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먹다 듣다 걷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한 세 가지 동사
1. 정지된 명사에서 역동적인 동사로
이 책은 이어령 박사가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 주제 콘퍼런스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되었습니다
2. 먹다 - 육신의 빵을 넘어 생명의 빵으로
한국인의 식문화와 성경의 접점
한국인은 '먹는 것'을 유독 중시하는 민족입니다.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축구 경기에서 골도 먹습니다
밀레의 그림으로 보는 기독교적 복지
저자는 밀레의 명화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을 통해 진정한 기독교적 나눔을 설명합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은 단순한 사회 고발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수확물을 싹쓸이하지 않고 이삭을 남겨두라는 신명기와 레위기의 말씀(신 24:19, 레 19:9-10)을 실천하는 현장입니다
<만종>에 등장하는 부부는 가난한 노동자이지만, 땅에서 얻은 소산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임을 알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먹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지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본질적인 목적이 아님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마귀의 시험을 거부하셨습니다
3. 듣다 - 시각의 시대를 넘어 청각의 영성으로
보는 문화 vs 듣는 문화
서구 헬라 문화는 시각 중심(Icon)이지만, 히브리 문화는 청각 중심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사역보다 앞서는 말씀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르다는 접대 준비로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마르다처럼 너무 분주합니다
4. 걷다 - 상생과 생명을 향한 거룩한 행진
걷기의 영성과 인문학적 의미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자,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대면하는 행위입니다
미국의 평화 운동가 '피스 필그림(Peace Pilgrim)'은 28년간 4만 km를 걸으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걷기와 엠마오 도상
예수님의 생애는 끊임없는 걷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그리고 사마리아를 통과하며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기도 걷기: 상생의 실천
저자는 한국 교회에 '기도 걷기'를 제안합니다
서구 문명은 경쟁과 포식의 역사였지만, 이제는 공생(Symbiosis)의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5.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물뿐만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습니다
[서평] 생명의 동사로 다시 쓰는 기독교: 《먹다 듣다 걷다》를 읽고
명사(名詞)에 갇힌 신앙을 깨우는 동사(動詞)의 영성
이어령 박사의 《먹다 듣다 걷다》는 한국 지성사의 거장이 남긴 영적 유산이자,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쓴소리와 희망의 제안을 담고 있다. 저자는 평생을 언어와 문화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인문학자답게, 기독교의 진리를 딱딱한 교리가 아닌 생동감 넘치는 세 가지 동사 '먹다, 듣다, 걷다'로 치환하여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기독교 신앙을 '관념'에서 '실체'로 끌어내린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 교회가 그동안 '믿음', '구원', '천국'과 같은 추상적인 명사에 갇혀 있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은 철저히 동사적이었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끊임없이 '걸으셨다'. 이 책은 신앙이 머리 속의 동의가 아니라, 손과 발, 입과 귀로 행하는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인문학적 통찰로 재해석된 성경과 예술
저자의 탁월함은 성경 텍스트를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예술 작품과 융합하여 해석하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 대한 해석은 압권이다. 흔히 전원적인 풍경이나 빈곤에 대한 묘사로 읽히는 이 그림에서, 저자는 구약 성경 레위기의 '이삭 줍기' 율법을 길어 올린다. 싹쓸이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위해 일부러 남겨두는 '국물'의 미학, 그것이 성경적 복지의 원형이라는 통찰은 현대의 기계적이고 제도적인 복지가 놓치고 있는 '자비'와 '존엄'의 가치를 일깨운다.
또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일화를 통해 '사역의 과잉'에 빠진 현대 교회를 꼬집는 대목은 뼈아프다. 봉사와 섬김이라는 이름으로 분주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말씀(로고스)을 듣는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세상과 똑같은 빵을 주면서 기독교 복지라고 자위하지 말라는 일갈은,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것이 무엇인지(생명의 빵)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상생을 위한 걷기, 교회의 미래
책의 후반부에서 제안하는 '걷기'는 단순한 건강법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선교 방식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기도 걷기'라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걷는 행위가 나 자신의 건강을 넘어 타인을 돕는 기부와 기도로 이어지는 '상생'의 구조를 꿈꾼다. 이는 경쟁과 도태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대안적 삶의 방식이다. 스스로 길을 내며 걸어가는 것, 안주하지 않고 소외된 곳(사마리아)을 향해 걷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교회의 증거이다.
다시, 예수의 길 위에서
《먹다 듣다 걷다》는 신학 서적이 아니지만, 그 어떤 신학 책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지성의 문지방을 넘어 영성의 세계로 들어온 노석학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다. 그는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비난 속에서 위축되지 말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당당하게 먹이고, 듣고, 걸으라고 격려한다. 이 책은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진 성도들에게는 영적 야성을 회복하는 자극제가,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는 명확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으나 빵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끌어안고, 영원한 생명의 빵을 향해 걷는 순례의 길에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