기록을 적재적소에 인용하여 성경 내용의 역사적 신빙성을 높여준다.

  • 현장감 넘치는 설명: 저자가 직접 탐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각 도시의 유적(원형 극장, 신전 터, 수로 등)을 묘사하여, 마치 성지순례를 하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한다.

4. 아쉬운 점과 제언

방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일부 챕터에서는 정보의 나열이 다소 숨 가쁘게 느껴질 수 있다. 독자가 지도를 곁에 두고 읽는다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또한, 인문학적 배경 지식이 풍부하지만, 이를 현대적인 삶의 적용점으로 연결하는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자가 팩트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묵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다.

5. 성경을 읽는 새로운 눈

<신약의 인문학>은 성경을 '종교 경전'의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인류의 역사'라는 큰 강물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헬레니즘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헤브라이즘의 정체성을 지키며, 로마의 길을 통해 생명의 복음을 전했던 초대 교회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예수님과 바울이 걸었던 길, 그들이 만났던 사람들, 그들이 싸웠던 문화적 도전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묻게 만드는 책이다. 성경의 행간을 역사적 상상력과 팩트로 채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당신은 성경의 텍스트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