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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귀기 전에』(홍석용) 리뷰/요약

 


『하나님과 사귀기 전에』: 삼위일체부터 교회론까지 (홍석용 저)

1. 기독교 신앙의 기초 다시 세우기

홍석용 목사의 《하나님과 사귀기 전에》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룹니다. 저자는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무엇을 믿는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열정만 남거나 혹은 냉소만 남은 신자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에 갓 입문한 새 신자들이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 기독교의 기본 도리를 알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구원, 죄, 믿음, 성경, 교회라는 8가지 핵심 주제를 통해 기독교 신앙이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임을 강조합니다.

2. 하나님은 누구신가: 사랑과 삼위일체

사랑이신 하나님과 관계의 본질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이셨다는 것은,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 안에 사랑의 대상이 존재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설명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완벽한 사랑과 사귐의 관계를 누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결핍이나 부족함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삼위일체의 관계 안에서 충만하십니다. 창조의 목적은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사랑의 관계에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 vs 동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

저자는 '사랑'과 '동정'을 날카롭게 구분합니다. 동정은 사귐이 없는 일방적인 시혜이며, 우열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반면, 사랑은 상호적인 사귐이며 대등한 관계를 지향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필요한 것을 구하고 받는' 동정의 관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사랑과 사귐의 대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요술 램프의 지니가 아니라, 우리와 인격적인 사귐을 원하시기에 때로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시며 당신을 알아가게 하십니다.

삼위일체: 공동체적 하나님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이 고독한 군주가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공동체적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독불장군식의 개인 수양이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를 지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아 타인과의 사랑과 사귐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무한하신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계시가 가능해졌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Logos)'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설명하는 언어이자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행동, 마음,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귐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귐'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세리와 죄인, 사마리아인들과 교제하며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차별 없는 사랑과 사귐에 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내 욕망을 채워주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대로 약자를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4. 성령 하나님: 사귐의 영

성령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성령을 단순한 에너지나 기(氣), 혹은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십니다. 성경은 성령의 주된 역할을 '사귐(Koinonia)'으로 묘사합니다.

진리와 사귐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진리를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십니다. 이 진리는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녹아들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개인적인 황홀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귐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혼자 산에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화목하고 건강하게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분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사귀어야 합니다.

5. 구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여정

죄로부터의 해방, 그 이상

대부분의 신자는 구원을 '죄로부터의 해방'이나 '천국 행 티켓' 정도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는 구원의 시작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은 구원을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 5:48)",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벧후 1:4)"고 묘사합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사랑과 사귐)을 회복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입니다.

구원의 증거: 이웃 사랑

구원이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 안에서의 사귐'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구원의 확실한 증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혼자서 도를 닦는 것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수준으로 자라가는 것, 형제자매와 진정한 사귐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입니다. 구원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성숙해져야 할 과제입니다.

6. 죄: 관계의 파괴

과녁을 빗나간 삶

성경에서 죄(Hamartia)는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야 하는 목표를 벗어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려는 태도가 죄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죄는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타인을 수단화하는 죄

죄는 항상 타인을 향해 지어집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죄의 실체입니다. 사이비 종교가 포교를 위해 거짓말(모략)을 사용하며 인간관계를 도구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심지어 기성 교회 전도 방식에서도 상대를 '전도 대상자'로만 보고 친절을 베풀다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관계를 끊는 식의 기만적인 태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는 진정한 사귐을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하며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7. 믿음의 이유: 주체적인 신앙

믿음은 '그냥' 믿는 것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대답은 "그냥"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논리적인 이유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듯, 신앙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예정)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 이전에 일어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믿음의 이유를 만들어가는 삶

그러나 신앙생활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은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냥 믿게 된" 신앙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내가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사후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며 풍성한 믿음의 이유를 고백할 수 있어야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8.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자 영혼의 양식

성경의 기능과 목적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성경은 신자의 '양식'입니다. 밥을 매일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성경 말씀도 매일 섭취해야 영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의 원칙: 사랑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율법의 핵심을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해석과 적용은 '사랑'이라는 기준에 부합해야 합니다. 성경을 윤리 교과서나 인과응보의 틀로만 해석하여 타인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인간 삶의 복잡함과 하나님의 무궁무진하심이 담겨 있기에, 단순한 도덕적 잣대가 아닌 사랑과 관계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9. 교회: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

건물이 아닌 공동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공동체적 존재로 만드셨듯,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사역하셨으며, 교회는 그 제자 공동체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에베소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수님을 '머리'로 비유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교회를 이끄신다는 의미를 넘어, 교회(몸)가 없으면 예수님(머리)도 충만해질 수 없다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교회의 목표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유일한 수단과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0. 교회의 성장과 사랑의 공동체

경쟁이 아닌 상호 돌봄

세상은 경쟁을 통해 성장하지만, 교회는 경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몸의 지체들이 서로 경쟁하면 몸이 망가지듯, 교회 내에서 신앙적 행위(전도, 봉사 등)를 경쟁시키는 것은 악덕입니다. 교회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함께 즐거워하는(고전 12:26)" 공동체여야 합니다.

시혜가 아닌 사귐의 사랑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일방적인 시혜나 동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책임을 나누셨듯,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서 책임을 지고 말을 주고받는 '사귐(코이노니아)'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 정죄하기보다, 서로의 연약함을 껴안고 같이 걱정해주는 따뜻한 관계 속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서평] 동정의 하나님을 넘어, 사귐의 하나님을 만나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거래' 혹은 '의존'의 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봉사하고 헌금했으니 저에게 복을 주십시오." 혹은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무조건 저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전자는 기복 신앙이고 후자는 종교적 의존이다. 홍석용 목사의 《하나님과 사귀기 전에》는 이러한 비뚤어진 신앙관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당신과 거래하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사귀기를 원하실까?"

이 책은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교리인 삼위일체, 구원, 죄, 교회를 '관계'와 '사귐'이라는 키워드로 일관되게 풀어낸다. 저자는 하나님을 '필요를 채워주는 해결사'로 축소하는 현대 교회의 풍토를 비판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사랑과 사귐의 파트너'로 부르셨음을 역설한다.

관계로서의 삼위일체, 그리고 구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이다. 난해한 교리로만 여겨졌던 삼위일체를 저자는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으로 풀어낸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의 관계이시기에, 그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역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온전해질 수 있다는 통찰은 구원론의 지평을 넓힌다. 구원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 개인주의화 된 신앙에 경종을 울린다.

교회의 본질: 경쟁 없는 성장

저자는 또한 교회 성장의 동력을 '경쟁'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자본주의적 경쟁 논리가 깊숙이 침투한 한국 교회에 "몸의 지체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성경적 원리를 들이민다. 옆 사람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전도해서 '일등 신자'가 되려는 욕망은 죄악이며, 교회는 서로의 아픔을 같이 걱정하는 '따뜻한 돌봄'으로만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시혜를 넘어선 사귐

특히 '사랑'을 '동정(시혜)'과 구분하는 대목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교회 안에서조차 우리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상대를 대상화하고, 우월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대하신 방식을 예로 들며,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대등한 책임의 주체로 인정하고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상호적 사귐'임을 강조한다. 이는 봉사와 구제 활동에 열심이지만 정작 인격적 교류는 메말라버린 현대 교회의 사역 현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숙한 신앙을 위한 안내서

이 책은 제목처럼 '하나님과 사귀기 전'에 알아야 할 기본기를 다루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모태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습관적으로 굳어버린 우리의 신앙을 깨트리는 도끼와 같다.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 기복 신앙에 지쳤거나, 교회 내의 메마른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무턱대고 "주시옵소서"를 외치는 기도가 아니라, 곁에 계신 하나님께 "대화"를 청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