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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식톤 콤플렉스 -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김덕영) 리뷰/요약

 

『에리식톤 콤플렉스 -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김덕영)


김덕영 교수의 저서 『에리식톤 콤플렉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은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을 분석한 사회학적 고찰입니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에리식톤'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을 설명합니다. 에리식톤은 신성한 나무를 베어넘긴 죄로 기아의 여신 '리모스'에게 끝없는 허기라는 저주를 받은 인물입니다.

이 책은 한국 사회가 바로 이 '에리식톤 콤플렉스', 즉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 정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이 콤플렉스가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이념형'으로 제시하며 , "누가 그를, 그리고 우리를 배고프게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 책의 핵심 내용 요약

이 책은 크게 1부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사회학'과 2부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계보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한국 자본주의의 형태와 정신 

저자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을 검토하며, 서구의 자본주의 정신이 '비합리적 충동의 합리적 조절'에 있었다면 ,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정반대로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 그 자체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 형태 (체계): 한국 자본주의의 형태를 '환원근대' (근대화를 경제성장으로만 환원함) 속에서 형성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State-Chaebol Alliance Capitalism)로 규정합니다.

  • 정신 (에토스): 이 체계를 추동하는 정신을 '에리식톤 콤플렉스'라고 명명합니다.

2.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계보학: 누가 우리를 배고프게 했는가

책의 핵심인 2부에서는 이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주조하고, 구현하고, 신성시한 세 주체를 '한국의 리모스'(기아의 여신)로 지목하며 그 계보를 추적합니다.

1. 국가: 자본주의 정신을 주조하다 (박정희) 국가, 특히 박정희 정권은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심리학적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 빈곤 담론: 박정희 정권은 "반만년 역사의 가난" 이라는 '빈곤 담론'을 통해 빈곤을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 경제성장 지상주의: 경제성장만이 이 빈곤을 극복할 유일한 선(善)으로 제시되었습니다.

  • 빈곤과 발전의 변증법: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경제는 성장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가난하다"는 인식을 주입하여 '발전 속의 빈곤' 이라는 역설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N만 달러 시대' 라는 구호로 이어지며 무한한 욕망을 항구화했습니다.

2. 재벌: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하다 (정주영) 재벌은 국가가 주조한 정신을 기업 차원에서 구현했습니다.

  • 야전사령관: 박정희가 동맹자본주의의 '총사령관'이라면, 정주영(현대)은 그 '야전사령관'이었습니다.

  • 무한한 발전 욕망: '생각하는 불도저' 로 불린 정주영 역시 가난을 극복하고자 '발전'을 무한한 가치로 추구했습니다.

  • 노동 중시: 그는 "기업은 한없이 커져야 한다" 고 믿으며, 공기 단축 과 '일, 일, 일'로 상징되는 불면불휴의 노동을 통해 이 정신을 실현했습니다.

3. 개신교: 자본주의 정신을 성화(聖化)하다 (조용기) 한국의 개신교는 이 국가-재벌 동맹의 이데올로그이자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며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성화'했습니다.

  • 국가화/기업화된 교회: 개신교는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에 '민족 복음화'로 화답하며 국가 및 기업과 밀월 관계를 맺었습니다.

  • 성장지상주의: 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양적 성장(교인 수, 헌금액)이 지상 목표가 되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주님 보기에 큰 교회가 아름답다"고 설파했습니다.

  • 삼박자 구원론: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론'(영혼, 범사, 강건) 은 물질적 부요를 신의 축복과 동일시했습니다. 이는 '잘살아 보세'라는 환원근대의 가치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입니다.

  • 교회 세습: 저자는 교회 세습 역시 교회를 사유재산으로 보는 기업적 논리의 연장선으로 분석합니다.

💡 결론: 진정한 자본주의를 향하여

저자는 에리식톤 콤플렉스에 지배된 환원근대적 자본주의는 결국 자기 파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진정한 자본주의와 그 정신을 위해서는 다음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1. 경제성장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환원근대'를 극복하고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합니다.

  2. 유교적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근대적 개인주의' 정신을 확립해야 합니다.

  3. 개신교는 '자본주의의 주술사' 역할을 청산하고, 세속과 분리되어(탈세속화) 본연의 종교적 임무에 헌신해야 합니다.

저자는 결국 국가, 기업, 교회가 각자의 본연의 모습(국가다움, 기업다움, 교회다움)을 회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이 가능해진다고 결론짓습니다.



서평: 우리 안의 에리식톤을 마주하며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발전 모델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 삶을 지배하는 '피로와 허기'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탁월한 통찰: '성공 신화'의 이면을 해부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이념형(Ideal Type)'으로 분석한 대목입니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가 왜 탐욕의 화신이 되어 몰락했는가? 저자는 그가 박정희(국가)의 성장주의, 정주영(재벌)의 저돌성, 그리고 한국 교회의 기복 신앙이 기형적으로 결합된 '괴물(에리식톤)'이었음을 사회학적으로 규명합니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한국형 근대화가 낳은 필연적 비극임을 시사합니다.

현재적 의미: 자기 파괴적 질주를 멈추기 위하여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여전히 '헬조선'을 외치며 불행해합니다. 저자의 경고처럼, 에리식톤은 결국 자기 자신을 먹어 치웁니다. 저출생, 극심한 경쟁, 공동체의 붕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이제 '환원근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경제 성장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성숙한 근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필독을 권하며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독해 틀을 제공합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열심히 일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배가 고픈지 궁금하다면, 이 책에서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질주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준엄하게 경고하는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성찰의 사회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