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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조한욱) 리뷰/요약

 

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역사의 이면』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우리가 몰랐던 진짜 역사 이야기

이 책은 조한욱 교수가 10년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거대한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닌 구체적인 '사람'과 '사건'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저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의 오류를 바로잡거나, 우리 사회의 현안에 비추어 볼 만한 외국의 사례를 발굴하여 민주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고자 했습니다.

[제1부] 편견과 통념을 깨는 역사의 시작

1) 달력과 시간의 역사, 그리고 노동의 가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1월 1일이 새해의 시작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지역마다 성탄절, 수태고지일(3월 25일), 부활절 등을 새해 첫날로 삼았습니다. 영국에서는 1752년까지 3월 25일을 새해로 쳤기 때문에, 찰스 1세의 처형 날짜가 의회 기록과 역사책 사이에 1년의 차이가 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의 약속처럼, 역사 속 '노동'의 의미도 투쟁을 통해 변화했습니다. 1894년 미국의 '풀먼 파업'은 철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고, 이 과정에서 유진 데브스는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반면, 풀먼 사의 흑인 승무원인 '풀먼 포터'들은 비록 열악한 처우였으나 흑인 중산층 형성의 기반이 되며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토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 우리가 몰랐던 인물들의 숨은 이야기

  • 존 필립 수자: '행진곡의 왕'으로 불리는 수자는 사실 서커스에 빠져있던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가 해병대 군악대로 억지 입대시키면서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수자 밴드를 이끌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1차대전 때는 월급의 대부분을 기부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습니다.

  • 에베레스트의 이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측량사 조지 이브리스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정작 그는 현지 지명을 쓰는 관례를 들어 자신의 이름이 붙는 것을 반대했으나, 후임자 앤드루 스콧 워가 존경의 의미로 밀어붙여 확정되었습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루비콘강: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하지만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뇌했으며, 초현실적인 환영을 보고 결단을 내렸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집니다.

3) 차별에 맞선 목소리들 미국의 여성 단체 '미국 혁명의 딸들'은 흑인 가수 매리언 앤더슨의 공연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탈퇴로 항의했고, 앤더슨은 링컨 기념관 앞 야외 공연으로 7만 5천 관중을 모으며 인종 차별에 맞선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벨기에의 아돌프 삭스는 어린 시절 온갖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저주받은 아이'), 결국 색소폰을 발명하여 음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습니다.

[제2부] 문화와 예술, 그리고 권력의 그림자

1) 영화와 예술 속의 역사

  • 미키마우스의 변천: 1928년 탄생한 미키마우스는 초기에는 악동 이미지가 강했지만, 점차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성격이 변모했습니다. 미키마우스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자,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었습니다.

  • 커크 더글러스의 용기: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제작자이자 주연이었던 커크 더글러스는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 돌턴 트럼보의 실명을 크레딧에 올리는 용기를 보여주며 할리우드의 부당한 관행을 깼습니다.

  • 비비언 리의 고뇌: 세기의 미녀 배우 비비언 리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펌하될까 끊임없이 고뇌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에서 보여준 광기 어린 연기는 실제 조울증과 겹쳐져 그녀의 삶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습니다.

2) 독재와 저항의 역사

  • 빅토르 하라: 칠레의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는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체포되어 고문 끝에 살해당했습니다. 그의 노래와 삶은 독재에 저항하는 칠레 민중의 상징이 되었으며, 훗날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 체코슬로바키아 아이스하키팀: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탱크에 짓밟힌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만난 소련을 상대로 체코슬로바키아 선수들은 '빙상 전쟁'을 치르듯 경기에 임해 승리했습니다. 이는 무력감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 코스타 가브라스: 영화 <의문의 실종>을 통해 칠레 쿠데타 당시 미국 정부의 개입과 방관을 고발했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독재를 묵인하는 강대국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3) 지성인들의 명암

  • 하이데거와 나치: 위대한 철학자로 칭송받는 하이데거지만, 나치에 협력한 전력은 그의 사상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입니다. 반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카를 야스퍼스는 나치에 저항하며 지식인의 양심을 지켰습니다.

  • 알퐁스 도데의 두 얼굴: 『별』, 『마지막 수업』으로 순수한 서정성의 대명사로 알려진 알퐁스 도데. 그러나 실상 그는 왕당파를 지지하고 반유대주의 성향을 가진 보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문학적 명성과 실제 삶 사이의 괴리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줍니다.

[제3부] 사회 정의와 인권의 발자취

1) 여성 인권의 선구자들

  • 테레사 멀키엘: 오늘날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여성의 날'을 1909년에 처음 제정한 인물입니다. 사회당 내에서도 차별받던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으며, 이중의 억압(자본가와 남성 동료)에 맞서 여성 스스로를 조직했습니다.

  • 케이트 셰퍼드: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가 된 것은 케이트 셰퍼드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인종, 계급, 성별에 의한 분리는 비인간적"이라는 신념으로 1893년 여성 투표권 법안 통과를 이끌어냈습니다.

  • 에밀리 데이비슨: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1913년 엡섬 더비 경마장에서 국왕의 말 앞에 뛰어들어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주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 불을 지폈습니다.

2) 차별과 혐오에 맞선 사람들

  • 헨리 오시언 플리퍼: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최초의 흑인 장교였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의 따돌림과 상관의 모함으로 횡령 혐의를 뒤집어쓰고 불명예 제대했습니다.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습니다.

  • 재키 로빈슨: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로, 온갖 야유와 살해 협박 속에서도 실력과 인내로 '그들만의 리그'였던 야구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전 구단 영구 결번(42번)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방식입니다.

  • 제이드리언 코타와 분홍색 셔츠: 캐나다의 한 남학생이 분홍색 셔츠를 입었다고 괴롭힘을 당하자, 친구들이 다 같이 분홍색 셔츠를 입고 등교하여 학교 폭력에 항의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분홍색 셔츠의 날' 캠페인으로 확산되었습니다.

3) 과학과 의학의 발전, 그리고 윤리

  • 갈색 개 사건: 1903년 런던대 의대 교수가 강아지를 생체 해부한 사건을 두고, 의학 발전을 명분으로 한 과학계와 동물 권리를 주장하는 반대파가 격렬하게 충돌했습니다. 이는 생명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킨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 알렉산더 플레밍: 페니실린의 발견은 우연(세런디피티)으로 알려져 있지만, 플레밍의 준비된 자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1차대전 당시 부상병들의 참상을 보며 항생 물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연구에 매진해왔습니다.

[제4부] 인문 정신과 역사의 교훈

1)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 키케로와 인문정신: '후마니타스(인문학)'라는 말을 만든 키케로는 공적 영역에 참여하면서도 고결한 사적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인문정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타 민족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습니다.

  • 함무라비 법전의 재발견: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법으로만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는 사실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자의 책임을 묻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잘못된 판결을 내린 법관에게 배상 책임을 물리고 파면시키는 조항은 현대 사법 정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 역사를 바라보는 눈

  •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역사가로, 역사적 사건 이면의 심리적 요인(불안, 공포)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극단적 대립보다는 사회적 '동의'가 역사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 잠바티스타 비코: 저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비코는 『새로운 학문』을 통해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진리를 설파했습니다. 그는 신화와 언어를 통해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추적하는 독창적인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3) 잊지 말아야 할 기억

  • 제주 4.3과 냉전: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은 반공을 명분으로 세계 곳곳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거나 학살을 묵인했습니다. 제주 4.3 사건 역시 미 군정의 묵인과 지원 아래 자행된 국가 폭력의 비극으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합니다.

  • 수정의 밤: 1938년 11월 9일, 나치 추종자들이 유대인 상점과 시납고를 파괴하고 학살한 사건입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수정처럼 반짝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 실상은 홀로코스트의 서막을 알리는 잔혹한 폭력이었습니다.



[서평] 역사의 조연들이 들려주는 거대한 울림

1) 영웅 중심의 역사관을 뒤집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위인들의 전기'로 배운다. 카이사르, 나폴레옹, 링컨 같은 거인들이 시대를 이끌어갔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교과서 귀퉁이에 짧게 언급되거나 아예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소소한' 인물들이다. 저자는 미시사(Microhistory)적 관점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실제로 굴린 것은 이름 없는 다수였음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풀먼 파업' 챕터에서는 파업을 이끈 지도자 유진 데브스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도 긍지를 잃지 않았던 흑인 승무원 '풀먼 포터'들을 조명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노동 운동사를 넘어 미국 흑인 인권사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된다. 또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다룰 때도 황제의 전략적 실수보다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 겪어야 했던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러시아 민중의 저항(초토화 작전)에 주목한다. 이는 역사가 몇몇 영웅의 체스 게임이 아니라, 수많은 민초들의 삶과 죽음이 얽힌 리얼리티임을 일깨워준다.

2) 지식의 향연, 그리고 비판적 뒤집기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뒤집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의 평판이 실상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대목들은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순수한 문학청년으로 알았던 알퐁스 도데가 실은 극우 왕당파이자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 ,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단순히 헌신적인 간호사가 아니라 통계학을 활용해 의료 시스템을 개혁한 행정가이자 여성 운동가였다는 재해석 등은 독자에게 "당신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듯하다. 이러한 폭로(?)는 단순히 흥미 위주의 가십이 아니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맹목적인 영웅 숭배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게 만든다.

3)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던지는 인문 정신

무엇보다 이 책이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인문 정신'의 회복이다. 저자는 키케로의 말을 빌려 인문 정신을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점잖고 충실한 사적 삶을 영위하는 덕성"이며, 나아가 "약소민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정의한다.

책 곳곳에는 차별과 혐오에 맞선 이들의 투쟁기가 담겨 있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경주마에 뛰어든 에밀리 데이비슨, 인종 차별의 벽을 넘은 재키 로빈슨, 장애를 딛고 환경 운동가가 된 줄리아 힐 등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제주 4.3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등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된 칼럼들은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아픔을 치유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도구여야 함을 역설한다.

4) 소소하지 않은, 묵직한 울림

『소소한 세계사』라는 제목은 겸손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200자 원고지 몇 장 분량의 짧은 칼럼들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무게감은 대하소설 못지않다. 저자는 방대한 문헌 연구와 성실한 사실 확인을 통해 자칫 가볍게 흐를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관심 가는 인물이나 키워드를 골라 읽어도 좋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이면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기억 투쟁의 장이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소소한' 사람들의 발자취가 바로 오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추천 대상:

  • 역사 교과서의 건조한 서술에 지친 독자

  • 짧은 호흡으로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 싶은 직장인 및 학생

  • '상식의 배반'을 즐기며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싶은 모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