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채영광) 리뷰/요약

 


시카고 암 전문의가 만난 뜻밖의 하나님: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1. 사랑이 없던 의사, 기적을 만나다

이 책은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병원(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의 종양내과 교수이자 암 전문의인 채영광 저자가 진료실과 연구실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한 신앙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을 거쳐 미국 주류 의학계에서 성공한 의사로 자리 잡았지만, 책의 시작은 그의 화려한 스펙이 아닌 '사랑 없음'에 대한 고백으로 문을 엽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비대면 진료가 늘어나던 어느 날, 한 흑인 환자와 암 투병 중인 할머니가 저자에게 먼저 "기도해 줄 수 있나요?"라고 묻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저자는 자신에게 환자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음을 깨닫고 통회하며, 하나님께 "당신의 사랑을 부어 달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 기도의 응답으로 변화된 저자의 시선과, 병원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 '뜻밖의 하나님'의 역사를 6부에 걸쳐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이 없던 내게 어느 날 - 변화의 시작

2.1. 사랑의 부재를 깨닫다

저자는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실력을 갖추었지만,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부족했음을 고백합니다. 출근길 고속도로에서 "네가 너의 환자들을 더 사랑할 수는 없겠니?"라는 성령의 감동을 느낀 후, 그는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마음에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2. 진료실의 변화: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자 저자의 진료 태도는 완전히 바뀝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환자들에게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환자의 작은 불편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구강 건조로 고생하는 환자를 위해 퇴근 후 껌을 사다 주거나,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영적 구원을 돕는 등 의술을 넘어선 인술을 베풀게 됩니다. 특히 한 환자가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 주셔서 참 좋습니다(I love it that you love me)"라고 고백한 일화는 사랑이 논리를 초월하여 사람을 변화시킴을 보여줍니다.

2.3. 연구실과 가정으로 흐르는 사랑

이 사랑은 진료실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연구실 제자들의 가장 큰 필요인 '전공의 면접 준비'를 돕지 않았던 무심함을 회개하고, 직접 면접 연습을 돕기 시작합니다. 가정에서도 자신의 권위보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우선순위에 두며,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삶"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3. 사랑하니까 보이는 것들 - 소명과 정체성

3.1. '영광'이라는 이름의 참뜻

저자는 자신의 이름 '영광'처럼 가문의 영광이 되고자 했으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비교 의식과 성공에 대한 야망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자체가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3.2. 준비된 자가 아닌, 자원하는 자

존스홉킨스 유학 시절, 우연히 맡게 된 기독 모임 회장직과 시카고 코스타(KOSTA) 의료 세미나 코디네이터 역할을 통해 저자는 "능력(ability)보다 자원하는 마음(availability)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 자원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곧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임을 깨닫고 순종합니다.

3.3. 내 발밑이 땅끝이다

저자는 '땅끝'이 지리적으로 먼 곳만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내가 서 있는 병원, 학교, 직장이 곧 나에게 맡겨진 '땅끝'이며, 그곳에서 만나는 환자와 동료들이 선교의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필라델피아 수련의 시절, 동료에게 전한 간증 CD 한 장이 기도 모임의 시작이 되고, 에이탄(Athan)이라는 동료의 회심으로 이어진 사건은 일터가 곧 선교지임을 증명합니다.

4. 제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 - 멘토링과 양육

4.1. 모닝 10분 기도와 북클럽

저자의 연구실(Chae Lab)은 단순한 연구 공간을 넘어 제자 양육의 장이 됩니다. 한국에서 온 제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아침 10분 기도'는 연구실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매칭 실패로 좌절한 제자를 위해 시작한 '모닝 북클럽'은 신앙 서적을 함께 읽으며 삶을 나누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4.2. 포도나무 사역 (Grapevine Ministry)

저자는 자신의 연구실 사역을 '포도나무 사역'이라 명명합니다. 이는 예수님(포도나무)에게 붙어 있는 가지로서의 삶을 지향하며,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는 재생산 구조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제자들은 이곳에서 연구뿐만 아니라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선교적 삶을 살 것을 다짐합니다.

4.3. 릴레이 간증과 올라인(All-line) 사역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어려워지자, 저자는 줌(Zoom)을 활용한 '올라인' 사역을 시작합니다. 연구실을 거쳐 간 제자들과 외부 멘토들을 초청하여 매주 '릴레이 간증' 시간을 가짐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한 영적 교제와 부흥을 경험합니다.

5. 환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 - 공감과 최선

5.1. 함께 우는 의사

저자는 의학적 판단 너머, 환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함께 우는 의사입니다. 호스피스로 떠나는 환자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환자는 "나를 위해 울어주는 의사가 있어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공감이 최고의 치료제임을 보여줍니다.

5.2. 알버트의 기적: 듣는 마음이 만든 길

말기 폐암 환자 알버트(Albert)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폐 이식'을 간청합니다. 저자는 의학적 통념을 깨고 환자의 간절한 요청을 경청하여 흉부외과 동료들과 협력, 기적적으로 폐 이식을 성사시킵니다. 알버트는 완치되었고, 이는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경청'이 만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5.3. 인내의 상장 (Award of Endurance)

저자는 치료 결과가 좋은 환자뿐만 아니라, 차도가 없어도 힘든 치료를 견뎌내는 환자들에게 '인내의 상장'을 수여합니다. 결과가 아닌 태도를 칭찬하고 격려할 때, 환자들은 큰 위로를 받고 때로는 병세가 호전되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5.4. 연구는 환자 사랑의 또 다른 방법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개인의 성취가 아닌, 환자를 살리기 위한 사랑의 실천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희귀 암 환자들을 위한 대규모 임상 시험(DART)을 주도하며, 소외된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6. 잘하고 계신 나의 환자들에게 - 위로와 동행

6.1.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많은 암 환자가 질병의 원인을 자신이나 가족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합니다. 저자는 "암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하며, 환자들을 죄책감과 블레임 게임(Blame Game)에서 해방시킵니다.

6.2. 숫자를 잊으면 기적이 시작된다

저자는 환자들에게 통계적 여명(기대 수명)을 구체적인 숫자로 말하지 않습니다. 통계는 평균일 뿐, 개개인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에 얽매이지 않을 때 환자는 오늘을 살 소망을 얻습니다.

6.3. 가족 회진과 페이스메이커

환자가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하는 '가족 회진'을 실천합니다. 또한 자신을 환자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로 정의하며, 환자가 치료라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도록 끝까지 곁에서 함께 뛰겠다고 약속합니다.

7. 이미 시작된 부흥 - 일상 속의 영성

7.1. 우정의 치유자

저자는 C.S.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친구'로 묘사합니다. 환자 및 제자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하나님을 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와 사역의 핵심입니다.

7.2. 가성비 논리에서 해방되기

세상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가성비'를 추구하지만, 저자는 이를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거룩한 낭비였듯, 환자와 제자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낭비의 삶'을 선택합니다.

7.3. 가서 당신도 그렇게 하시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저자는 도움이 필요한 자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금, 여기서' 돕는 것이 이웃 사랑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거창한 선교가 아니라, 내 눈앞의 환자와 동료를 섬기는 것이 곧 선교입니다.

8. 이상한 포도원을 꿈꾸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실과 진료실이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처럼 운영되기를 꿈꿉니다. 이윤(성과)보다 일꾼(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이상한 포도원', 그곳에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책을 마칩니다.



[서평] 차가운 의학의 현장에서 피어난 뜨거운 복음의 증거

1.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영성의 통합

현대 의학은 철저히 증거 기반(Evidence-based)이며, 감정이 배제된 객관성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특히 생사를 오가는 암 병동에서 의사는 냉철한 판단력을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저자 채영광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차가운 의학적 전문성'과 '뜨거운 신앙적 영성'이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그는 세계적인 암 연구자로서 최첨단 임상 시험을 주도하는 동시에, 진료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환자의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하는 목회자적 심정을 가진 의사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가 자신의 '사랑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나는 원래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위선 대신, 철저한 자기 부인과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신뢰를 줍니다.

2. '일터 신학'의 실제적 적용과 모델 제시

많은 크리스천이 교회와 일터 사이의 괴리로 고민합니다. 이 책은 막연한 이론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일터 사역(Workplace Ministry)'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 제도적 사역: 연구실 내 '모닝 기도', '북클럽', '릴레이 간증' 등을 통해 일터를 예배 처소로 변화시켰습니다.

  • 관계적 사역: 환자에게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라고 묻는 용기, 치료 실패가 아닌 '완주'를 격려하는 태도, 장례식 참석과 유가족 위로 전화(가족 회진) 등은 의료인이 어떻게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매뉴얼과 같습니다.

  • 가치관의 전복: 세상이 추구하는 '가성비'와 '성공'의 논리를 거부하고, 한 영혼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며 남의 성공을 돕는 '킹덤 빌더(Kingdom Builder)'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3. 고통과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동행'과 '완주'

암 환자들을 다루는 책이기에 '죽음'과 '고통'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저자는 섣부른 희망 고문이나, 반대로 냉혹한 시한부 선고를 지양합니다. 대신 '통계적 숫자'에 갇히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환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해방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투병(질병과 싸움)'이라는 개념 대신 '완주(인생의 경주)'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병이 낫는 기적만이 은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 그리고 그 곁을 의료진이 '페이스메이커'로서 끝까지 함께하는 것(동행)이 진정한 승리임을 역설합니다. 이는 암 환우와 가족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난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4.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는 단순한 감동 에세이를 넘어, 전문인 선교의 교과서이자 신앙 실천 지침서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있는 곳이 곧 '땅끝'이며,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곧 '이웃'임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책은 의료인들에게는 소명 의식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소망을,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진 크리스천들에게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시카고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된 이 '포도나무 사역'의 이야기는, 오늘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삶도 하나님의 기적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