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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김태권) 리뷰/요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광기와 폭력의 서막, 군중십자군

1. 서론: 전쟁의 기원과 시대적 배경

이 책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국제 정세와 중세 십자군 전쟁을 교차시키며, 전쟁의 명분과 실체, 그리고 폭력의 본질을 탐구한다. 작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그림체를 통해 중세인의 시각을 재현하면서도, 현대적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견지한다. 이야기는 로마 제국의 멸망에서부터 이슬람의 발흥, 그리고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는 11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추적한다.

1.1 로마 제국의 흥망과 폭력의 악순환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통해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으나, 승리는 로마 시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값싼 해외 농산물의 유입으로 자영농이 몰락했고, 사회적 갈등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실패 이후 폭력과 내전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굳어졌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침공과 같은 끊임없는 대외 정복 전쟁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허울 아래 이웃 국가들에 대한 착취와 학살을 정당화했다. 결국 로마는 내부의 모순과 게르만족의 이동을 감당하지 못하고 멸망했으나, 힘을 숭상하고 타문명을 억압하는 제국의 망령은 중세 서유럽으로 이어졌다.

1.2 이슬람 문명의 발흥과 관용

7세기 무함마드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 문명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서구의 편견과 달리, 초기에는 종교적 관용과 세금 혜택을 통해 피정복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성서의 백성'으로 존중했으며,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도 성지 순례를 막지 않았다. 그러나 11세기에 들어서며 서유럽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이 조장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십자군 전쟁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되었다.

1.3 중세 서유럽의 모순: 신의 평화와 십자군

중세 유럽은 기사(싸우는 사람), 성직자(기도하는 사람), 농노(일하는 사람)의 세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사 계급의 폭력성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교회는 '신의 평화(Paix de Dieu)' 운동을 통해 내부의 폭력을 억제하려 했다. 그러나 이 억눌린 폭력성은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를 기점으로 외부의 적, 즉 이슬람 세계로 향하게 된다. 우르바누스 2세는 내부의 평화를 위해 외부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는 곧 광기 어린 십자군 원정의 시작이었다.


2. 군중십자군의 결성과 은자 피에르의 등장

2.1 스타가 된 은자 피에르

1095년, 은자 피에르라는 인물이 나귀를 타고 유럽 전역을 돌며 "꿈속에서 베드로 성인을 만나 예루살렘을 해방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라한 외모와 달리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당시의 '미디어 스타'가 되어 수많은 추종자를 모았다. 피에르의 선동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가난한 민중들의 욕망과 맞아떨어졌고, 그 결과 정식 십자군(기사 중심)이 출발하기도 전에 농민과 빈민으로 구성된 '군중십자군'이 먼저 조직되었다.

2.2 클레르몽 공의회와 십자군의 광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는 모든 죄를 사면받을 것"이라며 전쟁을 공식화했다. 이 선언은 종교적 구원을 갈망하던 민중과 영토 확장을 노리던 기사들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은 옷에 십자가를 새기고, 심지어 몸에 문신을 새기며 광신적인 열기를 보였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투르크를 견제할 용병을 원했으나, 서유럽은 이를 대규모 원정 기회로 이용하여 통제 불능의 군중을 동방으로 쏟아냈다.


3. 학살의 시작: 내부의 적을 향한 칼날

3.1 유대인 대학살 (1096년 5월~6월)

군중십자군의 첫 번째 희생양은 이슬람교도가 아닌 유럽 내의 유대인들이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예수를 죽인 자들의 후손"이라는 명분과 군자금 약탈이라는 실리를 위해 독일 라인강 유역의 유대인 공동체를 공격했다.

  • 마인츠, 쾰른, 보름스 학살: 에미코 백작을 비롯한 십자군 부대는 유대인들을 교회나 회당으로 몰아넣고 학살하거나 강제 개종을 요구했다. 이는 서유럽 반유대주의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점이었다.

  • 약탈의 정당화: 십자군은 유대인 학살을 통해 얻은 재물로 원정 자금을 충당했다. 이는 종교적 열정 뒤에 숨겨진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2 헝가리와 동로마 제국에서의 만행

동방으로 향하던 군중십자군은 보급품이 부족해지자, 같은 기독교 국가인 헝가리와 동로마 제국(비잔틴)의 영토에서도 약탈을 자행했다.

  • 제문(Semlin) 학살: 은자 피에르의 부대는 헝가리 국경 도시 제문에서 신발 값 시비가 빌미가 되어 주민 4천 명을 학살하고 도시를 약탈했다.

  • 니시(Niš) 전투: 베오그라드를 거쳐 니시에 도착한 십자군은 또다시 약탈을 시도하다가 동로마 제국의 정규군(스쿠타투스 부대)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이 희생되었으나, 지도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계속되었다.


4. 위기에 처한 제국과 십자군의 분열

4.1 콘스탄티노플 도착과 알렉시오스의 고뇌

1096년 8월, 생존한 군중십자군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알렉시오스 황제는 이들을 통제 불능의 '좀비 군단'처럼 여겼으며, 수도의 안전을 위해 서둘러 이들을 보스포로스 해협 건너편인 아시아(투르크 영토)로 수송했다. 황제는 정식 십자군이 올 때까지 전투를 피하고 대기하라고 충고했으나, 탐욕에 눈이 먼 십자군은 이를 무시했다.

4.2 십자군의 분열과 약탈

투르크 땅에 도착한 십자군은 약탈을 일삼으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특히 그들은 그리스계 기독교인 마을조차 이교도로 오인하거나 무시하고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계와 독일/이탈리아계 사이에 내분이 발생했고, 은자 피에르는 지도력을 잃고 말았다. 강경파 기사 라이날드는 독일계 병력을 이끌고 독자 행동에 나섰다.


5. 군중십자군의 최후: 크세리고르돈과 키보토스

5.1 크세리고르돈의 비극

기사 라이날드가 이끄는 부대는 크세리고르돈 요새를 점령했으나, 이는 투르크 술탄 킬리치 아르슬란의 함정이었다. 술탄은 요새의 수원지를 차단하여 8일간 십자군을 갈증에 시달리게 했다. 십자군들은 말의 피나 소변을 마시는 등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 라이날드의 배신: 결사항전을 외치던 라이날드는 결국 투르크군에게 항복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졌다. 반면 그를 따르던 수많은 평민들은 노예가 되거나 처형당했다. 이는 전쟁에서 지도층은 살아남고 민중만이 희생되는 부조리를 보여준다.

5.2 키보토스 전투와 전멸

투르크군은 첩자를 보내 "크세리고르돈의 십자군이 니케아를 점령하고 큰 전리품을 챙겼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 이에 흥분한 키보토스의 군중십자군 본대는 은자 피에르의 만류(혹은 부재)에도 불구하고 니케아로 질주했다.

  • 매복과 학살: 1096년 10월 21일, 무질서하게 돌진하던 십자군은 투르크군의 매복에 걸려 화살 세례를 받고 전멸했다. 수만 명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이는 후발대에게 공포의 이정표가 되었다.

  • 은자 피에르의 생존: 십자군이 전멸하는 동안 은자 피에르는 콘스탄티노플로 피신해 있었거나, 동로마 구조선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알렉시오스 황제의 탓으로 돌리며 후속 십자군의 복수심을 부추겼다.


6. 고전 읽기: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학살자가 되는가

6.1 한나 아렌트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작가는 군중십자군의 광기를 20세기 홀로코스트와 연결하며,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소개한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으나, 정신 감정 결과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물로 판명되었다. 아렌트는 이를 통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은 악마적 본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사유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6.2 밀그램 실험과 권위에 대한 복종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사람들도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타인에게 치명적인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군중십자군의 농민들이나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인들,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미군들이 특별한 악인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권위에 맹종하고 집단 논리에 휩쓸릴 때, 평범한 인간은 누구나 학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서평] 십자군의 망령과 깨어나지 못한 이성

1. 역사의 거울에 비친 현대의 야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은 단순한 역사 만화가 아니다. 이 책은 11세기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거울을 통해 21세기의 전쟁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시사 고발서이다. 작가는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선동과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 명분을 끊임없이 교차 편집한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Deus lo vult)"는 중세의 구호와 "악의 축", "무한한 정의"라는 현대의 구호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허울 아래 자행되는 탐욕과 야만의 역사를 고발한다. 특히 초기 이슬람 문명의 관용성 과 대비되는 서유럽의 배타성은 오늘날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영웅은 없다: 군중의 광기와 지도자의 위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십자군 전쟁을 낭만적인 기사도나 영웅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자 피에르는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가 아니라, 대중의 불안을 먹고 사는 선동가이자 무능한 지도자로 그려진다. 기사 라이날드는 동료를 팔아넘기고 개종하여 목숨을 구걸하는 비열한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 이들의 선동에 휩쓸려 십자가를 짊어진 농민과 빈민들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가해자이자, 투르크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피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선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전쟁터에서 '정의'는 실종되고 오직 생존 본능과 탐욕, 그리고 비참한 죽음만이 남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3. 악의 평범성: 우리는 그들과 다른가?

책의 말미에 소개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논의는 이 책의 주제 의식을 철학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군중십자군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 약탈은 그들이 태생적인 악마여서가 아니라, 집단적 광기 속에서 '사유함'을 멈추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아이히만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듯, 중세의 군중들도 "신의 뜻"이라는 권위에 자신의 양심을 맡겨버린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그들과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가?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인터넷상의 마녀사냥,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권력에 대한 비판 없는 동조 등 우리 안에도 '작은 아이히만'과 '군중십자군'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4. 만화로 읽는 인문학의 정수

김태권의 작화는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풍자적이다. 중세 필사본을 연상시키는 그림체에 현대적인 유머 코드를 결합하여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방대한 사료(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스》,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등)를 바탕으로 한 꼼꼼한 고증은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높여준다. 이 책은 십자군 전쟁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는 물론,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수작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군중십자군의 비극이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경고로 들리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편견과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기억이 남아 있는 한, 폭력은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