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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흐르는 대로』(지나영) 리뷰/요약

 


『마음이 흐르는 대로』 - 존스홉킨스 지나영 교수가 전하는 삶의 본질과 치유의 기록

1. 삶이 멈춰선 순간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책은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인 지나영 저자가 원인 모를 난치병을 겪으며 깨달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대구의 가난한 봉제 공장 집 둘째 딸로 태어나, 한국에서의 레지던트 낙방을 딛고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홉킨스 교수가 되기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그녀의 삶은 2017년, 갑작스러운 병마와 함께 급정거한다. 저자는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아온 자신의 여정과 투병 생활을 통해 얻은 통찰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2. 갑작스러운 시련과 진단을 향한 긴 여정

2.1. 예기치 않은 삶의 급정거

2017년 5월, 저자의 인생은 정점에 있는 듯 보였다. 마흔이 넘어 결혼에 골인했고,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생일 전날, 극심한 근육통과 오한이 시작되더니 걷잡을 수 없이 건강이 무너져 내렸다. 평소 에너지가 넘치고 운동을 즐기던 저자였기에, 처음에는 단순한 몸살이나 감기로 여겼다. 하지만 증상은 몇 달간 지속되었고, 급기야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2.2. 진단명 없는 고통과 오해

저자는 수많은 전문의를 만났지만,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심각한 두통, 어지럼증, 극심한 피로, 소화기 장애 등 신체 기능이 전방위적으로 무너졌음에도 각종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많은 의사가 이를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치부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조차 자신의 증상이 정신적인 문제가 아님을 확신하면서도, 타인의 시선과 의학적 한계 앞에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이는 과거 저자의 어머니가 겪었던 원인 모를 병증과 유사했으며, 저자는 환자의 입장이 되어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느끼는 절망감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2.3. 확진: 신경매개저혈압과 자율신경계 장애

결국 저자는 동료 의사의 도움으로 '신경매개저혈압(Neurally Mediated Hypotension)'과 '기립성빈맥증후군(POTS)'이 포함된 자율신경계 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는 자율신경계 조절 기능이 망가져 혈압, 맥박, 체온 등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었다. 확진을 받기 위한 기립경 검사 과정에서 저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실신 전 증상을 겪으며, 환자가 겪는 극한의 공포와 수치심을 몸소 체험한다.

3. 상실의 고통 속에서 다시 배운 삶의 태도

3.1. '호모 수파이너스'의 삶

병은 저자의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활동적이던 그녀는 하루 대부분을 누워 지내야 하는 '호모 수파이너스(누워 있는 인간)'가 되었다. 밥을 먹고, 씻고, 화장실에 가는 기본적인 일상조차 버거운 도전이 되었다. 저자는 직장에 장기 병가를 내야 했고, 좋아하던 강의와 연구, 여행, 사교 모임 등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3.2. 내려놓음과 받아들임

저자는 병을 이겨내고 예전의 삶으로 복귀하겠다는 집착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대신 병과 함께하는 삶을 받아들이고, 현재 자신의 몸 상태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다. 이는 패배가 아니라, 달라진 삶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저자는 "레몬이 주어지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미국 속담처럼, 고통스러운 상황(레몬)을 기회로 삼아 자신만의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3.3. 비교하지 않는 삶과 자존감

저자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모두 경험하며,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 생활 초기,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위축될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자신만의 강점에 집중했다.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미국에서는 자신의 외모가 개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통해, 미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중요한 것은 내면의 자존감임을 깨닫는다. 그녀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처럼 무의미하며, 오직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4.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가치들

4.1.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끈기와 도전 정신

저자의 아버지는 가난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업에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돈보다 더 값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Risk Taker)'과 '끈기'를 물려받았다. 이러한 기질은 저자가 한국에서의 실패를 딛고 무작정 미국행을 택하고, 언어의 장벽을 뚫고 정신과 레지던트에 합격하며, 존스홉킨스 교수가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저자는 100시간이 주어진다면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강화하는 데 쓰라는 팀 페리스의 말처럼, 자신의 부족한 점(요리, 정리 정돈 등)을 쿨하게 인정하고 잘하는 일(진료, 강의, 소통)에 집중하는 삶을 선택한다.

4.2.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한정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저자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No"라고 말하는 법을 익혔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원치 않는 부탁을 들어주거나 의미 없는 모임에 참석하는 대신,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과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필수적인 태도이다.

4.3. 진정한 치유: 명상과 감사

저자는 투병 중 찾아온 극심한 교감신경 항진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나 자신과의 미팅'이라 부르는 명상은 뇌를 쉬게 하고 불안을 잠재우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또한, 감사 일기를 쓰며 부정적인 감정 대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었다.

5. 관계와 사랑: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

5.1. 남편과의 갈등과 화해

결혼 초, 저자와 남편은 가치관의 차이로 갈등을 빚었다. 남편은 더 많은 부와 성공을 원했지만, 저자는 소박한 행복과 건강을 중시했다. 병이 깊어지며 갈등은 극에 달했으나,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과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남편은 저자를 위해 일을 줄이고, 저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5.2. 아이 없는 삶의 수용

저자는 난임 치료를 받으며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병이 악화되면서 결국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는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저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길을 찾게 되었다. 캄보디아 아동을 후원하고, 환자들을 자식처럼 돌보며 모성애를 승화시켰다.

5.3. 의사로서의 소명: 상처 입은 치유자

저자는 자신의 투병 경험과 아버지의 간 이식 수술 과정을 겪으며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그녀를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환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성장시켰다. 그녀는 볼티모어라는 거칠고 험한 도시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정신 질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자살 시도 환자를 목격한 경험 등을 통해,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6.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사는 삶

지나영 교수는 자신의 삶을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에 더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회고한다. 실패와 병마는 그녀를 예상치 못한 길로 이끌었지만, 그 길 위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아를 찾고 타인과 깊이 연결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나 성공의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즉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비록 험난하고 불확실한 길일지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걷는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서평] 상실의 시대,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에 대한 따뜻한 처방전

"내 인생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의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는 이 질문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는 답변서이자, 예기치 못한 시련 앞에 선 모든 이를 위한 치유의 기록이다.

성공한 의사에서 '호모 수파이너스'로: 가장 낮은 곳에서 배운 삶의 진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서사는 저자의 극적인 상황 변화에서 온다.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 불리는 존스홉킨스의 교수이자, 늦깎이 결혼으로 행복의 정점에 있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원인 불명의 난치병 환자가 되어 바닥에 눕게 된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호모 수파이너스(누워 있는 인간)'라 칭하며, 의료진조차 자신의 고통을 정신적인 문제로 치부할 때 겪었던 억울함과 좌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독자는 화려한 스펙 뒤에 가려진 저자의 인간적인 고뇌와 나약함을 마주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환자들에게 수없이 건넸을 위로의 말들이, 정작 자신이 환자가 되었을 때는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 수 있는지를 고백하는 대목은 '공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녀의 투병기는 단순히 병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성취 지향적인 삶에서 존재 중심적인 삶으로 가치관을 이동시키는 영적 순례와도 같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자기 수용과 긍정의 심리학

저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답 사회' 문화와 비교 문화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가난한 봉제 공장 딸, 레지던트 낙방, 언어 장벽, 그리고 난치병까지. 그녀의 인생 키워드는 '결핍'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결핍을 '가능성'으로 치환하는 탁월한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약점은 쿨하게 인정하라"는 것이다. 요리를 못하면 사 먹으면 되고, 정리를 못하면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그녀의 실용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는 강박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특히 "나 자신과의 미팅(명상)"을 가장 중요한 스케줄로 잡으라는 조언은, 번아웃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반드시 실천해봄 직한 구체적인 솔루션이다.

핏불(Pit Bull) 정신: 꺾이지 않는 마음의 힘

저자는 자신을 '핏불'에 비유한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끈기와, 안 된다는 말에 굴하지 않고 대안을 찾아내는 협상력은 그녀가 미국 주류 사회에서, 그리고 병마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무기였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끈기는 무조건적인 '노오력'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Heart)을 향한 열정이다. 저자는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진정한 끈기가 발휘된다고 말한다. 이는 맹목적인 성실함을 강요받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방향이 속도보다 중요하다"는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흔들리는 삶을 위한 단단한 닻

『마음이 흐르는 대로』는 의학적 지식과 개인적 서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책이다. 자율신경계 질환에 대한 정보나 정신과적 통찰(인지 편향, 트라우마, 가족 관계 등)은 정보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에 있다. 그녀는 병이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오늘 하루 잘 살았다"며 자신을 칭찬하고, 자녀를 갖지 못하는 아픔을 더 넓은 모성애로 승화시킨다. 이 책은 지금 당장 거창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혹은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쳤더라도,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삶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 건강을 잃고 좌절한 이들,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