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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조광운) 리뷰/요약

 


『과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팔복으로 세워가는 단순한 삶

과잉의 시대와 무너진 경계

현대 사회는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치며 감속 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저자 조광운 목사는 인류가 성장과 성취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결핍이 아닌 '과잉'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 자아 과잉, 권력 과잉 등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영적 결핍과 피로를 호소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잉의 본질을 '무경계(no boundary)'로 정의한다.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는 현대인들은 한계와 제한이 없는 욕망의 전차에 올라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자연의 경계를 침범한 결과이며, 이는 우리에게 '멈춤'과 '경계 설정'의 필요성을 경고한다. 이 책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산상수훈의 '팔복'을 통해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말씀의 경계와 진정한 복의 의미를 8가지 주제로 나누어 제시한다.

1. 소비의 과잉과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현대 사회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지배하는 소비 사회다. 사람들은 물건의 기능적 유용성보다는 그 물건이 주는 기호 가치(이미지)를 소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명품을 사고, 유명인이 광고하는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타인과의 차이를 만들고 우월감을 느끼려 하지만, 이는 곧 상대적 박탈감과 끝없는 과소비로 이어진다. 소비주의는 현대인들에게 일시적인 쾌락(지르가즘)을 주지만, 영원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비주의가 신(God)의 자리를 대체하여 현대인들에게 거짓된 위로와 소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는 말씀이다. 심령의 가난함은 단순히 마음의 상태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한 태도를 포함한다. 이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소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비움'의 태도다. 부자 청년은 재물을 나누지 못해 근심하며 돌아갔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과 나누며 진정한 부요함을 누렸다. 소비의 유혹을 이기는 길은 내가 물질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이양하는 심령의 가난함에 있다.

2. 자아의 과잉과 애통한 자의 복

현대인은 '부풀려진 자아'로 인해 고통받는다. 과잉된 자아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불만족을 느낀다. 또한, 비대한 자아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모멸감을 줌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 든다. 이러한 자아 과잉은 기능 중심의 경쟁 사회와 무분별한 자존감 교육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드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사회나 타인을 탓하며 분노한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애통은 자신의 죄와 무능력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슬퍼하는 것을 의미한다. 애통하는 자는 부풀려진 자아의 거품을 걷어내고 자신의 실체를 직면한다. 스데반 집사는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자아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박해자들을 용서했다. 이는 그가 세상의 인정이 아닌 예수님의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자아의 과잉을 해결하는 길은 헛된 '바다 개구리'의 꿈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인정하며 애통해하는 것이다.

3. 권력의 과잉과 온유한 자의 복

오늘날 권력의 문제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역갑질' 등 경계가 무너진 형태로 나타난다. 인류의 타락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권력욕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인간 관계는 서로를 지배하려는 권력 투쟁의 장이 되었다. 현대 사회는 누구나 미디어나 여론을 통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서 권력의 과잉과 남용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권력의 과잉에 대한 해답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는 말씀이다. 온유함(프라에이스)은 단순히 착한 성품이 아니라, 야생마가 주인에게 길들여지듯 자신의 힘과 권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하고 사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모세는 혈기 왕성한 사람이었으나 광야 40년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길들여진 온유한 자가 되었다. 세상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지만, 성경은 하나님께 길들여진 온유한 자가 결국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고 약속한다.

4. 종교성의 과잉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교회 안에도 과잉의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종교성의 과잉'이다. 이는 내면의 참된 신앙과 자기 부인 없이 외형적인 종교 행위와 형식에 집착하는 현상을 말한다. 종교인은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의보다 자신의 종교적 의를 드러내려 한다. 이러한 종교적 열심은 결국 자기 고갈과 탈진으로 이어진다. 루터가 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르려다 실패했던 것처럼, 복음을 오해한 종교성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억압한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하셨다. 여기서 '의'는 인간의 노력으로 쌓은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시는 은혜의 의다. 종교적 행위로 자신을 채우려는 시도를 멈추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굶주린 자만이 진정한 배부름을 얻을 수 있다. 야곱이 조건 없는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듯이, 우리 또한 종교적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을 의지할 때 종교성의 과잉에서 벗어날 수 있다.

5. 기능의 과잉과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현대 사회는 수축 사회, 분노 사회, 빅 브라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있다. 사람을 고유한 존재로 대우하기보다 효용 가치와 기능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적으로 간주하거나,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해 날선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갑질'과 같은 비인격적인 대우가 만연해지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는 말씀이다. 긍휼(엘레오스)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감정을 넘어, 타인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하며 존엄을 세워주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그의 생명과 존엄을 회복시켜 주었듯이, 그리스도인은 기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 속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랑의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6. too much: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우리는 선택지가 너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의 홍수와 상품의 범람 속에서 결정 장애를 겪으며 에너지를 소진한다. '다다익선'이 미덕인 줄 알았던 과잉(too much)은 오히려 우리 삶의 본질을 흐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성과 사회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게 만드는 미디어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성취하도록 부추긴다. 이것은 영적인 우상숭배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두 마음(double mind)을 품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하는 단순한 마음(simple mind)을 갖는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자신의 꾀와 수단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씨름하며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했듯이, 우리는 삶의 복잡한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영적인 단순함을 회복해야 한다.

7. 거짓 평화의 과잉과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세상은 힘과 무력으로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추구한다. 돈과 성공, 권력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거짓된 믿음과 낙관적 편견이 지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 평화는 일시적이며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한다. 성경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가 없을 때 거짓 선지자들이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외치는 것을 경계한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Pax Christi)로부터 온다.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다. 화평하게 하는 자(Peacemaker)는 하나님과 불화하고, 자신과 불화하며, 이웃과 자연과 불화한 관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사람이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막힌 담을 허물고 진정한 샬롬을 만들어가는 자들로 부름받았다.

8. 유사 복음의 과잉과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의 복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며 박해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동질성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세속적 자유(율법폐기주의)'와 '세속적 실용성'이라는 유사 복음이 깊이 침투해 있다. 편리함과 유용성을 따르느라 십자가의 고난과 제자도를 외면하는 신앙은 변질된 것이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고 선언하신다. 박해는 우리가 세상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즉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다는 영광스러운 증표다. 타협하지 않고 말씀의 가치를 따라 세상과 다르게 살아갈 때 오는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가 천국을 소유한 자다. 초대 교회가 세상과 다른 거룩한 대안 사회를 보여주었듯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구별된 삶을 통해 세상에 거룩한 충격을 주어야 한다.

말씀의 경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

과잉의 시대,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 진정한 복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안전한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팔복은 세상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역설적인 행복론이자, 과잉으로 병든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처방전이다. 우리는 소비, 자아, 권력, 종교성, 기능, 정보, 거짓 평화, 유사 복음의 과잉을 경계하고,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림,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케 함, 의를 위한 박해라는 예수님의 성품을 회복함으로써 단순하고도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서평] 과잉(Excess)의 독을 해독하는 팔복이라는 백신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소비하며, 너무 많이 화를 내고, 너무 많이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다."

조광운 목사의 저서 『과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과잉(Excess)'이라는 키워드로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영적 피로와 삶의 무질서가 결핍 때문이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무경계'와 '과잉'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 책은 단순한 성경 강해를 넘어, 사회학적 통찰과 신학적 깊이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삶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근원적 처방으로 예수님의 '팔복'을 제시하는 수작이다.

과잉이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탁월한 분석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현대 사회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 있다. 저자는 장 보드리야르, 소스타인 베블런, 한병철 등 저명한 사회철학자들의 이론을 적절히 인용하며 소비 사회, 피로 사회, 성과 사회의 매커니즘을 해부한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소비를 "기호 가치의 획득"과 "존재 증명"으로 연결하거나, 2장에서 현대인의 우울과 분노를 "자아 과잉"으로 진단하는 부분은 매우 통찰력 있다. 또한, 5장에서 한국 사회를 '수축 사회', '분노 사회', '빅 브라더 사회'로 규정하며 인간 존엄성의 상실을 논하는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문학적 분석은 성경의 메시지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시의적절한 진리임을 깨닫게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팔복: 역설적 가치의 재발견

저자는 세상이 추구하는 '과잉의 복'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 소비 과잉 vs 심령의 가난 (비움)

  • 자아 과잉 vs 애통 (자아 축소)

  • 권력 과잉 vs 온유 (길들여짐)

  • 기능 과잉 vs 긍휼 (존엄 회복)

이러한 대조법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관이 얼마나 성경과 동떨어져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온유'를 "하나님께 길들여진 힘"으로, '긍휼'을 "타인의 존엄을 세우기 위한 사랑의 수고"로, '마음의 청결'을 "복잡한 우상을 버린 단순한 마음(Simple Mind)"으로 재해석한 점이다. 이는 팔복을 단순히 개인의 내면적 덕목 수련 차원이 아니라, 과잉 사회의 시스템에 저항하고 대안적인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투쟁의 원리로 격상시킨다. 저자는 팔복이 2천 년 전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날 과부하 걸린 인생을 구원할 유일한 해독제임을 역설한다.

실천적 적용과 따뜻한 목회적 권면

이 책은 차가운 분석에 그치지 않는다. 각 장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짝퉁 운동화 에피소드, 아르바이트 경험 등)과 구체적인 예시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각 챕터 끝에 요약과 소그룹 나눔 질문을 배치하여 읽은 내용을 실제 삶에 적용하고 공동체와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신은 행복한 개구리입니까?", "내 삶의 과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질문들은 독자를 성찰의 자리로 이끈다.

단순한 삶으로의 초대

『과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복잡하고 분주한 세상에서 길을 잃은 성도들에게 "멈추라"고, 그리고 "말씀의 경계 안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선지자적 외침이자 따뜻한 초청장이다. 우리는 더 채워야 행복할 것이라는 세상의 거짓말에 속아왔다. 하지만 이 책은 비움으로써 채워지고, 낮아짐으로써 높아지며, 죽음으로써 사는 십자가의 역설만이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안식으로 인도함을 보여준다. 정보의 홍수, 관계의 피로, 물질의 압박 속에서 '단순한 삶(Simple Life)'을 갈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리고 진짜 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구도자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당신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가벼움과 평안을 맛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