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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신학사전』(류호준) 리뷰/요약

 


류호준, 『일상신학사전』: 앎과 삶과 믿음을 재구성하는 영혼의 낱말들

1. 일상의 언어로 신앙을 번역하다

류호준 교수의 『일상신학사전』은 강단의 딱딱한 교리적 언어가 아닌, 시장과 거리,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서 매일 부딪히는 ‘일상의 언어’로 하나님과 세상을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반드시 의무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쓴 글임을 밝힌다. 그는 신앙을 특정한 종교적 행위 안에 가두지 않고, 평범한 하루의 일과, 계절의 변화, 사회적 현상, 그리고 인간의 희로애락 속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포착하려 한다. 이 책은 '가'부터 '하'까지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500여 개의 표제어를 통해,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생각하고(앎), 어떻게 살아가며(삶),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믿음)를 재구성한다.

2. 본문 주요 내용 및 주제별 재구성

가. 인간 존재의 실존과 고통의 의미

저자는 인간을 흙(아다마)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로 규정하며, 우리의 유한성을 직시하게 한다.

  • 가시: 살갗 밑의 가시가 더 아프듯, 고통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온다. 이는 관계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사랑이 동반하는 필연적인 아픔을 설명한다.

  • 고통: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자신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창문이 된다. 저자는 십자가를 "인간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하나님의 창문"으로 정의하며, 고난의 신학을 역설한다.

  • 나이: 나이를 먹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라가는 것이어야 한다. 백발은 지혜의 상징이어야 하지만, 오직 의로운 삶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영광이다.

  • 눈물: 하나님은 종말에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저자는 모든 눈물이 다 똑같지 않음을 지적하며, 각 눈물에 담긴 사연과 농도를 하나님께서 헤아리신다고 위로한다.

나. 왜곡된 한국 교회와 성직주의에 대한 비판

이 책의 상당 부분은 한국 교회의 물신주의, 성과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목회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예언자적 목소리)을 담고 있다.

  • 개척: 교회를 세우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양들을 우리로 데려오는 것이다. 종교 사업가가 되는 것이 목회의 길이 아님을 강조한다.

  • 갑과 을: 고용주(갑)는 피고용인(을)의 삶이 오로지 사업을 위해 존재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교회 내 부목사나 직원을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되는 윤리적 지침이다.

  • 성공과 성과 사회: 성과 사회는 결국 피로 사회로 이어진다. 교회 안의 성장주의 역시 교인들을 소진시키고 고갈시키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 목회자: 목회자의 소명은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을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삯꾼과 참된 목자를 구별하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희생적 리더십을 촉구한다.

  • 특새(특별새벽기도): 복을 기원하며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현상을 비판하며, 기복신앙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다. 참된 제자도와 영성

저자는 화려한 종교적 수사보다는 침묵, 인내, 정직, 그리고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을 참된 영성으로 정의한다.

  • 기도: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손을 내밀어 펴는 것이다. 움켜쥔 손을 펴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는 행위이며, 삶을 소유물이 아닌 선물로 바라보는 태도다.

  • 뒷담화: 타인의 뒤통수를 치는 비겁한 행위로 규정하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습임을 경고한다.

  • 무릎 꿇음: 개울가에 무릎 꿇은 다윗처럼, 생명의 물가에 무릎을 꿇을 때 세상의 중심을 발견하고 흔들리지 않게 된다.

  • 번역: 성경 번역뿐만 아니라, 말씀을 삶으로 번역해 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번역이다. 말이 삶이 되고, 텍스트가 컨텍스트가 되는 육화(Incarnation)의 과정을 강조한다.

라. 사회 정의와 공공성 (Public Theology)

신앙은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 속에서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공공성을 지향해야 한다.

  • 공공성: 교회는 사립(Private)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공교회(Public Church)여야 한다. 교회가 사유화될 때 사교(邪敎)가 된다.

  • 정의: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외모나 귀천을 보지 않고 판결해야 한다. 저자는 정의가 예배로 가는 디딤돌이며, 정의 없는 예배는 위선임을 강조한다.

  • 국민성: "나만 잘 살면 돼"에서 "남을 도우면서 살아야 돼"로 진보해야 한다. 이는 기독교 윤리가 개인 구원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 세월호와 사회적 참사(함축적 내용): 저자는 억눌린 자, 고통받는 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며, 하나님은 영원히 약자의 하나님이시기를 기뻐하셨음을 상기시킨다.

마. 종말론적 희망과 하나님 나라

저자는 현재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마침내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을 놓지 않는다.

  • 기다림(대림절): 성탄은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는 날이 아니라, 오시는 하나님을 설렘으로 기다리는 계절이다.

  • 이미와 아직: D-day(십자가 승리)는 지났으나 V-day(최후 승리)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이의 긴장 속에서 마귀의 잔당을 소탕하며 살아가는 군사들이다.

  • 하늘의 소망: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이 소망이 있기에 땅에서의 삶을 견디고 초월할 수 있다.

  • 회복: 하나님은 깨진 조각을 모두 모으신 후에 치유하신다. 온전한 회복은 철저한 부서짐 뒤에 온다.

바. 일상의 재발견 (Everyday Theology)

책의 제목처럼,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일상'이다.

  • 일상: 일상은 무한한 보물단지이자 광대한 도서관이다. 평범한 하루, 밥상, 만남, 자연 현상 속에 하나님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

  • 일상의 기적: 아침에 열고 나간 문을 저녁에 다시 닫고 들어올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다. 특별한 이적을 좇는 신앙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 숨겨진 은혜를 발견하는 눈을 뜨게 한다.

  • 성례: 빵 조각, 물 한 그릇, 무지개 등 일상의 사물들이 은혜의 방편이 된다. 일상을 신성모독적으로 만들지 말고, 거룩한 목적을 발견해야 한다.

3. 앎과 삶의 일치를 향하여

류호준 교수는 『일상신학사전』을 통해 신학이 상아탑의 학문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뒹구는 치열한 고민이자 고백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예수를 연구해서 신학박사가 되느니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 훨씬 낫다" 고 말하며, 지성적 이해를 넘어선 실천적 삶(제자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성찰), 창밖을 보며 이웃을 생각하고(연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고(예배), 다시 땅을 딛고 묵묵히 걸어가라(소명)고 권면한다. 결국 신학이란 앎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순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여정'임을 보여준다.



[서평] 일상의 언어로 빚어낸 영혼의 지도, 『일상신학사전』

강단에서 내려와 장터로 나간 신학자의 따뜻하고도 서늘한 묵상

한국 교회 강단에는 종종 '신학적 방언'이 난무한다.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 교리적으로는 옳지만 삶의 구체적인 정황과는 유리된 추상적인 언어들이 성도들의 귀를 맴돈다. 류호준 교수의 『일상신학사전』은 이러한 교회 언어와 일상 언어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쓰인 귀한 역작이다. 저자는 구약학자로서의 깊은 통찰과 목회자로서의 따뜻한 심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단어들을 붙잡아 그 속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길어 올린다.

1. 낯설게 하기: 일상의 재발견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낯설게 하기'에 있다. 저자는 '가시', '거절', '설렘', '밥', '비'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단어들을 신학적 프리즘에 통과시켜 전혀 새로운 빛깔의 의미를 추출해낸다. 예를 들어, '뒷담화'를 "타인의 뒤통수를 치는 비겁함"으로 정의하며 공동체의 파괴를 경고하거나 , '맥주병'을 통해 "물속에 들어가 완전히 죽어야 다시 사는" 세례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 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에게 일상은 단순히 반복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숨겨두신 보물찾기의 현장이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루한 일상을 '성례전적'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갔다가 저녁에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기적' 이라는 그의 고백은, 자극적인 간증에 중독된 한국 교회에 잔잔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준다.

2. 예언자적 비판: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이 책은 따뜻한 위로의 에세이집인 동시에, 서늘한 비판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병폐를 외면하지 않는다. 물신주의, 성직자들의 타락, 대형 교회의 세습, 기복신앙, 사회적 정의에 대한 무관심 등을 향해 예언자적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목회자의 소명은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이 아니다" , "성공 신화에 매몰된 성과 사회가 피로 사회를 만든다" 는 지적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경고다. 특히 '정의'와 '공공성'에 대한 강조는 신앙이 개인의 내면적 평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사회적 책임과 윤리로 확장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역설한다. 저자의 이러한 비판은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터져 나오는 탄식(Lament)에 가깝다.

3. 문학적 감수성과 통합적 영성

류호준 교수의 글은 논리적이면서도 지극히 문학적이다. 프레드릭 뷰크너를 멘토로 삼았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그의 글은 시적 은유와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힘을 공급해주시는 분" 이라고 정의하거나, "신앙은 똑바로 걷되 우아하게 걷는 것" 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신학적 진리를 감성적인 언어로 전달한다. 이러한 문학적 접근은 신학이 머리(지성)만의 활동이 아니라 가슴(감성)과 손발(의지)이 함께하는 통합적 활동임을 보여준다. 그는 교리와 실천, 예배와 정의, 기도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통전적 영성'을 추구한다.

4.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영혼의 가이드북

『일상신학사전』은 한 번에 독파해야 할 책이 아니다. 침대 머리맡이나 책상 위에 두고, 마음이 곤고할 때나 길을 잃었을 때, 혹은 일상의 단어 하나가 유독 마음에 걸릴 때 펼쳐보아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구를 믿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구질구질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셨음을 깨닫게 해준다. 참된 신앙의 깊이를 고민하는 모든 평신도와 목회자들에게, 이 책은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여정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