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 피로 얼룩진 성지와 여성 통치자의 등장
이슬람 세계의 탄생과 분열
이 책은 본격적인 십자군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이슬람 세계의 기원과 당시 정세를 명쾌하게 정리하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아브라함(이브라힘)'이라는 공통의 조상을 둡니다
. 성서의 이삭은 유대 민족의 조상이며, 이스마일(이스마엘)은 아랍 민족의 시조가 됩니다 .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종교 전쟁이라기보다 뿌리가 같은 형제간의 싸움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성립: 메카의 상인이었던 무함마드는 신의 계시를 받아 평등과 사회 정의를 설파했습니다
. 기득권층의 탄압을 피해 메디나로 떠난 '히즈라' 사건 이후, 그는 무력이 아닌 평화 순례를 통해 메카를 정복하고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합니다 . 칼리파 시대와 분열: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칼리파) 선출 과정을 거치며 이슬람은 대제국으로 성장하지만, 곧 내부 분열을 겪습니다
. 4대 칼리파 알리와 우마이야 가문의 무아위야 사이의 갈등은 결국 시아파(알리 추종)와 순니파(주류)의 분열을 낳았습니다 . 십자군 침공 당시의 상황: 1차 십자군이 들이닥쳤을 때 이슬람 세계가 무기력했던 이유는 바로 이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 셀주크 투르크의 내분으로 인해 그들은 십자군을 막아낼 여력이 없었고, 예루살렘 함락을 그저 방관했습니다 .
[1장] 십자군의 후예: 예루살렘 왕국의 2세대
1차 십자군 전쟁의 영웅들이 퇴장하고, 그들이 세운 '우트르메르(바다 건너의 땅, 십자군 국가)'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합니다.
새로운 국왕 보두앵 2세: 예루살렘의 초대 통치자 고드프루아와 보두앵 1세가 사망한 후, 보두앵 2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 그는 딸만 넷을 두었는데, 첫째가 멜리장드, 둘째가 알릭스입니다 . 서방에서 온 신랑감들: 왕국의 안보를 위해 보두앵 2세는 서유럽의 유력 귀족들을 사위로 맞이합니다. 앙주 백작 풀크(Fulk)는 멜리장드와, 안티오키아의 후계자 보에몽 2세는 알릭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 보에몽 2세의 등장과 갈등: 1차 십자군의 악동 보에몽 1세의 아들인 보에몽 2세는 아버지 못지않은 야심가였습니다
. 그는 안티오키아에 도착하자마자 알렙포를 공격하고 영토 확장을 꾀하지만, 무리한 원정과 주변국(심지어 같은 십자군 국가인 에뎃사)과의 갈등으로 고립을 자초합니다 . 멜리장드와 풀크의 불화: 멜리장드는 나이 많은 풀크와의 정략결혼을 탐탁지 않아 했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사촌이자 기사인 위그(Hugues)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이는 훗날 왕국의 치명적인 스캔들이 될 씨앗이었습니다.
[2장] 음모와 배신: 십자군 국가들의 내분
이 장에서는 외부의 적(이슬람)보다 내부의 권력 다툼에 골몰하는 십자군 국가들의 한심한 작태가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다마스쿠스 원정 실패: 보두앵 2세는 사위인 풀크, 보에몽 2세와 연합하여 다마스쿠스를 공략하려 합니다
. 암살단 '아사신'과 협력하기로 했으나, 다마스쿠스의 영주 부리(Buri)가 선제적으로 아사신을 제거하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 게다가 보에몽 2세는 에뎃사 백작과 싸우느라 원정에 불참하는 촌극을 빚습니다 . 보에몽 2세의 최후: 좌충우돌하던 보에몽 2세는 킬리키아 원정 중 튀르크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합니다
. 그의 머리는 잘려 은 상자에 담겨 칼리파에게 보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알릭스의 반란: 남편이 죽자 야심 많은 알릭스는 딸 콩스탕스의 섭정 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 보두앵 2세에게 반기를 듭니다
. 충격적이게도 그녀는 무슬림 군주 장기(Zengi)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권력을 위해 종교와 혈육마저 배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하지만 반란은 진압되고 알릭스는 유폐됩니다.
[3장] 장기의 등장: 이슬람의 반격과 살라딘 가문
십자군이 내분에 빠져 있는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는 흩어진 힘을 모으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마드 앗 딘 장기'입니다.
장기의 부상: 모술과 알렙포의 통치자가 된 장기는 무슬림의 분열을 끝내고 십자군에 대항할 힘을 기릅니다
. 그는 냉철하고 잔혹한 전략가로 묘사됩니다. 티크리트의 형제들 (살라딘의 아버지): 장기가 권력 다툼에서 패해 쫓기던 시절, 티크리트의 수비대장 아이유브와 그의 동생 시르쿠가 장기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 이 인연으로 아이유브 형제는 장기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는데, 아이유브가 바로 훗날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영웅 '살라딘'의 아버지입니다 . 위그의 죽음과 풀크의 위기: 예루살렘에서는 풀크가 권력을 독점하려 하자 귀족들이 반발합니다. 특히 멜리장드와 가까웠던 기사 위그가 풀크에게 반역 혐의로 몰려 도망치다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 이 사건의 배후로 풀크가 지목되면서 그는 정치적 위기를 맞습니다 .
[4장] 풀크의 수난과 에뎃사의 함락
이야기는 십자군 국가의 첫 번째 붕괴인 '에뎃사 함락'으로 치닫습니다.
동로마 황제의 개입: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콤니노스가 안티오키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군대를 이끌고 옵니다
. 풀크와 안티오키아의 기사들은 황제에게 굴복하고, 억지로 연합하여 이슬람 세력(샤이자르)을 공격하지만, 서로 눈치만 보다가 실패합니다 . 장기의 외교술: 장기는 무력뿐만 아니라 외교술에도 능했습니다. 그는 동로마 황제와 십자군 사이를 이간질하여 연합군을 와해시킵니다
. 풀크의 죽음: 잇단 실패로 입지가 좁아진 풀크는 사냥 중 낙마 사고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 멜리장드의 통치: 풀크 사후, 멜리장드는 아들 보두앵 3세와 함께 공동 통치자로 등극하여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 그녀는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며 평화를 모색하려 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전쟁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에뎃사의 함락 (1144년): 십자군 국가들이 분열된 틈을 타 장기는 방어가 허술한 에뎃사를 기습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 이는 1차 십자군 이후 기독교 세력이 입은 최대의 타격이었으며, 유럽 전체에 충격을 주어 '제2차 십자군 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박물관 탐방] 이민역사박물관에 가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 프랑스 파리의 '이민역사박물관' 탐방기를 싣습니다
[서평]: 중세의 거울로 현대의 야만을 비추다
(1)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 침략 전쟁의 민낯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전쟁에 성스런 명분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3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작가는 '신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십자군 전쟁이 실상은 영토와 재물을 노린 '세속적 욕망의 폭발'이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2) 우트르메르의 여인들, 역사의 전면에 서다
3권의 부제가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인 만큼,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전쟁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멜리장드와 알릭스 자매는 단순히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3) 역사적 팩트와 현대적 유머의 절묘한 조화
김태권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고증과, 이를 비트는 현대적 유머 감각입니다.
충실한 고증: 작가는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스》 등 신뢰할 만한 1차 사료와 현대 역사서들을 꼼꼼히 참고했습니다
. 이슬람의 영웅 장기가 티크리트에서 아이유브 형제에게 구조되는 장면이나, 보에몽 2세의 죽음 후 머리가 소금에 절여져 보내지는 엽기적인 디테일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기반합니다 . 기발한 풍자: 작가는 중세 인물들의 입을 빌려 현대 한국 사회와 국제 정세를 풍자합니다. "삽질을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며 땅굴을 파는 십자군의 모습
, 언론 플레이와 여론 조작을 일삼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줍니다. 또한, '노래방 기계'나 '인터넷 댓글' 같은 시대를 초월한 장치들을 과감히 사용하여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중세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
(4) 살라딘의 등장을 예고하는 흥미진진한 빌드업
3권은 십자군 전쟁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살라딘과 리처드 1세의 대결'로 가기 위한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특히 살라딘의 아버지 아이유브와 삼촌 시르쿠가 역사 무대에 등장하여 영웅 장기와 결합하는 과정은 4권 이후 펼쳐질 대서사시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5) 지금, 우리가 십자군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은 단순한 전쟁 만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벌어지는 비극에 대한 보고서이자,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역설하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이슬람포비아(이슬람 공포증)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만연한 오늘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