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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리』(박한선) 리뷰/요약

 

《인간의 자리》 박한선 저 

🌍 '만물의 영장'이라는 아름다운 편견을 깨다

《인간의 자리: 진화인류학자 박한선의 호모사피엔스 탐사기》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박한선 저자가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유일성이나 우월성이라는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인간을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는' 하나의 종으로 바라봅니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이 다른 동물들과 질적으로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종이 겪어온 독특한 생태 환경에 대한 '적응 전략'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책 전반에 걸쳐 조류(새)의 행동을 인간사와 비교하며, 겉보기엔 달라 보이는 두 종이 생존과 번식이라는 동일한 과제 앞에서 얼마나 유사한 전략을 사용하는지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 챕터별 요약

1. 인간 멸종의 위기 앞에서: 인간은 왜 특별하다고 생각할까?

1장은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아름다운 편견'이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이어져 왔음을 지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 동물, 인간의 영혼을 구분하고 생물의 등급을 나누는 '자연의 사다리'를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사고는 과학계에도 만연해, 인간의 정신만이 특별하다는 전제하에 연구가 진행되곤 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동물행동학(Ethology)'과 '인간행동생태학(Human Behavioural Ecology, HBE)'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이 관점은 인간의 마음이나 심리 대신, 관찰 가능한 '행동'이 특정 생태 조건에서 생존과 번식을 최적화하는 '전략'이라고 봅니다.

이 챕터의 핵심 사례는 '여행비둘기(Passenger Pigeon)'입니다. 한때 수십억 마리로 북미 대륙을 지배했던 여행비둘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멸종한 대표적 사례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 이들의 멸종은 사냥 외에도 급격한 개체 수 폭증으로 인한 낮은 '유전적 다양성'이 주된 원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현재 79억을 넘어선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역시 유전적 병목 현상을 겪었으며, 지금의 번성이 여행비둘기처럼 갑작스러운 성공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우월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양한 생태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뿐이며, 인간의 자리는 천상이 아닌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습니다.

2. 짝짓기의 기쁨과 슬픔: 사랑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2장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의 개념을 통해 사랑과 짝짓기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과 달리 성선택은 짝을 만나 자손을 낳을 가능성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동물 세계에서 짝 선택권은 더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자하는 암컷에게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컷들은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 스크램블 기작 (Scramble): 짝을 '얼른' 찾아내 접근하는 전략입니다.

  • 강압 기작 (Coercion): 강제로 교미하는 전략으로, 자연에는 도덕이 없습니다.

  • 시합 기작 (Contest): 수컷 간의 직접적인 물리적 경쟁입니다.

이러한 경쟁은 수컷의 몸집을 키우고(성 내 선택), 지배적 수컷이 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하렘(Harem)' 시스템을 만듭니다. 암컷 역시 가장 강력한 수컷과 교미하는 것이 자신의 아들이 '알파 수컷'이 될 가능성을 높이는 유리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이 챕터는 다윗과 밧세바, 그리고 솔로몬의 이야기를 성선택의 관점에서 재해석합니다. 다윗은 '시합 기작'(골리앗과의 싸움)과 '스크램블 기작'(밧세바 발견)을 통해 왕위에 올랐고, 밧세바는 왕비가 되어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올림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퍼뜨렸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엇일까? 저자는 사랑을 '눈먼 감정'이자, 합리적 판단보다 의사 결정을 돕는 효율적인 장치로 봅니다. 사랑은 짝 결속을 강화하고 협력적 양육을 가능하게 하여 장기적인 보상을 얻게 하는 '적응적 가치'를 지닙니다.

3. 왜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가: 탁란과 양육의 진화

3장은 뻐꾸기처럼 스스로 새끼를 키우지 않고 남의 둥지에 알을 맡기는 '탁란(Brood Parasitism)' 행동을 통해 양육의 조건을 탐구합니다. 다윈은 이를 '모정에 대한 괴물 같은 분노'가 아니라,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어미 새가 알을 돌볼 시간이 없거나, 포식자에게 알을 잃을 위험을 분산시키는 등 탁란은 새끼의 적합도를 높이기 위한 '적응적 행동'입니다.

이에 맞서 탁란을 당하는 숙주(Host) 역시 방어 전략을 진화시킵니다.

  1. 어미 뻐꾸기의 접근을 막습니다.

  2. 자기 알과 다르게 생긴 알(크기, 색, 무늬)을 구별하여 품지 않습니다.

이는 다시 뻐꾸기가 숙주의 알과 비슷하게 알을 낳도록 진화하는 '진화적 군비 경쟁(Evolutionary Arms Race)'으로 이어집니다.

인간 사회에도 비슷한 전략이 존재합니다. 태반 포유류인 여성은 '모성 확실성'이 100%이지만, 남성은 '부성 확실성(Paternity Uncertainty)'에 늘 노출됩니다. 이 때문에 남성은 자신의 친자식에게만 투자하도록 진화했으며, '얼굴 닮음'과 같은 단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내와 처가 식구가 "아기가 아빠를 닮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남성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무의식적 전략일 수 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 '비친족 입양'은 매우 드문 현상이었고, 대개 친족(이모, 외할머니 등)이 양육을 도왔습니다. 현대 사회의 대규모 해외 입양은 풍요로운 환경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가혹한 환경(둥지 부족)에서 나타난 고육지책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4. 형제자매가 사라지는 세상: 우애와 동기살해의 균형

4장은 형제자매 관계를 진화론의 핵심 원리인 '해밀턴의 법칙(Hamilton's Rule, rB > C)'으로 설명합니다. 이 법칙은 이타적 행동(C, 비용)이 수혜자의 이득(B)에 유전적 근연도(r)를 곱한 값보다 작을 때 진화함을 의미합니다. 형제자매(r=0.5)는 유전자를 50% 공유하므로, 내 비용이 형제가 얻을 이득의 절반 이하라면 기꺼이 돕는 '우애(友愛)'가 진화합니다.

하지만 이 균형이 깨질 때 비극이 발생합니다. 성경 최초의 살인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바로 '동기살해(Siblicide)'의 사례입니다.

자연계의 극단적인 예는 '나즈카부비(Nazca Booby)'입니다. 어미는 알을 두 개 낳지만, 먼저 태어난 새끼는 며칠 뒤 태어난 동생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게 만듭니다. 놀랍게도 어미는 이 만행을 방관합니다. 이는 '부모-자식 갈등(Parent-offspring Conflict)'의 관점에서 설명됩니다. 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어미 입장에서는 두 마리를 모두 키우려다 둘 다 잃는 것보다 한 마리라도 확실하게 키우는 것이 적합도에 유리합니다.

어미가 애초에 알을 두 개 낳는 이유는 '보험 산란 가설(Insurance Egg Hypothesis)'로 설명됩니다. 첫째 알이 부화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용'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동기 갈등은 '출산 터울'과 밀접합니다. 수렵채집 사회는 터울이 길어(약 4.8년) 동기 간 자원 경쟁이 적었지만, 농경 사회 이후 터울이 짧아지며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저자는 프랭크 설로웨이의 '타고난 반항아' 이론을 인용하며, '출생 순서'가 생존 전략의 차이, 즉 성격의 차이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맏이는 부모의 지원을 받아 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동생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합니다. 현대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산 현상은, 어쩌면 자원 경쟁이 극심한 환경에서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동기갈등'을 피하려는 '선제적 동기살해'일 수 있다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5. 평화로운 미래라는 망상: 공격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5장은 인간의 '공격성(Aggression)'의 기원을 탐구합니다. 흔히 공격성을 '포식 행위(Predation)'와 혼동하지만,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는 것은 분노가 아닌 식사입니다. 또한 인간이 원래 평화로운 초식동물이었다는 통념은 '세 가지 오류'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잡식이며, 평화롭지 않고, 초식동물도 평화롭지 않다).

그렇다면 공격성은 왜 진화했을까?

  1. 포식자 방어: '무리공격(Mobbing)'을 통해 집단으로 포식자에 대항하는 전략입니다.

  2. 최후의 반격: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달려드는 필사적인 전략입니다.

  3. 성 내 경쟁: 짝짓기 시합(Contest)에서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4. 영역 방어 (Territoriality): 가장 본질적인 공격성입니다.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공간을 사수하려는 본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새'인 '화식조(Cassowary)'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화식조는 천적이 거의 없고 , 주식은 풀과 열매입니다. 이들의 공격성은 '성 역할 반전(Sex-role Reversal)'에서 나옵니다.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크고 공격적이며, 여러 수컷의 영역을 관리합니다. 수컷은 알을 품고 새끼를 양육하며 , 암컷은 다른 암컷의 접근을 막기 위해 극도로 공격적입니다. 이는 짝짓기 경쟁과 영역 방어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인간의 공격성 역시 '본능'이며 , 사회나 문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는 공격성을 '억제'하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인간 사회가 공격성을 통제하는 두 가지 핵심 규칙은 1) '선점권(First Possession)' 인정 (예: 지하철 좌석) 과 2) '위계(Hierarchy)' 수립 (예: 군대 계급) 입니다. 위계가 공격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위계가 없으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6. 이 세상의 첫 번째 사랑: 동성애는 '다윈의 역설'인가?

6장은 진화론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동성애(Homosexuality)'를 다룹니다. 유럽인들이 '흑고니(Black Swan)'를 발견하고 '모든 백조는 희다'는 믿음이 깨진 것처럼, 동성애 역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합니다.

동성애는 번식에 직접 기여하지 않으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다윈의 역설(Darwin's Paradox)'로 불립니다. 저자는 동성애의 진화를 설명하려는 기존의 다양한 가설들(친족 선택, 초우성, 성 내 갈등, 연습, 사회적 유대 등)을 소개하지만, 이 가설들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어 저자는 '흑고니 원조 가설'처럼 질문을 뒤집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왜 어떤 종은 동성 간 성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진화했는가?"

초기 유성생식 단계에서는 암수 차이가 거의 없었고(성적 이형성 낮음), 상대를 구별하는 것보다 교미 횟수를 늘리는 것이 유리했을 수 있습니다. 즉, '성별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성적 행동'이 '원조(Ancestral)' 상태였을 수 있습니다.

반면, '엄격한 배타적 이성애(Exclusive Heterosexuality)'는 상대를 정확히 식별해야 하는(이성 식별 모듈) 비용이 많이 드는 '파생된(Derived)' 적응일 수 있습니다. 특히 수컷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전략이 유리하기에 동성 간 성적 행동이 더 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높은 수준의 이성애(장기적 짝 동맹, 양육 협력)를 진화시켰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에는 영겁의 세월 동안 빚어진 다양한 성적 전략의 흔적(무차별적 성적 행동)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7. 살려고 먹는가, 먹으려고 사는가: 최적 섭식과 잡식의 진화

7장은 '먹이 획득'의 문제를 다룹니다. 핵심 질문은 "무엇을 먹을까?"입니다. 까마귀는 영리하게도 단단한 고둥을 '최적의 높이'(약 5미터)에서 떨어뜨려 깨 먹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칼로리를 얻으려는 '최적 먹이 획득(Optimal Foraging)' 전략입니다.

'식단폭 모델(Diet-Breadth Model)'에 따르면 , 생물은 상위 자원(비용 대비 칼로리가 높은 자원)이 고갈된 후에야 하위 자원을 식단에 포함시킵니다. 인간이 '잡식성(Omnivory)'이 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인간은 유인원에 비해 뇌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대뇌화(Encephalization)'를 겪었습니다. 이 큰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뇌 용적이 600-700cc에 달했을 때, 인간은 '회색 천장(Gray Ceiling)'이라는 에너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인류는 이 한계를 네 가지 방법으로 돌파했습니다.

  1. 친족/비친족 간 음식 공유: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음식을 나눠주었습니다.

  2. 요리: 굽고, 찌고, 발효시켜 에너지 흡수율을 높였습니다.

  3. 잡식성: 도구를 사용해 다양한 음식을 섭취했습니다.

  4. 성적 분업: 짝 동맹을 통해 남녀가 각자 잘하는 일(사냥과 채집)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임신과 수유, 육아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여성과 아이를 위해 아빠, 이모, 할머니 등 친족 공동체가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공용 에너지 예산 가설(Pooled Energy Budget Hypothesis)'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먹으려고 산다'고 할 만큼 , 음식은 인간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8. 우리 안의 방랑자: 두발걷기와 이주 본능

8장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두발걷기(Bipedalism)' 와 '이주 본능'을 다룹니다. 두발걷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도구 사용(다윈), 체온 조절, 물건 운반(아기 혹은 식량), 달리기(본투런 가설) 등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식량 획득을 위한 '이동'과 연결합니다.

'철새(Migratory Bird)'가 추워서가 아니라 '배고파서'(먹이 부족) 이동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나그네 영장류(Wandering Primate)'로서 식량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장거리 이동을 위해서는 '항법 장치'가 필요합니다. 철새가 밤에 '별자리(Star Pattern)'를 보고 방향을 찾는 것처럼, 인류 역시 별을 보며 이동하고 미래를 점쳤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주 본능은 유전자에 각인되었을 수 있습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에 나오는 '역마살'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도파민 수용체와 관련된 'DRD4 7R+' 유전형은 '역마살 유전자'로 불립니다. 케냐의 아리알족 연구에 따르면,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정착 생활을 할 때보다 유목 생활을 할 때 더 건강한(체질량 지수 높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특정 유전자가 특정 환경에서 적응적임을 보여줍니다. 현대인이 문득 하늘을 보며 떠나고 싶은 '이망증(Migratory Restlessness)'을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재된 '나그네 인류'의 본능일 수 있습니다.

9. 풍요가 만드는 비극: 부(富)와 저장강박의 진화

9장은 '부(Wealth)'와 '덕(Virtue)'을 진화적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둘 다 적합도를 높이는 행동 전략입니다. '부'는 자원을 체외에 '저장'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하루 벌어 하루 먹지만, 일부 동물은 '저축(Saving)'을 합니다. 이는 자원 공급이 불안정하고, 저장이 가능하며, 수명이 길 때 진화합니다.

이 챕터의 핵심 사례는 '때까치(Shrike)'입니다. '백정새'라는 별명처럼, 때까치는 사냥한 먹이를 나뭇가지나 가시 철망에 꿰어두는 '먹이꽂이(Impaling)' 행동을 합니다. 이는 겨울철 먹이가 부족할 때를 대비한 '저장' 행위입니다. 때까치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사냥하고(최적하 자원 생산), 심지어 남의 먹이를 훔쳐(도벽 기생) 부를 축적합니다.

인간의 '저장강박(Hoarding Disorder)'은 이러한 때까치의 행동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콜리어 형제가 136톤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굶어 죽은 사건은 이 본능이 극단화된 병리적 사례입니다. 우리는 모두 결핍을 경험했거나 , 미래가 불안할수록(노인, 스트레스) 저장강박을 보입니다.

저장 행동은 '기억력'과 '미래 예측 능력'의 진화를 촉발했습니다. 캘리포니아어치는 먹이가 '없었던' 상자에 먹이를 저장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인이 전쟁과 기아의 역사적 기억(과거) 때문에 불안(현재)을 느껴 과도하게 부를 축적(미래 대비)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10. 협력을 줄이는 복지의 역설: 덕(德)과 호혜성의 진화

10장은 또 다른 생존 전략인 '덕(德)', 즉 '비친족 간 호혜적 협력'을 다룹니다. 이솝 우화 속 박쥐는 기회주의자로 묘사되지만, 현실의 박쥐는 놀라운 '덕'을 보여줍니다.

핵심 사례는 '흡혈박쥐(Vampire Bat)'입니다. 박쥐는 비행에 막대한 에너지를 쓰지만, 피는 영양가가 낮은 저질 식량입니다. 이 때문에 매일 7%의 박쥐가 사냥에 실패하고 아사 위기에 처합니다.

흡혈박쥐는 이 위기를 '피를 토해 나눠주는(Food Sharing)' 방식으로 극복합니다. 이는 단순한 친족 선택이 아닌, 1) 서로 알고 지낸 기간, 2) 과거에 도움을 받은 경험, 3) 상대의 허기 상태를 고려한 정교한 '호혜적 협력(Reciprocity)'입니다.

흡혈박쥐와 인간은 비친족 협력을 진화시킨 드문 종으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습니다.

  1. 높은 에너지 소모 (고열량 식단 필요)

  2. 높은 인지 능력 (개체 식별 능력)

  3. 긴 수명 (반복적 거래 가능)

인간은 때까치처럼 '부(재산)'를 체외에 저장할 뿐 아니라, 흡혈박쥐처럼 '덕(사회적 관계)'을 타인의 몸에 저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 사회의 '복지의 역설'을 지적합니다. 은행, 보험, 연금 등 '제도적 상호 부조'(복지)가 발달하면서 , 과거 친구나 이웃에게 의존했던 '호혜적 협력'(덕)의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친구 사이엔 돈 거래를 하면 안 된다"는 역설적 격언이 생겼습니다. 복지 제도가 인간관계에 기반한 '덕'을 밀어내고 있다는 쓸쓸한 통찰입니다.

11. 살기 위해 죽으리라: 노화와 죽음은 왜 진화했는가?

11장은 '노화(Senescence)'와 '죽음'의 진화를 다룹니다. 우리는 왜 늙고 죽을까요? 기계처럼 닳아서(마모 가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기체는 스스로 복원할 수 있으며, 필요했다면 영생하도록 진화했을 것입니다.

노화는 '번식과 생존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입니다. 한정된 에너지를 생존(회복, 유지)에만 쓰면 번식을 못 하고, 번식에 쓰면 생존이 줄어듭니다. '길항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y)' 이론에 따르면, 젊을 때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가 늙어서는 몸에 해롭게 작용합니다.

또한 '생명 활동 속도 이론'(대사율이 높으면 수명이 짧다) 역시 틀렸습니다. 새는 포유류보다 대사율이 2배 이상 높지만 수명은 훨씬 깁니다. 이는 '조류 장수의 역설'입니다.

핵심 사례는 70세가 넘도록 새끼를 낳는 '라이산알바트로스 위즈덤(Wisdom)'입니다. 알바트로스가 장수하는 이유는 '느린 생애사 전략(Slow Life History)' 때문입니다. 이들은 짝을 고르는 데만 5~10년을 쓰며, 평생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1년에 단 하나의 알을 낳아 지극정성으로 키웁니다.

이렇게 생애 후반까지 꾸준히 번식하면, 노화 유전자에 대한 자연선택의 압력이 약해지지 않는 '선택 그늘(Selective Shadow)' 현상이 사라집니다.

인간 역시 알바트로스와 매우 유사합니다. 느린 성장, 늦은 번식, 강력한 짝 동맹, 협력적 양육, 그리고 긴 수명. 우리가 장수하는 이유는 블루베리나 견과류 때문이 아니라 , 오랜 기간 돌봐야 하는 '자식' 덕분입니다. 인간은 자식을 통해 죽음의 재 속에서 부활하는 '피닉스(Phoenix)'와 같습니다.

12. 영혼을 잠식하는 감염병: 혐오와 행동면역계의 탄생

마지막 12장은 '혐오(Disgust)'의 감정을 다룹니다. 감염병은 인류사에서 가장 강력한 '선택압'이었습니다. 이에 대항해 복잡한 '면역계'가 진화했지만 , 면역계는 비용이 많이 들고(고열, 에너지 소모) 감염된 후에야 작동하는 '한발 늦은'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진화한 것이 '행동면역계(Behavioral Immune System, BIS)'입니다. 이는 감염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심리적 면역계'입니다. BIS의 핵심 감정은 '역겨움(Disgust)' 또는 '혐오'입니다.

혐오는 원래 부패한 음식에 대한 반응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배설물, 해충, 그리고 병자의 기침이나 피부 발진 등 '감염원'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으로 대상이 확대되었습니다. 곰베 국립공원의 침팬지들이 병들고 장애를 가진 '미스터 백그러거'를 철저히 외면하고 공격한 것은 바로 이 행동면역계가 작동한 사례입니다.

행동면역계는 임신 초기 여성에게서 더 민감하게 작동하며(입덧), 이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적응입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과잉 일반화'된다는 점입니다.

  1. 성적 규범: 성병 감염 위험 때문에 '비정상적' 성 행위에 혐오를 느낍니다.

  2. 음식 금기: 특정 동물(세균 번식이 쉬운)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3. 외국인 혐오(Xenophobia): 낯선 외모를 '기형'으로 인식하고 , 미지의 병원균을 옮길 것이라는 두려움에 혐오가 발생합니다.

즉, 우리의 도덕성(정결함) 이나 정치적 성향(보수성) 마저 감염병 회피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혐오와 배제, 편견을 면역계가 과활성화된 '자가행동면역 질환(Autoimmune Behavioral Disorder)' 이라고 진단하며, 인류가 이 진화적 유산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았음을 시사합니다.



《인간의 자리》 서평: 우리는 왜 ‘고귀한 인간’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우리는 이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자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계한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서, 우리는 다른 동물들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의 고귀함을 찬미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그 '아름다운 편견' 에 정면으로 돌을 던지는 책이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진화인류학자인 박한선 교수의 《인간의 자리》는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천상이나 꼭대기가 아닌, 그저 '동물의 왕국 어딘가' 에 불과하다고 선언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 교양서가 아닙니다. 사랑, 우애, 탐욕, 혐오, 죽음 등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을 진화라는 날카로운 메스로 해부하는 '인간 본성 탐사기' 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고귀하다고 믿었던 모든 행동이, 사실은 척박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발전시킨 '생존 전략'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 왜 '새'를 통해 인간을 보는가?

박한선 교수의 접근 방식은 독특합니다. 그는 인간을 인간과 직접 비교하는 대신, '새(Bird)'라는 거울을 꺼내 듭니다. 왜 하필 새일까요?

"아니, 새와 인간이 닮았다고? ... 하지만 행동에서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사냥도 하고 채집도 하며 집도 짓는다. 구애 끝에 결혼하여 백년해로하기도 하지만 틈틈이 바람도 피우고 가끔은 이혼도 한다. ... 서로 맹렬히 싸우기도 하고 오래도록 협력하기도 하고 위계 서열을 나누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가 개는 편애하고 뱀은 차별하지만, 새에 대해서는 비교적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합니다. 새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인 방어기제 없이, 인간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습니다.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은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한 수컷의 '시합 기작' 과 다윗의 이야기 로 연결됩니다. 자식을 남의 둥지에 버리는 뻐꾸기의 '탁란' 은 자식의 생존율을 높이려는 냉철한 전략 이자, '부성 확실성' 에 집착하는 인간 남성의 불안과 맞닿아 있습니다. 형제를 죽이는 나즈카부비의 '동기살해' 는 자원 부족 환경에서 비롯된 비극으로, 현대 사회의 극단적 저출산 현상을 '선제적 동기살해' 로 해석하는 도발적인 시각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책은 12개의 챕터에 걸쳐 짝짓기, 양육, 형제 관계, 공격성, 식욕, 협력, 죽음, 혐오 등 인간의 모든 행동을 동물의 생존 전략과 연결하며 '인간의 자리'를 재조정합니다.

💔 혐오, 도덕, 그리고 '행동면역계'라는 충격

《인간의 자리》가 제시하는 수많은 통찰 중 가장 충격적이고 중요한 부분은 단연 12장, '영혼을 잠식하는 감염병'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혐오(Disgust)' 감정이 사실은 병원균을 피하기 위해 진화한 '행동면역계(BIS)' 라고 주장합니다.

면역계가 이미 감염된 후에 작동하는 사후 대응 시스템이라면 , 행동면역계는 감염 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회피하게 만드는 심리적 방어 시스템입니다. 썩은 음식, 배설물, 병든 동료를 피하는 것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병든 침팬지 '미스터 백그러거'가 동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공격까지 당하는 모습은 그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 원시적인 시스템이 현대 사회에서 '과잉 일반화'된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뇌는 성병의 위험 때문에 '낯선 성적 규범'을 혐오합니다.

  • 우리의 뇌는 미지의 병원균을 두려워해 '낯선 외모의 외국인'을 혐오합니다.

  • 우리의 뇌는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보수성'을 강화합니다.

즉, 우리가 '도덕'이나 '정결함'이라고 부르는 가치의 상당 부분 이, 혹은 특정 집단을 향한 우리의 맹목적인 '혐오'가 사실은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원시적 공포의 발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알레르기처럼 면역계가 과작동하는 '자가행동면역 질환' 에 비유합니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오늘날, 이보다 더 날카롭고 시의적절한 진단이 있을까요?

📚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냉철한 진실, 그리고 겸손

《인간의 자리》는 불편한 책입니다. 사랑은 전략이고, 우애는 계산이며, 혐오는 면역 반응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냉철함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저자는 "진실이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은 진실이다" 라고 말하며 독자들을 '아름다운 편견' 밖으로 끌어냅니다.

물론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이, 진화적 설명은 때로 '그냥 그랬다는 이야기(Just-so story)' 처럼 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적응'으로만 설명하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수많은 동물 사례와 인간 행동의 유사성은,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깨닫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최재천의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

  •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분

  •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냉철한 통찰을 원하는 분

  • 현대 사회의 혐오와 갈등의 근본 원인을 고민하는 분

《인간의 자리》는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 아님을 증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수십억 년의 진화사 속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갈고닦은 생존 전략(짝짓기, 양육, 협력, 저장, 이주, 면역)을 이토록 복잡하게 조합하여 '인간성'이라는 독특한 모자이크를 만들어낸 종은 우리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천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비로소 '동물의 왕국'이라는 우리의 진짜 고향에 두 발을 딛게 됩니다. 그 겸허함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