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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김태권) 리뷰/요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 - 역사적 사실과 디테일 완벽 분석

뒤집힌 승패, 무슬림의 반격이 시작되다

십자군 전쟁의 역사는 흔히 서유럽 기사들의 영웅담으로 포장되곤 합니다. 하지만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 4권》은 철저하게 그 반대편, 즉 침략을 당한 무슬림의 시각과 그들의 반격을 다룹니다. 특히 이 책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단순히 전설적인 영웅이 아니라, 고뇌하고 정치적이며 때로는 실수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2세기 중반, 에뎃사 함락부터 예루살렘 왕국의 멸망을 가져온 히틴 전투까지의 격동의 역사를 상세히 요약합니다.

1부. 2차 십자군의 침공과 허무한 실패

1. 에뎃사의 함락과 장기(Zangi)의 죽음

1144년, 중동에 세워진 십자군 국가 중 하나인 에뎃사 백작령이 무슬림 지도자 장기(Zangi)에 의해 함락됩니다. 장기는 십자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무슬림 세계에서는 '이슬람의 구원자'로 추앙받았습니다. 하지만 장기의 최후는 허무했습니다. 그는 1146년,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자신의 환관 야란카슈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엄격한 규율로 부하들을 다스리던 그의 공포 정치가 오히려 화를 부른 것입니다.

2. 화려했던 2차 십자군, 다마스쿠스에서의 자멸

에뎃사 함락 소식에 서유럽은 충격에 빠졌고, 곧이어 2차 십자군이 결성됩니다. 이번 원정은 독일 황제 콘라트 3세와 프랑스 왕 루이 7세,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 성 베르나르두스가 참여한 호화로운 원정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 설정은 엉뚱했습니다. 십자군에게 우호적이었던 유일한 무슬림 도시 다마스쿠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다마스쿠스의 실권자 우누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십자군은 내부 분열과 전략적 오판으로 인해 1148년, 단 4일 만에 패배하고 맙니다 . 이 패배로 서유럽 기사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허무하게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2부. 이집트 쟁탈전: 시르쿠와 살라딘의 등장

1. 누레딘의 시리아 통일

장기의 아들 누레딘(Nur ad-Din)은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그는 무력이 아닌 심리전과 선전전을 통해 민심을 얻었고, 1154년 피를 흘리지 않고 다마스쿠스에 입성하여 시리아를 통일합니다 . 이때 누레딘의 휘하에는 쿠르드 출신의 용장 시르쿠와 그의 조카 살라딘(유수프)이 있었습니다.

2. 이집트(파티마 왕조) 원정의 시작

당시 이집트는 시아파인 파티마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으나 쇠락해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재상 샤와르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누레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시르쿠는 조카 살라딘을 데리고 이집트 원정에 나섭니다. 처음에는 샤와르를 복권시켰으나, 샤와르가 배신하고 예루살렘 왕국의 아말릭 왕과 손을 잡으면서 전쟁은 복잡해집니다.

3. 알렉산드리아 공방전과 살라딘의 성장

시르쿠와 살라딘은 세 차례에 걸쳐 이집트 원정을 감행합니다. 특히 1167년 2차 원정 중 알렉산드리아 공방전은 살라딘을 전사로 성장시킨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시르쿠가 주력군을 이끌고 나간 사이, 살라딘은 식량이 바닥난 알렉산드리아를 70일 넘게 지켜내며 십자군과 맞섰습니다 . 결국 평화 협정이 맺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살라딘은 적장 아말릭 왕과 교류하며 기사도 정신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4. 시르쿠의 죽음과 살라딘의 집권

1169년, 3차 원정 끝에 시르쿠는 카이로를 장악하고 샤와르를 처형한 뒤 이집트의 재상이 됩니다. 그러나 시르쿠는 재상이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과식과 소화불량으로 급사합니다. 운명처럼, 이집트의 권력은 젊고 경험이 부족해 보여 '만만했던' 살라딘에게 넘어갑니다.

3부. 살라딘의 왕조: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1. 이집트의 실권 장악과 파티마 왕조의 종말

이집트의 재상(와지르)이 된 살라딘은 예상과 달리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합니다. 그는 돈을 아끼지 않고 민심을 샀으며, 술을 끊고 업무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내부 반란(누비아 용병들의 봉기)을 진압하고, 외부의 침입(다미에타 포위전)을 막아내며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 1171년, 살라딘은 시아파 칼리파 알 아디드가 병든 틈을 타 기도를 순니파 방식(바그다드 칼리파의 이름)으로 바꾸며, 이집트를 200년 만에 순니파의 품으로 돌려놓습니다.

2. 주군 누레딘과의 갈등

살라딘의 세력이 커지자 시리아의 주군 누레딘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살라딘은 십자군 성채(샤우바크)를 공격하다가도 누레딘이 온다는 소식에 철수하는 등 미묘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 누레딘이 이집트 침공을 준비하자 살라딘의 가문은 위기에 처하지만, 아버지 아이유브의 지혜로운 조언("납작 엎드려 충성을 맹세하라") 덕분에 전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 1174년, 누레딘이 심장발작으로 급사하면서 살라딘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기회를 얻습니다.

3. 시리아 접수와 암살 위기

누레딘 사후, 살라딘은 다마스쿠스에 입성하여 누레딘의 후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를 장악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알렙포를 거점으로 한 장기 가문의 잔존 세력과 대립합니다. 또한, 시아파 암살단 아사신(Assassin)은 살라딘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고 여러 차례 암살을 시도합니다. 1176년에는 자객의 칼에 머리와 목을 찔렸으나 갑옷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이후 살라딘은 아사신의 본거지를 공격하여 모종의 협상을 맺고 후방의 위협을 제거합니다.

4부. 예루살렘 왕국과의 대결과 파국

1. 문둥이 왕 보두앵 4세의 투혼

살라딘이 이슬람 세계를 통일해가는 동안, 예루살렘 왕국은 보두앵 4세(Baldwin IV)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센병(나병)을 앓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왕국을 지켰습니다 . 1177년 몽지사르 전투에서 보두앵 4세는 살라딘의 방심을 틈타 대승을 거두었고, 살라딘은 목숨만 건져 도망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

2. 전쟁광 샤티용의 르노

예루살렘 왕국의 평화를 깨뜨린 결정적인 인물은 샤티용의 르노(Reynald of Châtillon)였습니다. 그는 휴전 협정을 무시하고 이슬람 상단(카라반)을 약탈했으며, 심지어 홍해에 해적선을 띄워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위협했습니다 . 르노의 만행은 살라딘을 격분하게 만들었고, 살라딘은 "내 손으로 르노를 처단하겠다"고 맹세합니다.

3. 히틴 전투: 십자군의 몰락

보두앵 4세가 사망하고, 무능한 기 드 뤼지냥이 예루살렘의 왕이 되면서 왕국은 분열됩니다. 현명한 트리폴리의 레몽 3세는 살라딘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르노와 기사단장의 도발에 휘말려 결국 전쟁에 동참하게 됩니다. 1187년 7월, 살라딘은 티베리아스를 포위하여 십자군 주력을 사막으로 유인합니다. 레몽 3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십자군은 살라딘의 유인책에 걸려들었고, 물이 없는 황야에서 지칠 대로 지친 십자군은 히틴 전투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합니다. 이 전투로 예루살렘 왕국의 주력군은 와해되었고, 예루살렘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의 전야

히틴 전투의 승리로 살라딘은 예루살렘 왕국의 왕(기 드 뤼지냥)과 원수 르노를 포로로 잡습니다. 4권은 살라딘이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고 십자군 주력부대를 괴멸시키며 예루살렘 탈환의 문턱에 선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살라딘의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루살렘의 운명은 5권으로 이어집니다.





[서평] 인간 살라딘, 증오의 시대를 넘어서는 리더십을 묻다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 4: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은 십자군 전쟁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의 시기를 다룬다. 서유럽의 광기에 찬 침략에 맞서 중동 세계가 어떻게열를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섰는지를, 그 중심에 섰던 인물 살라딘(Saladin)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승자의 기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의 신화 뒤에 가려진 '인간'의 고뇌와 성장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1. 영웅이 아닌 '인간' 살라딘의 재발견

우리가 흔히 아는 살라딘은 '관용의 군주', '이슬람의 영웅'이라는 완벽한 이미지다. 하지만 작가는 살라딘을 처음부터 완성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책 속의 청년 살라딘은 전쟁보다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삼촌 시르쿠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이집트 원정에 나서는 소심한 인물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후에도 끊임없이 정적들의 눈치를 보고, 주군 누레딘과의 관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고독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아버지 아이유브가 살라딘을 보호하기 위해 강경파들 앞에서 "누레딘이 명하면 내 손으로 아들의 목을 치겠다"고 연기하는 대목이다. 이는 살라딘의 위업이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가족의 헌신과 정치적 타협, 그리고 수많은 우연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살라딘을 '슈퍼 히어로'가 아닌, 끊임없이 고뇌하고 실수하며 성장하는 '인간'으로 그려냄으로써 역사적 인물에게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2. 관용과 통합의 리더십 vs 증오와 배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관용과 공존'이다. 살라딘은 무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 마음을 얻는 승리를 원했다. 그는 정적이었던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가 죽어가자 예우를 갖췄고, 적장에게도 경의를 표할 줄 알았다. 반면, 이에 대비되는 인물로 샤티용의 르노가 등장한다. 르노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민간인을 학살하며, 성지를 모독하는 탐욕과 증오의 화신이다. 작가는 르노와 살라딘의 대립을 통해, 극단적인 배제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묻는다. 또한, 한센병을 앓으면서도 왕국을 지키려 했던 소년 왕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의 대결 구도를 통해, 적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했던 기사도 정신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3. 역사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유머

김태권 작가 특유의 유머와 패러디는 무거운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현대의 정치 상황이나 인터넷 문화를 빗댄 풍자는 12세기의 중동 정세를 오늘날의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십자군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무슬림의 시각을 충실히 반영했다. 동시에 십자군 내부의 복잡한 정치 역학 관계(왕권 다툼, 파벌 싸움)도 놓치지 않고 묘사하여, 전쟁이 단순히 종교적 신념 때문만이 아니라 세속적인 탐욕과 권력 투쟁의 결과물임을 폭로한다.

4.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반지'

책의 말미에 소개된 레싱의 희곡 《현자 나탄》에 나오는 '반지의 비유'는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진짜 반지를 가려내려 싸우기보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반지가 진짜임을 증명하라는 것.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와 이념의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는 800년 전 살라딘의 시대를 통해, 증오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태도임을 역설한다. 역사의 디테일과 인문학적 통찰, 그리고 재미를 모두 잡은 이 책은 십자군 전쟁에 관심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독서로 권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