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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의 바울』(정승우) 리뷰/요약


 

📖 정승우 저, <새 시대의 바울> 상세 요약

정승우 저자의 <새 시대의 바울>은 사도 바울을 추상적인 교리서의 저자가 아닌,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활동한 '실천 운동가'이자 '목회자'로 재조명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어거스틴과 루터로 대표되는 '내성적 양심'과 개인의 죄 문제로 바울을 해석해 온 전통적인 시각이 시대착오적일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대신 이 책은 바울의 서신들이 체계적인 신학 논문이 아니라, 그가 세운 초기 가정교회들이 직면한 구체적인 문제들(예: 유대인-이방인 갈등, 로마 제국과의 관계)을 해결하기 위해 쓰인 '상황적 문건(occasional documents)'임을 강조합니다.

🏛️ 관념적 신학자를 넘어 실천 운동가로

이 책의 핵심은 바울을 도서관의 학자가 아닌, 차가운 로마의 감옥과 시끌벅적한 시장 바닥에서 활동했던 현장 운동가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신학은 로마 제국의 억압적 질서에 맞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하나님의 정의라는 '새 시대'의 대안적 공동체를 꿈꾼 급진적 사상이었습니다.


📝 주요 내용 요약

1. '오래된 초상' 비판: 역사적 바울 찾기 (1장)

  • 전통적 바울상의 한계: 저자는 '죄로 고뇌하는 바울'이라는 이미지가 바울 자신이 아닌, 4세기 어거스틴이나 16세기 루터의 실존적 번민이 투영된 것일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1세기의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바울은 현대인과 같은 개인적, 심리적 자아를 지니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 다메섹 체험의 재해석: 바울의 다메섹 체험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회심(conversion)'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와 분리된 독립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오히려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은 '소명(calling)' 또는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인 크리스천들의 입장으로 돌아선 '전향(turning)'으로 이해됩니다.

  • 바울과 예수의 관계: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행적(비유, 기적 등)을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의 편지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보도할 목적이 아니었고 , 이미 구전 전승을 통해 예수를 알고 있던 공동체에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2. 바울과 그레코로만 세계: 수사학과 문화 (2장)

  • 도시의 선교사: 바울은 갈릴리 농촌에서 활동한 예수와 달리, 로마, 고린도, 에베소 등 그레코로만의 번화한 '도시'에서 활동했습니다.

  • 문화의 '번역자': 바울은 코이네 헬라어로 편지를 썼으며 , 당시 엘리트들이 사용하던 그리스-로마의 수사학(rhetoric), 특히 가상의 대화자와 논쟁하는 '디아트리베(diatribe)'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했습니다.

  • 일상의 언어: 이방인 청중을 위해 당시 유행하던 스토아 철학의 용어(양심, 자유, 자족 등) 나 고린도의 이스미안 경기(Isthmian game) 같은 체육 언어(달리기, 권투, 면류관)를 메타포로 활용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 다종교 상황: 바울은 아르테미스 숭배(에베소) , 미트라스 제의(다소) 등 다종교, 다문화 환경 속에서 비판적으로 대화하며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워나갔습니다.

3. 바울의 여성 동역자들: 급진적 평등 (3장)

  • '여성 억압자'라는 오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2)와 같은 구절은 모든 시대를 향한 보편적 명령이 아니라 , 당시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예배 상황(예언 등으로 인한 무질서)을 해결하기 위한 '상황적 권고'였다고 분석합니다.

  • 여성 리더와의 동역: 바울은 가부장적이었던 1세기 사회와 달리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동역했습니다.

    • 뵈뵈(Phoebe):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diakonos)'이자 바울의 '보호자(prostatis, 후원자)'로 불린 지도자였습니다.

    • 브리스가(Prisca): 남편 아굴라보다 이름이 먼저 언급되며(당시 이례적), 바울의 '동역자(sunergos)'로 불렸습니다.

    • 유니아(Junia): 바울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사도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아닌 "사도들 중에서 뛰어난" 여성 사도였다고 해석합니다.

  • 급진적 평등 선언: 바울 신학의 핵심은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라는 급진적 평등 선언이었습니다.

4. 로마서 다시 읽기: '상황적 편지' (4, 5, 6장)

  • 로마서의 저술 목적: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모든 것을 담은 '교리서'가 아닙니다. 이 편지는 스페인 선교를 계획하던 바울이 로마 교회의 후원을 얻기 위해 쓴 일종의 '외교적 서신'입니다.

  • 로마 교회의 갈등: 당시 로마 교회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AD 49년)으로 유대인들이 추방되었다가 네로 황제 즉위 후(AD 54년) 복귀하면서 , 기존의 다수파가 된 이방인 크리스천('강한 자')과 소수파가 된 유대인 크리스천('약한 자') 사이에 음식법, 안식일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 유대적 예수 강조: 바울이 로마서에서 유독 예수의 유대적 정체성("다윗의 혈통" , "할례의 추종자" )을 강조한 이유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의 반유대적 태도와 교만함을 견제하고(롬 11:18) , 양 그룹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목회적 전략이었습니다.

5. 칭의론의 재해석: 환대의 윤리와 반제국 메시지 (7장)

  • 칭의론의 본질: 칭의론(Justification by faith)은 개인의 실존적 구원 교리를 넘어, 유대인들의 '율법의 행위'(특히 할례, 음식법 등)라는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 이방인들을 차별 없이 공동체로 받아들이기 위한 신학적 논리였습니다.

  • 환대의 윤리: 칭의론은 곧 '율법'의 경계를 넘어 낯선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환대(Hospitality)의 윤리'입니다. 저자는 이를 데리다의 '무조건적 환대'와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와 연결합니다.

  • 반제국(Anti-Imperial) 메시지: 칭의론은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와 그 법(Iustitia)이 제공하는 '힘에 의한 평화(Pax Romana)'가 아닌 ,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무법적 정의(Outlaw Justice)' 와 은혜(선물)를 선포했습니다.

6. 아브라함의 재발견: 혈통을 넘어 믿음으로 (8장)

  • 바울은 유대인의 민족적 시조인 아브라함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합니다.

  • 그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창 17장)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창 15:6)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논증합니다.

  •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혈통의 조상'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며, 따라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이 될 수 있음을 변호했습니다.

7. 우리 시대의 바울: <레 미제라블>과 생태학 (10-12장)

  • 예술과 신학: 저자는 서양 회화(렘브란트, 카라바조 등) 와 영화를 통해 바울 신학을 현대적으로 조명합니다.

  • <레 미제라블>의 유비:

    • 자베르: 법, 질서, 행위를 절대시하는 '율법주의'를 상징합니다. 그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지 않는 죄'를 범합니다.

    • 장발장: 미리엘 주교의 무조건적인 '은총'과 '환대'를 통해 구원받고 , 타인(팡틴, 코제트 등 '비참한 자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복음'의 삶을 실천합니다.

  • 현대적 적용:

    • 코즈모폴리터니즘: 인종, 계급, 성의 경계를 허문 바울은 다문화 시대의 '세계시민(cosmopolitanism)' 사상의 원형입니다.

    • 생태학적 정의: 로마서 8장의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 는 구절을 통해, 바울의 구원론이 인간 중심을 넘어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우주적(cosmic) 화해'임을 강조하며, 이를 현대 생태 위기의 신학적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 <새 시대의 바울> 서평: 낡은 교리를 넘어, 살아있는 급진주의자를 만나다

정승우의 <새 시대의 바울>은 한국 독자들에게 "우리가 알던 바울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흥미롭고 도발적인 책입니다. 이 책은 바울신학을 둘러싼 최근의 국제적 학술 논의(일명 '바울에 대한 새 관점')를 한국의 일반 독자와 목회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명쾌하게 풀어낸 수작입니다.

이 책의 강점

  1. 명료함과 가독성: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복잡한 신학적 논쟁(예: 샌더스, 던, 톰 라이트의 율법 논쟁) , 로마 제국 비판 , 포스트모던 철학(데리다, 레비나스) 등을 매우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2. 맥락의 복원: 바울을 '율법주의에 맞선 믿음의 영웅'이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해방시킵니다. 대신 1세기 로마 제국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다양한 집단(유대인, 이방인, 여성, 노예, 로마 당국)과 갈등하고 소통하며 공동체를 세워나간 '실천가'이자 '조직가'로서의 입체적인 바울을 복원합니다.

  3. 현대적 적실성: <레 미제라블> , 서양 미술 , 그리고 생태 위기 , 다문화 갈등 등 현대적 이슈와 바울을 연결하는 '역동적 유비'는 2천 년 전 텍스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환대의 윤리' 로서의 칭의론 해석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현대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주요 대상 독자

  • 기존의 교리적, 교파적 바울 해석에 답답함을 느꼈던 기독교인.

  • 바울 서신을 역사적, 사회학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신학생 및 목회자.

  •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 제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는지 궁금한 인문학 독자.

  • 정의, 환대, 공동체 등 사회 윤리적 문제에 대한 신학적 영감을 얻고 싶은 이들.

종합 평가

<새 시대의 바울>은 바울을 박제된 '성인(聖人)'이나 추상적 '신학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우리 시대의 문제 한복판에 다시 세우는 책입니다. 저자는 바울의 '급진성' 을 강조하며, 그의 메시지가 당대는 물론 지금 여기의 불의한 체제(제국,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맞서는 해방의 담론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글쓰기의 균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그저 '믿음'에 관한 개인적 권면으로만 읽어왔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바울이 꿈꿨던 '새 시대'의 역동성과 그가 실천했던 '대안적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