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규의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2022년 발간된 개정증보판은
📜 저자의 관점: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
저자는 '초판 서문'과 '개정증보판 서문'을 통해 이 책이 대통령들의 '한국 사랑'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시도했음을 밝힙니다.
평가의 저울: 대통령 평가의 유일한 기준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장입니다.
저자는 이 헌법 정신을 저울 삼아 12명 대통령의 공과를 서술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 저자는 정치가 시끄러운 것은 본래 당연한 것이며, 정치인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조선시대 외척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기처럼 정치가 조용한 것은 독재이거나 망국으로 치닫는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합니다. 촛점: 이 책은 대통령 개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당시의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문화의 면면을 함께 살펴봅니다.
📖 책의 구성: 12명의 대통령실록
이 책은 대한민국 헌정사를 이끈 12명의 대통령을 각 장으로 나누어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1장: 이승만 대통령실록
제2장: 윤보선 대통령실록
제3장: 박정희 대통령실록
제4장: 최규하 대통령실록
제5장: 전두환 대통령실록
제6장: 노태우 대통령실록
제7장: 김영삼 대통령실록
제8장: 김대중 대통령실록
제9장: 노무현 대통령실록
제10장: 이명박 대통령실록
제11장: 박근혜 대통령실록
제12장: 문재인 대통령실록
🏛️ 제1장 이승만 대통령실록
제공된 자료는 제1장 '이승만 대통령실록'의 전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장은 이승만의 복잡한 생애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의 혼란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재임 기간: 1948년 7월 ~ 1960년 4월
1. 식민시대의 도전과 성장
초기 생애: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태어났습니다.
20살이 되던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영어 등 신학문을 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독립운동과 투옥: 서재필이 조직한 협성회
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며 《매일신문》, 《독립신문》의 주필을 맡아 민주적 자문기관(중추원) 설립을 주장하고 만민공동회의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박영효 세력의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1899년부터 5년 7개월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미국 유학과 노선 갈등: 1904년 특사로 석방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교(학사), 하버드대학교(석사), 프린스턴대학교(박사)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 하와이에서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주장한 박용만과 외교를 통한 독립을 주장하며 노선 차이로 결별했습니다. 임시정부 대통령과 탄핵: 3·1운동 후 상하이, 한성, 노령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립된 7개의 임시정부 중
3개 정부(한성, 상하이, 노령)의 통합 과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외교 우선주의 노선은 무장투쟁파의 비판을 받았고 , 임시정부와의 갈등 끝에 1925년 3월 대통령직에서 탄핵되었습니다. 암흑기와 기사회생: 탄핵 후 긴 암흑기를 겪던 중
, 1941년 일본의 미국 침략을 예언한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저술했습니다. 그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자 이승만은 예언자로 칭송받으며 미국 내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2. 해방, 미군정과 분단
해방과 분단: 1945년 8월 10일 해방을 맞이했으나
, 한반도는 38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9월 7일, 맥아더 포고령으로 38선 이남의 미군정이 선포되었습니다. 좌우 대립: 미군정 시기, 여운형 중심의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 발 빠르게 움직였으나
곧 해체되고 박헌영 중심의 좌익 세력 '인공(조선인민공화국)' 과 송진우, 김성수 중심의 우익 세력 '한민당(한국민주당)' 이 극렬하게 대립했습니다. 반탁운동과 단독정부: 1945년 10월 귀국한 이승만은
11월에 귀국한 김구와 함께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에 반대하는 '반탁운동'의 선봉에 섰습니다. 이승만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될 것을 예측하고 1946년 6월 정읍 연설을 통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습니다. 김구와 김규식이 통일정부를 위해 남북회담(4김 회동)에 나섰으나 결국 5·10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3. 초대 대통령 (제1~3대)
정부 수립과 권력 기반: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친일 세력을 척결하자는 '반민특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습니다. 그는 경찰 조직 등 친일 경력이 있는 세력을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아 좌익 세력을 궤멸시키려 했습니다.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공포하고 군권을 장악했습니다. 1949년 6월, 최대 정적이던 김구가 암살되었습니다. 6·25 남북전쟁과 재선: 1950년 6월 25일 6·25 남북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회에 의한 간선제로는 재선이 어렵다고 판단, 정치 깡패를 동원하고 국회의원을 감금하는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국민 직선제 중심의 '발췌개헌'에 성공하여 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장기 집권: 1954년, 3선 연임을 위해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억지 논리로 부결된 개헌안을 가결시키는
불법 개헌을 단행했습니다. 1956년 3대 대선에서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급서하는 바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무소속 조봉암 후보가 선전하자 그를 '진보당사건'으로 엮어 사법살인했습니다. 4·19 혁명과 하야: 1960년, 80대 중반의 나이로 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또다시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사망해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통령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노골적인 '3·15부정선거'를 자행했고 ,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봉기했습니다.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위는 '4·19시민혁명'으로 번졌고 , 결국 이승만은 하야를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 제2장 윤보선 대통령실록 (제4대)
(재임 기간: 1960년 8월 ~ 1962년 3월)
제2공화국의 내각책임제 하에서 선출된 상징적인 국가원수였으나, 5·16 쿠데타라는 비극적 사태를 맞이한 대통령입니다.
배경 (4·19와 허정 과도정부): 4·19 시민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허정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 이 정부는 3·15 부정선거 무효와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했습니다 . 제2공화국 출범: 1960년 7·29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으나, 당내에는 구파(윤보선, 김도연)와 신파(장면)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 8월 12일 양원 합동투표에서 구파의 수장인 윤보선이 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실권 없는 대통령: 윤보선은 구파의 김도연을 국무총리로 지명했으나 인준이 부결되었고, 결국 신파의 장면이 국무총리로 인준되었습니다
. 내각책임제 하에서 실권은 장면 총리에게 있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윤보선은 장면 내각과 계속 갈등을 빚었습니다 . 5·16 군사 쿠데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 주도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 당시 국군통수권자였던 윤보선 대통령은 장면 총리가 피신한 상황에서, UN군사령관 매그루더의 진압 병력 동원 요청을 "국군끼리의 전투는 북한에게 남침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이는 결과적으로 쿠데타를 추인한 꼴이 되었습니다 . 하야: 쿠데타 직후 하야를 선언했다가 번복하기도 했으나
,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 1962년 3월 "군정을 4년 연장하겠다"는 박정희의 성명에 반발하며 대통령직을 사임했습니다 . 이후 행보: 하야 후 박정희 정권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야당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 1963년(5대)과 1967년(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박정희에게 연달아 패배했습니다 . 유신 독재 시절에도 '3·1 민주구국선언'(1976)에 동참하는 등 반정부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
🏛️ 제3장 박정희 대통령실록 (제5~9대)
(재임 기간: 1963년 12월 ~ 1979년 10월)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 18년간 재임하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적 경제성장과 '유신독재'라는 극단적 정치 탄압의 명암을 동시에 남긴 대통령입니다.
집권 (5·16 쿠데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은 김종필(육사 8기) 등과 3,500여 명의 병력으로 군사 쿠데타를 감행해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 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해 3권을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중앙정보부'를 창설했습니다 . 제3공화국 (1963~1972): 1963년 5대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막대한 자금 확보를 위해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국교정상화'(1965) 와 '베트남전쟁 파병'(1964) 을 강행했습니다. 이 자금(월남 특수)을 기반으로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을 이룩했습니다 . 1967년 재선에 성공한 뒤, 장기 집권을 위해 1969년 '3선 개헌'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 제4공화국 (유신 독재 1972~1979): 1971년 7대 대선에서 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 예상외로 고전하며 신승하자
, 합법적인 연임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10월 유신'을 단행, 영구 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 유신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대통령 간선제, 대통령의 국회의원 3분의 1 추천권, 국회해산권 등을 보장하는 초헌법적 독재 체제였습니다 . 저항과 탄압: 유신 반대 운동이 거세지자 '긴급조치'라는 무소불위의 수단으로 국민의 저항을 짓눌렀습니다
. 이 과정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1973) , '민청학련 및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 등을 조작해 수많은 민주 인사와 학생들을 탄압했습니다. 특히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은 대법원 판결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어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 노동자들의 저항(전태일 분신, 1970)도 이 시기에 격화되었습니다 . 종말 (10·26 사태): 1979년 'YH무역 여공 농성 사건'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으로 촉발된 '부마항쟁'(부산·마산 민주항쟁)이 발생했습니다 . 사태 수습 과정에서 강경 진압을 주장한 차지철 경호실장과 온건한 수습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을 권총으로 사살함으로써 18년 독재는 막을 내렸습니다 .
🏛️ 제12장 문재인 대통령실록 (제19대)
(재임 기간: 2017년 5월 ~ 2022년 5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출범하여, 검찰개혁의 소용돌이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임기를 보낸 대통령입니다.
집권 (촛불 정부): 1953년 경남 거제 피란민 수용소 출생
. 경희대 법대 재학 중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 강제 징집(특전사)됨 . 사법시험 합격 후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좌절되자 ,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으나 ,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대통령 탄핵 사태 후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 41.1% 득표율로 당선되었습니다 . 적폐 청산: '나라다운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적폐 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습니다
. 이 과정에서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사법 처리되어 구속·수감되었습니다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 2018년에만 김정은 위원장과 세 차례(4.27 판문점, 5.26 판문점, 9.19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역사적인 싱가포르(2018.6), 하노이(2019.2), 판문점(2019.6)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했습니다 . 하지만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된 이후,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 등으로 남북 관계는 다시 경색되었습니다 . 검찰 개혁과 '조국 사태': 검찰의 막대한 권력 분산을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검경 수사권 조정을 추진했습니다 .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의 기수로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개혁에 반기를 들었고,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감행했습니다 . 이는 '조국 사태'로 비화되어,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을 외치는 진보와 보수 진영이 각각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로 맞서는 등 극심한 국론 분열을 야기했습니다. 총선 압승과 팬데믹: '조국 사태'의 여진과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2020년 21대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 정부의 K-방역이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80석(비례 포함)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경제 (J노믹스)와 부동산 정책 실패: '소득 주도 성장'을 경제 기조로 삼아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했으나
, 자영업자 등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 사드 보복(중국), 무역 분쟁(일본), 팬데믹이라는 연이은 악재 속에서도 G7 수준의 경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 하지만 임기 내내 유례없는 집값 폭등을 겪었으며 , 23차례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값이 2배가량 폭등하는 등 정책 실패로 '영끌', '빚투' 같은 사회 현상을 낳으며 국민적 원성을 샀습니다 . 퇴임: 임기 말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나
, 자신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당 후보로 출마하여 0.73%p라는 근소한 차이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습니다 . 2022년 5월 퇴임 후 경남 양산 사저로 귀향했습니다 .
✒️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서평: 헌법의 저울로 달아본 12명의 현대사
밀리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실록사가'라는 칭호를 얻은 박영규 저자가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집필 기준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신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대통령실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단순히 12명의 개인 약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대통령을 한 시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놓고, 그 시기의 정치·외교·국방·경제·사회·문화·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는 방식을 취했다"고 밝힙니다
저자는 개정증보판 서문에서 "정당의 팽팽한 대립은 곧 작은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역으로 국민의 힘이 강해졌다는 뜻"이라고 진단합니다
'역사 대중화의 기수'라는 저자의 명성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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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통령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은 독자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각 정권의 공과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하고 싶은 독자
박영규 저자의 '실록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은 독자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정치·사회적 지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뿌리를 알고 싶은 모든 시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