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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간과 세상을 만나다』(김형근) 리뷰/요약

 


『성서, 인간과 세상을 만나다』(김형근) 

성서 인문학의 정수: 도그마를 넘어 텍스트로 만나는 성서

1. 베스트셀러이자 ‘워스트 리더’인 성경의 아이러니

이 책은 ‘성서 인문학(Biblical Humanities)’ 수필집을 표방하며, 기독교의 경전인 바이블을 고전으로 분석하고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저자는 성경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가장 읽히지 않는 책(worst reader)’이 된 현실을 지적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성경을 ‘신의 말씀’으로 확정하고 구원 보증서로 여기면서, 신자들이 굳이 성경을 읽고 씨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성서 본문의 다채로운 의미는 교리와 설교에 의해 사장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도그마의 틀을 깨고 성서 본문이 인간의 삶과 세상에 던지는 살아있는 메시지를 포착하고자 합니다.

2. 성서, 인간을 만나다 - 결핍과 역설의 미학

낯설게 하기와 ‘안티(Anti)’의 재발견 철학자 하이데거는 “익숙한 것이 낯설게 나타나는 경험은 철학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이사야 55장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구절을 통해 자본주의 논리로는 모순되는 ‘무전구매(돈 없는 구매)’의 천상 논리를 설명합니다. 이는 마태복음의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연결되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밭(천국)을 사는 행위가 곧 돈 없이 보화를 얻는 역설적 원리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저자는 ‘안티(Anti)’라는 단어의 헬라어 어원 ‘안티(ἀντί)’가 ‘반대’뿐만 아니라 ‘~대신에’, ‘~를 위하여’라는 뜻을 가짐을 밝힙니다. 성서적 맥락에서 안티는 상대를 멸절시키는 반대가 아니라, 상대를 완성하기 위한 ‘대안적 반대’입니다. 이는 부부 관계나 친구 관계에서도 적용되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를 성장시키는 ‘벗적(Frenemy)’의 관계로 승화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감사의 대전환: 결핍이 주는 선물 현대인은 풍요 속에서도 공허함을 느낍니다. 저자는 솔로몬의 전도서와 마태복음의 부자 청년 이야기를 통해 ‘과잉’이 곧 ‘결핍’임을 역설합니다. 솔로몬은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결국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했고,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 오히려 영생의 길에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는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함으로써, 그를 ‘소유의 과잉’ 상태에서 ‘자발적 결핍’의 상태로 초대했습니다. 이는 존재의 영도(Zero point)에 설 때 비로소 진정한 감사가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현대의 배우 윤여정 등의 사례를 통해 결핍과 열등감이 오히려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자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 장자의 ‘무용지용’ 개념은 성서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실패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 약한 것, 없는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질그릇에 보배(예수)를 담음으로써 심히 큰 능력이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일깨우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3. 성서, 세상을 만나다 - 공존과 상생의 지혜

가라지 비유와 선악의 공존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는 악을 대하는 성서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주인은 밭에 가라지가 났다는 종들의 보고를 듣고도 “가만두어라”라고 명합니다. 이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섣불리 선악을 구분하고 악을 제거하려는 ‘가라지 제거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나치의 홀로코스트 등은 인간이 신의 자리에 앉아 가라지를 제거하려다 수많은 곡식(무고한 생명)까지 희생시킨 비극이었습니다. 성서는 선악의 최종 심판을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으로 남겨두며, 현세에서는 ‘공존’을 명합니다. 이는 마치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적절한 유해균과의 공존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원리와도 같습니다.

기본소득과 포도원 품꾼 비유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는 현대의 ‘기본소득’ 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온 품꾼이나 오후 5시에 온 품꾼이나 동일하게 1 데나리온을 지급합니다. 이는 노동 시간에 따른 임금 지급이라는 시장 논리(시급제)를 거스르는 파격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지라퍼 고용주’의 자비성 투자로 해석합니다. 늦게 온 품꾼들에게 지급된 1 데나리온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이 하루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소득’이었습니다. 이는 소비가 있어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경제 원리이자, 낙오자를 배려함으로써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상생의 경제학입니다.

달란트 비유의 재해석: 신뢰와 모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책망받은 이유는 단순히 이익을 남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주인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굳은 사람’으로 오해했고, 주인이 아무런 조건 없이 맡긴 ‘무한 신뢰’에 보답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만 하는 소극적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주인의 신뢰에 감동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장사)을 감행했습니다. 성서는 ‘작은 일’(남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거나 사소해 보이는 일)에 충성하며 신뢰에 반응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합니다.

4. 한국 교회를 향한 고언: 각종 ‘주의(-ism)’를 경계하라

저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빠진 여러 가지 ‘주의’를 비판합니다.

  • 목사주의: 목사를 우상화하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는 현상입니다. 이는 성서적 근거가 없으며, 목사의 범죄마저 덮어주는 폐단을 낳습니다.

  • 성경주의: 성경 문맥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타인을 정죄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구로 삼는 태도입니다.

  • 예배주의: 삶과 분리된 채 예배 행위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드리는 예물을 거부합니다.

  • 성전주의: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며 성역화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조차 성전은 신이 거하는 곳이 아니라 기도의 방향을 돕는 ‘플랫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 은혜주의: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교리에 갇혀,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책임 있는 삶을 방기하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 비유를 통해 탕감이 취소될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책은 굳어진 교리와 형식에 갇힌 성경을 해방시켜,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사회 문제, 그리고 인간 내면의 깊은 고민과 만나게 합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성경을 ‘경전’으로만 모셔두고 있는가, 아니면 삶을 변화시키는 ‘텍스트’로 읽고 있는가?



[서평] 도그마의 껍질을 깨고 나온 성서, 그 날것의 울림

1. 성경, 베스트셀러에서 ‘라이프 텍스트’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집에 성경책 한두 권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성경이 매일의 삶에서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김형근의 <성서, 인간과 세상을 만나다>는 책장 속에 박제된 성경, 혹은 교회의 강단 위에서만 선포되던 성경을 우리의 일상과 사회 현장 한복판으로 끌어낸다. 저자는 신학박사이자 목회자이지만, 그의 글에서는 종교적 엄숙주의 대신 치열한 인문학적 사유와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돋보인다. 그는 성경을 맹목적 믿음의 대상인 ‘경전(Scripture)’을 넘어,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석해야 할 ‘고전(Classic)’이자 ‘텍스트(Text)’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2. 익숙한 비유의 낯선 전복 이 책의 백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성서의 비유들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뒤집어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돌아온 탕자’ 이야기나 ‘부자 청년’ 이야기는 단순한 회개나 헌신의 강요가 아니라, ‘결핍’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지에 대한 심오한 통찰로 재해석된다.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것은 부음(訃音)이 아니라, 자신의 의(義)를 깨뜨릴 수 있는 기회인 복음(福音)이었다는 해석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또한,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현대 사회의 화두인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성서적으로 규명하고 , ‘가라지 비유’를 통해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려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대목은 성서가 얼마나 현대적인 책인지를 증명한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주의’에 갇혀 문자적 해석만 고집하거나, ‘목사주의’에 빠져 설교자의 해석을 맹신하는 한국 교회의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

3. ‘안티’와 ‘결핍’을 긍정하는 신앙 저자는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개념들을 성서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재정의한다. ‘안티(Anti)’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상대를 성장시키는 ‘대체’와 ‘보완’의 개념으로 확장되며, ‘결핍’은 감사를 잉태하는 모판으로 격상된다. 특히 ‘무용지용(쓸모없음의 쓸모)’ 챕터는 효율성과 성과주의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약한 자들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방법론은, 스펙 경쟁에 내몰린 우리에게 존재 자체의 존엄성을 일깨워준다. 저자가 인용한 윤여정 배우의 “내 연기의 원동력은 열등감”이라는 고백이나 , 베토벤과 같은 예술가들의 고통(앙스트블뤼테)이 창조의 원천이 되었다는 예시는 성서의 메시지가 인문학적 통찰과 만날 때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4. 한국 교회를 향한 뼈아픈 직언 책의 후반부(2부)는 한국 교회의 병폐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을 담고 있다. 목사주의, 설교주의, 성전주의 등 각종 ‘-주의’에 빠진 교회는 본질을 잃고 세속화되었다. 죽은 목사의 설교 영상을 틀어놓고 예배하는 기이한 현상이나 , 성전 건축을 신의 거소를 짓는 것으로 오도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은 통렬하다. 저자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를 통해 성전은 신이 갇혀 있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기도가 하늘로 향하는 ‘플랫폼’임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비판은 단순히 교회를 헐뜯기 위함이 아니라, 비성서적 도그마를 걷어내고 성서적 본질을 회복하자는 간절한 호소로 읽힌다.

5. 질문하는 신앙인을 위한 필독서 <성서, 인간과 세상을 만나다>는 ‘덮어놓고 믿으라’는 식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 소위 ‘가나안 성도’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다. 저자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논리는 정연하면서도 감동이 있다. 성서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폭넓은 식견은 성경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나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깨뜨리고 타자와 세상을 품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도그마의 껍질을 깨고 성서의 날것 그대로의 울림을 듣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