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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바르 (דבר) - 히브리적 관점에서 보는 성경 이야기』(오창식) 리뷰/요약

 


『다바르(דבר): 히브리적 관점에서 보는 성경 이야기』 - 말씀, 그 깊은 우물로의 초대

1. 광야와 말씀의 신비: '다바르'와 '미드바르' 이 책의 제목인 '다바르(דבר)'는 히브리어로 '말씀', '사건',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이 단어가 '광야'를 뜻하는 '미드바르(מדבר)'와 같은 어근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곳이며, 소리조차 울리지 않는 절대 고요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왜 당신의 백성들을, 모세를, 엘리야를, 세례 요한을 광야로 부르셨을까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그 정적 속에서만 비로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즉 '다바르'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버림받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을 걸어오시는 가장 친밀한 신혼방과 같은 곳임을 저자는 역설합니다.

2. 고난과 슬픔의 재해석: 라헬의 통곡과 샤론의 꽃 성경 속 지명과 인명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라마에서 들리는 라헬의 통곡'은 단순히 자식을 잃은 슬픔이 아닙니다. 라헬이 죽어가며 낳은 베냐민, 그리고 훗날 포로로 끌려가는 자손들을 위한 에미의 눈물은 결국 메시아의 탄생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소망으로 귀결됩니다. 또한 '샤론의 꽃 예수'라는 찬송가 가사로 익숙한 '샤론'은 사실 아름다운 동산이 아니라, 물이 빠지지 않는 늪지대요 황무지입니다. 아무도 살 수 없는 쓸모없는 땅, 그 가장 낮은 곳에 피어난 수선화처럼 예수님은 죄인들이 사는 이 황무지 같은 세상에 오셔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셨음을 보여줍니다.

3. 약함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 기드온의 300 용사와 삼손 하나님은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를 선발할 때, '개처럼 핥아 먹는 자'들을 뽑으신 것은 그들이 용맹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성경에서 가장 비천한 동물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볼품없고 약한 자들을 통해 전쟁의 승리가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드러내려 하셨습니다 . 반면 '삼손(쉼숀)'은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의 이름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당시 사사 시대가 얼마나 하나님 인식에서 멀어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4.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 여호와, 샬롬, 고엘, 헤세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YHWH)'는 "나는 나다" 혹은 "나는 ...이다"라는 미완성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구약에서는 불완전하게 계시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선포하심으로써 비로소 완성됩니다 . 또한 '샬롬(평화)'은 단순히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값을 지불하다(메살렘)'라는 동사와 어근을 같이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값을 지불하셨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룻기에 나타난 '고엘(기업 무를 자)'과 '헤세드(인애)' 역시 대가를 지불하는 사랑을 의미하며, 이는 십자가 사랑의 모형이 됩니다.

5. 친밀함의 비밀 '소드'와 온유한 성령 '요나' 히브리어 '소드(סוד)'는 '비밀'인 동시에 '친밀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자(소드)에게 당신의 비밀(소드)을 알려주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듯 당신의 계획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한편 선지자 '요나'의 이름은 '비둘기'입니다. 요나는 불순종하고 성냈지만, 그를 끝까지 설득하고 온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비둘기같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탄식하며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성품이 요나서의 진정한 주제임을 저자는 밝힙니다.

6.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 벧학게렘과 레갑 자손 예수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베들레헴 근처의 목자들은 누구였을까요? 저자는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들이 예레미야 시대에 믿음을 지켰던 '레갑 자손'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벧학게렘(포도원의 집) 지역에 살면서도, 선조의 유훈을 따라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장막에 거하며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약속대로 메시아 탄생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셨다는 감동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7. 율법의 참 의미와 예수님의 성취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 앞에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신 행위는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닙니다. 이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친히 손가락으로 돌판에 율법을 쓰셨던 사건을 재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수여자인 자신 앞에서 율법으로 정죄하려는 자들의 모순을 지적하시고, 진정한 율법의 완성은 정죄가 아닌 용서와 사랑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시편 110편의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머리를 드시리로다"라는 난해한 구절은, 예수님이 유대인이 꺼리는 사마리아(길가)로 들어가셔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시냇물을 마심)으로써 메시아로서의 영광(머리를 드심)을 드러낸 사건과 연결됩니다.

8. 안식, 엘 샤다이,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안식일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내가 멈추어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엘 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되지만, 원어적으로는 '어머니의 젖가슴(샤드)'을 의미합니다. 젖 먹는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가장 안전하듯,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만 온전할 수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은 사실 척박한 산지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 즉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땅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곳이야말로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됩니다.

9. 성령과 회복된 이스라엘 바리새인의 누룩은 인간의 철학과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유대교의 시스템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 역시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과 두 막대기의 연합은, 흩어진 북이스라엘(이방인으로 상징됨)과 남유다의 회복,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온 이스라엘의 구원'과 맥을 같이 하며, 율법이 아닌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성경의 익숙한 이야기들을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와 이스라엘의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새롭게 조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오해했던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율법의 문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사랑과 세밀한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목마른 자들에게 이 책은 '다바르', 곧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시원한 생수가 될 것입니다.




[서평] 성경의 땅에서 캐어낸 말씀의 보화, 그 깊은 맛을 보다

1. 텍스트를 넘어 컨텍스트로: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성경 오창식 목사의 『다바르』는 평면적인 성경 읽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입체적인 말씀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저자는 텍스트(성경 본문)를 당시의 컨텍스트(지리, 문화, 언어) 속에 다시 놓아둠으로써, 박제되어 있던 말씀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우리가 흔히 '좋은 땅'이라 여겼던 '샤론'이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실제로는 늪지대이거나 천수답(天水沓)과 같은 척박한 산지라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지리적 팩트를 통해 "그렇기에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은혜의 땅"이라는 영적 진리를 길어 올립니다. 이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을 때 놓칠 수 있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파악하게 해줍니다. 특히 '유브라데'가 먼 메소포타미아의 강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고향 근처 '에인 파라' 샘이라는 고고학적 통찰은 성경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말씀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내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사건임을 깨닫게 합니다.

2. 히브리어 원어의 맛: 하나님의 마음을 읽다 이 책의 백미는 히브리어 원어 풀이에 있습니다. 저자는 신학적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원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 과정에서 소실된 '하나님의 본심'을 복원하기 위해 언어를 도구로 사용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던 '엘 샤다이'를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풀어낼 때, 우리는 두려운 심판자가 아닌 젖 먹는 아이를 품에 안은 따스한 모성애적 하나님을 만납니다. '회개'나 '믿음'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개처럼 핥는 행위',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으로 걸어가는 행위'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때, 신앙은 관념이 아닌 실재가 됩니다. 저자의 이러한 접근은 독자로 하여금 성경을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느끼고 무릎으로 반응하게 만듭니다.

3. 광야의 영성: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와 도전 저자는 이스라엘에서의 유학 생활과 광야 체험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광야의 영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합니다. 소음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바르(말씀)'는 오직 '미드바르(광야)'에서만 들린다는 메시지는 강력한 도전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처럼 인간의 지혜와 전통, 화려한 스펙으로 신앙생활을 포장하려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기드온의 300 용사처럼, 깨진 질그릇처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심령'을 요구하십니다. 이 책은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는 기복적인 신앙관을 경계하고, 고난과 결핍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역설합니다.

4.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위한 필독서 『다바르』는 학술적인 주석서의 깊이를 가지면서도, 묵상집의 따뜻함을 잃지 않습니다. 각 챕터마다 이어지는 저자의 개인적인 간증과 적용은 이 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저자의 삶으로 체화된 기록임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평신도, 설교의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목회자, 그리고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영감을 줄 것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을 거니셨던 예수님의 옷자락이 지금 내 삶의 현장에도 닿아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성경을 '읽는' 것을 넘어 성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탁월한 안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