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신앙을 깨트리는 야성의 영성, 《욕쟁이 예수》가 말하는 25가지 예수의 얼굴
1. 반쪽짜리 예수를 넘어서 온전한 예수를 만나다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예수를 '거룩하고 점잖은 분'으로만 박제해 왔다. 저자 박총은 이를 "반쪽짜리 예수"라고 칭하며,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겪는 괴리감의 원인이 바로 이 왜곡된 예수상에 있다고 지적한다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의 감정
욕쟁이 예수와 거룩한 분노: 우리는 욕설을 불쾌하게 여기고 점잖음을 미덕으로 여기지만, 예수님과 세례 요한, 바울은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불의를 향해 "독사의 자식(뱀 새끼)"이라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솔직한 예수, 하나님 앞에서 격하게 진실하라: 예레미야나 욥, 다윗과 같은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제된 언어 대신 막말에 가까운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겁쟁이 예수와 공포의 극복: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의 공포 앞에 떨며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애원한 지독한 겁쟁이셨다
3. 일상 속에 깃든 영성: 먹고, 마시고, 일하며
술꾼 예수와 금주/음주의 자유: 한국 교회의 오래된 논쟁거리인 술 문제에 대해 저자는 도발적이면서도 성경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성경은 술을 하나님의 선물로 묘사하며, 예수님 역시 '먹보와 술꾼'이라 불릴 만큼 풍류를 즐기셨다
모노태스커 예수와 걷기의 영성: 멀티태스킹이 미덕인 시대에, 저자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모노태스킹 영성'을 제안한다
스마트폰을 쥔 예수와 이미지의 시대: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연출하는 '피관음의 욕망' 속에 산다
4. 관계와 사랑: 연인, 이름, 그리고 파티
연인 예수와 연애의 영성: 저자는 아내와의 10년 연애담을 통해 사랑의 영성을 이야기한다. 돈과 스펙이 없으면 연애도 못 한다는 맘몬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소박한 '새마을 데이트'를 통해 서로의 영혼을 세워주는 사랑을 했다
철수 예수와 작명의 영성: 이름은 존재와 관계의 시작이다. 저자는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해민, 화니, 해언, 해든)을 통해 이름 짓기의 영성을 소개한다
파티 보이 예수와 축제의 영성: 하나님 나라는 금욕과 고행의 장소가 아니라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잔치집이다
5. 사회와 정치: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반골 예수와 하나님 나라의 게임 법칙: 세상은 승자 독식의 경쟁을 강요하지만,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경쟁의 룰을 깨뜨리셨다
세속 국가주의자 예수와 정치적 제자도: 저자는 기독교 국가를 꿈꾸는 '성시화 운동'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대한민국은 세속 국가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님과 함께 일하는 예수: 저자는 타종교, 특히 불교에 대한 배타적이고 무례한 태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6. 변두리 예수와 희망의 연대
유색인 예수와 다문화 사회: 예수님은 백인이 아니라 유색인이었으며, 철저히 변두리 인생을 사셨다
목수집 큰애 예수와 성탄의 본질: 성탄절은 소비와 유흥의 날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성육신을 묵상하는 날이다
변두리 예수, 성문 밖으로: 예수님은 영광스런 성전 안이 아니라 쓰레기와 오물이 버려지는 성문 밖에서 죽으셨다
[서평] 거룩한 불경, 혹은 가장 정직한 복음의 회복
박총의 《욕쟁이 예수》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욕쟁이'와 '예수'라는, 한국 교회의 정서상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은 독자에게 당혹감을 주는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이 불경스러워 보이는 제목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예수의 가장 거룩한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 교회가 애써 외면해 온 예수의 '불편한 진실'들을 25가지의 다채로운 얼굴로 복원해 낸다.
박제된 예수와의 결별, 야성의 회복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과 '구체성'이다. 저자는 추상적인 신학 용어 뒤에 숨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일상,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욕망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는 예수가 성전에서 상을 엎으며 분노했던 '욕쟁이'였음을 상기시키며, 거룩함을 가장한 우리의 위선과 침묵을 질타한다. 술, 담배, 제사 문제와 같은 한국 교회의 금기 사항들을 성경적 관점과 인문학적 통찰로 재해석하며, 율법주의에 갇힌 자유를 해방시킨다. 이는 방종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성숙한 자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원론의 극복'이다. 저자는 기도와 예배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연애를 하고, 투표를 하는 모든 일상이 예배임을 역설한다. '모노태스커 예수', '연인 예수', '투표하는 예수' 등의 챕터는 신앙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회심"을 강조하는 저자의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감정적 배설이 아니라, 제국의 삶의 방식(성공, 경쟁,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나눔, 평화, 공생)을 선택하는 결단이라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예언
이 책은 편안한 위로를 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읽는 내내 마음을 찌르고 불편하게 만든다. 대형 교회의 성장 지상주의, 배타적인 공격성, 기득권과 결탁한 보수 기독교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속 국가주의자 예수'나 '스님과 함께 일하는 예수' 챕터는 타종교에 대한 한국 교회의 무례함을 꼬집으며,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길을 제시한다. 이는 종교적 독선을 신앙의 열정으로 착각해 온 우리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다.
또한 저자는 철저하게 '약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철거민, 그리고 생태계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예수의 삶을 조명하며, 오늘날 교회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묻는다. '변두리 예수'는 중심부로 진입하기 위해 안달 난 현대인들에게, 구원은 성문 밖 변두리에서 일어난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선포한다. 이는 성공 신화에 매몰된 한국 교회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다.
다시, 예수를 만나다
《욕쟁이 예수》는 단순히 교회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글 곳곳에는 한국 교회를 향한 깊은 애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배어 있다. 그의 비판이 아프면서도 시원한 이유는 그것이 냉소적인 비난이 아니라,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치열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반쪽짜리 예수'에 만족하며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위험한 책이다. 그러나 신앙과 삶의 괴리로 고민하는 이들, 교회의 배타성과 위선에 상처받은 이들, 그리고 진짜 예수를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책이다. 저자가 그려낸 25가지 예수의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곁에 오셔서 "야, 이 놈아!" 하며 등짝을 후려치시거나, 지친 어깨를 감싸 안아주시는 '진짜 예수'의 체온을 느끼게 될 것이다. 12년이 지나 개정판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여전히, 아니 더욱 유효하다. 우리가 믿는 예수가 누구인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다시금 묻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