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송의 『세계관 수업』: 새로운 시대를 위한 기독교 세계관의 재구성
1부: 세계관의 이해 - 지도를 넘어 이야기로
1강. 세계를 정복하려면 지도를 사라: 세계관의 기능
세계관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지도'와 같습니다. 영화 속 악당들이 세계지도를 놓고 정복을 꿈꾸듯, 우리는 마음속의 지도를 통해 세상을 파악합니다. 그러나 지도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서구 중심의 세계지도가 한국을 '극동'의 변방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처럼, 어떤 지도를 보느냐가 우리의 위치와 정체성을 결정합니다. 세계관 논의는 중심부의 시선에 '순응'하거나 '편승'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지도를 갖는 '저항'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남반구가 위로 가는 '맥아더의 수정본 지도'처럼, 익숙한 관점을 뒤집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강. 세계를 보다: 시각과 관점의 문제
'세계관(Worldview)'이라는 용어 자체가 시각 중심적입니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착시와 왜곡의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은 인간의 시점을 절대화하여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구현하려 했지만, 이는 작가의 숨겨진 시점에 불과합니다. 반면 피카소는 다시점(多視點)을 통해 사물의 입체적 진실을 드러내려 했고,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은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해골(죽음)'을 측면 시선을 통해서만 보이게 함으로써 관점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세계관 공부는 나의 제한된 시각을 인정하는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3강. 세계관은 이야기다: 명제주의를 넘어서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하나님은 누구신가?", "인간은 무엇인가?"와 같은 7가지 질문에 답하는 '명제주의적 접근'을 주로 취했습니다. 이는 근대적 이성주의의 산물로, 복잡한 삶의 현실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안은 '내러티브(이야기)적 접근'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세계관을 파악해야 합니다. 레슬리 뉴비긴과 유진 피터슨이 강조했듯, 성경은 교리집이 아니라 우리를 형성해가는 거대한 이야기입니다.
4강.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한다: 정체성과 공동체
우리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타인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조차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시며 규정을 거부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역사적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공동체는 공통의 이야기를 가질 때 유지됩니다.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적 이야기(순행 내러티브)와 이에 저항하는 이야기(역행 내러티브)의 긴장이 사회를 건강하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공유된 이야기가 붕괴된 사회는 위기를 겪습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혼합주의가 아니라, 더 나은 문제 해결 능력과 소통 능력을 가진 '더 좋은 이야기'로서 진리값을 증명해야 합니다.
2부: 성경 - 텍스트를 넘어 컨텍스트로
5강.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세계: 세계관의 충돌
창세기 1장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고대 근동이라는 구체적 맥락 속에 던져진 '대안적 세계관'입니다. 바벨론 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신들은 서로 죽이고 싸우며, 그 시체로 세상을 만들고, 신들의 노역을 대신하기 위해 인간을 만듭니다. 반면 창세기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주권적 창조를 선언합니다. 당시 신으로 숭배되던 해, 달, 별, 바다 괴물을 단순한 '피조물'로 격하(비신화화)시키고, 노예 취급받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존재로 격상시킵니다. 이는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급진적이고 불온한 저항이었습니다.
6강. 창세기 1장 해석: 창조, 타락, 회복
창세기 1장의 핵심은 '누가 진짜 왕인가'에 대한 기원 논쟁입니다. 창조주는 피조물과 구별되며, 세상은 우연이 아닌 의도된 질서(코스모스)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처럼 되려는 '상향적 교만'이고, 다른 하나는 피조물을 섬기는 '하향적 자기 비하(우상숭배)'입니다. 구원은 이 왜곡된 질서를 바로잡아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을 읽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물신숭배와 인권 유린이라는 현대의 우상들에 맞서 인간 존엄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실천적 행위입니다.
7강. 누가 진짜 예수인가: 역사적 예수 연구
우리가 믿는 예수가 2천 년 전 유대 땅에 살았던 실제 예수와 같은지 묻는 것이 '역사적 예수 연구'입니다. 계몽주의 시대의 '옛 탐구'는 기적을 제거하고 예수를 도덕 교사로 만들려 했고, 슈바이처는 이를 비판하며 예수를 종말론적 예언자로 보았습니다. 불트만의 '무탐구 시대'를 지나, 최근의 '제3의 탐구'는 예수를 1세기 유대교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 합니다. 이는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에 갇힌 예수를 해방시켜 생생한 역사적 실체로 만나는 과정입니다. 나치 시대에 교회가 역사적 예수를 놓쳤을 때 히틀러를 숭배하는 과오를 범했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8강. 예수의 비전: 하나님 나라와 세계관 변혁
톰 라이트가 제시하듯,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이야기, 상징, 실천)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꿀 때, 예수는 죄와 사탄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새로운 출애굽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성전, 안식일, 정결법 등의 상징을 재해석하여 자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와 같은 이야기들은 이스라엘의 배타적 선민의식을 깨뜨리고 죄인을 환대하는 하나님 나라의 파격성을 드러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 새로운 이야기의 절정입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5막극(창조-타락-이스라엘-예수-교회)의 마지막 장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이 이야기를 우리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3부: 현대 - 근대를 넘어 포스트모던으로
9강. 근대의 세계관: 이성과 자아의 신화
근대(Modernity)는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생각하는 자아(데카르트)'의 발견으로 요약됩니다. 칸트는 종교조차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이성주의에 순응(자유주의)하거나, 감성과 체험을 강조하며 저항(부흥운동)하는 두 가지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이성 중심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 한계와 폭력성을 드러냈습니다. 이성으로 만든 문명이 야만을 막지 못했다는 절망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을 열었습니다.
10강.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겸손한 확신
니체(권력의지), 프로이트(무의식), 마르크스(계급)는 근대적 주체가 허상임을 폭로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거대 담론(Meta-narrative)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폭력'으로 규정하고 해체를 주장합니다. 이제 우리는 '구성된 진리'의 시대를 살아가며, 다양한 작은 이야기들의 공존을 요구받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도전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근대주의의 오만을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폭력적인 거대 담론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랑과 환대의 이야기'로서 성경의 진리를 제시해야 합니다. 명확한 정답(백문일답)을 강요하기보다, 세상의 고통과 모호함을 함께 껴안고 씨름하는 '세속 성자'의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서평] 양희송의 『세계관 수업』: 명제를 넘어 이야기로, 정복을 넘어 환대로
1. '세계관'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업데이트하다
1980-90년대 한국 기독교 지성사회를 풍미했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어느 순간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성경적 원리로 세상을 변혁하자"는 구호는 강렬했지만, 구체적인 각론의 부재와 배타적 태도로 인해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양희송의 『세계관 수업』은 이 멈춰버린 논의를 다시 흐르게 만드는 마중물과 같다. 저자는 세계관을 딱딱한 교리나 명제(Proposition)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 삶을 형성하는 '이야기(Narrative)'로 재정의한다. 이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삶의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2.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정교한 만남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성경 해석의 깊이에 있다. 창세기 1장을 진화론과의 싸움 도구로 축소시키는 '창조과학'적 접근을 넘어, 고대 근동의 다신교적 세계관에 저항했던 '해방의 서사'로 읽어내는 통찰은 탁월하다. 또한, 톰 라이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수를 1세기 유대교의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는 과정은, 예수가 당시의 종교적·정치적 기득권과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성경이 박제된 고문서가 아니라, 오늘날의 물신숭배와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가장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텍스트임을 증명한다.
3. 포스트모던 시대를 향한 겸손한 제안
저자는 근대주의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해석한다.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시대를 향해 "예수가 답이다"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그런데 질문이 뭐였지?"라고 되묻는 경청의 태도를 제안한다. 이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생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책의 결론부에서 제시하는 '세속 성자'의 모델은 교회 안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타자를 환대하고 고통에 공감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준다.
4.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필독서
『세계관 수업』은 신학적 깊이와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대중적 글쓰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처음 접하는 청년들에게는 친절한 입문서가, 기존의 도식적인 세계관 논의에 답답함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시원한 해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예수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5막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무대에 설 용기를 얻게 된다. 기독교 신앙이 지성적 탐구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지성의 끝에서 만나는 더 큰 세계임을 확인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