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선교의 흐름을 읽다: 안승오 교수의 『현대 선교의 핵심주제 8가지』
1. 현대 선교의 복잡성과 이 책의 목적
19세기까지 선교의 정의는 명료했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지역에 가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며 '선교'의 개념은 에큐메니칼(WCC 중심의 진보 진영)과 에반젤리칼(복음주의 진영) 사이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보쉬(David J. Bosch)가 "궁극적으로 선교는 정의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선교의 개념은 복잡해졌습니다.
이 책은 현대 선교 신학의 흐름을 주도해 온 에큐메니칼 진영의 8가지 핵심 주제를 분석합니다. 저자 안승오 교수는 각 주제의 태동 배경, 내용, 그리고 기여점과 한계점을 균형 있게 다루며,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통전적 선교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2. 주제별 상세 요약
주제 I.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1) 개념의 태동과 배경 '하나님의 선교'는 1952년 빌링겐(Willingen) 선교대회 이후 칼 하르텐슈타인(Karl Hartenstein)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입니다. 이는 제국주의적 선교와 서구 교회의 교권 확장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도구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2) 전개 과정과 쟁점
후켄다이크(J.C. Hoekendijk): 그는 교회 중심적 선교관을 비판하며 선교의 목표를 '샬롬(Shalom)'의 구현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교회-세계'의 전통적 순서를 '하나님-세계-교회'로 바꾸어, 세상이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이고 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도구라고 주장했습니다.
WCC의 수용: 이 개념은 WCC의 선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 이후 '인간화',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JPIC)' 등의 사회적 아젠다로 구체화되었습니다.
3) 평가 및 바람직한 방향
기여점: 교회의 내향성과 기구화를 경계하고, 세상에 대한 사회적 책임(정치, 경제, 사회 정의 등)을 일깨웠습니다.
한계점: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 전도와 영혼 구원보다 사회 변혁에 치중하게 만들었고, 교회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무교회 신학'으로 흐를 위험을 초래했습니다.
방향: 하나님 주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책임(사회 참여)과 구속사적 차원(복음 전도)을 모두 아우르는 균형 잡힌 선교가 필요합니다.
주제 II. 상황화 (Contextualization)
1) 토착화(Indigenization)와의 차이 상황화는 1970년대 초 신학교육기금(TEF)에 의해 제기된 개념으로, 기존의 토착화 개념을 넘어서려 했습니다.
토착화: 전통 문화 안에서 복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자립 교회를 세울 것인가에 초점(문화적 적응).
상황화: 급변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빈곤, 억압 등)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사회 변혁의 능력이 될 것인가에 초점(사회적 변혁).
2) 핵심 내용과 평가 상황화는 제3세계의 현실(가난, 독재 등)을 신학의 자리(Locus)로 삼고, 서구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이는 해방신학 등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긍정적 측면: 서구 중심적 신학에서 벗어나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살아있는 신학'을 추구하게 했습니다.
부정적 측면: 텍스트(성경)보다 컨텍스트(상황)를 우위에 둘 위험이 있으며, 복음의 보편성을 훼손하고 혼합주의나 상대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 전파보다는 사회 구조 변혁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3) 바람직한 방향 사회 변혁을 위한 노력과 함께, 변혁의 주체인 건강한 토착 교회를 세우는 일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학화(Self-theologizing)'를 추구하되 복음의 보편적 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제 III. 인간화 (Humanization)
1) 배경 및 정의 1968년 웁살라 WCC 총회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된 개념입니다. 당시의 혁명적 세계 상황과 반기독교적 정서 속에서, 선교의 목표를 '비인간화된 세상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과 해방신학의 영향을 깊게 받았습니다.
2) 주요 흐름
웁살라(1968):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 설정.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이 선교의 과제라고 보았습니다.
방콕(1973): 구원을 경제적 정의, 정치적 해방, 인간 존엄성 회복 등을 포함한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했습니다.
나이로비(1975):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위한 투쟁과 의식화를 강조했습니다.
3) 평가
기여점: 교회가 세상의 고통(빈곤, 인권 문제 등)에 무관심하지 않고 책임 있는 존재가 되도록 촉구했습니다.
한계점: 수평적 차원(인간 삶의 질)을 강조하다 보니 수직적 차원(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영생)이 소홀해졌습니다. 복음화와 인간화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하나, 실제로는 복음화 열정의 약화를 초래했습니다. 진정한 인간화는 복음으로 인한 내면의 변화에서 시작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제 IV. 선교사 모라토리움 (Missionary Moratorium)
1) 내용과 배경 1970년대 초,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들(존 가투 등)은 서구 선교사들의 파송과 자금 지원을 일시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적 선교에 대한 반발, 서구 교회의 간섭 배제, 그리고 현지 교회의 자립 의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 반응과 평가
에큐메니칼 진영: 이를 환영하며 현지 교회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복음주의 진영: 선교 자체의 중단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미전도 종족 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종합적 시각: 이 요구는 '선교 중단'이 아니라 '선교 관계의 갱신'을 위한 외침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서구 선교사들의 가부장적 태도와 물량 공세를 비판하고, 동반자적 관계를 촉구한 것입니다.
3) 한국 선교에 주는 교훈 한국 선교사들도 현지인을 존중하고, 초기부터 자립 선교를 지향하며, 권한을 이양하는 동역 선교를 해야 합니다. '가라'는 명령뿐만 아니라, 때로는 '물러나서' 현지 교회가 서도록 돕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제 V. 생명 살림 (Enlivening the Creation)
1) 배경: 생태계 위기와 총체적 죽임 현대 사회의 생태계 파괴, 전쟁, 빈곤 등 총체적인 '생명 죽임'의 현실 앞에서 WCC는 1980년대 이후 '생명(Life)'을 핵심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는 1983년 밴쿠버 총회와 1990년 서울 총회의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 운동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2) 주요 영역
정의(Justice):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 구조를 개선하여 가난한 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합니다.
평화(Peace): 전쟁과 폭력,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합니다.
창조질서 보전(Integrity of Creation):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막고 자연과 공존합니다.
3) 비판적 고찰 에큐메니칼 진영의 생명 운동은 시의적절하나, 주로 '이 땅에서의 생명(Bios)'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Zoe)'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생명 운동은 환경과 인권 운동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복음 전도와 통합되어야 합니다.
주제 VI.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1) 성경적 의미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Already)' 임했으나 '아직(Not yet)' 완성되지 않은 이중적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개인의 회심을 통해 시작되며,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역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지닙니다.
2) WCC의 이해와 경향 WCC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강조합니다. 즉, 이 땅에서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사회 변혁 활동을 하나님 나라의 구현으로 봅니다. 이는 개인의 죄보다 구조악의 제거를 강조하며, 인간의 노력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3) 균형 잡힌 시각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정의를 위해 힘써야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 나라 자체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내세적 소망을 잃지 않으면서, 이 땅에서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제 VII. 종교간 대화 (Dialogues among Religions)
1) 대두 배경 제국주의 시대의 일방적 선교에 대한 반성,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한 빈번한 접촉, 그리고 종교 분쟁 해결의 필요성 때문에 '대화'가 중요한 선교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2) 기여점과 한계
기여점: 타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며, 기독교의 배타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한계점: 대화를 통해 진리를 찾는다는 태도는 기독교의 유일성과 진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혼합주의나 종교다원주의로 귀결될 위험이 큽니다.
3) 바람직한 방향 공동선(평화, 환경 등)을 위한 협력적 대화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교(전도)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타종교인을 존중하고 경청하되,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증거하는 '확신 있는 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주제 VIII. 종교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
1) 내용과 주장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포용주의: 타종교인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익명의 그리스도인 - 칼 라너).
다원주의: 모든 종교는 절대자(신)에게 이르는 다양한 길이다(신 중심주의 - 존 힉).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상대주의를 표방합니다.
2) 비판 다원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인간 이성에 기초합니다. 구원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며, 결국 모든 종교의 진리성을 약화시켜 '종교의 안락사'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3) 선교적 자세 다원주의 시대일수록 복음의 선명성이 필요합니다. 타종교인에 대해 불필요하게 공격적이거나 독선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겸손하고 헌신적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부록
1) 19세기 선교사 재평가 그들은 제국주의와 문화 우월주의의 한계를 지녔지만, 동시에 복음을 위한 헌신과 희생, 구령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한계는 반면교사로 삼되, 그들의 열정은 본받아야 합니다.
2) 삼자원리 (Three-Self Principle) 자치, 자립, 자전을 강조한 네비우스 정책 등의 삼자원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이는 건강한 자립 교회를 세우고, 선교의 효율성을 높이며, 진정한 에큐메니칼 동역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
[서평] 현대 선교의 미로 속에서 길을 찾다
1. 변화하는 선교의 지형도
오늘날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다. 과거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명쾌한 대답이 가능했지만, 현대 선교학의 지형도는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사이의 팽팽한 긴장, 그리고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안승오 교수의 저서 『현대 선교의 핵심주제 8가지』는 이러한 현대 선교의 복잡한 숲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탁월한 나침반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선교 신학의 흐름을 주도해 온 주요 쟁점들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선교에 대한 통전적 시각을 제공한다.
2. 균형과 통전성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0세기 이후 등장한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의 주요 개념들—하나님의 선교, 상황화, 인간화, 모라토리움, 생명 살림, 하나님 나라, 종교간 대화, 종교다원주의—을 8가지 핵심 주제로 선정하여 다룬다. 저자의 접근 방식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균형'과 '통전성'이다.
저자는 각 주제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며, 에큐메니칼 진영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선교'나 '상황화' 개념이 제국주의적 선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웠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는 복음주의적 열정(영혼 구원, 교회 개척)을 잃지 않으면서도, 에큐메니칼적 책임(사회 정의, 생태계 보전, 평화)을 아우르는 '통전적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친 선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온전히 본받는 선교를 의미한다.
3. 주요 쟁점에 대한 비평적 성찰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종교다원주의'와 '종교간 대화'를 다루는 장이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가 독선적으로 비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리를 고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다. 저자는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평화와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진리의 상대화나 구원의 유일성 포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또한, '선교사 모라토리움'이나 '19세기 선교사 재평가'와 같은 주제는 한국 선교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게 한다. 한국 교회 역시 단기간에 급성장하며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지만, 현지 교회의 자립을 돕기보다 물량 공세나 지배적인 태도를 보인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현지인 존중'과 '자립 선교(삼자원리)'의 중요성은 오늘날 한국 선교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원리다.
4. 책의 강점과 아쉬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명료함'과 '객관성'이다. 복잡한 신학적 논의들을 평신도나 신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으며, 한쪽 진영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공정하게 분석하려 노력했다. 각 장의 끝에 제시된 '바람직한 방향'은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다만, 각 주제에 대한 방대한 논의를 한 권의 책에 담다 보니, 구체적인 선교 현장의 사례(Case Study)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론적 분석은 탁월하나, 그 이론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갈등을 빚었는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더 보강되었다면 독자들의 이해를 더욱 도왔을 것이다.
5. 흔들리지 않는 선교의 기초를 위하여
『현대 선교의 핵심주제 8가지』는 선교에 헌신하는 목회자, 선교사, 신학생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독서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되 복음의 본질을 굳건히 붙드는 '균형 잡힌 선교'를 제시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장 정체와 사회적 신뢰도 하락이라는 위기 속에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통전적 선교관은 한국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길을 찾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