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광기와 폭력의 서막, 군중십자군
1. 서론: 전쟁의 기원과 시대적 배경
이 책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국제 정세와 중세 십자군 전쟁을 교차시키며, 전쟁의 명분과 실체, 그리고 폭력의 본질을 탐구한다
1.1 로마 제국의 흥망과 폭력의 악순환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통해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으나, 승리는 로마 시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1.2 이슬람 문명의 발흥과 관용
7세기 무함마드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 문명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서구의 편견과 달리, 초기에는 종교적 관용과 세금 혜택을 통해 피정복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1.3 중세 서유럽의 모순: 신의 평화와 십자군
중세 유럽은 기사(싸우는 사람), 성직자(기도하는 사람), 농노(일하는 사람)의 세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2. 군중십자군의 결성과 은자 피에르의 등장
2.1 스타가 된 은자 피에르
1095년, 은자 피에르라는 인물이 나귀를 타고 유럽 전역을 돌며 "꿈속에서 베드로 성인을 만나 예루살렘을 해방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2.2 클레르몽 공의회와 십자군의 광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는 모든 죄를 사면받을 것"이라며 전쟁을 공식화했다
3. 학살의 시작: 내부의 적을 향한 칼날
3.1 유대인 대학살 (1096년 5월~6월)
군중십자군의 첫 번째 희생양은 이슬람교도가 아닌 유럽 내의 유대인들이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예수를 죽인 자들의 후손"이라는 명분과 군자금 약탈이라는 실리를 위해 독일 라인강 유역의 유대인 공동체를 공격했다
마인츠, 쾰른, 보름스 학살: 에미코 백작을 비롯한 십자군 부대는 유대인들을 교회나 회당으로 몰아넣고 학살하거나 강제 개종을 요구했다
. 이는 서유럽 반유대주의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점이었다. 약탈의 정당화: 십자군은 유대인 학살을 통해 얻은 재물로 원정 자금을 충당했다
. 이는 종교적 열정 뒤에 숨겨진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2 헝가리와 동로마 제국에서의 만행
동방으로 향하던 군중십자군은 보급품이 부족해지자, 같은 기독교 국가인 헝가리와 동로마 제국(비잔틴)의 영토에서도 약탈을 자행했다
제문(Semlin) 학살: 은자 피에르의 부대는 헝가리 국경 도시 제문에서 신발 값 시비가 빌미가 되어 주민 4천 명을 학살하고 도시를 약탈했다
. 니시(Niš) 전투: 베오그라드를 거쳐 니시에 도착한 십자군은 또다시 약탈을 시도하다가 동로마 제국의 정규군(스쿠타투스 부대)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이 희생되었으나, 지도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계속되었다.
4. 위기에 처한 제국과 십자군의 분열
4.1 콘스탄티노플 도착과 알렉시오스의 고뇌
1096년 8월, 생존한 군중십자군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4.2 십자군의 분열과 약탈
투르크 땅에 도착한 십자군은 약탈을 일삼으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특히 그들은 그리스계 기독교인 마을조차 이교도로 오인하거나 무시하고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5. 군중십자군의 최후: 크세리고르돈과 키보토스
5.1 크세리고르돈의 비극
기사 라이날드가 이끄는 부대는 크세리고르돈 요새를 점령했으나, 이는 투르크 술탄 킬리치 아르슬란의 함정이었다
라이날드의 배신: 결사항전을 외치던 라이날드는 결국 투르크군에게 항복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졌다. 반면 그를 따르던 수많은 평민들은 노예가 되거나 처형당했다
. 이는 전쟁에서 지도층은 살아남고 민중만이 희생되는 부조리를 보여준다.
5.2 키보토스 전투와 전멸
투르크군은 첩자를 보내 "크세리고르돈의 십자군이 니케아를 점령하고 큰 전리품을 챙겼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
매복과 학살: 1096년 10월 21일, 무질서하게 돌진하던 십자군은 투르크군의 매복에 걸려 화살 세례를 받고 전멸했다
. 수만 명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이는 후발대에게 공포의 이정표가 되었다 . 은자 피에르의 생존: 십자군이 전멸하는 동안 은자 피에르는 콘스탄티노플로 피신해 있었거나, 동로마 구조선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
. 그는 자신의 실패를 알렉시오스 황제의 탓으로 돌리며 후속 십자군의 복수심을 부추겼다 .
6. 고전 읽기: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학살자가 되는가
6.1 한나 아렌트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작가는 군중십자군의 광기를 20세기 홀로코스트와 연결하며,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소개한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으나, 정신 감정 결과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물로 판명되었다
6.2 밀그램 실험과 권위에 대한 복종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사람들도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타인에게 치명적인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서평] 십자군의 망령과 깨어나지 못한 이성
1. 역사의 거울에 비친 현대의 야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은 단순한 역사 만화가 아니다. 이 책은 11세기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거울을 통해 21세기의 전쟁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시사 고발서이다. 작가는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선동과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 명분을 끊임없이 교차 편집한다
2. 영웅은 없다: 군중의 광기와 지도자의 위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십자군 전쟁을 낭만적인 기사도나 영웅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자 피에르는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가 아니라, 대중의 불안을 먹고 사는 선동가이자 무능한 지도자로 그려진다
3. 악의 평범성: 우리는 그들과 다른가?
책의 말미에 소개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논의는 이 책의 주제 의식을 철학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군중십자군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 약탈은 그들이 태생적인 악마여서가 아니라, 집단적 광기 속에서 '사유함'을 멈추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4. 만화로 읽는 인문학의 정수
김태권의 작화는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풍자적이다. 중세 필사본을 연상시키는 그림체에 현대적인 유머 코드를 결합하여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방대한 사료(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스》,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등)를 바탕으로 한 꼼꼼한 고증은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높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